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들은 늘 '대중사회와 민주정치의 평등주의적 위협'이 가하는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대중에 의한 전제정치와 '계급입법'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한편, 마르크스는 부르주아들이 민주주의가 실제로 작동하게 (그리고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도록) 놔두리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종언을 불러올 것이라 생각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2

"20세기 초반을 거치면서 실제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을 기존의 시장과 국가, 사회의 관계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정치적 권력에 의해 조절되고 제한되며 사회적 필요에 종속되는 자본주의가 창조되었음을 의미했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옹호해온 것(시장과 개인의 최대한의 자유)과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실현되길 바랐던 것(자본주의 철폐)과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역사의 종언론'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20세기의 승리자는 자유주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였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2~13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기본적 생계가 "인간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 자체의 도덕적 권리"에 의해 보장될 수 있었던 반면,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아사의 위협('굶주림이라는 경제적 채찍')이 사회적 제도들의 필요물이자, 심지어 바람직한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고 게임의 법칙이 이끄는 궁극적 유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5

"공동사회의 사람들은 모든 분열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반면, 이익사회의 사람들은 여러 통합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 페르디난트 퇴니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6에서 재인용

"자유주의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중심주의와 수동성을 거부하면서, 그리고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의 폭력성을 회피하면서,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에 대한 믿음(경제적 힘이 아닌 정치적 힘이 역사의 동력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확신, 그리고 사회의 '욕구'와 '행복'은 보호되고 배양되어야 한다는 확신) 위에 세워졌으며, 사회주의의 비마르크스주의적 비전을 나타냈다. 그것은 20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이데올로기이자 운동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8

"사회민주주의는, 적어도 출발 자체가, 그 핵심에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에 대한 특유의 믿음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둘 모두에 대한 뚜렷한 대안인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진정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는 그것이 탄생한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1

"이데올로기들이 이론과 실천의 연결지점에 존재한다는 것, 즉 한 발은 추상적인 사상의 영역에, 또 다른 한 발은 일상적인 정치적 현실에 디디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옹호자들에게 현실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과 그에 따른 실천 방안에 대한 안내자 역할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하면서 이론과 현실 각각의 영역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줄 수 있을 때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3

"달리 말해 1945년 이후 사람들은 국가를 사회의 보호자로 인식하기 새작했으며, 경제적 우선순위는 종종 사회적 우선순위보다 뒷자리로 밀려났다. 그 결과 오랫동안 공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것들, 즉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체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성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졌다. 이 새로운 체제의 기초가 전통적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 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만한 근거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체제가 정말도 닮았던 것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옹호했던,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파시스트들과 민족사회주의자들이 옹호했던 원칙과 정책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35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 위에 세워졌으며,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고유한 이데올로기와 운동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이었던 이데올로기와 운동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의 원칙과 정책들은 유럽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조화로웠던 시기를 지탱했던 것이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36

"사회주의 운동을 위해 마르크스의 사상을 단순화하고 대중화하는 과정에서 엥겔스와 카우츠키는 그의 사상 가운데 결정론적이고 과학적인 부분을 강조(혹은 과장)했으며, 역사에서 경제적 힘의 우선성, 그리고 계급투쟁의 불가피성에 기반하고 있는 하나의 교리를 창조해 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42

"요컨대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역사가 그들의 편이라는 확신과, 역사를 전진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은 집단이라는 정체성을 제공해,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어둡고 우울한 시기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주였으며, 이후 투쟁을 위해 신생 사회주의 운동이 단합되고 강화될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48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작동시킨 힘들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인류의 의식적인 노력과 자유, 정의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또한 자본주의가 제공한 기회를 현실로 전화하려는 에너지를 통해 고무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
  - 장 조레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57

"사회주의를 향해 가는 점진적이고 정치적인 경로에 대한 이런 믿음으로 베른슈타인은 민주주의를 '수단인 동시에 목적'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무기이자 이후 사회주의가 실현될 형태"라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심층적이면서 단계적인 개혁을 피 흘리지 않고 실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를 제공한다. 보통선거권과 의회 활동은 계급투쟁의 정점이자 가장 포괄적인 형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합법적 영역 안에서 치러지는 영구적이고 유기적인 혁명이며, 근대 문명에 상응하는 문화적 발전 수준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히 사회주의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로 하는 최상의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계급 차별의 부재, 평등, 자유와 같은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상들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70

"따라서 베른슈타인은 사회주의자들에게 그들이 펼치는 주장의 기반을 프롤레타리아의 독자성과 계급투쟁의 불가피성에만 두지 말고, 오히려 "공통적 인간성과 사회적 상호 의존의 인식"에 두라고 촉구했다. 베른슈타인은 당시의 사회 갈등 밑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인식해야 하고 또 보호하겠다고 약속해야 하는 근본적인 공ㅇ통 이익과 선이 존재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회주의를 대다수 시민에게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비전을 제공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근본적으로 협력적이며 공동체적인 노력의 일환으로서 제시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72

