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Posted at 2015. 1. 21. 14:15// Posted in 시사

석사논문을 쓸 때 건강보험공단의 소득 및 재산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쉽게 접하기 힘든 전체경제활동인구(에서 1%를 무작위표본추출한)의 소득분포를 보며, 내가 회사원이던 시절에 받고 있던 연봉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분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는 것을 알고 꽤 놀랐다. 그 후 이런 저런 소득분포를 보면서 우리가 손쉽게 '직장인'이라고 말하는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직장인'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서민도, 중산층도 아닌 상당한 상류층임을 알 수 있었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을 보며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좀 더 많은 데이터를 좀 더 실증적으로 살펴봐야 하겠지만, 우리가 흔히 '직장인'이라고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정규직 화이트컬러의 지위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높다. 물론 조세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증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이들은 아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들에 대한 증세 없이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부자증세를 기본으로 한 조세정의를 바로잡는 것과, 좀 더 보편적인 증세를 통해 공공의 영역을 넓히는 일은 함께 갈 수 있고 함께 가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보면 이번 박근혜 정부의 우회적 증세는 그 과정에서의 기만성에 대한 비판을 별도로하면, 부자증세를 우선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비판할 지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중산층이라고 잘못 인식되는) 상류층에 대한 증세의 성격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잘못되지 않은 지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어느 한 측면에 대한 여론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면,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지식인'의 책무에 속한다. 그들은 원래 시도 때도 없이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욕먹는게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번 상황을 놓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 분노의 근간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해 당신들 대부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유하며, 따라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부담을 하셔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나를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라는) 좁은 도그마에 갇혀 대중들 정서도 읽지 못하는 관념파"라고 욕한다면 기꺼이 욕먹겠다. 하지만 의외로 그 정서를 가진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손익의 관점에서 그 정서를 갖는 것이 타당한 - '대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이번 연말정산으로 인한 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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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보육 vs. 무상급식 논란 쟁점정리

Posted at 2014. 11. 25. 15:19// Posted in 시사

1) 문제의 발생원인?

- 2011년 누리과정 확대 결정 시 전 정부에서 영유아보육법 및 유아교육법 시행령에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지원한다는 조항을 삽입함. 원래 보육관련 예산은 유치원(교육부)과 어린이집(복지부)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양자에 대한 예산을 모두 교육청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바뀐 것임.

- 당시에도 기재부와 교육부 간 협의가 있었을 뿐 지방교육청과 협의하지 않음.

- 이러면 어떻게 하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앞으로 세수 확대로 인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내국세의 20.27% + 교육세 전액)이 매조 3조원 가량 늘어날 것이므로 예산 문제는 없다고 함(교육부).

- 그러나 실제로 교부금은 2013년에 1.6조 늘었을 뿐, 2014년에는 거의 제자리, 2015년에는 1.35조 감소

- 누리과정은 2012년 5세를 시작으로 2013년부터 3~5세로 확대되었으며, 시도교육청의 예산부담은 2012년 5세, 2014년 4~5세, 2015년 3~5세 전액으로 점차 확대됨. 누리과정 전체 예산은 연간 4조원 정도이며, 이 중 원래 교육청 부담이 아니었던 어린이집이 2.1조

- 2015년 교육재정 교부금은 39조. 따라서 누리과정 전체 예산이 10%를 조금 넘으며, 어린이집이 5%를 넘는 상황


2) 정부의 입장?

- 정부는 법(정확하게는 시행령)에 누리과정 예산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조달하게 되어 있으며, 교부금이 지급되고 있으니 문제 없다는 입장. 그러면서 엉뚱하게 (이 건과 관계가 없는) 무상급식 예산은 법적 근거가 없으니 이걸로 메우라는 식임.

- 사실 시행령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교부금에서 조달하게 한 것 자체를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음. 법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라고 명기한 것은 시행령이 위반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음.

- 시행령을 있는데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위의 발생원인에서 본 것처럼, 문제의 본질은 그동안 교육청의 사업이 아니었던(그리고 엄밀히 말해 어린이집 같은 경우 교육청의 사업일 근거가 없는) 것을 교육청으로 넘기면서 교육청 예산 증액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원인임. 정부의 '교부금이 늘어난다'는 예상이 전혀 틀렸음이 밝혀졌으면,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미 법(시행령)에 박혀 있으니 배째라는 입장임.


3) 대통령 공약?

-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집에 "3~5세 누리과정 지원비용 증액"을 공약으로 명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독립성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히 중앙정부에서 지원을 증액하겠다는 입장으로 봐야 함. 그러나 증액하지 않음.

- 2013년 5월 공약가계부를 제시할 때도 "누리과정에 6조5000억 원을 투입해 영유아 보육료 지원대상을 2017년까지 138만 명으로 확대한다"고 중앙정부의 증액을 약속

- 지금은 대통령은 그냥 조용히 계시는 중.


4) 무상보육 vs. 무상급식?

-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다른 정책. 이 둘을 연계할 이유가 없음. 이것을 연계하는 것은 억지임.

- 어느 정책이 더 필요하고 중요한가는 가치판단 문제라고 보고 논의에서 배제한다면, 교육청 사업과 더 관련있는 것은 무상급식. 적어도 어린이집의 누리과정 지원보다는 무상급식이 분명히 교육청 사업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

- 무상보육은 법적 근거가 있고 급식은 없다는데 급식도 지방조례 등으로 규정되어 있음. 이것을 근거없다고 하는 것은 지방자치제에 대한 현 정부의 낙후된 인식의 반영임.

