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관한 두 가지 단상

Posted at 2012. 4. 4. 09:48// Posted in 시사

1. 환원주의적 오류

민주당에도 꽤 좋은 정치인들이 많다. 천정배, 최재천, 이종걸, 정동영(이 사람은 진짜 환골탈태한 것 같다..), 김정길, 김정애 같은 사람들은 어느 정당의 누구와 비교해도 매우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민주당도 좋은 정당이려니 생각한다면, 그런 것을 두고 환원주의적 오류(반대로 집단의 정체성을 보고 개인을 판단하는 것은 생태적 오류)라고 한다. 개인으로서의 정치인들이 좋은 것과 그 사람이 소속된 정당이 좋은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그 정당이 지난 날에 다수당이었을 때 제대로 된 개혁을 전혀 못했다든가, 위에 언급한 좋은 정치인들의 당내 입지가 취약하다든가, 좋은 정치인들의 수만큼 (혹은 더 많은) 나쁜 정치인들을 가지고 있다든가, 당내 헤게모니를 가진 정치인들이 과연 좋은 정치인들이라 할 수 있는 지 헷갈린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야권단일후보에게 투표하기로 결정한 사람이라도 정당투표에 있어서는 아주 신중할 필요가 있다. 총선이 끝난 후에 만약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다수당이 되어 있다면, 더욱 주의해서 이들을 살펴보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민주당이 단독과반은 안되고, 진보정당들과 합쳐서 과반이 되는 것이 최선일 것같다. (이 경우 진보정당들의 의석이 적을 경우 새누리당의 의석이 지나치게 많아진다는 역효과가 있긴 하다.)


2. 예의

예전에 모 정치인이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정당을 밀어달라는 의미였겠지만, 이른바 '개혁적' 진영에 속한다는 정치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 투표를 하든 그것은 본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다. 단순다수대표제하의 선거는 전략적 투표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전략적 투표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표가 향하는 정당이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주 소중한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에 어떤 정당의 지지자들이 다른 어떤 정당에 대한 투표는 사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SNS에서 더러 볼 수 있는데, 이건 정말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행동이다. 자신의 그런 행위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관적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투표 4번과 11번, 16번은 서로 다르지만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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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조작

Posted at 2012. 3. 20. 22:37// Posted in 시사
최구식이라는 양반의 보좌관이 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했고, 의원은 몰랐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실소를 날렸다. 물론 사건의 본질은 최구식이 그 사실을 알았냐 여부에 있지 않은 일이지만 그걸 떠나서 보좌관이 한 일을 국회의원이 전혀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반응도 많았다.

임종석 전 의원이 사무총장 - 국회의원 후보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했던 것은 저축은행비리와 관련해 보좌관이 돈을 받았다는 것이 법정에서 인정되었다는 점에 기인했다. 임종석 의원의 주장대로 그가 몰랐을 수도 있으나,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정희 의원의 보좌관이 저지른 일종의 '부정선거'로 인해 이정희 의원은 재경선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직 사퇴가 아닌 재경선인 이유는 보좌관 개인의 행위였을 뿐 조직적 부정경선은 아니라는 데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두 사건에서 우리가 국회의원 - 보좌관을 연결지은 방식을 고려해볼 때, 보좌관의 '개인적(이라 주장되는)' 행위는 조직적 행위에 준하게 취급받는 것이 옳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정희 의원이 후보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 더 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정희 의원을 매우 좋아하고, 그녀가 지난 4년간 국회 안팎에서 해온 일들에 비춰 그녀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다음 국회에서 그녀를 보고 싶고 또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길 바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넘어간다면 진보정치가 기존정치와 차별화된 신뢰를 심어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부정을 저지르기 쉽게 만들어진 경선 시스템의 문제다. 이건 경선 시스템 자체가 부정을 유도하는 수준으로 설계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시간적, 제도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되어 있었겠지만 시스템의 상태로 볼 때 아마도 이런 식의 경선조작은 이미 '업계에서는 당연시되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을까. 잘못된 제도는 행위자의 부적절한 행동유인을 증가시키고, 이는 결국 잘못된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 아닌가. 이런 시스템에 의존한 단일화니 경선불복하겠다는 사람도 나오는 것일게다.(물론 불복이 잘하는 거란 말은 아니고.)