"요컨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동안 베른슈타인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교의를 폭넓게 비판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역사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정치의 우선성과 계급교차적 협력에 대한 신념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신념이란 자신들의 이상과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으로 고무된 개인들이 함께 단결할 수 있으며, 자기 주변 세계의 모습을 점차적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 민주국가의 권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72

"갑작스러운 기적이 세상을 바꿔 놓을 신비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인가, 혹은 매일매일 개혁에 개혁을 거듭하며 끈기 있고 완고한 노력으로 한 걸음씩 진보를 이루어 낼 것인가, 이 두 가지 방법 중 우리는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 알렉산드르 밀랑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82에서 재인용

"사회주의는 한 계급에 대한 다른 계급의 승리가 아닌, 특수 이익에 대한 일반 이익의 승리를 나타내야 한다."
  - 프란체스코 메를리노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84에서 재인용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운동은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 상황에 처했다. 즉 사회주의자들이 '다른 사회주의자들을 자신의 가장 큰 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사회주의 운동의 정치적 효력을 심각히 제한하는 것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88

"조레스도 이와(베른슈타인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는데,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애국심을 파괴하려 할 것이 아니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베른슈타인과 유사하게 '진정한 애국심'을 옹호했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 또한 '똑같이 귀중한 인류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민족이 지닌 특별한 가치와 유산을 인식하고 찬미하는 것이었다. 그런 '진정한 애국심'은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에서 어떤 모순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며, 사회주의자들이 우익 민족주의의 파괴적 경향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00

"바우어와 레너는 민족주의가 역사 속에서 강력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고, 민족 정체성을 무시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 파괴할 수 없는 요인'으로 보게 되었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부수적 현상이라거나 지배계급의 도구라고 보는 관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주의가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정통파의 주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들은 바로 그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적 갈들과 배제를 제거함으로써 사회주의는 사실상 민족주의적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01

"민주적 수정주의자들은 민주적 수단을 통해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중의 능력을 믿었던 반면, 레닌의 수정주의는 사회주의가 혁명적 엘리트의 정치적·군사적 노력을 통해 강제될 수 있다는 견해로 역사 유물론을 대체했다. 레닌은 만약 대중을 그대로 놔둔다면 그들은 사회주의를 위해 성공적으로 싸울 의지도 능력도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대신 '혁명 의식'과 조직을 획득하는 것이 혁면 정당의, 특히 그 지도자들의 과제라고 여겼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06

"일부 우파들이 일종의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있던 것과 동시에, 일부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해 긍정적 반응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중략) ... 민주주의적 수정주의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자유주의와 그것이 대표하는 모든 것에 대해 오직 혐오감만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자유주의와 그것이 대표하는 모든 것에 대해 오직 혐오감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베른슈타인의 민주적 경로를 거부했고, 사회주의는 오직 '현존하는 사물의 질서를 파괴하는 활기찬 전투'를 통해서만 출현할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수정주의는 '혁명적'이라고 불렸다.... (중략) ... 이런 저런 이유로 세기말은 '민족적' 사회주의의 탄생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그것의 모델과 산파 역할을 모두 해낸 이가 바로 조르주 소렐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08

"그(조르주 소렐)에게 19세기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유럽의 현대적 불안과 사회적 질병의 원천니었다. 그리고 그는 민주주의를 경멸했는데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이 사회주의자들로부터 혁명적 열정을 강탈해 갈 것이라고 믿었다.... (중략) ... 소렐은 이 파국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아마도 '폭력적인' 투쟁이 필요할 것이라고 믿었다. 우선 그는 그런 투쟁에 반드시 필요한 혁명적 열정은 마르크스주의의 도독적 근원을 다시 강조해 불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점점 환명을 느꼈고, 급진적 행동에 동기를 부여할만한 것을 찾아 다른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신화가 지닌 동기부여의 능력을 찾아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14

"사실 그(조르주 소렐)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지배 질서가 프롤레타리아들을 '길들이고' 노동운동을 탈급진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다. 이런 관찰 결과 소렐은, 민주적 수정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에 대한 배타적 관심을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동계급 중심 전략을 포기한 민주적 수정주의자들이 계급 교차적 협력과 타협의 가능성을 강조하게 된 반면, 소렐은 활성화된 대중 민족주의의 혁명적 가능성을 받아들이면서 좌파와 우파 각각의 반민주 세력들을 결합하도록 부추기게 되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15

