정부가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공적연금도 부족한데 뭔 사적연금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미 존재하는 퇴직연금이니만큼 이를 제대로 운영되게 하여 노후보장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독일이나 스웨덴 같이 발전된 연금제도를 가진 국가에서도 기업연금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고, 특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많이 낮아진 우리의 상황에서 퇴직연금을 보완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다.


기사링크 : 정부,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1년 미만 비정규직도 퇴직연금 가능


문제는 늘 그렇듯이 정부의 조치가 적절한가에 있다. 언론에 보도된 바를 토대로 정부이 '사적 연금 활성화 대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 첫째, 2016년 300인 이상, 2017년 100∼299인, 2018년 30∼99인, 2019년 10∼29인, 2022년 1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

▶ 둘째, 근속기간 1년이 안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2016년부터 퇴직연금 대상에 포함 

▶ 셋째, 퇴직연금의 자산운용 규제 완화 : 현재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제도(IRP)의 위험자산 보유 한도상승(40% --> 70%) 및 개별 위험자산에 대한 보유 한도 폐지


우선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의 퇴직금 제도가 일시금의 한계나 빈번한 중간정산 등으로 실질적인 노후보장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은 퇴직연금으로의 전환이 의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시금에 대한 선호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노후보장 수단으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연금화가 필수적이고, 이에 따라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에 대한 퇴직연금 적용 또한 긍정적이다. 그 동안 많은 사업장에서 퇴직(연)금 적립 의무를 피하고자 11개월이 지나면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 조치는 이와 같은 편법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 조치는 앞서 설명한 긍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금번 정부안의 진짜 목적인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위험자산 운용 확대를 합법화함으로써 금융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것이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와 함께 이루어짐으로써 금융사들은 기금을 자유롭게 운영하며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얻게 되었고, 노동자들은 퇴직연금 가입에도 불구하고 더 불안정한 노후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노후보장을 위한 자금 운용의 핵심은 '안정성'에 있다. 물론 수익성 추구를 통해 자금이 늘어난다면 좋겠지만, 지나친 수익성의 추구는 반대로 노후보장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많은 나라에서 퇴직연금의 자산운용에 대해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하고 있는 이유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이 잘 발달한 스위스의 경우 자금운용사에서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하도록 함으로써 자산운용에 따른 불안정성을 노동자가 아닌 금융사가 감당하도록 하고 있으며, 영국은 사적연금의 확대 결과 노후소득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경험을 한 후 DB형(Defined Contribution: 기여가 아닌 급여가 고정되어 있는 연금) 기업연금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변경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의 경험은 수익률을 추구하여 불확실한 금융시장에 노후보장을 맡기는 방식이 갖는 위험성을 제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정부의 활성화 방안은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표면에 내새운 채 실제로는 금융자본의 먹거리를 늘리는 방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진정으로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공적연금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퇴직연금을 포함한 사적연금은 적정한 규제를 통해 안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험자산 투자에 대한 제한, 수수료율에 대한 제한, 스위스와 같은 일정한 수익률 보장, 투명성과 관련된 규제 등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사에게 더 큰 책임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노후 소득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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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사람

Posted at 2014. 8. 26. 16:30// Posted in 시사

이번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시각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기초연금의 중복지급이 안된다고 보는 시각을 보면 일정한 논리적 공통성이 보인다. 그것은 어떤 제도나 체계의 논리적 타상성 및 일관성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에 집중한 나머지 그 뒤에 있는 사람과 삶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는 부분이다.

(물론, 특히 세월호 특별법의 경우 -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특히 수사권의 경우 - 는 제도의 논리상으로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논의이므로 이 부분은 접고 이야기한다.)


제도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제도의 논리적 일관성과 타당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게 한 번 두 번 예외를 두고 무너지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제도는 그 자체를 강화하게 되는 힘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제도 자체의 논리는 그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기초연금의 목적은 빈곤한 사람(혹은 빈곤해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며, 법체계의 목적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모두 사람들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게 보면 좀 더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삶이 아닐까. 제도의 논리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전제 하에서만 유의미하다.


