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국내도서>전공도서/대학교재
저자 : 라메쉬미쉬라 / 남찬섭역
출판 : 한울아카데미 201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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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국가를 보는 시각을 다루는 책으로 내가 최근에 읽은 미쉬라의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은 복지국가에 대한 여러 관점을 중립적 시각에서 다룬 후 현실에서의 복지국가는 어떤 모습인지를 더듬어보는 책이었다.(
2012/02/14 - [감상]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참조
) 그 책이 다룬 관점들은 복지행정학 관점, 기술결정론(수렴론) 관점, 기능주의 관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관점이었는데,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을 다루며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은 체계론적 분석집단행위적 분석을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 (기능주의와 비교할 때) 장점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집단행위적 시각을 포기하고 기능주의적(, 체계론적) 분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현한다. 오늘 소개할 이안 고프의 이 책,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미쉬라의 아쉬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대답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고프의 시각이 마르크스주의자 일반의 시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고프는 이윤율 저하 경향성의 법칙이라든가 공황 분석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관점을 결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며, 이에 대해 역자는 고프가 신리카도주의적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역자후기 참조.) 고프는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미쉬라가 아쉬워한 두 부분을 모두 충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조망하는 복지국가의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모순혹은 양면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복지국가의 두 얼굴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복지국가를 바라보며 저자는 복지국가가 양면성을 가진 체계임을 강조한다. 복지국가는 사회복지를 향상시키고 시장의 횡포에 대항하는측면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인간을 억압/규제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요구에 적응시키는측면도 가지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를 소위 시장 만능주의라고 하는 체제로 파악할 때 시장 질서에 따른 분배가 아닌 다른 방식의 분배(사회복지를 통한 분배, 부분적으로나마 욕구에 따른 분배)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모순인데,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로부터 기인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마르크스가 가치법칙이라고 말한 비정한 시장력의 힘으로 모든 개인이 규율 되는 체제인데, 이 안에서 개개의 노동자는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하나의 상품이 되며, 지배계급은 마치 자본을 축적하도록 강요된 것처럼 탐욕스럽게 자본의 확장을 위해 움직인다. 당연히 자본주의에서는 재화나 서비스의 분배 과정 또한 이와 같은 시장 질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을 시장의 힘에만 맡겨두게 되면 자본주의 자체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노령, 산재, 실업, 가족의 붕괴와 같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초래한 위험들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상품인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된다. 따라서 사회는 어느 정도가 되었든 시장질서에서 벗어난 욕구에 따른분배 방식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이것이 제도화 된 것이 복지국가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그 자신의 유지를 위해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체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설명은 하나의 중요한 요소를 결하고 있다. 바로 복지국가의 형성에서 계급갈등의 역할이 그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 살펴보도록 하자.)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적인 것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것은 충돌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복지국가가 성장하면 할수록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협하게 된다는 말이다.

 

복지국가의 기원 계급갈등과 체제의 요구

복지국가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위협하게 되는 지를 다루기에 앞서서 복지국가라는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설명에서 배제되었던 계급갈등의 역할에서 출발하자. 자본주의는 그 체제의 특성상 자본의 이해와 대립되는 이해를 가진 계급 즉 노동 계급을 대량으로 발생시키게 된다. 노동자 계급은 대규모 공정이라는 일관작업의 환경 하에서 집합적 성격을 갖는 노동을 통해 조직화 역량을 갖추어 나가게 되며, ‘착취라는 자본주의의 본질로 인해 숙명적으로 자본가와의 계급대립을 발생시키게 된다. 더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성, 즉 선거에 기반한 민주주의라는 특성은 (물론 이 또한 공짜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선거권 확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자유주의 좌파 세력과 연대하여 싸웠는지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대의제 구조 내에 노동자의 대표를 등장시키기까지 한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노동 계급을 자본주의 체제 내로 포섭하지 않으면 혁명이라는 –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자코뱅 독재를 목격한 이래 모든 부르주아에게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공포인 파국을 가져오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계 내로 포섭해야 하는데, 바로 이 포섭의 방법이 바로 복지국가이다. 어떤 경우는 노동 계급의 압력에 의해 또 어떤 경우는 예상되는 노동 계급의 압력을 사전에 약화시키기 위해 사회정책을 도입하는 식의 다양성은 있지만, 어쨌든 노동 계급의 계급투쟁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은 대부분 국가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된 중요한 원인이다.