"점점 더 많은 혁명적 좌파와 민족주의적 우파들이 서로의 운동 간에 중요한 유사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전자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그 제도들, 그리고 그 지지자들에게서 환멸을 느끼고는 민족주의가 갖는 동원과 혁명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후자는 리소르지멘토 이후 체제의 실패와 전통적 부르주아 정당들의 무능력에 환멸을 느끼고는 생디칼리슴과 혁명적 수정주의의 자유의지론적이며 혁명적인 정신, 그리고 이탈리아 노동자들에게 민족주의의 호소력을 넓힐 수 있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소렐의 사상은 이 집단들이 공통의 기반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교리를 제공해 발생 단계에 있던 이런 연합의 성장을 더욱 촉진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26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세기말 점점 그 수가 증가하고 있던 독일의 민족주의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는 반대하지만 자본주의에 가혹할 정도로 비판적이었으며, 근대사회를 오렴시킨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우파 인물들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종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일부 좌파들 또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33

"독일이 타락한 근본적인 원인은 근대성 그 자체, 즉 전통적 사회와 전통적 믿음을 파괴한 새롭고 폭력적인 힘들의 복합체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유대인들 때문이다."
  - 율리우스 랑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39에서 재인용

"그(베르너 좀바르트)는 경제학이 정치적·사회적 요인들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는 공동사회의 필요에 봉사하고, 공적 이익은 사적 이익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와 그의 통료들은 이 목표가 자본주의를 파괴하지 않고도, 그저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극단적이고 '유대인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면 달성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41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자들의 성공이 젊은 시절의 아돌프 히틀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사실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루에거는 히틀러와는 결정적인 면에서 달랐다. 그는 법의 지배를 일반적으로 존중했고, 그의 '미끼로서의 유대인'은 '주로 정치적 행위' 차원에 국한되었을 뿐, 광기에 찬 인종주의적 사고를 반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루에거가 만들어 낸 민족주의, 사회주의, 포퓰리즘의 혼합체는 미래 세대가 그 위에서 가장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 낼 하나의 모델을 제공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46

"전간기가 끝나 갈 무렵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이론적으로는 고갈되었으며 정치적으로는 부적절하기에 완전히 새로운 좌파적 비전을 수용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굳게 확신했다. 그 새로운 비전은 정통 교리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세대 전 수정주의의 선구자들이 제시했던 주제들, 즉 계급 교차적 협력의 중요성과 정치의 우선성에 관심을 돌렸다. 이제 그들은 근본적 새 출발을 알리는 이런 원칙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었고, 분명하고 생생한 정책 의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의제들은 공동체주의적·민족주의적 호소와 '국민정당' 전략, 그리고 자본주의를 통제하거나 변화시키는 도구로서 국가를 이용하고자 하는 의지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 결과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했으며,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를 만한 이념이 출현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49

"우리는 자유의지론을 거부한다. 아나키즘적인 것이든 개혁주의적인 것이든 간에 말이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를 해석할 뿐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또한 우리는 사건과 사물의 논리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행동을 취한다."
  - 자친토 메노티 세라티(이탈리아 사회당)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57에서 재인용

"사회주의는 그 근본적 의미와 결과로 판단할 때, 현실에서 실행되고 있는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 자유를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양심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추상적 인식은, 비록 그것이 정치 이론의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되더라도, 출생과 환경에 따라 도덕적·물질적으로 궁핍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 의미를 인식하거나 활용할 가능성을 갖지 못한다면 별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최소한의 경제적 자율성이 인정되거나 보호되지 않을 때, 절박한 물질적 궁핍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핼 때, 개인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 카를로 로셀리(이탈리아 사회당)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65에서 재인용

"『노동의 계획』의 변화 전략에 관해 강조할 만한 점을 여러가지다. 첫번째는 그것이 "(국가가) 소유권보다 통제력을 손에 넣는 것이 더욱 종요하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더는 (인기없고 비현실적이며 비민주적인) 국유화와 재산 몰수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국가는 덜 직접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이와 관련된 것으로, 『노동의 계획』이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파괴에 관한 오랜 수사적 주장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점이다. 드8 망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의 투쟁은 자본주의 전체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형태의 초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것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나 비프롤레타리아 할 것 없이 모든 노동계급의 공동의 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 경향득, 즉 독점 자본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금융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것이다." 따라서 활기 넘치는 사적 부문은 드 망의 사회주의적 미래 속에 계속 존재할 것이다. 사실 그는 생산성과 부의 지속적인 증가를 보장하기 위해 사적 부문이 "확대되고 강화되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81

"수정주의적 좌파와 민족주의적·사회주의적 우파 사이의 현저한 유사점들을 떠올린다면 데아와 드 망 같은 인물들의 정치적 전향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상식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둘 다 대체적으로 정치의 우선성과 일종의 공동체주의를 지지했고, 이제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중략) ... 전간기 동안 사회주의자·파시스트·민족사회주의자들은 극단적 자유 시장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를 피하면서 경제적으로 '제3의 길'을 옹호했다. 국가가 자본주의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통제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국민', '민족', '공동선'에 호소했다. 또한 계급 교차 연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진정한 '국민정당'으로서의 지위를 추구했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그것은 파시즘과 나치즘 아래서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위한 대가로 민주주의의 파괴, 시민적 자유와 인권의 방기가 동반되어야 했다는 점이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90

