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읽은 미쉬라의 책(2012/02/14 - [감상]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이 워낙 좋았었기 때문에, 국내에 번역된 그의 또 다른 책의 존재를 아는 순간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부제가 Toward a Global Social Policy라니 이거 보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러나 이 책은 이미 절판 상태였고, 도서관에서 구할 수는 있었겠지만 유독 책에 대해서는 소유욕을 불태우는 성향상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물론, 원서 구해서 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 혹시나 해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마침 책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3천원의 배송비를 부담하고도 기꺼이 득템! 행복한 마음으로 읽었다.

  미쉬라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아주 거칠고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70년대 후반 복지국가의 전성기의 종료와 함께 시작된 복지국가에 대한 우파의 공격은 세계화, 특히 금융의 세계화를 통해 실질적으로 복지국가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쉬라에 따르면 세계화는 화폐자본의 이동성에 대한 제약을 철폐시킴으로써 리플레이션 정책을 통한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이라는 일국적 케인즈주의 거시경제 관리모형을 붕괴시켰고, 국민국가에 지구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시키고 투자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회적 덤핑'과 임금 및 노동조건의 하향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또 세계화는 '통화주의'로 상징되는 재정적자 및 국가채무 감축을 조세인하와 동시에 국가정책의 핵심목표로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보호체계와 사회지출에 대한 하향합박을 행사하고, 국민국가를 탈중심화함으로써 국민적 연대를 허무는 방식으로 복지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뿐만아니라 세계화는 권력의 균형추를 노동자와 국가에서 자본으로 이전시켜 사회적 협력관계의 토대를 약화시키고, 국민국가의 정책선택지에서 중도좌파적 정책을 제거함으로써 정책선택의 범위를 우편향 이동시켰다. 끝으로 세계화의 논리는 국가공동체 및 민주주의 정치의 논리와 갈들을 일으킴으로써 지구적 자본주의와 민주적 국민국가 사이의 투쟁을 촉발한다.

  물론 이와 같은 '세계화'의 특징은 상당부분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 국가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알고 있듯 80년대 이후 복지국가의 후퇴기에도 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다른 유형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영미권 국가들만큼 사회적 보호에 있어서 후퇴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영미권에 대해서도 어떤 학자들은 '근본적이 변화'가 있었다고 하기 어려우며, 이는 복지국가를 형성하는 제도들이 가진 경로의존성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Pierson(1994)이 그렇다. 미쉬라도 이와 같은 부분을 인식하고 있다(실제로 미쉬라 자신도 이전에는 우파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는 '역전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쉬라는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가정, 즉 '완전고용'이 포기되었다는 것은 각 제도의 축소 정도 이전에 과거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보여주는 것이며, 특히 세계화는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효과를 통해 복지국가의 안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에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스웨덴과 독일과 같은 경우에 있어서도 영미권 국가와는 분명 크게 다른 상황이지만 적어도 사회정책이 확대가 아닌 축소의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과 이들의 사회정책 모델이 미래지향적인 모델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제도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지구적 자본주의의 차원에서보면 복지국가의 위기를 온전히 반박할만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안은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지구적 사회정책'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우(the right)로부터의 세계화, 위(Above)로부터의 세계화에 맞서 밑(Bottom)으로부터의 세계화, 좌(the Left)로부터의 세계화를 대면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사회권'으로부터 '사회적 표준'으로의 이행을 말하는데, 이는 '사회권' 개념이 그간 복지국가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한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비서구 문화권에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고, 적정 수준의 보장이 아닌 최저 수준의 보장으로 귀결되며, 무엇보다 사유재산권과 충돌하는 성격으로 인해 세계화의 위협 앞에서 그 의미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적 표준에 대응하는 '사회적 표준'이라는 개념은 문화와 사회가 달라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며, 국가의 경제적 표준에 연계시킴으로써 경제-사회 발전의 조화를 추구하기에 유리하고, 서로 다른 경제발전 수준에서 상응하는 표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회적 표준은 이와 같은 장점으로 인해 기존의 UN이나 ILO의 사회정책과 관련된 권고가 가지고 있는 문제 - 후발 국가의 현실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 - 를 해결할 수 있으며, 경제적 세계화에 대해 사회적 세계화를 병행함으로써 '사회적 덤핑'이 아닌 '사회적 보장'이 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운데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세계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실 이 책의 부제, '지구적 사회정책을 향하여(Toward a Global Social Policy)'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떠올린 질문은 '왜?'가 아닌 '어떻게?'였다. 미쉬라가 한 것처럼 '논증'할 능력은 없지만 개념적으로 화폐자본의 세계화가 케인지언 복지국가 후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며, 따라서 현재는 과거와 같은 일국적 케인즈주의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고 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서는 좌파 버전의 지구적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80%가 '왜?'에 대한 답이며, '어떻게?'에 대한 답은 말미의 '사회적 표준'에 대한 논의 뿐이다. 물론,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한 분명한 하나의 답을 준다는 차원에서 매우 가치있는 책이긴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라는 질문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조금은 아쉽다. 미쉬라가 제시한 '사회적 표준'은 그 스스로가 지적하고 있는 지구적 차원의 사회정책을 논의할 때 생기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점들 - 국민국가에서 민주주의적 정부처럼 사회적책을 강제하고 실행하기 위한 민주적 권위를 가진 주체가 없다는 것과, 각국의 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일괄적으로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는 것 - 중 후자에 대한 해결책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이 책은 첫번째 질문의 답에 대해 '이 책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라고 전제한 후 현존하는 국제기구의 현실과 한계만을 짚고 있다.)