여튼 경선문제에 성추행 전력에.... 또 한 쪽에서는 경제민주화 의지가 있네 없네 하고 있고(사실 난 전부터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이러다 진짜 새누리당이 과반정당 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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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불편함

Posted at 2011. 11. 30. 23:46// Posted in 시사
  페친(페이스북 친구) 중 한사람인 후배가 '나꼼수를 들으면 재미있는데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는 논조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던 참이라 그 글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친구가 불편함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나와는 좀 다른 이유였다. (나꼼수의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 친구의 과거의 특정한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친구의 이유였다.) 어쨌든 나도 나꼼수를 즐겨 들어면서도 항상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오늘 김규항씨의 블로그에서 본 - 김규항씨가 아닌 다른 이의 - 글을 통해 그 불편함의 정체가 좀 더 다가오는 듯해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의 정체는 위에 언급한 친구처럼 과거의 경험 때문은 아니고, 진중권씨가 말한 것과 같은 '구전문화로의 회귀'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허지웅씨가 이야기한 '선동꾼', '반지성주의'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나꼼수의 문화적(혹은 매체적) 성격에 대해서는 그간의 진보적 메세지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하여, 받아들이는 이를 질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마땅히 칭찬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나꼼수가 의제를 선정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십 몇 회인가 이후 '서울시장 선거'와 '한미 FTA'를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나꼼수는 서울시장 선거를 후보 확정 전부터 지속적으로 몇 회에 걸쳐 다루었으며, 선거 자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와 타이밍으로 다루었나. 이 선거와 관련한 초대손님만 해도 박원순, 박영선,  홍준표, 이정희, 박지원, 문재인 등 숫자도 많고 면면도 화려했다. 나꼼수가 야권연대와 그 연대를 통한 선거에서의 승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굳이 보충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충실했다.

http://beinghere.tistory.com/script/powerEditor/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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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누구 못지 않은 나꼼수의 팬이다. 공연은 못갔지만 전 회를 
          받아서 들었으며, 김어준 총수의 책도 사서 봤다.


  물론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니다. 나도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고,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오히려 선거가 끝난 시점부터였다. 일정상 서울시장 선거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이슈는 한미 FTA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연히 나꼼수도 한미 FTA를 집중적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했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특집방송 같은 것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꼼수는 한미 FTA를 - BBK나 서울 시장 선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 한 회도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부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도 생각보다 상당히 늦은 시점부터였고, 다루는 내용도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여-야 간의 충돌 중심이었지 한미 FTA 자체의 문제 중심이 아니었다. 물론 최근 방송에서는 점차 비중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는 문재인과 혁신과 통합, 또 '친노'로 구분되는 일부 '개혁' 인사들이 한미 FTA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과 묘하게 겹쳐보인다. 명시적으로 한미 FTA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이명박의 FTA' 및 그 이슈를 다루는 방식으로 반대를 제한하는 듯한 이들의 태도와 나꼼수의 거리가 그리 멀게 보이지 않는다. 한미 FTA 강행 통과 전후에 나꼼수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FTA 통과를 만든 (주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하겠다.'라고 하며 노래를 만드는 일과 'FTA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가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들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해영 교수처럼 한미 FTA 자체의 문제를 짚거나, 우석훈 교수처럼 명료하게 '협상의 폐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지나친 생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가 시작되었다는 점, 김어준 총수가 유명한 노무현 지지자였다는 점, 문재인 전 수석은 시종 한미 FTA에 대해 애매한 자세라는 점, 김어준 총수가 현재 문재인 전 수석을 대선주자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라는 점 등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나꼼수의 의제설정을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나꼼수가 한미 FTA에 대한 찬성을 표한 것도 아니고, 명료하지는 않아도 비판적인 - 반대에 가까운,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단지 '방송에서 적게 다뤘다.'라는 것만으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지도 모른다. (그래서 '묘한 불편함'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것은 '어떻게 말하는가?' 뿐 아니라 '무엇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말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편집 수단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나꼼수는 그런 견지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한미 FTA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한미 FTA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지 않으면 정치적 민주주의에 충실하지만 재벌 앞에 무력하고, 그 결과로 서민의 삶은 더 피폐해지게 만드는 개혁정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나꼼수는 '한 번도 투표에 나서지 않던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에게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 오랜 세월동안 진보진영의 누구도 못하던 일을 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박수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굳이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솥뚜껑을 보더라도 경계하는 자세가 있어야 자라에게 또 물리는 일이 없지 않겠는가 싶어 굳이 글로 정리해본다. 그게 솥뚜껑이 맞기를,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기를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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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가 뭐길래 ② (부제 : It's class, stupid!)