- 두 정책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필요한 작업일 수 있음. 그러나 이런 논의없이 중앙정부 사업이자 대통령 공약을 지방교육청으로 떠넘기고 너네 정책의 예산을 빼서 여기에 써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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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칼럼'으로 실린 글.

이 글을 낸 바로 그 날, 예상대로 부양의무제를 약간 완화하는 수준에서 여야간 합의가 이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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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해 5월 제출된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안을 기초로 국회에서 지난 11월 10일에 이어 17일에도 법안심사소위가 열린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이미 정부안이 제2, 제3의 세 모녀 죽음을 막을 수 없는 반쪽짜리 방안임을 지적한 바 있다. 정작 가장 본질적이고 시급한 문제인 수급자 선정기준을 내버려두고 급여체계 개편에만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박근혜표 기초생활보장법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아직도 기회가 남아 있다. 다행히 법안심사소위에서 부양의무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어 있다. 비록 정부안이 급여체계 개편 위주의 내용일지라도 부양의무제만이라도 제대로 개선된다면 큰 진전이다. 많은 시민단체가 지적해온 것처럼 부양의무제는 빈곤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턱없이 미흡한 부양의무제 완화 방안


정부가 제시한 법안은 개별급여로의 급여체계 개편 외에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현재 부양의무제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본인가구와 수급자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합산한 값의 130%(4인 가구 기준 290만 원)를 넘으면 '부양의무 있음'으로 판정하여 수급권을 박탈한다(취약계층은 185%. 4인 가구 기준 413만 원). 또한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4인 가구 기준 212만 원)가 넘는 소득이 있을 경우는 '부양의무 미약'으로 판정하여 일정액의 부양비를 수급자의 소득으로 평가한다(이를 간주 부양비라고 하는데, 부양의무자가 아들이라면 기준소득 초과액의 30%를 간주부양비로 인정한다. 예를 들어, 아들의 소득이 312만 원이라면 기준금액 212만 원을 넘는 100만원의 30%인 30만 원을 -실제 부양이 이루어지는지와 무관하게- 수급자가 부양받는 것으로 간주한다). 


정부의 개정안은 이 소득 기준을 높임으로써 부양의무제를 완화한다. '부양의무 있음'의 기준은 중위소득에 수급자 가구 최저생계비를 더한 금액으로 하고(4인 가구 464만 원), '부양의무 미약'의 기준은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85%(4인 가구 302만 원)로 조정한다. 이 경우 연간 9100억 원의 예산이 추가 투입되어 약 12만 명을 추가 보호할 수 있다. 여기에 지난 10일에 있었던 법안심사 소위에서는 야당의 추가적 완화 요구에 정부는 200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여 3만 명 정도를 더 보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의 개정안은 충분한 것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빈곤함에도 사각지대에 방치된 비수급 빈곤층의 규모는 400만 명이다. 이 중 부양의무제로 인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임에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만 117만 명이다. 정부안은 이들 중 최대 15만 명을 추가로 보호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법 개정 이후에도 100만 명이 넘는 빈곤층이 부양의무제로 인해 사각지대에 남게 된다. 이 정도의 기준 완화로 부양의무제로 인한 사각지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정부 추계에 이미 드러나 있다.


부양의무제가 만들어낸 빈곤의 현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보건복지개발원에서 받은 '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특성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초수급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4815가구 중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높은 가구는 0.89%에 불과했다. 탈락 이유는 대부분 부양의무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들 탈락 가구 부양의무자의 46%인 2212가구는 자신의 소득도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엄격한 부양의무 기준으로 인해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정받았지만, 사실상 부양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들 비수급 빈곤층의 삶은 어떠한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3일 발표한 실태 조사 결과에 드러난 이들의 삶은 참담하다. 우선 비수급 빈곤층의 월평균 소득은 약 51만 9000원으로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나 수급자 생계급여보다 낮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한다는 사람이 37%(수급자 22%), 이가 아파도 치과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47%(수급자 31%),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른 사람이 20%(수급자 11%), 돈이 없어 난방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37%(수급자 25%)다. 비수급 빈곤층의 삶은 수급 빈곤층의 삶보다 더 열악하다.


비수급 빈곤층 중 20%가 최근 1년간 경제적 문제로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국민(9%)의 두 배가 넘는다.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부양의무제로 인해 수급권을 박탈당하거나 자녀에게 부담이 될 것을 걱정해 목숨을 끊는 사례는 매년 발생한다. 부양의무제가 빈곤한 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할 뿐 아니라 목숨까지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양의무제가 만들어낸 부양의 사각지대


부양의무제는 제도 규정상으로는 부양의무를 가진 사람이 있고(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그 사람이 부양능력이 있으며, 실제 부양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적용된다. 이론적으로는 실제로 부양이 이루어질 때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부양을 하지 않음에도 급여를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박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의신청 절차가 있지만 가족 간의 반목을 불사해야 할 뿐 아니라 소명해서 입증할 책임도 수급자에게 있다. 이의신청 기간 동안에는 여전히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수급자 선정 과정의 행정 절차의 문제도 크다. 수급 신청 단계에서부터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 자료 같은 많은 공적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는 노인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관계가 단절됐거나 실질적으로 부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의 경우에는 소명서나 관계단절 사유서 같은 자료까지 제출해야 한다. 현장조사가 부실하게 이루어지거나 수급자에게 무리한 증명을 요구하는 일도 빈발한다. 일선 사회복지공무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이라는 복지 전달체계 문제도 있고, 부정수급 색출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문제도 크다. 최근 이슈화된 지방재정 부족 문제는 이와 같은 과정에서 부당하게 탈락하는 경우가 나올 개연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부양의무제는 '실질적 부양'이 아니라 '잠재적 부양 가능성'을 기준으로 적용된다는 비판을 받는다. 수급권자가 부양받을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고 이를 수급자 선정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적 부양이 공적 부양에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실제로는 사적 부양도 공적 부양도 받지 못하는 빈곤의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정부가 제시한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로는 해결할 수 없다. 


