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들어간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내가 공부하고 있는 세부전공은 '사회보장제도'이다. 이는 한국의 사회복지학과 영역의 대부분을 이루는 임상사회복지 - 아동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등등 - 나 사회복지 행정 - 주로 전달체계 - 보다는 좀 더 거시적인 차원을 다루는 전공이며, 복지국가론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전공이다. 물론 양자 모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어쨌든 사회보장제도를 공부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불평등을 완화하는가?"


질문이 '빈곤을 완화하는가'가 된다면 좀 더 쉽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 빈곤 완화효과를 보여주는 연구야 차고 넘칠 정도니까.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그 자체로써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좀 복잡하다. 대개 실질적으로 불평등을 완화시킨 '복지국가'는 애초에 시장소득 단계에서도 상당히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거시경제정책을 운영한 경우가 많고, 정치구조에서도 노동자 정당의 힘이 강하고 뭐 그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회보장제도'가 그 자체로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독립변수'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인하기 어렵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쉬라(1981)는 이 질문에 대해 사회보장제도가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하층에 속하는 집단으로의 소득재분배의 정도는 미약하며, 사회보장제도의 소득이전 효과는 계급 내 소득이전 또는 삶의 주기에 따른 (시간적) 소득이전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상 재분배효과가 미미하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변혁 없이 - 복지 따위로 - 노동자의 삶이 의미있는 정도로 나아질 수 없다고 보았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배적 제도와 가치가 변하지 않는 한은 한 가지 구조의 개혁은 다른 구조의 변화로 부정된다고 봤던 데이비드 하비(1975)가 생각나기도 한다. 원인이 뭐가 되었든,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관심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공부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우울한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전복...까지는 그렇다치고, 적어도 시장소득에서의 분배 변화 - 즉, 경제 영역의 변화 - 가 불평등 완화의 최소조건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진짜 독립변수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그 답은 답을 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많이 다를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 그리고 학문적인 개념을 좀 빌자면 - 권력자원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권력자원 동원론은 유행이 좀 지났다. 하지만 그 후에 각광받은 제도주의 같은 개념에서도 권력자원은 중요하다. 권력자원의 효과가 제도에 의해 많이 다르게 나타나서 그렇지). 민주주의라는 조건을 무기로 했을 때, 현재의 구조에서 약자가 된 다수가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무기는 결국 '쪽수' 아닐까. 물론 그 내부에서 - 산업사회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게 - 다양한 요구와 입장을 조정하고 합의해서 최종적으로 '쪽수의 힘'을 살리는 것은 난망한 과제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 데는 거기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게 본다면 '쪽수'에 기반한 '정치'의 힘이 경제도 바꾸고, 복지도 바꿔서 1차 분배와 2차 분배에서의 분배정의를 개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느 정도로 어떻게 개선할지를 합의하는 일은 또 엄청난 과제긴 하겠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사회보장제도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쪽수'의 힘이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싸움에 나서야 한다. 물론 과거처럼 하나의 의제를 놓고 다 같이 모여서 우르르 나가는 싸움이 될 수 있는 경우는 - 앞서 말한 요구와 입장의 다양성으로 - 많지 않겠지만,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미시적인 투쟁이 이루어지고 그 힘이 느슨하게라도 조직화될 때 '쪽수의 힘에 의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그런 싸움에 나서려면 적어도, '내가 이 싸움에서 지더라도, 그래서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여타의 불이익을 겪더라도 우리 가족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먼저 동을 뜨지는 못하더라도 동을 뜬 사람에게 뜨겁게 호응할 수 있지 않을까.


전두환이 그렇게 때려 잡으려던 학생운동이 취직하기 힘들게 만들어놨더니 스스로 없어지더라는 농담이 그냥 농담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포' 앞에 취약하다. 왜 사람이 이기적이 되는 두 가지 근원이 '탐욕'과 '공포'라고 하지 않나. 만약 사회보장제도가 밑바닥으로 떨어져도 죽지는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 공포는 완화되지 않을까. 그리고 공포가 완화된 사회에서 '쪽수의 힘'은 좀 더 잘 동원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회보장제도의 정비 자체가 '쪽수의 힘'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한 편으로 그 힘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이지 않을까.


