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Posted at 2015. 1. 21. 14:15// Posted in 시사

석사논문을 쓸 때 건강보험공단의 소득 및 재산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쉽게 접하기 힘든 전체경제활동인구(에서 1%를 무작위표본추출한)의 소득분포를 보며, 내가 회사원이던 시절에 받고 있던 연봉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분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는 것을 알고 꽤 놀랐다. 그 후 이런 저런 소득분포를 보면서 우리가 손쉽게 '직장인'이라고 말하는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직장인'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서민도, 중산층도 아닌 상당한 상류층임을 알 수 있었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을 보며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좀 더 많은 데이터를 좀 더 실증적으로 살펴봐야 하겠지만, 우리가 흔히 '직장인'이라고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정규직 화이트컬러의 지위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높다. 물론 조세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증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이들은 아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들에 대한 증세 없이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부자증세를 기본으로 한 조세정의를 바로잡는 것과, 좀 더 보편적인 증세를 통해 공공의 영역을 넓히는 일은 함께 갈 수 있고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보면 이번 박근혜 정부의 우회적 증세는 그 과정에서의 기만성에 대한 비판을 별도로하면, 부자증세를 우선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비판할 지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중산층이라고 잘못 인식되는) 상류층에 대한 증세의 성격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잘못되지 않은 지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어느 한 측면에 대한 여론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면,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지식인'의 책무에 속한다. 그들은 원래 시도 때도 없이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욕먹는게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번 상황을 놓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 분노의 근간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해 당신들 대부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유하며, 따라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부담을 하셔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나를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라는) 좁은 도그마에 갇혀 대중들 정서도 읽지 못하는 관념파"라고 욕한다면 기꺼이 욕먹겠다. 하지만 의외로 그 정서를 가진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손익의 관점에서 그 정서를 갖는 것이 타당한 - '대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이번 연말정산으로 인한 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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