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회 수요집회 후기

Posted at 2011. 12. 14. 23:32// Posted in 시사
  원래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오늘이 수요집회 1,000회째라는 기사를 보고 충동적으로 종로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수요집회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참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도 있었고, 최근 평화비 건립에 대해 막아달라는 요청을 한 일본 대사관의 후안무치함과 그에 대해 적절히 대응 못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에 대한 분노도 있었으며, 부분적으로는 낮에 하는 집회에 참가하기 좋은 최근의 개인적인 환경도 작용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기자들도 많이 왔고요, 중간에 불쑥 솟아 있는 SBS 기자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이 저렇게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어 시야를 엄청나게 제한했습니다. 특히 제 앞에는 동아일보(!) 기자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 짜증X100 이었습니다. 취재도 중요하지만 집회를 방해해서야...


  12시 정도에 집회장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더군요. 제가 도착했을 때는 (아마도) 행사가 막 시작되었을 때인 것 같았습니다. 역시나 의미 있는 행사에 많이 참가하시는 권해효씨가 듣기 좋은 목소리로 사회를 보고 있었으며, 김여진씨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서진씨도 오셨다는데 못봤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봉주, 정동영, 권영길씨 같은 분들도 오셨다는데 못봤습니다. 흑...) 이런 저런 순서가 있었지만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함자가 기억나지 않는) 위안부 할머니의 발언(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주요 정당 정치인들(한명숙, 정몽준, 이정희)의 발언 중 정몽준씨의 순서. 정몽준씨의 순서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내려와! 내려와!"라고 외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꿋꿋하게(?) 끝까지 발언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연대발언 중 여고생들의 발언과 (아이고, 발랄해라...) '그날이 오면'을 불렀던 노래패 공연. 아는 노래라 따라 부르는데 거기서 부르니 새삼 목이 메는 기분이랄까요... 그랬습니다.

가운데 금빛 동상이 바로 평화비입니다. 평화비 가까이 계신 분들이 위안부 할머니들. 이제 겨우 예순 여섯분이 살아계신다고 합니다. 그 분들 생전에 사과와 처벌, 제대로 된 배상을 받아야 할텐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비를 무사히 설치했다는 것인데, 돌아와서 일본 대사관측이 철거를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다 또 한 번 전투력이 상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안무치함이란 정말... 
 

이 차는 트위터리안들의 모금을 통해 할머니들께 기증한 희망승합차입니다. 트윗을 심심찮게 하는 편인데 모금운동에 대한 내용을 보지 못했네요. 참가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부터 (주로 그 시절에) 적지 않은 집회와 시위에 참석했던 편인데, 매주 멀지 않은 곳에서 있었던 수요집회에는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사안의 정치성에 대해 낮게 보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집회의 필요성이나 중요성, 정당성에 대해 달리 생각했을 리는 없지만, 다른 집회들에 비해 정치적 우선순위를 낮게 생각했다고 할까요? 한나라당의 정치인조차 와서 연대발언을 한다는 것을 보면 이 집회가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모순을 보여주는 집회는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로 대학시절에 말이죠. 졸업하고 최근까지는 사실 이런 저런 생각조차 없이 살았죠. 부끄럽게도.)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서 저의 그런 시각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것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장기적이고 긴 시각에서 보면, 이 문제만큼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제가 없거든요. 인권의 문제, 여성의 문제, 평화의 문제, 국가권력의 문제와 같은 큰 틀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안들을 담고 있는 문제임과 동시에 수십년의 세월이 지날 때까지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정치적 의미 이전에 가장 본원적인 인륜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배금주의, 효율 제일주의, '실용'이라는 이름하에서 이루어지는 정당성의 외면의 문제가 역사적으로 시작된 것 또한 식민지 시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에 실패하고, 일제와는 독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통해 스스로 정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을 기회를 포기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역사청산'이라는 문제는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방된 국가에서 친일파, 부역자를 기용하며 '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서'라는 실용의 논리를 내세웠으며, 한일회담에서도 경제개발의 중요성이라는 실용의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이 출발했습니다. 이와 같은 실용의 이름으로 정의를 짓밟는 논리는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학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경제위기를 우선 극복해야 한다며 재벌에게는 특권을, 노동자에게는 정리해고를 주는 식으로 수없이 변주되며 우리 사회와 역사에 무수히 많은 오점을 찍어왔습니다. 

Korea's new President, 이명박
 이 사람의 당선과 위안부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비약일까요? 그런
 측면이 있긴 하겠지만 저는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혐짤 죄송...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현 대통령을 찍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비리도 많고, 범죄자일 수도 있다는 거 안다. 하지만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에 투표한 것이죠. 지금 이 혼란스러운 정치현실과, 전보다 더 힘들어진 서민의 삶은 그 선택에 대한 대가입니다. 18대 국회 수도권에서 대거당선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매해의 예산안과 미디어법, 그리고 한미 FTA를 날치기 통화시켰습니다. 그 선거의 뒤에도 뉴타운이라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냐 이전에 무엇이 나에게 이득이 되느냐를 생각한 결과라는 이야기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그 연원은 식민지와 해방, 그리고 역사청산의 실패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위안부 문제는 우리 역사의 잘못 끼워진 첫단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그런 생각이 들어 그간 이 문제에 '정치적 우선성'이 없다고 여긴 저의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라도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 다행이라는 작은 위안도 함께 들었습니다.

  후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할머니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꼭 살아서 사과받으셔야지요.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선 조작  (0) 2012.03.20
나꼼수, 비키니, 그리고 사과  (0) 2012.02.07
묘한 불편함  (4) 2011.11.30
한미 FTA가 뭐길래 ② (부제 : It's class, stupid!)  (0) 2011.11.24
한미 FTA가 뭐길래 ① (부제 : It's class, stupid!)  (0) 2011.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