       복지국가는 분명 '부분적으로는' 조직화된 노동운동으로 인한 계급투쟁의 성과이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순수하게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성과물인 것만은 아니다. 개별 자본가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돼!’라고 외친 한국의 한 자본가를 기억하라. 그 자본가의 눈에 흙이 들어간 지 오래지만 그 독점자본의 사업장에는 아직도 노조가 제대로 없다.) 자본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할 때는 노동조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정과 복지정책의 어느 정도의 시행은 필수적이다. 이는 비단 복지라는 탈출구가 없다면 혁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방임주의가 득세하던 19세기 영국의 공장 현실은 비참함 그 이상이었다.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노력은 생존선 이하의 임금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에 시달리는 아동들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고, 이는 자본주의의 가장 중대한 투입요소인 노동의 재생산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러 자본가 전반의 이익 기반을 훼손할 정도가 되었다. , 개별 자본가의 이익이 무제한 관철되도록 놔두었을 때 전체 자본가의 이익기반은 파괴되고 결국 이는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낳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장법과 같은 최소한의 개입는 노동운동이 없더라도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결국 미쉬라의 말처럼 계급갈등체계특성은 모두 자유방임주의국가를 복지국가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복지국가로 움직일 것인가?’를 놓고 자본과 노동은 또 한 번 힘겨루기를 해야만 하겠지만.

 

국가 자본의 이익 실현과 상대적 자율성

이 설명에서 개별 자본가의 이익이 아닌 전체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가 바로 국가이다. 사실 국가는 자본주의의 형성에서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은 결과 우리는 흔히 시장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고 규제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지만 사실 시장경제의 출발은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시장경제는 이른바 고전경제학의 투입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이 시장에서 제한 없이 거래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이전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그 때의 사람들은 수많은 공유지를 가지고 집산적 생산을 하고 있었으며, 공동체는 개개인에 대한 일정한 자유의 제약보호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다. (바람직한 경우를 보여주는 예는 아니지만, 중세의 농노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농노제 하에서 농노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비롯한 갖가지 자유를 제한 받고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어떤 이유로 인해서든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 영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현에 장애일 뿐이었고 따라서 해체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한 것이 국가 , 정치권력이었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전 사회를 권력의 힘으로 폭력적으로 해체하며 등장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유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못 가진 사람에게 그 자유는 단지 굶을 자유일 뿐이었지만. 그리고 그 자유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거래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형성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일단 형성되게 되면 착취가 경제체제 내에서 자동적으로 실현된다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잉여가치의 수탈은 의식적인 강제 없이도 시장기구의 힘으로 자연스럽게이루어진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경제정치로부터 분리하고, ‘사적인 것공적인 것과는 다른 것으로 취급하게 되는 상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분리된정치는 분리된 국가구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 국가가 된다. 물론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주어진다. 만약 국가가 이 범주를 넘으려고 할 때 자본은 보다 유망한 자본축적의 중심지로 이동하게 되고, 이는 (적어도 단기적인, 그러나 심각한) 경제적 난관으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국가는 (혁명을 일으키는 상황이 아닌 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지구적차원의 체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구조적 속박이며, 국가의 자율성이 상대적인 이유이다.

그렇다면 상대적 자율성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위에서 설명한대로 국가는 상대적 자율성을 갖기 때문에 개별 자본의 단기적 이익이 아닌 전체 자본의 중/장기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 아무리 유력 자본가가 내 눈이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돼!’라고 외치더라도 노조의 존재가 자본주의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노조를 허용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것이 국가가 가진 상대적 자율성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은 본질적으로 한계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피지배 계급에게 국가는 일정한 속박 내에서나마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능성이 되며, 그 결과가 바로 지난 세기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는 어떻게 위협이 되는가?