  하지만 미쉬라에게 이에 대한 온전한 답까지 요구하는 것은 다소 과도한 요구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는 정치적 실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자의 몫이 현실을 진단하고 가능한 대안을 조망하는 것 까지라면, 그것을 비전으로 가지고 실행하는 것은 정치의 몫일 것이다. 

  감상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놀라웠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미쉬라는 놀랍게도 이 짧은 책 한 권에서 내가 '복지국가'에 대해 근래 하고 있던 생각들을 거의 다 언급하고 있다. 물론 복지국가에 대한 미쉬라의 지식은 내 지식 쯤은 한쪽 구석에 있는 부분집합으로 가지고 있을테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놀라웠던 이유는 그 생각들 중 상당수가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아니며, 따라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는 데 있다. 그 이야기들이 다루어지는 방식도 -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 없는 부분이니 - 지나가듯 한 마디씩 툭툭 던져지는 형태인데, 예를 들어 사회투자국가에 대해 말하며 인적투자론은 일종의 '생태주의적 오류'라고 툭 던지고(근데, 맥락상 개체주의적 오류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뜻은 통했다.), 복지국가의 미래에 대해 말하다가 뜬금없이 '생태학적 파괴와 폐해가 극심해지면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분별 없는 성장과 천박한 소비주의로부터 급진적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라는 전체 문맥에서 없어도 되는 문장을 툭 던지는 식인데, 이런 부분을 볼 때마다 마치 저자가 내 머리속을 들여다보며 '너 이 부분에서 이 생각했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뭔가 저자와 파장이 잘 맞는 느낌이랄까. 그러다보니 미쉬라의 팬이 되어버릴 것 같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책이 (내가 알기로는) 내가 본 두 권이 모두인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안되는 영어실력을 동원할 차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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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이란 무엇인가

Posted at 2012. 4. 2. 16:33// Posted in 공부


사회보장이란 무엇인가?

1. 교재 요약

● National Security와 Social Security

- 국방(National Security) :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가의 영토와 그 안에 사는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 사회 보장(Social Security) : 사회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국민들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사회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 → “어떤 종류의 사회생활을 보장하는가?”에 따른 다양한 정의

● 사회보장의 일반적 정의

- 사회보장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위험들 - 노령, 실업, 장애, 사망,

출산, 장기요양 위험 - 로 인해

첫째, 소득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둘째, 소득이 장기적(영원히)으로 없어지거나,

셋째, 지출이 크게 증가하여 사람들이 이전의 생활을 하지 못할 경우, 이전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모든 프로그램들

- 상기 정의의 사회보장은 국가가 책임지는 것만을 말함

- 상기 정의의 사회보장은 사회생활의 보장을 물질적·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보장으로 한정

(경제적 보장의 개념, 즉 소득유지 정책이나 소득보장의 개념과 유사)

● 국가에 따라 더 넓은 범주를 포괄하는 경우도 있고, 더 좁은 범주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음

- 한국 : 비물질적 사회복지 서비스를 포함 / 미국 : 노령, 유족, 장애 연금으로 한정

2. 사회보장에 대한 여러 정의들

● 국제노동기구 (ILO)

- 사회가 적절한 조직을 통하여 그 구성원이 봉착하는 일정한 사고에 대하여 제공하는 보장

이다. 이 사고는 자산이 적은 개인으로서는 스스로의 능력이나 예지, 혹은 동료와의 개인적

결합에 의해서도 유효하게 대비할 수 없는 본질적 사고이다.