부양의무제는 정말 폐지할 수 없는가?


이런 와중에도 정부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큰 이유는 예산 문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117만 명을 추가로 보호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연 7조 원에 이른다. 2014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이 약 8.8조 원이니까 상당한 금액이기는 하다(중앙정부 예산 기준).


하지만 이 금액은 우리 나라 GDP의 1%를 조금 넘는 정도다.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며, 이 금액 때문에 빈곤층의 헌법적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다운 생활이 헌법이 규정한 권리이고, 우리나라의 낮은 조세부담률을 감안하면 적극적 증세를 통해서 보장해야 할 일이다.


또 다른 사유로 제시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다. 부양의무제가 없으면 비싼 주택을 가진 사람이 이를 자식에게 상속하고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는 것 같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는 행정적 조치를 통한 관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법은 유사한 사례를 막기 위해 2011년 7월 이후 증여 또는 처분한 재산을 일정 기준에 따라 신청자의 재산에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적절한 조치인지를 떠나서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자산조사제도는 어느 나라에서나 낙인(stigma)으로 인해 수급대상자에 비해 실제 수급 받는 사람이 더 적다. 이런 상황에서 편법까지 써가며 부정수급을 하는 경우가 100만 명의 비수급 빈곤층을 양산하는 문제보다 더 크게 고려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도덕적 해이의 문제는 보완책을 찾아야 할 일이지, 부양의무제를 존속시킬 근거가 될 수 없다.


사적 부양 우선 원칙?


부양의무제의 존치 필요성에 대한 또 다른 근거가 민법상 부양의무다. 민법에 사적 부양의 의무가 규정되어 있으니, 기초생활보장법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사적 부양 우선원칙은 수급자 선정기준이 아니라도 급여기준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민법상 부양의무는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1차적 부양의무는 '생활 유지를 위한 부양'으로 부부사이와 친자, 특히 부모와 미성년 자녀 사이의 부양의무를 말한다. 이는 그야말로 빵 한쪽도 나누어 먹어야 하는 관계다. 2차적 부양의무는 '생활 부조를 위한 부양'이다. 이는 자기 생활에 여유가 있을 경우 친족의 최소한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두 가지 부양의무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소득 및 급여 기준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보장의 단위가 가구이다. 배우자나 생계를 같이 하는 30세 미만 미혼자녀의 경우, 동거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가구로 취급한다. 따라서 1차적 부양의무는 이와 같은 기준만으로도 대부분이 포괄된다. 서구의 경우 개인을 기준으로 소득을 파악하여 공공부조를 주는 국가가 많음을 고려하면, 가구단위 소득산정은 이미 민법의 '사적 부양 우선원칙'을 내재하고 있다.


여기에 소득평가액 산정 시 정기적으로 지원받는 사적 이전소득을 수급자의 소득으로 판정한다. 한 가구로 계산되지 않은 가족이나 친척간의 사적 부양의 경우 수급자의 소득으로 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부양을 받는 경우 수급자의 소득이 높아지고, 급여액이 줄거나 수급에서 탈락한다. 부양의무제가 없어도 실제로 부양이 이루어진 경우는 이미 제도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급자 선정기준에 부양의무제를 다시 두는 것은 “실질적으로 부양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부양의 가능성이 있다면 국가가 책임지지 않겠다”라는 선언과 같다.


사실 사적 부양 우선의 원칙은 그 자체로도 논란이 많다. 가족 간에 사적인 의무가 반드시 국가의 공적인 책임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부양의식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대부분 과거 대비 사적인 부양 책임에 인식이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많은 원칙을 인정하더라도 부양의무제가 수급자 선정기준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구단위 소득 산정 방식과 사적 이전소득을 수급자의 소득으로 보는 것에 이미 이 원칙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제, 폐지가 답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논의는 부양의무제를 '어느 수준까지 완화할 것인가'를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투입할 재원이 9100억 원이다, 2000억 원이다 예산을 놓고 논란이다. 하지만 부양의무제 완화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설사 소득기준이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부양의무로 인한 사각지대의 대부분은 계속될 것이다. 실제 부양받지 못하는 사람을 부양받는 것으로 강변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기 위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부양받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빈곤한 이들의 상처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제는 폐지가 유일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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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공적연금도 부족한데 뭔 사적연금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미 존재하는 퇴직연금이니만큼 이를 제대로 운영되게 하여 노후보장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독일이나 스웨덴 같이 발전된 연금제도를 가진 국가에서도 기업연금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고, 특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많이 낮아진 우리의 상황에서 퇴직연금을 보완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다.


