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 이벤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보편적 무상급식 몽니에 이은 셀프 탄핵과 그 후 야권연대에 기초한 시민운동가의 서울 시장 선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김어준 딴지 총수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상 가장 빨리 시작된 대선 레이스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가카 (여러 가지 의미로) ‘삽질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 무상급식이라는 지난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재보선을 관통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선거의 핵심 어젠다가 된) 복지정책 논란이다. 전근대적ㆍ중상주의적 재벌 위주 경제구조라는 한국의 특수성이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돌풍이라는 보편성을 만나 대다수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이래, 마침내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왜곡하는 요소는 구조적, 혹은 적어도 제도적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은 복지국가라는 (적어도 MB뉴타운돌이들에게 투표할 때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생각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1년을 뜨겁게 달군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셀프 빅엿", 많은 것의 출발점이 될 것같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50~60년대 성립된 서구의 복지국가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 같다. 우선은 더 이상 고도성장 기반의 완전고용이라는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이 성립할 수 없다는 국제적 환경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며, 노동자 계급의 권력자원 동원이 어렵고 극소수 재벌위주의 생산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노동시장의 이원화 문제가 심각한 한국적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어떤 대안을 생각해 내기란 물론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가 막연히 말하는 복지국가가 어떤 생각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체제이며, 그것이 (우리보다 앞서 나간) 서구의 국가들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이해 정도는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정치가들이 외치는 복지가 진정성을 가지고 실천방안까지 고민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표를 모으기 위한 캐치프레이즈일 뿐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에 대해 좀 더 편안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다른 책들도 많지만,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생각들을 들여다본다는 측면에서 라메쉬미쉬라의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은 충분히 좋은 책이다. 재미있고, 충실하며, 무엇보다도 얇다. 좀 오래된 책이지만 한국사회가 복지라는 측면에서 워낙 뒤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낡았다는 느낌도 전혀 들지 않는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반부는 복지를 보는 여러 가지 시각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회개혁으로서의 복지(사회행정적 접근), 사회적 시민권 이론, 수렴이론(기술결정론), 기능주의 관점,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나누어 각자의 시각이 복지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인지를 일일히 짚어준다. 사회정책에 관한 개론서를 보면 거의 용어 설명 식으로 다루어져 있는 이 각각의 입장들을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어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이론적 배경들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뒤이어 후반부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에서 각각 복지국가가 어떻게 형성되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 성과와 한계는 어떤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은 1981년에 쓰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근래 쓰여진 책이라면 담고 있지 않을 사회주의 국가 정확하게는, 소련 의 복지제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이 책이 소중한 또 하나의 이유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를 다룬 내용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자본주의 체제 하 사회정책이 그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략)… 대부분의 연구들이 지적하고 있는 일반적인 결론은, 계급 간 소득재분배, 즉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하층에 속하는 집단으로의 소득재분배의 정도는 미약하며, 따라서 소득이전의 성격은 계급 내 소득이전 또는 삶의 주기에 따른 소득이전의 성격을 훨씬 더 많이 띠고 있다는 것이다… (후략)

   “…(전략)… 사실상 재분배효과가 미미하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서비스가 발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사회서비스는 복지를 일반적으로 구분하여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로 나눌 때의 사회서비스가 아닌 민간 차원의 복지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의 국가복지를 의미한다.)

   “…(전략)… 다시 말하면, 지배적인 제도와 가치가 변화하지 않는 한, 한 가지 구조에서의 개혁은 다른 구조에서의 보상적인 변화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략

   저자의 이야기대로라면 재분배’, , ‘불평등의 완화로서의 사회복지제도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제도와 가치가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제도 또한 그 전제를 크게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가 그 한계를 넘어서려할 때,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힘에 의해 교정될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를 겪으며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힘을 얻고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에서 복지국가가 약화되어 온 현실을 감안할 때 뼈아프지만 타당해 보이는 저자의 지적은 복지국가를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생각해온 이들의 가슴을 때린다. 결국 불평등의 의미 있는 교정은 일찍이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복지국가는 노동자와 서민으로부터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일 뿐일까?

                              국가별 사회정책에 의한 소득재분배 효과. 저자의 논의와 달리
                        국가에 따라 상당한 수준이다. 저자가 주로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하는 국가가 영국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복지국가가 의외로 재분배적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을 지적할 뿐 이런 문제에 직접적으로 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부정적이지만은 않게 볼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책 속에 담고 있다. 그 중 한가지는 복지제도가 재분배적 기능은 약하다고 해도 삶의 기회를 확대하는기능은 상당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NHS 이전과 이후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의료서비스 이용 기회의 차이라든가, 공공주택의 공급이 주거의 평등을 실현하지는 못했더라도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기능은 수행했다는 것과 같은 내용들이다. 재분배는 못했어도 극단적인 불평등은 다소간 감소시켰다고 할까.(실제도 통계적으로도 복지국가는 지니계수를 개선하는 쪽보다는 빈곤율을 낮추는 쪽에서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좀 더 적극적으로 불평등의 완화를 이루고 싶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실망스럽지만, 사회주의 사회의 복지를 다룬 부분에서 저자는 약간의 희망을 남겨준다.