(국제노동기구, 1943, 『사회보장에의 접근』)

- 질병, 분만, 산업재해, 실업, 고령, 장애, 사망 등에 의한 소득의 중단 또는 감소가 미치는

경제 사회적 불안공적 대책을 통해 대처하기 위해서 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보호

(국제노동기구, 1989, 『사회보장 입문』)

● 베버리지 보고서 (1942)

- 사회보장이란 실업,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하여 수입이 중단된 환경에 대처하여, 또 노령에

의한 퇴직이나 본인 이외의 자의 사망으로 인한 부양의 상실대비하고, 나아가서는 출생,

사망 및 결혼 등에 관련하는 특별한 지출을 보충하기 위한 소득의 보장을 의미한다.

●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1호

- 질병, 장애, 노령, 실업,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

하며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

관련복지제도

3. 사회보장을 정의하는 공통적 요소들

보장의 대상이 되는 위험 : “사회적 위험”

-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예기치 못한 경제적 손실의 가능성

- “사회적 위험이란 개인의 건강생활·경제생활에 위협을 주는 개인의 생활상의 위험을 의미”

하며, “개인의 건강생활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위협하는 사유들은, 그것이 비록 개인의 사생활

상의 위험이긴 하지만, 안정된 사회는 안정된 개인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므로, 그러한 사유들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할 사회적 위험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사회공동체의 위험).”

(이상광, 2002, 『사회법』, 박영사)

- 위험 발생의 사회적 성격 : 산업화에 따라 농부, 장인과 같은 자영업자들이 임금 노동자화 되고,

도시화에 따른 지리적 이동의 증가로 확대가족 및 공동체가 파괴되어 실업, 노령, 산업재해,

질병 등으로 인한 소득상실의 문제가 심화됨 → 개인의 문제로 인한 위험이 아닌 사회적 문제

로 인한 위험의 성격

경제적 측면의 보상 : 현재까지의 ‘사회보장’은 인간 삶의 여러 요소 중 경제적 측면을 보장하는

것에 - 즉, 소득보장 - 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 참고 :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1970년대 프랑스에서 대두된 개념으로 1980~1990년대 EU에 의해 수용되어 EU 회원국 사회정책의 이론적

기초로 자리를 잡았을 정도로 유럽에서는 폭넓게 사용된다.

∙정의(EU) : 사회적 배제란 인간이 현대사회의 정상적인 교환, 관행,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복합적이고 변화하는 요인들을 말한다. 빈곤은 가장 명백한 요인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배제는 또한

주거, 교육, 건강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 등의 권리가 부적절하게 주어져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빈곤 개념이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 간 분배적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사회적 배제는 사회참여나

사회통합의 부족, 권력의 부족 등과 같은 관계적 이슈에 초점을 맞춘다.

- 김수현·이현주·손병돈, 2009,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한국의 가난』, 한울아카데미

국가의 보장 (공적, 조직적 보장) : 사회적 위험에 대한 개인적 대응의 한계

→ (주로 정부와 같은) 공적 기관의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 사회보장 실현

4. 왜 ‘사회’ 보장인가?

● ‘사회적 위험’을 보장

- 사회공동체의 위험 : 사회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유지하기 위해 보장이 필요

- 위험의 사회적 원인 : 산업화, 도시화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보장의 필요가 증가

● 경제 vs. 사회 : ‘경제적 원리’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적 원리’에 따른 보장

- 경제와 구분되는 개념의 ‘사회’ (칼 폴라니, 1944,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산업화 이전에 사회에 묻어들어(embedded) 있던 경제를 사회로부터

뽑아내어(disembedded) 자기조정시장의 원리로 움직이는 ‘사회로부터 독립된 경제영역’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였으며, 이는 사회와 자연환경 모두가 파괴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했음

⇒ 이처럼 경제적 지평을 확대하려는 자유방임 운동에 맞서, 경제를 뽑아내는 것에 저항하면서

출현하게 되는 사회 보호의 반대운동이 발생(이중운동)