기사링크 : 정부,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1년 미만 비정규직도 퇴직연금 가능


문제는 늘 그렇듯이 정부의 조치가 적절한가에 있다. 언론에 보도된 바를 토대로 정부이 '사적 연금 활성화 대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 첫째, 2016년 300인 이상, 2017년 100∼299인, 2018년 30∼99인, 2019년 10∼29인, 2022년 1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

▶ 둘째, 근속기간 1년이 안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2016년부터 퇴직연금 대상에 포함 

▶ 셋째, 퇴직연금의 자산운용 규제 완화 : 현재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제도(IRP)의 위험자산 보유 한도상승(40% --> 70%) 및 개별 위험자산에 대한 보유 한도 폐지


우선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의 퇴직금 제도가 일시금의 한계나 빈번한 중간정산 등으로 실질적인 노후보장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은 퇴직연금으로의 전환이 의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시금에 대한 선호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노후보장 수단으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연금화가 필수적이고, 이에 따라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에 대한 퇴직연금 적용 또한 긍정적이다. 그 동안 많은 사업장에서 퇴직(연)금 적립 의무를 피하고자 11개월이 지나면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 조치는 이와 같은 편법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 조치는 앞서 설명한 긍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금번 정부안의 진짜 목적인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위험자산 운용 확대를 합법화함으로써 금융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것이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와 함께 이루어짐으로써 금융사들은 기금을 자유롭게 운영하며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얻게 되었고, 노동자들은 퇴직연금 가입에도 불구하고 더 불안정한 노후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노후보장을 위한 자금 운용의 핵심은 '안정성'에 있다. 물론 수익성 추구를 통해 자금이 늘어난다면 좋겠지만, 지나친 수익성의 추구는 반대로 노후보장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많은 나라에서 퇴직연금의 자산운용에 대해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하고 있는 이유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이 잘 발달한 스위스의 경우 자금운용사에서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하도록 함으로써 자산운용에 따른 불안정성을 노동자가 아닌 금융사가 감당하도록 하고 있으며, 영국은 사적연금의 확대 결과 노후소득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경험을 한 후 DB형(Defined Contribution: 기여가 아닌 급여가 고정되어 있는 연금) 기업연금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변경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의 경험은 수익률을 추구하여 불확실한 금융시장에 노후보장을 맡기는 방식이 갖는 위험성을 제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정부의 활성화 방안은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표면에 내새운 채 실제로는 금융자본의 먹거리를 늘리는 방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진정으로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공적연금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퇴직연금을 포함한 사적연금은 적정한 규제를 통해 안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험자산 투자에 대한 제한, 수수료율에 대한 제한, 스위스와 같은 일정한 수익률 보장, 투명성과 관련된 규제 등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사에게 더 큰 책임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노후 소득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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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사람

Posted at 2014. 8. 26. 16:30// Posted in 시사

이번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시각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기초연금의 중복지급이 안된다고 보는 시각을 보면 일정한 논리적 공통성이 보인다. 그것은 어떤 제도나 체계의 논리적 타상성 및 일관성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에 집중한 나머지 그 뒤에 있는 사람과 삶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는 부분이다.

(물론, 특히 세월호 특별법의 경우 -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특히 수사권의 경우 - 는 제도의 논리상으로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논의이므로 이 부분은 접고 이야기한다.)


제도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제도의 논리적 일관성과 타당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게 한 번 두 번 예외를 두고 무너지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제도는 그 자체를 강화하게 되는 힘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제도 자체의 논리는 그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기초연금의 목적은 빈곤한 사람(혹은 빈곤해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며, 법체계의 목적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모두 사람들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게 보면 좀 더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삶이 아닐까. 제도의 논리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전제 하에서만 유의미하다.


물론 민주주의의 많은 부분은 과정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어떤 과정은 목적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민주적인 과정이 지켜지는 한에서 제도의 논리적 정합성은 사람의 삶에 우선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개인의 삶의 질적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사 누스바움의 메세지는, 국가와 제도를 다루는 사람들이 그 자체에 함몰된 나머지 사람들의 삶의 중요성을 놓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한 것이 아닐까.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배운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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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정치권에 복지열풍이 거세던 지난 2009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의 최대의 정치적 자산인 ‘아버지’까지 동원해 복지바람에 올라탔다. 그 기세를 몰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시하며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보장’,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과 같은 핵심적인 복지공약은 차례차례 후퇴했다.


박근혜대통령의 복지개혁 마지막 카드: 기초생활보장제


아직 박근혜대통령이 취임하고 손대지 않은 복지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 사회의 최후 안전망으로 지난 2000년 도입 이후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너무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급여수준이 계속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지난 봄 ‘송파구 세 모녀 죽음’을 계기로 제도 개선에 대한 여론도 높아졌다. 정부도 여당의원을 동원한 의원입법의 형태로나마 개정안을 제시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기초법 개정의 방향은 ‘맞춤형 개별급여’로 요약된다. 지난 13일 국회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가 밝힌 내용(「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에 따르면 정부 여당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한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정부법 개정안, ‘맞춤형 개별급여’ 도입에 초점


첫째, 현재 최저생계비를 중심으로 일괄적으로 결정되는 수급선정기준을 급여별로 다층화하여 탈수급 유인을 제고한다. 둘째, 급여별 특성 및 상대적 빈곤 관점을 반영하여 보장성을 적정화한다. 셋째,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여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이와 같은 원칙에 기초한 각 급여별 개정방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급여별 수급선정기준이 제시됐다. 생계급여는 종전의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 30% 이하라는 상대빈곤을 기준으로 지급한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이하,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3% 이하의 가구에 대해 실제 임차료 또는 주택수선유지비를 지급한다. 교육급여는 중위소득 50% 이하의 대상자들에게 제공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서는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를 제시하였다. 현재의 부양의무자제도는 수급자 가구에 대해 부양의무를 가진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양의무 미약’ 또는 ‘부양의무 있음’으로 구분되어 적용된다.