자본주의와 복지국가가 어떻게 결합되는가에 비하면, 복지국가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위협이 되는가(다시 말하면, ‘복지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도래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논의는 빈약하다. 논의가 타당성이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양적으로 빈약하다는 말이다. 오히려 저자는 위기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보다는 사회지출의 증가를 70년대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왜 불완전한가?’에 대한 논의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른바 복지국가가 생산성 저하를 초래한다.’는 주장은 이렇다. 경제에는 시장부문비시장부문이 있는데 시장부문은 시장판매를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비시장부문은 그 외의 것들, , 국방, NHS (국가 건강 서비스, 이 장에서의 모든 논의는 영국을 예로 들어 이루어지고 있다.) 등 주로 국가/공공 부문의 활동들로 구성된다. 이 중 국가 전체의 소비재, 투자재, 수출재 등의 수요총량을 공급하는 것은 시장부문이며, 따라서 시장부문이야말로 경제에서 유일하게 생산적인부문이다. 따라서 비시장부문에서 일하는 비생산적 노동자들의 소득은 생산적 부문이 생산한 시장부문생산물의 구입을 위해서만 지출될 수 있다. 그 결과로 비생산적부문의 국가고용 증대는 시장부문 산출의 몫을 축소시킴과 동시에 시장부문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또한 국가지출의 증대는 시장부문에 대한 조세부담의 증대를 의미하며, 이는 결국 시장부문의 이윤에 의해 부담된다. 결국 복지국가가 초래한 국가와 공공부문의 확대는 ① (생산적인) 시장부문으로 가야 할 노동력을 (비생산적인) 비시장부문으로 돌리고, ② 시장부문의 산출부담을 증가시키며, ③ 조세부담으로 시장부문의 이윤을 축소시키는 3중의 부담을 시장부문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산업기반을 약화시키고, 저성장과 무역적자의 원인이 된다.

    복지국가에 조종을 울린 '철의 여인' 마가렛 데처. 메릴스트립의 싱크로율이 후덜덜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파국을 이야기하는 이 시기에 왜 하필 그녀가 영화화된 걸까? 

저자는 복지국가를 저성장의 원인으로 몰아세우는 이런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여러 각도에서 논증한다. 첫째, 비시장부문의 활동이 생산하는 사회적 임금집합적 소비는 그 자체가 생산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를 공급하게 됨으로써 시장부문에서 시장임금으로 지급되어야 할 비용을 감소시키므로 비시장부문의 모든 활동이 시장부분의 이윤을 감소시키는 형태를 결과한다는 분석은 옳지 않다. 둘째, 예를 들어 NHS와 같은 필수 서비스가 국가에서 운영될 경우 민간에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소비자가 NHS에 지급할 비용에는 이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는 소비자의 후생을 증진시키거나, (만약 시장임금이 이와 같은 부분을 반영하여 낮아지거나 덜 상승하는 식으로 반응할 경우) 시장부문의 이윤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는 시장부문에서 NHS를 공급했을 때의 이윤과 같으므로 이윤의 총량은 같지만 (NHS를 공급하는 자본가가 없기 때문에 사회의 전체 자본가 수가 감소함으로써) 이윤율을 오히려 더 높아지는 결과가 된다. 셋째, 국가가 공급하는 사회서비스는 재생산적인 것 (예를 들면 교육, 보건 같은)비생산적인 것 (주로 사회통제를 담당하는 서비스, 예를 들면 군대, 경찰과 같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재생산적인 것은 장기적으로 시장부분의 생산 증대에 기여하게 되며, 따라서 이 부분의 비중을 높일수록 사회서비스는 그 자체로 생산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1970년대 복지국가의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저자는 복지국가의 위기는 전후 계속되어온 장기호황자체에서 싹튼 것이라고 말한다. , 전후의 경제적 호황은 산업예비군을 고갈시켜 노동운동의 힘을 강화시켰고 강력해진 노동운동은 임금을 상승시켜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가시켰다. 한 편으로 유럽과 일본의 선진국가들은 미국의 기술수준을 따라잡음으로써 미국 자본의 경쟁을 증대시켰고, 이는 미국 자본의 이윤압박을 증가시켜 미국의 헤게모니 하의 국제질서라는 기존의 국제적 축적체제를 뒤흔들었다. 한편으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국가지출은 증대했는데 이에 대한 재원조달시도는 다시금 인플레이션 압박을 증가시키게 된다. 결국 불황에 대처하는 국가지출확대라는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대응책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암초를 만나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 ‘복지국가는 위기의 한 측면일 뿐이지 이것이 위기의 중요한 원인도, 결과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가며. 복지국가의 미래는?