물론 민주주의의 많은 부분은 과정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어떤 과정은 목적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민주적인 과정이 지켜지는 한에서 제도의 논리적 정합성은 사람의 삶에 우선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개인의 삶의 질적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사 누스바움의 메세지는, 국가와 제도를 다루는 사람들이 그 자체에 함몰된 나머지 사람들의 삶의 중요성을 놓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한 것이 아닐까.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배운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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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정치권에 복지열풍이 거세던 지난 2009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의 최대의 정치적 자산인 ‘아버지’까지 동원해 복지바람에 올라탔다. 그 기세를 몰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시하며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보장’,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과 같은 핵심적인 복지공약은 차례차례 후퇴했다.


박근혜대통령의 복지개혁 마지막 카드: 기초생활보장제


아직 박근혜대통령이 취임하고 손대지 않은 복지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 사회의 최후 안전망으로 지난 2000년 도입 이후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너무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급여수준이 계속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지난 봄 ‘송파구 세 모녀 죽음’을 계기로 제도 개선에 대한 여론도 높아졌다. 정부도 여당의원을 동원한 의원입법의 형태로나마 개정안을 제시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기초법 개정의 방향은 ‘맞춤형 개별급여’로 요약된다. 지난 13일 국회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가 밝힌 내용(「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에 따르면 정부 여당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한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정부법 개정안, ‘맞춤형 개별급여’ 도입에 초점


첫째, 현재 최저생계비를 중심으로 일괄적으로 결정되는 수급선정기준을 급여별로 다층화하여 탈수급 유인을 제고한다. 둘째, 급여별 특성 및 상대적 빈곤 관점을 반영하여 보장성을 적정화한다. 셋째,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여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이와 같은 원칙에 기초한 각 급여별 개정방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급여별 수급선정기준이 제시됐다. 생계급여는 종전의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 30% 이하라는 상대빈곤을 기준으로 지급한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이하,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3% 이하의 가구에 대해 실제 임차료 또는 주택수선유지비를 지급한다. 교육급여는 중위소득 50% 이하의 대상자들에게 제공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서는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를 제시하였다. 현재의 부양의무자제도는 수급자 가구에 대해 부양의무를 가진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양의무 미약’ 또는 ‘부양의무 있음’으로 구분되어 적용된다.


(1) 부양능력 미약 :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이 해당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넘을 경우

(2) 부양능력 있음 :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해당가구 최저생계비와 수급자가구 최저생계비를 합산한 것의 130%를 넘을 경우 부양능력 있음(단, 취약가구는 185% 기준)


부양능력 미약으로 판정된 경우 실제 부양여부와 상관없이 수급자에게 일정액의 부양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간주부양비’라고 한다. 간주부양비는 부양의무자 실제소득에서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뺀 금액에 30%의 부양율을 곱하여 산정한다(혼인한 딸이나 취약계층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15%). 이 금액의 수준과 수급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생계급여 급액이 차감되거나 수급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부양능력 있음으로 판정된 경우는 수급 자격이 박탈된다.


정부의 개정안은 이와 같은 기준을 완화하여 부양능력 미약은 부양가구 최저생계비의 185%로, 부양능력 있음은 중위소득과 수급자 가구 최저생계비를 더한 수준으로 상향조정하여 완화하겠다는 것이다(그림참조).



        출처 : 보건복지부, 2014,「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


여야 의견 상당히 근접한 듯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의원별로 상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나 공통 요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빈곤선 기준을 법안에 명기하여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하지 못하도록 한다. 째,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추가적 완화가 필요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추가적 완화 내용으로는 부양능력 미약을 없애는 것과 1촌의 배우자(즉, 며느리와 사위)에 대한 부양의무 완화, 노인 등 취약계층의 부양의무 면제 등이 거론된다. 그 밖에는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심의, 의결기구인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역할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현재 여야간에는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 여부와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를 수용할 경우, 야당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입장이 정부 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핵심 문제인 수급선정기준 논의가 빠져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의 개정안과 여야 간의 논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정부의 개편안은 수급선정기준의 개선이 아닌 통합급여를 개별급여로 전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송파구 세 모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리고 수많은 빈곤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합급여 체계가 아닌 수급선정기준 문제다.


수급선정기준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현재 기초법은 수급 대상을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최저생계비의 세 가지가 수급자 선정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들 각각은 모두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의 소득인정액이 실제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격을얻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무려 117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부양의무자의 대부분은 소득이나 재산이 기준보다 소폭 높은 경우로 실제 부양능력이 높지 않은데도 자신 때문에 부모나 자식이 수급권을 얻지 못하게 하는 원인제공자로 내몰리는 꼴이다. 또한 간주부양비나 자의적인 부양관계 판단으로 인한 수급 탈락자의 비중도 적지 않다.