(1) 부양능력 미약 :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이 해당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넘을 경우

(2) 부양능력 있음 :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해당가구 최저생계비와 수급자가구 최저생계비를 합산한 것의 130%를 넘을 경우 부양능력 있음(단, 취약가구는 185% 기준)


부양능력 미약으로 판정된 경우 실제 부양여부와 상관없이 수급자에게 일정액의 부양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간주부양비’라고 한다. 간주부양비는 부양의무자 실제소득에서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뺀 금액에 30%의 부양율을 곱하여 산정한다(혼인한 딸이나 취약계층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15%). 이 금액의 수준과 수급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생계급여 급액이 차감되거나 수급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부양능력 있음으로 판정된 경우는 수급 자격이 박탈된다.


정부의 개정안은 이와 같은 기준을 완화하여 부양능력 미약은 부양가구 최저생계비의 185%로, 부양능력 있음은 중위소득과 수급자 가구 최저생계비를 더한 수준으로 상향조정하여 완화하겠다는 것이다(그림참조).



        출처 : 보건복지부, 2014,「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


여야 의견 상당히 근접한 듯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의원별로 상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나 공통 요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빈곤선 기준을 법안에 명기하여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하지 못하도록 한다. 째,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추가적 완화가 필요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추가적 완화 내용으로는 부양능력 미약을 없애는 것과 1촌의 배우자(즉, 며느리와 사위)에 대한 부양의무 완화, 노인 등 취약계층의 부양의무 면제 등이 거론된다. 그 밖에는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심의, 의결기구인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역할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현재 여야간에는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 여부와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를 수용할 경우, 야당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입장이 정부 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핵심 문제인 수급선정기준 논의가 빠져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의 개정안과 여야 간의 논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정부의 개편안은 수급선정기준의 개선이 아닌 통합급여를 개별급여로 전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송파구 세 모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리고 수많은 빈곤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합급여 체계가 아닌 수급선정기준 문제다.


수급선정기준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현재 기초법은 수급 대상을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최저생계비의 세 가지가 수급자 선정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들 각각은 모두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의 소득인정액이 실제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격을얻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무려 117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부양의무자의 대부분은 소득이나 재산이 기준보다 소폭 높은 경우로 실제 부양능력이 높지 않은데도 자신 때문에 부모나 자식이 수급권을 얻지 못하게 하는 원인제공자로 내몰리는 꼴이다. 또한 간주부양비나 자의적인 부양관계 판단으로 인한 수급 탈락자의 비중도 적지 않다.


둘째,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으로 구성된다. 소득평가액은 실제소득을 기준으로 하지만, 추정소득 규정을 두어 실제 소득이 없는 경우라도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소득이 있다고 간주한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 재산과 같이 사실상 현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없는 소득을 이유로 급여가 줄어들거나 수급 대상에서 탈락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관련기사 “방한칸 있다고 수급자 될 수 없다?”)


셋째, 최저생계비의 경우 그 수준이 낮아 실제로 빈곤층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거주지역이나 가족구성 등 소비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최저생계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제도 도입 당시인 1999년 도시근로자 가구 중위소득의 45.5% 수준에서 지난해 40% 수준으로 계속해서 감소되어 왔다.


이 중에서 좀 더 급박한 문제를 꼽으라면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액의 문제다.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기준으로 인해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비수급 빈곤층’이 되고 있다. 이들은 수급자만큼, 혹은 그 이상 빈곤함에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 계속 방치될 우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세 가지 제도 개편 방향, 즉 ‘급여별 수급 기준 다층화’,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그리고 ‘부양의무 기준 완화’가 수급선정기준 개선과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우선 급여별 수급기준 다층화, 즉 개별급여로의 전환은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의료급여나 교육급여에 대해 수급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일부 급여를 차상위 계층으로 확대하지만, 부양의무자를 이유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여전히 배제한다.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또한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급여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현재 제도에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 내로 포괄하는 조치는 아니다.


정부의 개편 방향 중 유일하게 수급선정기준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다. 이는 비수급 빈곤층의 수급권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장한다는 점에서 금번 제도 개편 안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계한 것처럼 현재 개편안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12만명에 불과하다. 이는 부양의무자 등의 이유로 수급권을 박탈당한 117만명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여전히 90%의 비수급 빈곤층은 사각지대에 남는다.


뿐만 아니라 정부 안은 부양의무자의 기준 완화 후에도 간주부양비를 존속시키고 있으며, 소득환산이나 추정소득의 문제는 아예 다루고 있지 않다. 특히 소득인정액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개편안과 여야간 논의는 수급선정기준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논의이다. 물론 통합급여의 개별급여화나 상대빈곤선 논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급성에 있어서 제도 밖에 방치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정부의 제도 개편안은 부분적으로 빈곤층의 생활을 개선한다고 해도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양의무자 폐지돼야


세 모녀 사건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빈곤한 사람들이 매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 아들을 가진 아버지도, 2011년에 수급자에서 탈락하고 객사한 할머니도, 2012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머니도 모두 빈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서조차 밀려난 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거듭되는 비극의 중심에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밀려난 비수급 빈곤층이 있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편은 수급선정기준의 개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 논의의 초점을 부양의무자제도에 두어야 한다. 가족에게 생계 책임을 묻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게 옳다. 정부의 개편안이나 야당이 제시하고 있는 완화 방안은 현상의 일부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는 못한다. 부양의무자가 수급자 선정 기준이 존재하는 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양의무기준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보다는 부양의무기준을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논의해야 한다.