"요컨데 파시즘은 자신의 경쟁자들과 차별화된 주장, 강령, 지지 기반을 가진 근대적 대중 정당으로 변신을 완료한 것이다. 좌파와 우파 어느 쪽에도 쉽게 들어맞지 않는 수사와 정책은 현재의 자유주의적 체제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거나 그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거의 모든 집단에게 기대감을 제공했다. 파시스트들은 '볼셰비즘'에 대한 최대의 적수이자, 사유재산에 대한 최고의 보호자를 자임했다. 그러면서도 재산소유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했고, 집단적 선을 역설했으며, 부재지주들과 '착취적' 자본가들을 비난했다. 자유주의적 지배 질서와 자본주의의 '과잉'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사유재산에 대한 헌신과 모든 이탈리아 국민을 대표한다는 주장과 연계시킬 수 있었던 능력은 파시즘을 이탈리아 최초의 진정한 '국민정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196

"한 파시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의 총체적인 경제적 이익보다 상위에 있는 그 어떤 경제적 이익도 존재할 수 없다. 국가의 통제와 규제 아래 들어오지 않는 그 어떤 개인적·경제적 자기 결정권도 존재할 수 없다. 국가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민족의 여러 계급들 간의 그 어떤 관계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주장 가운데 그 어느 것도 파시스트들이 자본주의나 사유재산을 거부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00

"한편 앞 장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민등은 팔짱을 낀 채 사실상 사태를 수수방관했다. 계급 교차적 협력 전략을 거부했던 사민당은 독일 농민들과 중간계급들의 커져 가는 절망감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간기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실행 가능한 '사회주의적' 전략을 내놓는 데 실패함으로써 (그리고 WTB 계획 같은, 대공황에 대한 비정통적 해결책을 거부함으로써) 사민당은 고장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절실히 원하던 유권자들 앞에 내놓을 만한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공백 속으로 파고들어 온 것이 나치당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12

"나치당 경제 강령의 근본적인 사상은 매우 명쾌하다. 즉 권위의 사상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한 재산을 스스로 소유하길 바란다. 하지만 제3제국은 항상 그 재산의 소유자를 통제할 권리를 보유할 것이다."
  - 아돌프 히틀러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17에서 재인용

"나치는 전례 없는 폭력과 야만성을 보여 준 정부를 만들고 운영했을 뿐 아니라, 독일의 국가-사회-경제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해 냈다. 가장 명백한 것은 그들이 경제 분야에서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와 소련식 공산주의 모두를 거부하며 '진정한 혁명'을 일구었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나치 체제는 정치의 우선성, 즉 국가와 그 지도자가 경제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 간섭할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치는 그 주장을 정말로 실행에 옮겼다. 사회경제적 행위자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하고 수많은 간접적인 조치들을 통해 경제 발전의 방향을 지시함으로써 말이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21

"히틀러가 독일 민중으로부터 진정한 지지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대다수 독일인들이 민족사회주의를 무엇보다도 향상된 삶과 민족적 자부심, 그리고 공동체적 정서와 관련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지, 그것의 인종주의와 폭력, 폭정을 지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21

"파시스트와 민족사회주의자들이 옹호했던 여러 결정적인 '혁신들'('국민정당' 개념과 자본주의를 통제하되 파괴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제 질서 같은 것들)은 유럽 전후 체제의 중심적인 특징이 되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26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웨덴 정치체제의 민주화는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목적으로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유럽 다른 지역의 사회주의 정당들과는 달리 사민당은 민주주의를 '부르주아적' 체제로 매도하는 경향으로부터 일찍이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대신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정당의 정체성과 목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여겨졌다. 즉 사회주의가 도래하는 날 그것이 취할 형태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32

"(스웨덴) 사민당은 사회주의가 경제적 발전으로부터 출현할 것이라는 정통 교리의 주장을,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정치적 권력을 사용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그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민주적 수정주의의 방식이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34

"계급투쟁은 육체 노동자 집단을 넘어서는 좀 더 포괄적인 연대로 향한 문을 닫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목표를 계급투쟁을 통해 우리 민족 전체에 걸친 연대에 도달하고, 또 그것을 통해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연대에 도달하는 것이다."
  - 얄마르 브란팅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35에서 재인용

"대공황이 스웨덴을 덮쳤을 때 사민당은 이미 국민의 가정이라는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약자들', '억압당한 사람들', 그리고 좀 더 일반적으로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당의 열망을 강조하는 전략에 헌신하고 있었는데, 이는 적어도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파시즘 운동과 민족사회주의 운동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했던 자작농들과 소작농들의 공포를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와 더불어 사민당은 점점 더 계급보다는 국미닝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주장을 조잭해 나갔으며, 진정한 '국민정당'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는 공동체주의적·민족주의적 호소에 대한 우파의 독점을 더욱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48~249

