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복지국가의 위기 (라메쉬 미쉬라 저 / 이혁구, 박시종 역 /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Posted at 2012. 5. 6. 01:03// Posted in 감상전에 읽은 미쉬라의 책(2012/02/14 - [감상]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이 워낙 좋았었기 때문에, 국내에 번역된 그의 또 다른 책의 존재를 아는 순간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부제가 Toward a Global Social Policy라니 이거 보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러나 이 책은 이미 절판 상태였고, 도서관에서 구할 수는 있었겠지만 유독 책에 대해서는 소유욕을 불태우는 성향상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물론, 원서 구해서 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 혹시나 해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마침 책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3천원의 배송비를 부담하고도 기꺼이 득템! 행복한 마음으로 읽었다.
미쉬라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아주 거칠고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70년대 후반 복지국가의 전성기의 종료와 함께 시작된 복지국가에 대한 우파의 공격은 세계화, 특히 금융의 세계화를 통해 실질적으로 복지국가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쉬라에 따르면 세계화는 화폐자본의 이동성에 대한 제약을 철폐시킴으로써 리플레이션 정책을 통한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이라는 일국적 케인즈주의 거시경제 관리모형을 붕괴시켰고, 국민국가에 지구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시키고 투자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회적 덤핑'과 임금 및 노동조건의 하향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또 세계화는 '통화주의'로 상징되는 재정적자 및 국가채무 감축을 조세인하와 동시에 국가정책의 핵심목표로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보호체계와 사회지출에 대한 하향합박을 행사하고, 국민국가를 탈중심화함으로써 국민적 연대를 허무는 방식으로 복지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뿐만아니라 세계화는 권력의 균형추를 노동자와 국가에서 자본으로 이전시켜 사회적 협력관계의 토대를 약화시키고, 국민국가의 정책선택지에서 중도좌파적 정책을 제거함으로써 정책선택의 범위를 우편향 이동시켰다. 끝으로 세계화의 논리는 국가공동체 및 민주주의 정치의 논리와 갈들을 일으킴으로써 지구적 자본주의와 민주적 국민국가 사이의 투쟁을 촉발한다.
물론 이와 같은 '세계화'의 특징은 상당부분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 국가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알고 있듯 80년대 이후 복지국가의 후퇴기에도 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다른 유형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영미권 국가들만큼 사회적 보호에 있어서 후퇴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영미권에 대해서도 어떤 학자들은 '근본적이 변화'가 있었다고 하기 어려우며, 이는 복지국가를 형성하는 제도들이 가진 경로의존성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Pierson(1994)이 그렇다. 미쉬라도 이와 같은 부분을 인식하고 있다(실제로 미쉬라 자신도 이전에는 우파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는 '역전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쉬라는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가정, 즉 '완전고용'이 포기되었다는 것은 각 제도의 축소 정도 이전에 과거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보여주는 것이며, 특히 세계화는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효과를 통해 복지국가의 안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에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스웨덴과 독일과 같은 경우에 있어서도 영미권 국가와는 분명 크게 다른 상황이지만 적어도 사회정책이 확대가 아닌 축소의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과 이들의 사회정책 모델이 미래지향적인 모델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제도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지구적 자본주의의 차원에서보면 복지국가의 위기를 온전히 반박할만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안은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지구적 사회정책'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우(the right)로부터의 세계화, 위(Above)로부터의 세계화에 맞서 밑(Bottom)으로부터의 세계화, 좌(the Left)로부터의 세계화를 대면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사회권'으로부터 '사회적 표준'으로의 이행을 말하는데, 이는 '사회권' 개념이 그간 복지국가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한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비서구 문화권에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고, 적정 수준의 보장이 아닌 최저 수준의 보장으로 귀결되며, 무엇보다 사유재산권과 충돌하는 성격으로 인해 세계화의 위협 앞에서 그 의미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제적 표준에 대응하는 '사회적 표준'이라는 개념은 문화와 사회가 달라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며, 국가의 경제적 표준에 연계시킴으로써 경제-사회 발전의 조화를 추구하기에 유리하고, 서로 다른 경제발전 수준에서 상응하는 표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회적 표준은 이와 같은 장점으로 인해 기존의 UN이나 ILO의 사회정책과 관련된 권고가 가지고 있는 문제 - 후발 국가의 현실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 - 를 해결할 수 있으며, 경제적 세계화에 대해 사회적 세계화를 병행함으로써 '사회적 덤핑'이 아닌 '사회적 보장'이 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가운데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세계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실 이 책의 부제, '지구적 사회정책을 향하여(Toward a Global Social Policy)'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떠올린 질문은 '왜?'가 아닌 '어떻게?'였다. 미쉬라가 한 것처럼 '논증'할 능력은 없지만 개념적으로 화폐자본의 세계화가 케인지언 복지국가 후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며, 따라서 현재는 과거와 같은 일국적 케인즈주의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고 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서는 좌파 버전의 지구적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80%가 '왜?'에 대한 답이며, '어떻게?'에 대한 답은 말미의 '사회적 표준'에 대한 논의 뿐이다. 물론,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한 분명한 하나의 답을 준다는 차원에서 매우 가치있는 책이긴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라는 질문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조금은 아쉽다. 미쉬라가 제시한 '사회적 표준'은 그 스스로가 지적하고 있는 지구적 차원의 사회정책을 논의할 때 생기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점들 - 국민국가에서 민주주의적 정부처럼 사회적책을 강제하고 실행하기 위한 민주적 권위를 가진 주체가 없다는 것과, 각국의 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일괄적으로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는 것 - 중 후자에 대한 해결책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이 책은 첫번째 질문의 답에 대해 '이 책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라고 전제한 후 현존하는 국제기구의 현실과 한계만을 짚고 있다.)