소득인정액에 있어서는 실제 있지도 않은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추정소득의 폐지가 필요하다. 추정소득은 수급자의 실제 소득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도 수급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소득이 있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일정 금액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제도다. 이는 실제 없는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문제를 낳는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의 재산은 상당한 고가가 아닌 한 소득환산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소득이 될 수 있는 것을 소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가난한 사람의 복지로 제자리 찾아가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본 목적은 빈곤한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며, 경제적 효율성의 추구는 그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부정수급 운운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뿌리 자체를 흔들곤 한다. 앞에서 살펴본, 부양의무자제, 추정소득, 재산의 소득환산액 모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관리하려는 정책 방향이 낳은 독소조항들이다.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이러한 규정들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정리하면,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논의는 핵심 주제 선정이 부적절하다. 맞춤형 급여체계, 빈곤선 기준(상대 빈곤선)도 개선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지만, 수급선정기준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논의는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일이다. 수급선정기준을 개혁의 핵심 주제로 삼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비수급 빈곤층의 복지 권리를 다루어야 한다.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 논의에 앞서 수급선정기준을 논의 테이블 중심에 올리고 수급 당사자, 시민들과 국민적 토론을 벌이자. 그래야 또 다른 세모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본 글은 프레시안에 내만복 칼럼으로 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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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종대 이사장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 회의 자료를 자신의 블로그에 전격 공개했다. 부과체계 개선안과 모의 운영 결과를 담은 내용이다. 언론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변화가 목전에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건보공단, 복지부 사이 심상치 않은 긴장


아직 논의 중인 민감한 회의 자료를 공개하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곧바로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이 이를 부정하고, 뒤이어 김 이사장이 원래의 글을 삭제했다. 해프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둘러싼 물밑 논의가 심상치 않음을 시사한다. 


실제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김종대 이사장이 공개한 개선안이 기존의 부과체계를 크게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고, 그의 지위를 고려하면 나름대로 무게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정부도 하반기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번 기회에 부과체계 개편 방향을 짚고 넘어가자.


사회보험에서 부과체계는 보험료를 어떻게 걷느냐는 규칙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사회보험의 보험료 부과체계는 가입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의 보험료를 걷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사회보험을 운영한 오랜 역사 속에서 소득에 정률의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형평성 있고 안정적인 재정 확보 방안이라고 여겨 왔기 때문이다.


형평성 문제 심각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그러나 한국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무척 복잡하다. 우선 가입자를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구분한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다른 사회보험과 마찬가지로 임금소득에 일정 비율(2014년 5.99%)을 보험료로 부과한다. 다만, 임금이 아닌 소득(금융 소득, 사업 소득, 임대 소득 등)의 합이 연간 7200만 원을 넘는 경우에는 이 금액에도 같은 비율의 보험료를 부과한다(이와 같은 경우는 매우 적어 대부분 직장가입자는 소득에 정률의 보험료를 낸다고 볼 수 있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소득뿐 아니라 재산과 자동차에 각각 등급을 설정하여 등급별 점수에 일정 금액을 곱하여 보험료를 부과한다. 지역가입자의 소득은 직장가입자와 달리 모든 소득을 합산하여 산정하며, 재산에는 건물, 토지, 선박, 항공기 등뿐 아니라 전·월세 보증금도 포함된다. 특히 지역가입자의 신고 소득이 연 500만 원 이하면 소득 등급이 아니라 '생활 수준 및 경제 활동 점수'로 불리는 일종의 추정 소득을 기준으로 점수를 산정한다. 이 추정 소득은 신고된 소득 외에 재산, 자동차, 가족 수, 연령 및 성별까지 고려하는데, 이렇다 보니 연 소득 500만 원 이하의 지역가입자의 경우 재산이나 자동차 항목은 보험료 산정 시 두 번 계산되는 셈이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중요한 차이는 보험료를 부과하는 단위에서도 존재한다. 직장가입자는 개인에게 보험료가 부과되며, 가족들은 피부양자로서 추가적인 보험료 부담 없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지역가입자는 소득, 재산 및 자동차 산정 시 가구단위의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모든 가족이 보험료 부과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국민건강보험료의 부과체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가장 큰 비판은 동일한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어떤 직역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보험료가 상당히 큰 폭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5억 원짜리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직장가입자인 경우에는 집 소유 여부가 보험료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지역가입자인 경우에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소득은 없이 자산만 보유한 노인의 경우 자녀가 직장을 다닌다면, 피부양자로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자녀가 없는 경우에는 지역가입자로 자산에 기초한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은퇴 시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바뀐 결과, 소득이 줄었는데 보험료는 늘어나는 문제는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 외에도, 유동성이 아닌 재산이나 자동차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의 문제나 제도가 너무 복잡하여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늘 지적됐다.


'소득 중심'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맞다!


김종대 이사장이 잠시 공개했던 개편안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므로 이를 정부 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대략 언론 보도를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가 개편안의 핵심이다.