"그 어떤 나라도 국제수지를 위해 심각한 실업이나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리하여 국제수지는 이제 한 나라의 정책적 목표일 뿐, 국제적 조건들에 의해 강요될 수는 없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66

"성숙한 복지국가의 발전과 함께 정부는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가족과 지역공동체가 해왔던 일, 즉 자력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일을 대규모이자 비인격적 방식으로 담당했다. 따라서 복지국가는 자유주의적 '이익사회'와의 중요한 결별을, 그리고 좀 더 공동체주의적인 '공동사회'를 향한 진보를 나타냈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69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적 원리와 정책은 전 유럽에 걸쳐 폭넓게 받아들여졌으며 유럽이 자랑하는 전후 안정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는 자본주의의 가혹한 영향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를 보호하는 정책들로,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안정에 대한 새로운 강조로 이어졌다. 달리 말해 전후 질서는 20세기 초반에 걸쳐 국가-시장-사회 간에 존재해 왔던 관계를 크게 변화시켰던 것이다. 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바라 왔던 것(자본주의 철폐)과는 물론, 자유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옹호해 왔던 것(시장과 개인적 자유를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규제하는 것)과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중략)... 이 체제를 근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사회주의를 고유의 색깔을 지닌 이데올로기이자 독자적인 운동으로 봐야 할 뿐만 아니라,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이데올로기이자 운동으로 봐야 한다. 그것의 원리와 정책은 유럽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 조화로웠던 시기를 뒷받침했다. 이제껏 공존할 수 없다고 여겨 온 것들, 즉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을 조화시킴으로써 말이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299

"사민주의 운동의 오랜 특징이, 성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시장을 이용하면서 그것이 초래하는 부수적 피해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를 이용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개별 구성원들이나 특수 이익에 봉사하기보다는 전체 공동체를 대표해 진심으로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였다는 사실 말이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316

"자본주의가 변화하는 만큼,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사회민주주의의 접근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 특히 민족구가(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관리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의존해 왔던 도구)가 자율성과 통제력을 상실한 정도에 비례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제 국제적 영역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 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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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6년 출간된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표지. 이 해는 미국이 독립한 해이기도 하다.


들어가며.
時制와 고전읽기

   '공자' '논어'를 이야기할 때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고리타분함', '보수적임' 같은 것입니다. 이는 유교문화권인 우리 사회의 특성상 제사, 예의범절, ()와 같은 전통적 가치가 자유,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서구적 가치와 만났을 때 대개 우리는 전자에서 보수적인 느낌을, 그리고 후자에서 진보적인 느낌을 갖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 해 전 유행했던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는 책 제목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사실 공자의 사상이 담고 있는 신분질서에 대한 옹호라든가 지배계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은 이런 느낌 자체가 부당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하지만 공자에 대해서는 정 반대의 주장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마찬가지로 몇 해 전 출간되었던 '논어는 진보다' 같은 책의 저자는 공자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공자의 말이 그 시대 속에서 가졌던 의미들을 논하면서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공자는 당대의 관점에서 볼 때 보수적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같은 사상가인데 왜 이렇게 다른 해석이 존재할까라는 질문을 해 볼만 한 부분입니다.

   공자가 보수인지 진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고전을 읽을 때 그 고전이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신영복 선생은 그의 책 '강의'에서 논어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고 말합니다. 잠깐 옮겨보자면 이렇습니다.

   "... (전략)...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西周)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의 인권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후략)…"

   이와 같은 '시제'의 중요성은 비단 고전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문제뿐 아니라, 고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라도 그가 발을 딛고 선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기 마련입니다. 비록 그가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까지 감안한 해결책을 내놓았을지라도 그가 인간인 한 그 예측은 불완전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현재의 시점에서 그 해결책을 활용하고자 할 때는 매우 주의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견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의외로 이 당연한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혹은 알지만 의도적으로 묵살하는 논의들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고전을 읽는 데는 '시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고 '국부론'에 대한 저의 서평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애덤스미스를 이해하다 - 이기적 인간과 자기조정시장