이와 같이 복지국가의 본질과 기원, 그리고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고찰을 마친 저자는 위기에 봉착한 복지국가의 미래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저자는 후기에서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피조물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속의 사회주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한 번 복지국가의 양면성이다.) 그리고 복지정책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들을 보호하고 확대함과 동시에 복지정책의 부정적 측면들은 노출시켜 척결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 같은) 교훈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한다. ‘복지자본주의에서 복지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바란다는, (‘어떻게가 빠져 있기에) 다소 갑작스러운 문장을 끝으로. 결국 복지국가의 과거와 현재를 일관성 있게 조망한 저자로서도 복지국가의 미래는 말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부터 20여 년을 더 살아온 나로서는 당시의 저자가 몰랐던 복지국가의 미래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70년대를 거치며 복지국가는 저자가 애써 증명하려 했던 바와는 달리 경제위기의 주범이자 비효율의 상징으로 몰렸고, 그 결과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좌파조차 (기존의 복지국가와 자유방임주의 사이의) 3의 길을 외치며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조타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되었다. 사실 70년대의 위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저자도 지적한 것처럼 노동운동의 강화와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은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국가의 비대함과 그로 인한 비효율은 신자유주의 진영에서 주장한 것과는 달리 정말 위기의 원인이었는지 잘 밝혀지지 않은 것 같다. 한편 신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은폐했으며, 저자도 (적어도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은 위기의 또 하나의 측면이었던 자본의 독점자본화는, 위기의 원인으로 주목 받지 않았던 덕분에 그 후 이십년동안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거치며 더욱 증폭되어 오늘날 또 다른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 압박은 노동의 임금상승도 있지만, 독점자본화에 따라 가격의 결정이 시장이 아닌 자본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생산비 상승이나 임금인상이 이윤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측면도 있다. 또한 산업기반 약화의 원인은 신자유주의의 주장대로 국가의 비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이 덩치를 키우며 초국적 금융자본화된 것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복지국가는 무엇인가? 지난 30년 간 지구적 자본주의를 운영한 신자유주의가 실패했으니 이제 다시 복지국가로 돌아가면 되는 것일까? 30년 전의 경제위기를 몰고왔던 원인들은 해결되었는가? 복지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열었던 지속적인 생산의 증대는 과연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으로의 이행이라는 산업 조건의 변화는 어떠한가? 인구구조의 변화와 환경의 파괴, 그리고 석유의 고갈이라는 잠재적 위협들은 복지국가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건제한 초국적 금융자본은 과연 복지국가로의 회귀를 용인할까?

이안 고프 같은 이도 복지국가의 미래를 조망하지 못했는데 내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70년대 케인즈주의 복지국가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마땅히 이에 대한 대안은 시대적 변화를 담은 새로운 비전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선택된 비전은 고전적 자유방임주의의 재판일 뿐인 신자유주의였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낳았을 뿐이었다.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 지금, 어떤 이유에서든 30년 전 폐기되었던 체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인(물론 적어도 복지국가의 30년의 신자유주의의 30년 같은 야만의 세월은 아니었으니 좀 나을 수는 있어도) 그리 현명한 대안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프의 말처럼 복지국가의 긍정적 측면을 담되, 새로운 시대의 질서가 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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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들 자신의 역사를 만들 수 있지만,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상황 아래서는 아니다."
 - 마르크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25 에서 재인용