● 보장 주체로서의 ‘사회’의 의미

- 티트머스, ‘복지의 삼분립’ : Social Welfare, Occupational Welfare, Financial Welfare

- 이 때, Social Welfare는 ‘정부의 직접적 지출에 의한 복지’를 뜻하며, 이런 관점을 적용할 때

‘사회보장’의 ‘사회’는 보장 주체가 ‘국가(정부)’임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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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 이벤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보편적 무상급식 몽니에 이은 셀프 탄핵과 그 후 야권연대에 기초한 시민운동가의 서울 시장 선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김어준 딴지 총수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상 가장 빨리 시작된 대선 레이스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가카 (여러 가지 의미로) ‘삽질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 무상급식이라는 지난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재보선을 관통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선거의 핵심 어젠다가 된) 복지정책 논란이다. 전근대적ㆍ중상주의적 재벌 위주 경제구조라는 한국의 특수성이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돌풍이라는 보편성을 만나 대다수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이래, 마침내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왜곡하는 요소는 구조적, 혹은 적어도 제도적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은 복지국가라는 (적어도 MB뉴타운돌이들에게 투표할 때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생각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1년을 뜨겁게 달군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셀프 빅엿", 많은 것의 출발점이 될 것같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50~60년대 성립된 서구의 복지국가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 같다. 우선은 더 이상 고도성장 기반의 완전고용이라는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이 성립할 수 없다는 국제적 환경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며, 노동자 계급의 권력자원 동원이 어렵고 극소수 재벌위주의 생산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노동시장의 이원화 문제가 심각한 한국적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어떤 대안을 생각해 내기란 물론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가 막연히 말하는 복지국가가 어떤 생각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체제이며, 그것이 (우리보다 앞서 나간) 서구의 국가들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이해 정도는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정치가들이 외치는 복지가 진정성을 가지고 실천방안까지 고민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표를 모으기 위한 캐치프레이즈일 뿐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에 대해 좀 더 편안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다른 책들도 많지만,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생각들을 들여다본다는 측면에서 라메쉬미쉬라의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은 충분히 좋은 책이다. 재미있고, 충실하며, 무엇보다도 얇다. 좀 오래된 책이지만 한국사회가 복지라는 측면에서 워낙 뒤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낡았다는 느낌도 전혀 들지 않는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반부는 복지를 보는 여러 가지 시각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회개혁으로서의 복지(사회행정적 접근), 사회적 시민권 이론, 수렴이론(기술결정론), 기능주의 관점,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나누어 각자의 시각이 복지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인지를 일일히 짚어준다. 사회정책에 관한 개론서를 보면 거의 용어 설명 식으로 다루어져 있는 이 각각의 입장들을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어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이론적 배경들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뒤이어 후반부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에서 각각 복지국가가 어떻게 형성되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 성과와 한계는 어떤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은 1981년에 쓰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근래 쓰여진 책이라면 담고 있지 않을 사회주의 국가 정확하게는, 소련 의 복지제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이 책이 소중한 또 하나의 이유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를 다룬 내용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자본주의 체제 하 사회정책이 그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략)… 대부분의 연구들이 지적하고 있는 일반적인 결론은, 계급 간 소득재분배, 즉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하층에 속하는 집단으로의 소득재분배의 정도는 미약하며, 따라서 소득이전의 성격은 계급 내 소득이전 또는 삶의 주기에 따른 소득이전의 성격을 훨씬 더 많이 띠고 있다는 것이다… (후략)

   “…(전략)… 사실상 재분배효과가 미미하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서비스가 발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사회서비스는 복지를 일반적으로 구분하여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로 나눌 때의 사회서비스가 아닌 민간 차원의 복지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의 국가복지를 의미한다.)

   “…(전략)… 다시 말하면, 지배적인 제도와 가치가 변화하지 않는 한, 한 가지 구조에서의 개혁은 다른 구조에서의 보상적인 변화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략

   저자의 이야기대로라면 재분배’, , ‘불평등의 완화로서의 사회복지제도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제도와 가치가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제도 또한 그 전제를 크게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가 그 한계를 넘어서려할 때,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힘에 의해 교정될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를 겪으며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힘을 얻고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에서 복지국가가 약화되어 온 현실을 감안할 때 뼈아프지만 타당해 보이는 저자의 지적은 복지국가를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생각해온 이들의 가슴을 때린다. 결국 불평등의 의미 있는 교정은 일찍이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복지국가는 노동자와 서민으로부터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일 뿐일까?

                              국가별 사회정책에 의한 소득재분배 효과. 저자의 논의와 달리
                        국가에 따라 상당한 수준이다. 저자가 주로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하는 국가가 영국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복지국가가 의외로 재분배적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을 지적할 뿐 이런 문제에 직접적으로 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부정적이지만은 않게 볼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책 속에 담고 있다. 그 중 한가지는 복지제도가 재분배적 기능은 약하다고 해도 삶의 기회를 확대하는기능은 상당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NHS 이전과 이후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의료서비스 이용 기회의 차이라든가, 공공주택의 공급이 주거의 평등을 실현하지는 못했더라도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기능은 수행했다는 것과 같은 내용들이다. 재분배는 못했어도 극단적인 불평등은 다소간 감소시켰다고 할까.(실제도 통계적으로도 복지국가는 지니계수를 개선하는 쪽보다는 빈곤율을 낮추는 쪽에서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좀 더 적극적으로 불평등의 완화를 이루고 싶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실망스럽지만, 사회주의 사회의 복지를 다룬 부분에서 저자는 약간의 희망을 남겨준다.