   우리가 '애덤스미스', '국부론'하면 떠올리는 개념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핀 공장, 이기적 인간, 시장경제와 같은 것들이지요. 특히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와 연관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스미스의 이미지들 중에는 지하에 있는 그가 들으면 다소간 억울해 할만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부당하다고 할만한 것은 없는 듯합니다. 신자유주의를 포함하여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시작한 고전적 자유주의는 분명히 스미스의 국부론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국부론(원제 :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은 원래 절대왕정 시대의 정치경제적 지배이데올로기라 할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다가오는 부르주아의 시대의 정치경제학을 제시한 책입니다. 중상주의란 국가의 부의 근원을 '금은(金銀, 당시로서는 화폐)'으로 생각하여 보호무역을 통한 무역수지 흑자의 극대화와 국내적 경제활동의 제한을 통해 '좀 더 많은 금은을 국가(당시로서는 곧 국왕)의 금고에 확보하는 것'이 부국강병의 길이라고 봤던 17~18세기의 정치경제정책입니다. 이에 대해 애덤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국가의 부의 근원은 '금은'이 아닌 '재화(그리고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노동량)'에 있으며, 생산은 분업을 통해 촉진되고, 촉진된 재화의 소비를 위해서는 시장을 확대해야 하므로 자유무역과 국내적 경제활동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스미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사실 국왕도, 교회도, 영주도 간섭할 필요가 없는 '자유시장'이라는 발상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좀 아연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저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개인들에게, 더구나 교회의 약화로 인해 개인의 욕망에 대한 절제조차 무너진 시대에, 통제되지 않는 자유를 준다면 혼돈이 초래되지 않겠는가?’ 라는 질문을 예측했는지 스미스는 '자기조정시장'의 논리를 거의 대부분의 챕터에서 각기 다른 예를 통해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개개인은 (대부분의 경우 이 개인은 자본가입니다.) 자신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투자합니다. 그 자본의 투자를 통해 고용이 창출되고 재화가 생산되고, 소비되어 국부가 증진됩니다.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국부는 그 사회가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재화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통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한 분야에 투자가 몰린다면 그 분야의 이윤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자본은 좀 더 이윤이 좋은 다른 분야(아마도 투자가 부족했던 분야)로 이동하게 되어 전자는 경쟁의 약화 및 생산량의 감소로 이윤이 다시 증대되며, 후자는 경쟁의 강화 및 생산량의 증대로 이윤이 감소하여 양 분야의 이윤은 적정수준을 되찾게 됩니다. 마치 진자의 운동과 같이 작동하는 '자기조정시장'의 매커니즘은 자유롭게 풀어놓았을 때 가장 잘 작동하여 사회의 생산량을 극대화시키고 그에 맞는 소비시장을 창출합니다. 여기에 국가나 다른 주체가 인위적인 수단으로 개입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연적인' 수준보다 높은(혹은 낮은) 이윤을 창출하는 분야를 만들어내고 이는 자기조정시스템을 왜곡하고 국부 - , 그 사회의 재화의 양 또는 그 사회가 고용할 수 있는 노동의 총량 - 를 감소시키게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자본가들 간의 경쟁에 좀 더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요/공급의 법칙'의 원조라 할만한 스미스의 '자기조정시장의 원리'는 중상주의가 추구했던 국가의 간섭을 배격하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푸주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예시가 말해주는 것처럼 이 자유경쟁시장에서 사람들 - 주로, 자본가들 - 의 핵심적인 행동동기는 '자신의 이익에 대한 고려'라고 국부론은 이야기하고 있기에 우리가 이념형으로 기억하고 있는 '애덤스미스' '국부론'의 이미지는 대체로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애덤스미스를 오해하다 - 자본가와 노동자, 독점과 정치권력

   하지만 스미스의 '국부론'은 무려 1,2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기적 인간, 보이지 않는 손, 자유시장, 정부의 실패가 국부론의 전부인 것 같지만 실은 이는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국부론에서 부각된 전부'일 따름입니다. 물론 저도 국부론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둘만 꼽으라면 '국부의 근원으로서의 재화/노동력/생산성' '자기조정시장 매커니즘'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스미스의 사상체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은 다른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중 애덤스미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드는 부분들만 언급해 보겠습니다.

