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추억

Posted at 2011. 12. 3. 22:18// Posted in 기타
나같은 얼치기 운동권 출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비웃을 사람도 많겠지만, 요즘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나 몸상태 핑계로 거리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트윗으로 소식을 접하다보면, 나 집회 참가 못하게 하려고 아버지가 회사 휴가 내고 아침부터 밤까지 나와 붙어 계셨던 96년 여름도 생각나고 그렇다.

내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참가한 집회는 대학교 3학년 5월이었다. 솔직히 당시만 해도 밥먹듯이 집회에 참가하던 시기인지라 그 날의 이슈가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평소처럼 학내 집회를 하고 거리로 진출하다가 교문 앞에서 전경들과 조우했고, 이런 저런 (아는 사람은 아는) 대치 과정 중에 날아온 주먹만한 돌이 얼굴에 적중해서 그대로 병원에 실려갔었다. 피를 워낙 많이 흘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로 병원에 가보니 광대뼈 골절이라고 하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었다. 다행히 나중에는 뼈가 '예쁘게' - 당시 의사의 표현이다 - 부러져 수술은 안해도 된다고 했지만, 안면이 절반쯤 마비되었는데 감각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서 식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회복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듯하고 덕분에 한동안은 집회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해도 본대에 있었던 - 본대는 집회 현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집단을 말한다. 본대 말고 그럼 전에는 어디 있었는지는... 역시 아는 사람은 안다. ㅎㅎ - 기억이 난다.

나는 그 해 9월에 군대를 갔고, 따라서 그 5월과 9월 사이에도 아마 적잖은 집회에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집회가 '제대로' 참가한 마지막이라고 한 까닭은, 저 때 이후로 집회를 무서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집회에 참가하던 대학 1학년 때도 어느 정도 무서워했지만, 그 날 이후의 무서움은 좀 달랐다.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시위 인파 한복판에 서 있으면 무언가 날아올 것 같고 그게 나에게 맞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어 거리에 서는 것이 퍽이나 두려웠다. 입대 후 훈련소에서 모의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할 때 회수조로 차출되어 훈련병들이 연습용 수류탄을 던지는 반대편에 서서 기다리다가 떨어지면 집어오는 역할을 부여받았는데, 주먹만한 쇠공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나서 그자리에 못박혀버리는 바람에 조교에게 욕 꽤나 먹은 기억도 난다. 자대에 가서 부대원들이 간혹 야구를 할 때도 나는 공이 무서워서 늘 상황근무를 자청하곤 했었다. 워낙 그 날의 데미지가 컸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어찌 생각해보면 나란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 씁쓸한 기억이다.

군 제대 후에는 거의 집회에 참가한 기억이 없다. 아마 졸업할 때까지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보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가한 것이 대학 3학년 때 이후 첫 집회였나보다. 진심으로 집회를 즐기는 대학생들을 보며 내가 집회에 참가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지금이 대학 졸업 후 그 어느 때보다 거리에 나가고 싶은 시기인 것 같다. 매일 저녁때가 되면 우울해지고 만사 의욕이 나지 않을만큼. 하지만 하필 지금 내 상황이 이래서 나갈 수가 없다. 아내와 의논해봤지만, 그녀의 결론도 나의 결론도 아직 그럴 정도의 몸상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매일 이 시간쯤이 되면 이게 혹시 핑계는 아닐까, 나는 아직도 집회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국만큼이나 참 답답한 마음이다.

내년 2월에 종합검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 때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그 후로는 이런 시국이 또 온다면 지금같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관을 위한 포스팅  (0) 2013.02.17
뚜벅뚜벅  (0) 2012.12.19
마르크스  (0) 2012.01.13
단상(2) : 민주당  (0) 2011.12.14
단상(1) : 자유  (0) 2011.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