하지만 미쉬라에게 이에 대한 온전한 답까지 요구하는 것은 다소 과도한 요구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는 정치적 실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자의 몫이 현실을 진단하고 가능한 대안을 조망하는 것 까지라면, 그것을 비전으로 가지고 실행하는 것은 정치의 몫일 것이다.
감상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놀라웠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미쉬라는 놀랍게도 이 짧은 책 한 권에서 내가 '복지국가'에 대해 근래 하고 있던 생각들을 거의 다 언급하고 있다. 물론 복지국가에 대한 미쉬라의 지식은 내 지식 쯤은 한쪽 구석에 있는 부분집합으로 가지고 있을테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놀라웠던 이유는 그 생각들 중 상당수가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아니며, 따라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는 데 있다. 그 이야기들이 다루어지는 방식도 -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 없는 부분이니 - 지나가듯 한 마디씩 툭툭 던져지는 형태인데, 예를 들어 사회투자국가에 대해 말하며 인적투자론은 일종의 '생태주의적 오류'라고 툭 던지고(근데, 맥락상 개체주의적 오류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뜻은 통했다.), 복지국가의 미래에 대해 말하다가 뜬금없이 '생태학적 파괴와 폐해가 극심해지면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분별 없는 성장과 천박한 소비주의로부터 급진적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라는 전체 문맥에서 없어도 되는 문장을 툭 던지는 식인데, 이런 부분을 볼 때마다 마치 저자가 내 머리속을 들여다보며 '너 이 부분에서 이 생각했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뭔가 저자와 파장이 잘 맞는 느낌이랄까. 그러다보니 미쉬라의 팬이 되어버릴 것 같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책이 (내가 알기로는) 내가 본 두 권이 모두인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안되는 영어실력을 동원할 차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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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Posted at 2012. 2. 14. 01:26// Posted in 감상2011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 이벤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보편적 무상급식 몽니’에 이은 ‘셀프 탄핵’과 그 후 야권연대에 기초한 시민운동가의 서울 시장 선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김어준 딴지 총수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상 가장 빨리 시작된 대선 레이스’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가카’의 (여러 가지 의미로) ‘삽질’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 무상급식’이라는 지난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재보선을 관통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선거의 핵심 어젠다가 된) 복지정책 논란이다. 전근대적ㆍ중상주의적 재벌 위주 경제구조라는 한국의 특수성이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돌풍이라는 보편성을 만나 대다수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이래, 마침내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왜곡하는 요소는 구조적, 혹은 적어도 제도적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은 ‘복지국가’라는 (적어도 MB나 ‘뉴타운돌이’들에게 투표할 때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생각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50~60년대 성립된 서구의 ‘복지국가’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 같다. 우선은 더 이상 고도성장 기반의 완전고용이라는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이 성립할 수 없다는 국제적 환경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며, 노동자 계급의 권력자원 동원이 어렵고 극소수 재벌위주의 생산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노동시장의 이원화 문제가 심각한 한국적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어떤 대안을 생각해 내기란 물론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가 막연히 말하는 ‘복지국가’가 어떤 생각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체제이며, 그것이 (우리보다 앞서 나간) 서구의 국가들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이해 정도는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정치가들이 외치는 ‘복지’가 진정성을 가지고 실천방안까지 고민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표를 모으기 위한 캐치프레이즈일 뿐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를 다룬 내용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자본주의 체제 하 사회정책이 그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략)… 대부분의 연구들이 지적하고 있는 일반적인 결론은, 계급 간 소득재분배, 즉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하층에 속하는 집단으로의 소득재분배의 정도는 미약하며, 따라서 소득이전의 성격은 계급 내 소득이전 또는 삶의 주기에 따른 소득이전의 성격을 훨씬 더 많이 띠고 있다는 것이다… (후략)
국가에 따라 상당한 수준이다. 저자가 주로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하는 국가가 영국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에 대해 다룬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구조적 모형’(영미권 국가의 ‘잔여적 모형’은 물론 대륙유럽을 중심으로 한 발전된 복지국가의 ‘제도적 모형’ 보다도 복지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으로서의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가 갖는 우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스탈린 체제라는 전체주의 체제가 이를 어떻게 제약하고 왜곡했는지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라메쉬미쉬라의 ‘사회복지의 사상과 이론’의 개략적인 내용과 그 중 내가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들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끝으로 책을 덮고 난 후의 소회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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