* 직장 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 소득을 단일 기준으로 일정비율(5.79%)의 보험료를 부과 

* '소득'의 기준은 가입자 구분 없이 근로소득과 근로 외 소득을 모두 포함한 '종합소득' 기준 

* 최저보험료로 현행 직장가입자 최저보험료 수준(월 8240원) 설정


또한 이 방안은 '재정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는데, 이는 곧 보험료 부과체계를 이와 같이 바꿀 경우에도 전체 보험 재정은 종전과 같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개편안은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대부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실 보험료 부과 기준을 단일하게 소득 중심으로 하고 모든 가입자에게 정률의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은 많은 전문가나 보건의료단체에서 지지해 온 방식이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방안을 취할 경우 직역에 따른 부과 기준 차이로 발생하는 형평성 문제는 거의 없어지며, 재산이나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 부과 및 제도의 복잡성 문제도 대부분 해결된다. 피부양자에 관한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이와 같이 제도를 변경할 경우에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지기에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열린다고 볼 수 있다.


직장인만 봉이냐고요? 사장도 직장가입자 


이와 같이 보험료 체계가 개편될 경우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 구조는 상당 부분 달라진다. 현재 지역가입자의 대부분이 연간 소득 500만 원 이하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상당 부분 감소하며, 특히 소득이 파악되지 않는 약 55%의 지역가입자는 기본보험료만 내게 된다. 반면에 직장가입자는 주식에 대한 배당이나 금융 자산에 대한 이자 등이 종전과 달리 보험료 부과 대상이 되면서 보험료가 상당 부분 상승한다. 언뜻 보면 '또 직장인만 유리지갑이고 봉이냐?'는 반발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정의를 좀 더 살펴본다면 이는 달리 볼 여지가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상 직장가입자는 '모든 사업장의 근로자 및 사용자와 공무원 및 교직원'으로 정의된다. 흔히 인식하는 것처럼 임금 노동자만 직장가입자이고 사업주, 고소득 전문직, 자영자 등이 지역가입자인 것이 아니라 임금 노동자, 사업주, 고소득 전문직은 대부분 직장가입자인 것이다. 특히 사업주나 고소득 전문직은 직장가입자가 됨으로써 소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임금 외 수입에 대해 보험료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지역가입자는 한 명의 직원도 두지 않는 영세자영자와 함께 농어민이나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렇게 구분하고 보면 지역가입자의 대부분이 소득이 없는 것이 단지 소득 파악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구성을 고려하면, '소득이 없거나 적지만 주거용 주택이나 자동차를 보유한' 지역가입자로부터 '임금 외에도 다른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로 보험료 부담이 옮겨지는 것이 결코 사회정의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에 보도된 방안이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가 주의 깊게 논의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과제 1: '건강보험 하나로'로 건보 재정 늘려라


첫째, 건강보장의 재정 문제다. 김 이사장이 공개했던 안에서는 보험료 부과체계를 변경해도, 보험 재정은 현재 수준에서 유지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좀 더 구체적인 제도의 구성 및 운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지역가입자 보험료의 절반 이상이 재산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임을 고려한다면, 직장가입자의 소득 범위를 확대 적용해도 부과체계 개선이 보험 재정에 어려움을 가져올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 2011년에는 '건강보험공단쇄신위원회'에서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 개편과 함께 소비세 활용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사실 부과체계의 변화뿐 아니라 인구구조의 변화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라는 과제를 생각한다면, 보험 재정 규모는 부과체계의 형평성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 일부 복지시민단체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보장성을 더 확대하는 '건강보험 하나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세는 기존의 건강보험료보다도 더욱 역진적인 재원이기에 건강 보장의 형평성을 악화시킬 것이다. 이와 달리 건강보험 부과체계의 형평성 개선과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연계된다면 국민의 의료비 부담 감소, 사회적 연대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과제 2: 종합소득 과세 기반 확충하라


둘째, 사회적 수용성의 문제다. 이미 공개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안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긍정적인 것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것도 있었다. 부정적인 언론이 내세운 가장 핵심적인 논리가 '공식적인 소득이 없는 자산가'의 문제였다. 월 100만 원을 벌어 빠듯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보험료를 내지만, 수억 원의 재산을 가진 자산가는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특히 한국의 연금제도 미성숙으로 고령자 대부분이 소득은 없지만, 그중 일부는 부동산을 위시한 상당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근본적으로 가로막을 문제라 볼 수는 없다. 부과체계 개편의 방향이 옳다면 이와 같은 문제들은 오히려 정책적 보완이 필요한 과제로 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안은 재산에 의한 소득을 철저히 파악하여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즉, 임금 소득보다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임대 소득, 사업 소득, 금융 소득 등을 지금보다 철저히 파악하여 보험료를 부과하면, 고액 자산가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 또한 꼭 보험료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양도소득세나 상속세와 같이 부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철저한 과세,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재산세의 강화 등을 통해 공공 재정 세입에서 고액 자산가에 대한 형평성 문제는 개선될 수 있다. 제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한다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과 함께 적어도 임대, 사업, 금융 소득에 대한 소득 파악을 강화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이런 조치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재산에 의한 소득 파악과 과세 진행 속도에 맞추어 과도적으로 일정 규모 자산을 가진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가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건강보험료를 사실상 내지 않는면 이는 전체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작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경과적 조치를 둘 경우에도 '소득 중심'이라는 원칙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과제 3: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마련하라


마지막으로 건강보험료로 가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저소득층의 문제다. 지난 2011년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약 3.35%는 5000원 미만, 2.19%는 1만 원 미만의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보면 이번 개편안처럼 8240원의 기본 보험료가 부과된다면, 약 5%의 가구는 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를 제외하고 보면,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빈곤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개편은 빈곤한 가구에 대한 보험료 부담 경감, 면제 정책과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열어 놓고 전면 논의하자


김종대 이사장이 공개한 부과체계 개편안은 그 이후 문형표 장관의 비판, 새정치연합 최동익 의원을 비롯한 국회 쪽 비판, 그리고 언론에서 이루어진 몇 차례 심층 취재 등을 거친 후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공단이 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기관이 아니라며, 이사장이 블로그를 통해 사실상 공론화 작업을 벌인 것에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였다.