그래서 난 어쩌면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최근들어 '사회투자론'으로 급격히 수렴되고 있는 복지국가론보다도 좀 더 전통적인 소득과 비용에 대한 경제적 보장으로서의 사회보장제도가 중요한 진보적 의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그 사회보장제도가 자체로서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겠다. 그게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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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이란 무엇인가

Posted at 2012. 4. 2. 16:33// Posted in 공부


사회보장이란 무엇인가?

1. 교재 요약

● National Security와 Social Security

- 국방(National Security) :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가의 영토와 그 안에 사는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 사회 보장(Social Security) : 사회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국민들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사회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 → “어떤 종류의 사회생활을 보장하는가?”에 따른 다양한 정의

● 사회보장의 일반적 정의

- 사회보장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위험들 - 노령, 실업, 장애, 사망,

출산, 장기요양 위험 - 로 인해

첫째, 소득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둘째, 소득이 장기적(영원히)으로 없어지거나,

셋째, 지출이 크게 증가하여 사람들이 이전의 생활을 하지 못할 경우, 이전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모든 프로그램들

- 상기 정의의 사회보장은 국가가 책임지는 것만을 말함

- 상기 정의의 사회보장은 사회생활의 보장을 물질적·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보장으로 한정

(경제적 보장의 개념, 즉 소득유지 정책이나 소득보장의 개념과 유사)

● 국가에 따라 더 넓은 범주를 포괄하는 경우도 있고, 더 좁은 범주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음

- 한국 : 비물질적 사회복지 서비스를 포함 / 미국 : 노령, 유족, 장애 연금으로 한정

2. 사회보장에 대한 여러 정의들

● 국제노동기구 (ILO)

- 사회가 적절한 조직을 통하여 그 구성원이 봉착하는 일정한 사고에 대하여 제공하는 보장

이다. 이 사고는 자산이 적은 개인으로서는 스스로의 능력이나 예지, 혹은 동료와의 개인적

결합에 의해서도 유효하게 대비할 수 없는 본질적 사고이다.

(국제노동기구, 1943, 『사회보장에의 접근』)

- 질병, 분만, 산업재해, 실업, 고령, 장애, 사망 등에 의한 소득의 중단 또는 감소가 미치는

경제 사회적 불안공적 대책을 통해 대처하기 위해서 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보호

(국제노동기구, 1989, 『사회보장 입문』)

● 베버리지 보고서 (1942)

- 사회보장이란 실업,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하여 수입이 중단된 환경에 대처하여, 또 노령에

의한 퇴직이나 본인 이외의 자의 사망으로 인한 부양의 상실대비하고, 나아가서는 출생,

사망 및 결혼 등에 관련하는 특별한 지출을 보충하기 위한 소득의 보장을 의미한다.

●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1호

- 질병, 장애, 노령, 실업,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

하며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

관련복지제도

3. 사회보장을 정의하는 공통적 요소들

보장의 대상이 되는 위험 : “사회적 위험”

-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예기치 못한 경제적 손실의 가능성

- “사회적 위험이란 개인의 건강생활·경제생활에 위협을 주는 개인의 생활상의 위험을 의미”

하며, “개인의 건강생활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위협하는 사유들은, 그것이 비록 개인의 사생활

상의 위험이긴 하지만, 안정된 사회는 안정된 개인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므로, 그러한 사유들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할 사회적 위험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사회공동체의 위험).”