"복지국가는, 사회복지를 향상시키고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며 시장력의 맹목적 역할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경향들과, 인간을 억압하고 규제하며 그들을 자본주의 경제의 요구에 적응시키는 경향들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경향은 정반대 방향으로 상쇄경향을 유발한다. 이것이 복지국가를 모순적인 과정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28

"자본주의가 사물의 자연적인 질서도 인식되는 한, 사회에 대한 이러한 관념 및 설명은 명백하고 불가피할 뿐 아니라 그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정당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복지국가의 이데올로기는 그 좋은 예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집단적인 급여 사이의 실재적인 관계를 왜곡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환상적인 것은 아니다. 즉 복지국가의 이데올로기는 현실적인 기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42~43

"자본주의의 비밀은 일찌기 정치경제학자들이 파악했던 바와 같이 아무도 그것을 계획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사람들의 의도가 역사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예컨대 국가가 시장력의 역할을 수정할 수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들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존속하는 한 그것들을 없앨 수는 없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47~48

"마르크스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특정한 계급이 국가제도를 지배한다는 관점이 아니라(이것이 보편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람이 이러한 위치에 있게 되더라도 그는 자본축적 과정상의 불가피성에 의해 강제되어진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제도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과 국가가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로 하여금 다양한 개혁을 할 수 있게 하며, 한 계급의 수동적 도구만으로는 작용하지 않게 한다. 이러한 속박 내에서 경쟁적인 전략과 정책 그리고 조정을 위한 공간이 존재한다. 많은 국가기관들이 정책을 수립하고 파기하며 선택과 실책을 범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가 경쟁하는 집단간의 중립적 중재인이라는 다원주의자의 국가관이나, 단지 사회 지배계급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는 경제 결정론적 관점 양자 모두를 거부한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65

"표준노동일의 성립은 수 세기에 걸친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의 결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노동자가 국가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본 장기적 축적을 돕고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금세기의 대부분 복지정책에 적용될 수 있다. 여기서 진실의 핵심은 노동계급이 자본의 한 요소('가변 자본')인 동시에 자신의 요구와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는 살아있는 인간계급이라는 사실에 있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77~78

"강력학 노동계급운동의 위험이,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더욱 응집력 있고 전략적으로 생각하게 만들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국가기구를 재편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노동계급의) 도전에 대한 대응 역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공통적인 것은 더욱 중앙집중화된 개입주의 국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일반적인 현상은 노동계급정당이 의회에 진출함으로써 의회의 중요한 정책결정활동이 제거되고 그것이 국가의 행정부로 이전되는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90~91

"그러나 도시재개발이 창출해 낸 새로운 사회적 욕구를 생각해 보라. 자녀를 가진 젊은 세대들이, 종전의 경우에는 중요한 부양기능을 담당했을 그들의 부모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고 있다. 만약 젊은 세대의 어머니가 취업하기를 원한다면, 지방정부의 탁아소나 어떤 다른 대체물을 찾아야만 한다. 만약 종종 그러하듯 국가가 탁아소의 시설확대를 거부한다면, 자격을 갖추지 못한 탁아모의 확산과 같은 일련의 만족스럽지 못한 대체물이 필연적으로 창출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집에 있는 노인들은 또한 그들의 직계가족과 격리되어, 가정보호나 시설보호를 통한 국가보조의 증대를 요구하게 된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22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상호모순된 영향에 관하여 설득력 있는 논의를 전개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와 기타 항목들에 대한 국가지출의 증가는 한편으로 자본축적과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바로 그 성장이 자본축적을 방해한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38

"만약 현물급여가 배제된다면 재분배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택이나 다른 생활필수품을 위한 보조금이 없고 국민보건서비스도 없이, 사회보장기여금(임금과 관련된다 할지라도)이나 간접세로부터 재정의 보다 많은 부분을 조달하는 나라는,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여 본다면, 소득집단 사이에 수직적 재분배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훨씬 미약할 것이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46