 “…(전략)… 그러나 사회주의적인 복지는 그것이 가진 몇 가지 특성으로 인해 재분배가 수직적이 될 가능성을 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사회서비스 가운데 연금이나 상병급여 등과 같은 이전급여는 의료나 주택 등과 같은 현물급여에 비해 재분배의 정도가 적다. 이는 사회주의에서나 자본주의에서나 이전급여는 임금에 연계되어 있는 데 비해 현물급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물급여에 대한 지출은 재분배적일 가능성이 보다 많다… (후략)…”

 흔히 복지국가하면 1순위로 떠올리는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사민주의 모델의 복지국가는 다른 유형의 복지국가에 비해 사회서비스(국가복지의 의미에서의 사회서비스가 아닌 사회보험, 공공부조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서비스, 이 책에서 저자의 표현을 빌면 현물급여에 대한 지출’)의 비중이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들 국가들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작동하는 어느 국가보다 평등주의적이면서도 성공적인 경제적, 사회적 모델을 만들어왔다. 여기서 또 한가지 기억할 부분은 현재 한국의 복지제도를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로 나눌 때 제도적 외형이라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처음의 두 가지에 비해 사회서비스는 가장 낙후된 영역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복지를 고민할 때 고려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에 대해 다룬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구조적 모형’(영미권 국가의 잔여적 모형은 물론 대륙유럽을 중심으로 한 발전된 복지국가의 제도적 모형보다도 복지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으로서의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가 갖는 우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스탈린 체제라는 전체주의 체제가 이를 어떻게 제약하고 왜곡했는지를 설명한다.

 “…(전략)… 전체주의적인 사회주의는 시장에 의해 생성된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정치적으로 조건화된 불안정성(비보장) – 순응치 않는 자의 고용과 소득, 주택, 기타 생계수단을 위협하는 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보장은 정치적비보장에 압도되어버리는 것이다… (중략) … 복지는 그것이 공민권 및 정치권과 결합될 때 보다 인본주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후략)…”

 현실사회주의는 전체주의적 요소는, 복지제도 자체가 가진 상대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치적 불안정과 결합되어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이용된 바 있다. 게다가 민주적 통제 없이 이루어진 국가의 비대화는 관료주의의 병폐를 심각하게 초래한 바, 결국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체제가 가진 우위는 상당부분 훼손되고 만다. 이는 비록 민주화는 되었지만 여전히 관료적 제도가 사회 제도 곳곳에 산재해있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함의하는 바가 작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라메쉬미쉬라의 사회복지의 사상과 이론의 개략적인 내용과 그 중 내가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들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끝으로 책을 덮고 난 후의 소회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록 나의 사회정책에 대한 지식 수준은 아직 일천하지만 이 분야의 책들을 읽으며 내가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앞으로의 사회에서 복지국가의 모델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였다? 앞에도 언급한 것처럼 복지국가는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 받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포함해서 공통적으로 지속적인 경제의 성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국가 모델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과연 완전고용을 창출한 만한 지속적인 경제의 성장이라는 것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가? 비단 세계화나 서비스업 위주의 경제구조로의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피크 오일이후의 세계, 즉 값싼 석유에 기초한 대규모 산업들의 경제성이 떨어져가는 미래의 세계에서 복지국가는 살아남을 수 있는 모델인가? 복지국가 또한 그것이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의 확장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의 다른 얼굴이라면, 이 또한 신자유주의와 함께 한계에 봉착한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 논란은 있지만, 피크오일은 분명 다가오고 있는 위협이다.

 이 책이 나의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은 또 다른 각도에서의 질문을 던져주었다. , 복지국가에 대한 보다 더 전통적인 질문, 과연 복지국가는 진정으로 불평등을 완화하고 더 평평한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부분적이며 비본질적인 개선을 통해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은폐하고 인민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인가? 복지국가가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아닌 진정한 진전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사실 한국사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위의 두 가지 질문은 모두 사치인지도 모른다. 생태주의(피크오일에 대한 이야기는 생태주의와 관련이 깊다.)나 복지국가는커녕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서구적 기준에서는) 19세기적인 과제 조차 완료되지 않은 나라에서 지금 여기의과제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든 무엇이든 당장 최소한의 개선을 이루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당장의 개선을 이룰 때 그 개선은 미래의 다른 개선을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시대에서 복지국가나 사회정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좀 더 깊은 고민에 빠질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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