   우선 자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스미스가 자본가의 사적 이익 추구가 자본축적에 이르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국부를 증진시키게 된다는 이야기를 강조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스미스는 이와 같은 원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의 이해가 일정 정도 제한되어야 함을 분명히 합니다. 스미스는 사회를 지주, 노동자, 자본가 계급으로 나누었을 때 자본가 계급만이 자신의 이해와 사회의 이해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자본가 계급의 이해만이 사회 일반의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는 자본자는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여 '시장을 확대하고 경쟁을 제한하려는' 경향을 가진다고 말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종종 공공의 이익에 합당할 수 있지만,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항상 공공의 이익과 충돌한다."고 언급합니다. 다시 말해 스미스가 생각한 '자기조정시장'이 성립하려면 '자본가 사이의 경쟁'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을 일정하게 제한하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와 같은 시도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독점적, 혹은 (카르텔을 형성하기 쉬운) 과점적 기업에 의한 시장의 장악은 자유시장 시스템에 정부의 개입보다 더 큰 위협이 됩니다. 결국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정책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서민경제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젠 골목상권까지 장악해가는 한국의 독점적 재벌집단과, 그 재벌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환율과 주가를 조작하기에 급급한 한국 정부(이렇게 놓고 보니, 한국의 경제정책은 참으로 중상주의적이네요.)의 눈앞에 들이밀고 싶은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체제는 19세기를 거쳐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며 엄청나게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노동빈민입니다. 당시 많은 자본가들은 노동계급이 '천성적으로 게으르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이들이 노동규율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생존 수준의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 주장의 뒤에는 노동자의 임금을 낮게 유지함으로써 자본가의 이윤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야 19세기 이야기지 지금 누가 그런 생각을 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실은 꼭 그렇지 만도 않습니다. 당장 최근 정치권의 이슈가 되고 있는 복지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라에서 일 안 해도 돈을 주면 누가 일을 해?’라는 생각을 합니다. 청년실업의 심각함을 이야기할 때 늘 따라 나오는 이야기가 청년실업 이야기를 하지만 중소기업은 사람이 모자라다고 하니 이는 청년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탓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발상의 근간에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 19세기 자본가들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 스미스는 뭐라고 이야기했을까요? 그는 노동의 후한 보수는 인구 증가를 장려하면서도 보통 사람의 근면을 증대시킨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풍부한 생활물자는 노동자의 체력을 증진시키고, 자신의 상태를 개선시켜 안락하고 풍부한 가운데 생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유괘한 희망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체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도록 고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노동시간과 관련해서도 정신적인 노동이든 육체적인 노동이든 간에 계속해서 며칠간 많은 노동을 하고 난 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고 잎은 욕구가 생기는데, 이 욕구는 폭력 또는 어떤 강력한 필요성에 의해 저지되지 않는 한 거의 억제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적당히 일함으로써 계속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건강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 년 전체로 보면 가장 많은 양의 일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지금까지도 많은 기업에서 활용되고 있는 성과급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스미스는 포디즘 체제 하의 노동자를 보며 가장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스미스가 거대 재벌을 비롯한 특정인들의 자유가 극대화되고 정부는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며,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덫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면 뭐라고 했을까요? 스미스가 은행업에 대한 규제를 옹호했던 문장으로 이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몇몇 개인의 자연적 자유의 행사는, 가장 자유로운 정부이든 가장 전제적인 정부이든, 모든 정부의 법률에 의해 제한되고 있으며 또 제한되어야만 한다.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방화벽을 쌓게 하는 법률은 자연적 자유의 침해지만, 여기에서 제안하는 은행업의 규제와 정확히 동일한 종류의 침해이다.”

 

애덤스미스를 비판하다 - 자기조정시장의 몰락

  스미스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는 사뭇 다른 아이디어들을 그의 저서에서 적잖이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그의 아이디어의 핵심은 자기조정시장입니다. 자기조정시장의 아이디어에 따르면 진자의 운동이 결국은 가운데서 멈추는 것처럼 시장은 누가 애써 손대지 않아도, 아니 손대지 않을 때 스스로 최적의 지점을 찾아 그 지점에서 적절한 생산과 소비와 분배를 이루어내며 이 기본원리야말로 경제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일반법칙입니다. 실제로 스미스는 비단 국내경제나 무역 뿐 아니라 종교나 교육과 같은 경제외적 분야에 대한 논의에서도 자기조정의 법칙이 최선임을 국부론에서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처럼 하나의 일반법칙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상의 특징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사회와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보편법칙이 있고, 그 법칙의 구동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며, 인간의 이성은 그 법칙을 간파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과 사회를 모두 지배할 수 있다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무모할 만큼 자신감 넘치는 생각은 비단 스미스 뿐 아니라 당시의 많은 사상가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스미스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르크스마저 자본주의의 도래와 붕괴를 역사적 필연으로 설명했습니다. 마치 물리학의 법칙과 같이 사회역사의 법칙을 바라본 것이죠.) 단지 스미스의 경우 자기조정메커니즘을 그 법칙으로 삼은 것 뿐이고 수많은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자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사실 고전적 자유주의 이후에도 주류 경제학은 여기에 근거하여 펼쳐집니다. 이런 법칙을 적용시키려다 보니 환경을 단순화시켜야 하고, 그러다 보니 완전경쟁시장과 같은 현실에서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스미스의 자기조정시장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를 몰락으로 이끌어갔죠. 스미스의 사후에 펼쳐진 독점자본주의화에서 벌어진 처참한 현실과 대공황,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스미스의 자기조정시장이데올로기가 도전 받았음을 물론이고 (계몽주의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인간의 이성자체가 의심받게 됩니다. 자기조정시장의 몰락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을 등장시켰고, 어떤 나라들은 계획경제를, 그리고 좀 더 스미스에 대해 친화적이었던 나라들도 국가에 의한 시장의 제어에 근거한 복지국가를 선택합니다.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최전성기는, 우리가 잘 알 듯 자기조정시장메커니즘에 대한 제어와 (스미스가 그토록 부정적으로 논했던) 정부의 개입을 근간으로 하는 복지국가체제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복지국가체제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고전적 자유주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신자유주의가 등장했지만, 그 귀결은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1%를 위한 세계일 따름입니다.