Posted at 2011. 11. 24. 00:03// Posted in 시사

1편 먼저보기 : 2011/11/22 - [시사] - 한미 FTA가 뭐길래 ① (부제 : It's class, stupid!)

잠깐 시간을 되돌려보자.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으며,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2005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대책회의'에 참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이제부터 남은 임기 동안은 재벌을 개혁하고, 시장을 견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선언일거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기를 바랐다. 나뿐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했던, 그리고 인간 노무현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가 시장과 경제민주화의 문제에 있어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대로의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그리고 참여정부는 좀 더 성공한 모습으로 역사에 기억되지 않았을까. 노무현 집권 시기의 한국사회는 이미 5년 전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며 정치적 민주화의 과제를 상당부분 달성한 반면, IMF의 여파로 인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문제 - 재벌개혁, 양극화 극복,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 청년실업과 같은 - 를 심각한 숙제로 가지고 있었지 않는가.

  하지만 참여정부는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는 달리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문제에 매우 미진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선언은 시장에 대한 견제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포기 선언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그랬다.) 부동산 과열을 잡지 못해 자산 소유자와 비소유자의 차이를 확대시켰고, 지니계수는 참여정부 출범시기(2003년)의 0.341에서 매년 올라 0.351에 이르렀다.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비전을 내세우고 법인세 인하를 단행한 경제정책 방향은 보수정권과 다를바 없는 성장 우선 담론이었으며, 그 성장의 뒤켠에서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김주익은 (MB 정권 하의 김진숙처럼) 크레인에 129일간 올라가 있다가 끝내 크레인에 목을 매달았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KTX 승무원 고용 분쟁이나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도 모두 참여정부 하에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집권 시기 대기업으로의 부와 권력의 집중이 더욱 심화된 것, 특히 '삼성'이라는 무소불위의 단일 패권 재벌 구조를 안착시킨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참여정부의 패착이었다.

Seoul Train Station & KTX
      KTX 여승무원의 직접채용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에 발생하여,
            MB 정부 하에서 해결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참여정부는 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었을까? 문재인 전 수석이 그의 저서 '운명'에서 토로한대로 우리 진보진영 전체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탓도 있을게다. 선출된 민주정부를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관료집단과 보수언론, 그리고 재벌의 강고한 '보수대연합' 앞에 당시 진보진영의 역량은 허약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17대 총선에서 과반의석까지 확보하고 있던 정부의 책임자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혹시 참여정부 내적인 문제가 더 큰 이유는 아니었을까?

  나는 참여정부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었던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참여정부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는 너무 넓은 스펙트럼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들도 있었지만 김진표처럼 '저 사람은 한나라당에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인물도 있었고, 이광재처럼 언듯보기엔 개혁적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삼성 같은 재벌 대기업과 매우 강고한 연계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사들의 내부 갈등은 생산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은 그들의 최대공약수 수준(즉, 가장 보수적인 수준)의 개혁만을 가능하게 했다. 두번째는 참여정부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물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본인과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인사들마저 '서민의 대통령, 서민의 정부'가 아닌 '모두의 대통령, 모두의 정부'가 되려고 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것이 공정한 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의 권력이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의 패권을 견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권력인 '투표로 선출된 민주정부'가 재벌과 서민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면, 그것은 호랑이와 토끼를 한 우리에 넣어놓고 중립을 지킨다며 개입하지 않는 사육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다시 한-미 FTA를 보자.

  참여정부의 이와 같은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한-미 FTA의 추진이다. 참여정부는 한-미 FTA의 추진 과정에서 김현종, 김종훈 같은 관료들의 손에 놀아나는 무능력함을 노출한 것은 물론이며, 한국 사회 내부의 상충적 이익 앞에 추상적 '국익'을 내세우며 중립적인 듯하만 결과적으로는 재벌 대기업의 편에 서게 되는 한계를 노출했고, 특히 한-미 FTA가 추진되면 (아마도 국내적으로는) 최대 수혜자가 될 삼성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미 FTA야 말로 계급 갈등의 적나라한 각축장이기 때문에 이 조약을 추진했다는 것만으로도 참여정부가 서민의 편에 서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011년, 한-미 FTA가 정치권의 핵심 문제로 떠오르고 결국 날치기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보여줬던 한계가 결코 극복되지 않았음을 민주당과 친노 인사들은 그대로 노출한다. 한-미 FTA 저지 정국에서 민주당이 보인 모습을 생각해보자. 김진표처럼 노골적으로 엑스맨 행각을 벌인 이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손학규나 박지원처럼 겉으로는 FTA를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적극 저지에 나서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정동영, 이종걸, 천정배 같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오히려 예외적인 모습이었다.) 송영길과 안희정은 가만 있으면 나았을 것을 괜시리 한-미 FTA를 지지하는 발언을 던져 국민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송영길은 송도에서 영리병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안희정은 삼성과의 커넥션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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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통합에 나서는 적극성에 비해 한미 FTA 문제를 다루는 그들의
    태도는 소극적이기 짝이 없다. 이렇다할 발언 한 번 없을 정도.