 “…(전략)… 그러나 사회주의적인 복지는 그것이 가진 몇 가지 특성으로 인해 재분배가 수직적이 될 가능성을 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사회서비스 가운데 연금이나 상병급여 등과 같은 이전급여는 의료나 주택 등과 같은 현물급여에 비해 재분배의 정도가 적다. 이는 사회주의에서나 자본주의에서나 이전급여는 임금에 연계되어 있는 데 비해 현물급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물급여에 대한 지출은 재분배적일 가능성이 보다 많다… (후략)…”

 흔히 복지국가하면 1순위로 떠올리는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사민주의 모델의 복지국가는 다른 유형의 복지국가에 비해 사회서비스(국가복지의 의미에서의 사회서비스가 아닌 사회보험, 공공부조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서비스, 이 책에서 저자의 표현을 빌면 현물급여에 대한 지출’)의 비중이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들 국가들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작동하는 어느 국가보다 평등주의적이면서도 성공적인 경제적, 사회적 모델을 만들어왔다. 여기서 또 한가지 기억할 부분은 현재 한국의 복지제도를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로 나눌 때 제도적 외형이라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처음의 두 가지에 비해 사회서비스는 가장 낙후된 영역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복지를 고민할 때 고려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에 대해 다룬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구조적 모형’(영미권 국가의 잔여적 모형은 물론 대륙유럽을 중심으로 한 발전된 복지국가의 제도적 모형보다도 복지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으로서의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가 갖는 우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스탈린 체제라는 전체주의 체제가 이를 어떻게 제약하고 왜곡했는지를 설명한다.

 “…(전략)… 전체주의적인 사회주의는 시장에 의해 생성된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정치적으로 조건화된 불안정성(비보장) – 순응치 않는 자의 고용과 소득, 주택, 기타 생계수단을 위협하는 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보장은 정치적비보장에 압도되어버리는 것이다… (중략) … 복지는 그것이 공민권 및 정치권과 결합될 때 보다 인본주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후략)…”

 현실사회주의는 전체주의적 요소는, 복지제도 자체가 가진 상대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치적 불안정과 결합되어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이용된 바 있다. 게다가 민주적 통제 없이 이루어진 국가의 비대화는 관료주의의 병폐를 심각하게 초래한 바, 결국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체제가 가진 우위는 상당부분 훼손되고 만다. 이는 비록 민주화는 되었지만 여전히 관료적 제도가 사회 제도 곳곳에 산재해있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함의하는 바가 작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라메쉬미쉬라의 사회복지의 사상과 이론의 개략적인 내용과 그 중 내가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들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끝으로 책을 덮고 난 후의 소회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록 나의 사회정책에 대한 지식 수준은 아직 일천하지만 이 분야의 책들을 읽으며 내가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앞으로의 사회에서 복지국가의 모델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였다? 앞에도 언급한 것처럼 복지국가는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 받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포함해서 공통적으로 지속적인 경제의 성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국가 모델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과연 완전고용을 창출한 만한 지속적인 경제의 성장이라는 것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가? 비단 세계화나 서비스업 위주의 경제구조로의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피크 오일이후의 세계, 즉 값싼 석유에 기초한 대규모 산업들의 경제성이 떨어져가는 미래의 세계에서 복지국가는 살아남을 수 있는 모델인가? 복지국가 또한 그것이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의 확장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의 다른 얼굴이라면, 이 또한 신자유주의와 함께 한계에 봉착한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 논란은 있지만, 피크오일은 분명 다가오고 있는 위협이다.

 이 책이 나의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은 또 다른 각도에서의 질문을 던져주었다. , 복지국가에 대한 보다 더 전통적인 질문, 과연 복지국가는 진정으로 불평등을 완화하고 더 평평한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부분적이며 비본질적인 개선을 통해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은폐하고 인민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인가? 복지국가가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아닌 진정한 진전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사실 한국사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위의 두 가지 질문은 모두 사치인지도 모른다. 생태주의(피크오일에 대한 이야기는 생태주의와 관련이 깊다.)나 복지국가는커녕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서구적 기준에서는) 19세기적인 과제 조차 완료되지 않은 나라에서 지금 여기의과제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든 무엇이든 당장 최소한의 개선을 이루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당장의 개선을 이룰 때 그 개선은 미래의 다른 개선을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시대에서 복지국가나 사회정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좀 더 깊은 고민에 빠질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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