둘째,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으로 구성된다. 소득평가액은 실제소득을 기준으로 하지만, 추정소득 규정을 두어 실제 소득이 없는 경우라도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소득이 있다고 간주한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 재산과 같이 사실상 현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없는 소득을 이유로 급여가 줄어들거나 수급 대상에서 탈락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관련기사 “방한칸 있다고 수급자 될 수 없다?”)


셋째, 최저생계비의 경우 그 수준이 낮아 실제로 빈곤층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거주지역이나 가족구성 등 소비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최저생계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제도 도입 당시인 1999년 도시근로자 가구 중위소득의 45.5% 수준에서 지난해 40% 수준으로 계속해서 감소되어 왔다.


이 중에서 좀 더 급박한 문제를 꼽으라면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액의 문제다.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기준으로 인해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비수급 빈곤층’이 되고 있다. 이들은 수급자만큼, 혹은 그 이상 빈곤함에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 계속 방치될 우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세 가지 제도 개편 방향, 즉 ‘급여별 수급 기준 다층화’,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그리고 ‘부양의무 기준 완화’가 수급선정기준 개선과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우선 급여별 수급기준 다층화, 즉 개별급여로의 전환은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의료급여나 교육급여에 대해 수급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일부 급여를 차상위 계층으로 확대하지만, 부양의무자를 이유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여전히 배제한다.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또한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급여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현재 제도에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 내로 포괄하는 조치는 아니다.


정부의 개편 방향 중 유일하게 수급선정기준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다. 이는 비수급 빈곤층의 수급권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장한다는 점에서 금번 제도 개편 안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계한 것처럼 현재 개편안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12만명에 불과하다. 이는 부양의무자 등의 이유로 수급권을 박탈당한 117만명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여전히 90%의 비수급 빈곤층은 사각지대에 남는다.


뿐만 아니라 정부 안은 부양의무자의 기준 완화 후에도 간주부양비를 존속시키고 있으며, 소득환산이나 추정소득의 문제는 아예 다루고 있지 않다. 특히 소득인정액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개편안과 여야간 논의는 수급선정기준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논의이다. 물론 통합급여의 개별급여화나 상대빈곤선 논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급성에 있어서 제도 밖에 방치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정부의 제도 개편안은 부분적으로 빈곤층의 생활을 개선한다고 해도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양의무자 폐지돼야


세 모녀 사건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빈곤한 사람들이 매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 아들을 가진 아버지도, 2011년에 수급자에서 탈락하고 객사한 할머니도, 2012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머니도 모두 빈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서조차 밀려난 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거듭되는 비극의 중심에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밀려난 비수급 빈곤층이 있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편은 수급선정기준의 개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 논의의 초점을 부양의무자제도에 두어야 한다. 가족에게 생계 책임을 묻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게 옳다. 정부의 개편안이나 야당이 제시하고 있는 완화 방안은 현상의 일부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는 못한다. 부양의무자가 수급자 선정 기준이 존재하는 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양의무기준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보다는 부양의무기준을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논의해야 한다.


소득인정액에 있어서는 실제 있지도 않은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추정소득의 폐지가 필요하다. 추정소득은 수급자의 실제 소득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도 수급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소득이 있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일정 금액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제도다. 이는 실제 없는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문제를 낳는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의 재산은 상당한 고가가 아닌 한 소득환산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소득이 될 수 있는 것을 소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가난한 사람의 복지로 제자리 찾아가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본 목적은 빈곤한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며, 경제적 효율성의 추구는 그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부정수급 운운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뿌리 자체를 흔들곤 한다. 앞에서 살펴본, 부양의무자제, 추정소득, 재산의 소득환산액 모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관리하려는 정책 방향이 낳은 독소조항들이다.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이러한 규정들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정리하면,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논의는 핵심 주제 선정이 부적절하다. 맞춤형 급여체계, 빈곤선 기준(상대 빈곤선)도 개선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지만, 수급선정기준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논의는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일이다. 수급선정기준을 개혁의 핵심 주제로 삼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비수급 빈곤층의 복지 권리를 다루어야 한다.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 논의에 앞서 수급선정기준을 논의 테이블 중심에 올리고 수급 당사자, 시민들과 국민적 토론을 벌이자. 그래야 또 다른 세모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본 글은 프레시안에 내만복 칼럼으로 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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