  
  민주당만도 아니다. 문재인 전 수석은 그의 저서에서 한-미 FTA에 대해 '우리가 교섭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에 주눅 들지 않고 최대한 우리 이익을 지켜내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밝혔으며, 나꼼수에 출현해서도 노무현의 FTA는 이익균형이 맞았다는 논지의 주장을 했다. 물론 ISD나 역진방지, 네거티브 리스트 등 주요 독소조항들이 참여정부 때도 그대로 있었음이 밝혀진 다음에는 말을 바꿔 잘못되었다고 하긴 했다. (그렇지만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에 바빠서 한-미 FTA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이더라.) 유시민 전 장관 또한 FTA 정국 초기만 해도 '참여정부 때 간신히 맞춰 놓은 이익균형이 MB 정부의 재협상으로 인해 깨졌다'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또한 나중에는 잘못되었다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 정치권 외부의 '친노'라고 할 수 있는 김어준 딴지 총수나 조국 교수 또한 FTA 정국 초기에는 '노무현 FTA, 이명박 FTA'의 프레임으로 문제를 접근하다가 정국이 달아오르는 과정에서 입장을 바꾼 바 있다.

  물론 '그땐 잘 몰랐다가 지금에 와서 한-미 FTA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석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동영 의원이 FTA 정국 초기부터 명확하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한-미 FTA에는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위에 언급한 인사들의 모습은 미진해 보인다. (민주당의 대부분 의원들은 미진한 정도가 아니라 이들이 한나라당과 다른 것은 현재 야당이라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정도다.) 과연 이들이 지금처럼 진보정당이 앞에 나서 총대를 메고, 이에 호응해서 시민들이 한-미 FTA의 폐기를 요구하는 국면이 조성되지 않았어도 지금만큼 한-미 FTA를 반대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때 그 대답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든 민주당이든 '계급적으로' 서민의 편은 아니다.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이냐? 편가르기 하자는 거냐?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다만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한-미 FTA라는 적나라한 계급의 문제에서 드러난 모습을 볼 때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은 '계급적으로' 서민의 편은 아니다. 그들은 서민의 편을 자임하며 뒤로는 재벌 대기업과의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거나, 기껏해야 재벌 대기업과 서민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 하는 자들이다. (그들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그렇다는게 아니고, 집단으로서 그들의 정치적 위치가 그 정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민주화 세력이었지만, 사회 경제적 민주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추동할 정도가 되는 이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 필요한 '당파성', 즉,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 것인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곧,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을 때 서민의 편에 선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연대는 필요하다. 지난 4년간 당하면서 충분히 느낀 것처럼 MB와 한나라당을 지난 시절의 추억으로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칫하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던' 정치적 민주화마저 과거로 되돌아가게 생겼으니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무작정 통합, 무작정 단결만 외쳐서는 김대중-노무현 10년의 재판 이상은 될 수 없다. 그 당시에는 정권교체나 권위주의 타파 같은 의미라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그 시절로의 회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음 시대에는 서민의 편에 서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권을 우리가 필요로 한다고 할 때, 유권자들은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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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너도 엑스맨이야? 그럼 당신도?

  현실적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연대가 이루어지면 진보정당도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져가겠지만, 당장은 더 많은 지분을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같은 그 주변 인사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만, 현재의 정치현실을 고려할 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을 견인해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을 어느 정도까지 견인할 수 있다. 한-미 FTA 국면에서 민주당이 시늉으로라도 FTA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친노 인사들이 초기의 '노무현 FTA와 이명박 FTA' 프레임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99%가 끊임없이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에 '엄청나게 관심을 갖는' 자세를 다음 5년 동안 계속 유지해가야만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 되었을 때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바꾸는 작업을 선행해야겠지만.


앞 글에서는 나름 인터넷 유행어도 쓰고 그랬는데, 이번 글은 어쩐지 진지하게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인지 읽어보니 참 재미없구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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