(이상광, 2002, 『사회법』, 박영사)

- 위험 발생의 사회적 성격 : 산업화에 따라 농부, 장인과 같은 자영업자들이 임금 노동자화 되고,

도시화에 따른 지리적 이동의 증가로 확대가족 및 공동체가 파괴되어 실업, 노령, 산업재해,

질병 등으로 인한 소득상실의 문제가 심화됨 → 개인의 문제로 인한 위험이 아닌 사회적 문제

로 인한 위험의 성격

경제적 측면의 보상 : 현재까지의 ‘사회보장’은 인간 삶의 여러 요소 중 경제적 측면을 보장하는

것에 - 즉, 소득보장 - 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 참고 :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1970년대 프랑스에서 대두된 개념으로 1980~1990년대 EU에 의해 수용되어 EU 회원국 사회정책의 이론적

기초로 자리를 잡았을 정도로 유럽에서는 폭넓게 사용된다.

∙정의(EU) : 사회적 배제란 인간이 현대사회의 정상적인 교환, 관행,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복합적이고 변화하는 요인들을 말한다. 빈곤은 가장 명백한 요인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배제는 또한

주거, 교육, 건강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 등의 권리가 부적절하게 주어져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빈곤 개념이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 간 분배적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사회적 배제는 사회참여나

사회통합의 부족, 권력의 부족 등과 같은 관계적 이슈에 초점을 맞춘다.

- 김수현·이현주·손병돈, 2009,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한국의 가난』, 한울아카데미

국가의 보장 (공적, 조직적 보장) : 사회적 위험에 대한 개인적 대응의 한계

→ (주로 정부와 같은) 공적 기관의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 사회보장 실현

4. 왜 ‘사회’ 보장인가?

● ‘사회적 위험’을 보장

- 사회공동체의 위험 : 사회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유지하기 위해 보장이 필요

- 위험의 사회적 원인 : 산업화, 도시화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보장의 필요가 증가

● 경제 vs. 사회 : ‘경제적 원리’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적 원리’에 따른 보장

- 경제와 구분되는 개념의 ‘사회’ (칼 폴라니, 1944,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산업화 이전에 사회에 묻어들어(embedded) 있던 경제를 사회로부터

뽑아내어(disembedded) 자기조정시장의 원리로 움직이는 ‘사회로부터 독립된 경제영역’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였으며, 이는 사회와 자연환경 모두가 파괴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했음

⇒ 이처럼 경제적 지평을 확대하려는 자유방임 운동에 맞서, 경제를 뽑아내는 것에 저항하면서

출현하게 되는 사회 보호의 반대운동이 발생(이중운동)

● 보장 주체로서의 ‘사회’의 의미

- 티트머스, ‘복지의 삼분립’ : Social Welfare, Occupational Welfare, Financial Welfare

- 이 때, Social Welfare는 ‘정부의 직접적 지출에 의한 복지’를 뜻하며, 이런 관점을 적용할 때

‘사회보장’의 ‘사회’는 보장 주체가 ‘국가(정부)’임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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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과 복지 (이호근 편, 인간과 복지)

Posted at 2012. 3. 12. 00:29// Posted in 감상
비정규 노동과 복지
국내도서>전공도서/대학교재
저자 : 이호근
출판 : 인간과복지 2011.06.30
상세보기

미쉬라의 책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을 보던 2월 초부터 잡고 있던 책이니까, (그 사이 다른 책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꽤 오랫동안 읽은 샘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린 측면도 있고, 논문 모음 형태라 짧은 호흡으로 읽기 좋아서 띄엄띄엄 읽은 탓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을 읽는 도중 책을 소화하는 나의 능력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느꼈기 때문. 무슨 소리인고 하니 이런 논문들을 모은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계적 지식이 필수적인데 나에게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새삼 발견했기 때문이다. 통계를 제대로 모르다보니 글을 비판적으로 읽지 못하고 그냥 글쓴이의 논리를 따라가게 되고, 결국은 피상적인 이해에 그친다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통계 공부가 아주 시급한 샘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지 막연할 따름이구나.

그와는 별도로 '비정규직'이라는 현재 한국사회(비단 한국사회 뿐만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더 시급한)의 중요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글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다. 외국의 다양한 사례들은 (상대적으로 통계에 대한 이해가 덜 중요하기도 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어 좋았고. 그 결론이 비정규직 문제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만큼 심각한 경우도 드물다는 점이라 안타까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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