"개략적으로 말하면, 복지국가는 자녀를 가진 가존, 연금수령자 가계와 병자들 쪽으로 자원을 이동시킨다. 다시 말하면 복지국가는 이윤으로부터 임금소득에로의 재분배나 상류 및 중상류계층으로부터 저소득계층에로의 재분배가 아니라, 임금과 봉급을 얻는 계급(광의의 노동계급)의 내부에서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46

"모든 조세는 잉여가치로부터 공제된 것이라는 생각은, 노동력가치는 잉여가치를 제하고 남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력가치는 모든 조세와 모든 국가급여를 공제한 나머지로 계산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력가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임금으로 실제로 구입한 상품들을 말한다. 그러나 즉시 두 가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첫째, 이들 상품과 서비스의 일부는 사회보장급여로 구입되며, 임금으로 구입한 빵과 가족수당으로 구입한 빵을 분리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둘째,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소비된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소비되는 사용가치 중 상당부분이 이제는 국가에 의해 직접 제공되고 가족에 의하여 구매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서비스는 상품과 똑같은 방식으로 노동계급의 일상적, 세대간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49

"사회서비스가 노동력 재생산(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에 기여하면 할수록 장기적으로 생산물의 증가에 보다 많이 공헌하게 된다. 동시에 이 국가고용노동자들이 잉여노동을 수행한다면, 그들은 또한 자본주의 부문에서의 이윤 똔ㄴ 실질임금, 혹은 이들 양자에 모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회복지비용이 많이 증가하면 할수록 미래의 생산에 사용된 수 있는 자원은 적어질 것이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56

"생산성 향상수준이 낮다는 사실과 실질임금수준을 방어할 수 있는 노동세력의 존재를 전제하면, 인플레이션이나 성장 또는 이들 양자를 악화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증가하는 국가지출에 재정조달하는 일든 불가능하다. 앞 장의 논의에서 보았듯이 많은 국가지출이 간접적으로는 '생산적' 성질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 결론은 유효하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61

"복지국가의 성장은 자본주의 발전의 원인도 결과도 아니고, 단지 그것을 한 측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현재 위기의 원인도 결과도 아닌 그것의 한 측면일 뿐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조세율 및 복지지출수준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영역에서의 자본과 노동간의 갈들을 심화시킨다. 복지지출의 증가에 대한 압력과 그것을 재정 조달하는 문제가 결합되면서 결과적으로 오코너가 지칭한 '국가의 재정위기'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의 성장 및 발전이라는 바로 그 본질에 의해 야기된, 현 경제위기상의 한 국면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62

"자본축적과 재생산을 보조하고 도와주기 위하여 사회정책에 대한 압력이 행사될 것이고 그 두 가지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고안된 서비스를 삭감시키려는 압력도 있을 것이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76

"전후 시기에 생산력의 발정과 정치적 민주주의 및 사회적 권리를 가져다 준 유럽 주요국과 미국 등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수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축적과 경제성장이 희생되거나 혹은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가 희생되어야 한다. 어떤 것이 희생되든지 간에 복지국가의 본질은 변화될 것이다. 크로스랜드와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는 반대로 복지국가와 혼합경제는 자본주의의 종언과 산업사회의 여명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적 발달이 낳은 산물의 하나이며 이것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된 새로운 모순을 창출하여 왔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92

"복지국가를 순전히 단순한 자본의 피조물로 인식하는 사회주의적 입장에 선 사람들은 복지국가를 옹호하거나 확대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 복지국가를 자본주의의 대해 속에 있는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섬으로서, 노동의 피조물로서 파악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복지국가에 자신의 판단기준을 고정시킬 것이다. 후자는 복지국가의 결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전자는 그 잠재력을 간과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어느 입장도 적절하지 못하다. 일단 복지국가의 모순적 성격과 그것이 자본주의에 미치는 모순적 영향을 인식하게 되면, 복지국가에서 노동을 하며 복지국가의 혜택을 받고 복지국가에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들의 정치적 전략은 정교화될 수 있을 것이다. 복지정책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보호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으나, 그 부정적 측면들은 노출시켜서 척결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인간욕구'의 개념은, 무엇이 긍정적이며 무엇이 부정적인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데 적절한 개념이 된다."
  - 이안 고프,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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