 물론 이런 변명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과거 고전적 자유주의의 실패, 그리고 현재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그 아이디어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제대로 현실에서 적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 말입니다. 실제로 현재 일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현실에 목도한 신자유주의체제의 실패를 놓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지요. ‘우리는 정부의 간섭 없는 시장을 이야기했고, 많은 (, 미를 중심으로 한) 많은 국가에서 정부가 이를 실천하겠다고 했지만 완전히 간섭 없는 시장을 실천하지 못했다. 따라서 현실의 실패는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국가의 실패일 뿐이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어찌 들어보면 동구권이 몰락했을 때 이것은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좌익 파시즘의 실패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던 사회주의자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 때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론은 현실을 통해 검증되며, 따라서 현실에서 실패한 이론은 (원인이 무엇이든) 실패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 말을 지금의 신자유주의에 그대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사실 자기조정메커니즘에 의한 시장이라는 발상은 미시적으로, 즉 부분적으로는 가동할 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상태(理想態)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70년대 이후 좌우를 막론하고(영국과 미국의 좌파라 할 수 있는 노동당과 민주당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대세를 고스란히 받아들였습니다.)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도 현실에서 일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자기조정시장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자기조정시장의 이와 같은 본질적 한계는 일찍이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사상가 칼 폴라니에 의해 날카롭게 간파된 바 있습니다. 그는 인간, 자연, 화폐라는 절대로 상품일 수 없는 요소들을 상품화하는 것이 자기조정시장의 기본 전제이며, 이와 같은 시도는 그에 저항하는 사회의 이중운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라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스미스의 사상의 출발점이 되는 전제는 인간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인간이 천성적으로교환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으며, 동시에 인간의 가장 중심적인 행동동기로 이기성(혹은, 순화해서 말하자면 합리성)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스미스의 인간관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이기성 말고도 인간에게는 Sympathy, 즉 동감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동동기는 Self-interest입니다. 인간 본성으로서의 동감(Sympathy)에 대해서는 그의 또 다른 저서 도덕감정론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귀결되는 인간본성의 이 두 전제는 그가 고고학과 인류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성의 역사적 측면을 고찰한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니고, 이미 형성된 시장을 바라보며 이럴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싸해 보이지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폴라니가 상세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의 연구성과는 과거의 인간에게 교환 성향이나 지배적 행동동기로서의 이기성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스미스의 자기조정시장은 그 논의가 출발한 가장 근본 전제에서부터 의심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미스의 아이디어를 몽땅 부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시장에 수요-공급을 통한 가격결정이라는 자기조정 메커니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굉장히 날카로운 고찰이며, 이기적 행동동기가 공익적 결과를 낳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기조정 메커니즘이나 이기적 행동동기만큼 중요한 다른 것들이 인간에게는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가며. 누군가 논어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왕조국가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제 나름의 시각으로 스미스를 이해해보기도 하고, 그가 어떻게 오해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기도 하고, 그의 사상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라 할 수 있는 부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이 긴 서평을 마치며 서두에서 생뚱 맞게 언급했던 논어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논어를 연구하다가 공자의 사상은 참으로 위대하고 깊이가 있으니 진정으로 우리 현실에 적용할 만하다. 그러니 우선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왕조국가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누구라도 뭐 이런 미친 사람이 있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공자의 사상이 위대하지 않고 깊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우리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위대한 사상이라도 그 사상이 펼쳐진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환경을 고려하여 해석하고, 거기서 얻은 교훈을 현재에 적용할 때는 당시와 현재의 차이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스미스의 사상은 국왕이 금은의 형태로 국부를 독점하려 들었던 절대왕정의 이데올로기인 중상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기획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아이디어가 가진 의미와 교훈도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여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스미스의 사상이 고전적 자유주의니까 우파고 보수다라고 간단히 이야기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오히려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 고전적 자유주의가 초래한 세상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비참한 모습을 보여줬었는지를 19~20세기의 역사를 거치며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에 대한 수정 작용으로 나타났던 사회의 모습이 복지국가 체제 하의 사회였으며, 그 때가 자본주의의 황금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그 반동으로 나타난 체제는 보다 발전된 형태의 무엇이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한 것은 고전적 자유주의 시즌2’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1%를 위한 사회입니다.

 사실 스미스의 사상은 서구사회보다는 한국사회에서 훨씬 의미 깊을 지도 모릅니다. 한국사회의 재벌, 관료집단은 스미스가 그토록 비판했던 중상주의에 가까운 정책을 잘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미스의 기획을 현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공자의 아이디어를 적용하고자 왕조시대로 돌아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스미스의 아이디어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이해하고, 그 교훈을 현재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이 위대한 사상가의 업적을 제대로 기리는 일일 것입니다

    1%를 위한 자본주의에 저항한 미국민들의 시위는 전 세계인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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