가입자의 처지에서 보면 공론화 형식은 본질적인 사안이 아니다. 건강보험료 형평성이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과제라면 논의를 활짝 열어야 한다. 그게 보건복지부가 할 일이다. '소득 중심 부과체계'로의 이행 속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 논의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 프레시안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으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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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

Posted at 2014. 6. 17. 12:26// Posted in 시사

정부의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소득중심 일원화)을 보고 든 생각 정리


관련기사 참조


1) 원칙적으로 찬성

- 지역가입자의 재산, 자동차 보험료는 원래 역진적이고 문제가 있는 방식

- 직장가입자의 부과대상 소득범위 확대는 대부분 고소득층이 임금 외 소득이 많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

- 정부가 종전에 검토하던 소비세로 재정확보 방안이 (일단은) 사라진 것도 긍정적. 소비세는(사치세가 아닌 한)
  건보료보다 더 역진적.

- 방안이 건강보험 재정부담을 지역가입자에서 직장가입자로 옮아가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비판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렇게 보기보다는 저소득에서 고소득으로 이동한 것으로 봐야 함. 부담이 증가한 직장가입자
  는 대부분 많은 금융/임대 소득을 가진 고소득층이며, 지역가입자의 부담이 감소한 부분은 재산, 자동차, 성별,
  연령 등 역진적 성격을 가진 부분이기 때문.

- 물론 개별 사례별로는 소득이 없고 재산이 (엄청) 많은 사람이 돈을 안내게 되는 부작용도 있음. 그러나 이는 어
  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임대소득이나 금융소득에 철저하게 부과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커버 가능.


 2) 우려되는 부분

- 최저보험료 8,240원. 기존 지역가입자 중 최하 수준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국기초 수급자를 제외하면 가장 가난
  한 사람들) 5% 가량은 금번 개편으로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생각됨. 이들에 대해서는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직장가입자의 부담 증가를 빌미로 경제관련 부처에서는 소비세 재원마련 방안을 법안 확정 과정에서 슬그머니
  다시 꺼내지는 않을까. 이건 지켜봐야 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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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주제 중 하나가 국민건강보험료 개편이다. 정부는 작년에 기획을 꾸리고 개편안을 마련 중이다. 국민 다수의 보험료가 변동될 수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클 것이다.

 

얼마 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건강보험료가 고소득 직장가입자 건강보험료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는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언뜻 대기업 총수의 도덕적 해이에 관한 기사로 들리지만, 실은 현재의 건강보험 부과 체계가 지닌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국민건강보험료가 적은 이유

 

이건희 회장은 국민건강보험 제도상 지역가입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지역가입자 최고 보험료인 약 219만 원(2013년 기준)을 납부한다. 그러나 고소득 직장가입자의 경우는 근로 소득에 대한 최고 보험료 230만 원과 함께 근로 외 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인 경우는 추가로 최고 230만 원을 부담하여 총 460만 원을 납부하게 된다.

 

사실 이 경우의 고소득 직장가입자는 근로 소득, 즉 월급과 별도로 월 7810만 원을 넘는 근로 외 소득이 있는 사람을 가정한 것으로 일반적 의미의 임금 노동자는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다른 사람도 아닌 이건희 회장보다 두 배의 보험료를 내는 직장가입자가 있다는 것에 시민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지역가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역가입자에게 불리한 요소가 있다는 민원 또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직장가입자가 은퇴할 경우를 보자. 은퇴 시 직장가입자는 소득이 없어지며,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자격이 바뀐다. 그런데 이 때 소득 상실에도 불구하고 주택 보유 여부나 가족 수에 따라 보험료가 오히려 높아져 이에 대한 민원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는 지역가입자가 불리한 경우에 해당한다(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현재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었을 때 보험료가 오르는 경우 2년 동안은 직장가입자 당시 보험료를 납부하는 임의계속가입 제도 있음).

 

또한 직장가입자의 경우 배우자나 자녀가 추가적인 보험료 부담 없이 피부양자로서 보험 혜택을 볼 수 있는데, 지역가입자는 원칙적으로 연소자까지 모두 보험료 부과 대상이라는 것도 불리한 요소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하나, 부과 체계는 넷

 

현재 건강보험 부과체계 문제의 핵심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 유불리가 아니다. 그 보다는 부과 체계가 매우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고, 가입자의 자격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부과기준이 다르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부과 체계는 보험료를 납부하는 규칙인데 이 규칙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가입자 간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한국의 건강보험이 2000년 관리운영주체 통합, 2003년 재정통합으로 단일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 부과체계는 직장가입자냐 지역가입자냐에 따라 다르고, 각 가입자 별로는 소득 수준에 따라 다시 둘로 나뉜다. 전체적으로는 4개의 서로 다른 부과기준이 있는 것이다.

 

우선 직장가입자는 기본적으로 근로 소득에 대해서 2014년 기준으로 5.99%의 보험료를 납부하며, 이는 가입자와 사용자가 절반씩 부담한다(근로소득은 7810만 원이 상한 소득이므로 이 금액 초과 소득은 모두 7810만 원으로 계산).

 

그러나 직장가입자의 근로 외 소득(사업 소득, 임대 소득, 금융 소득, 연금 소득, 기타 소득 등)이 연간 7200만 원을 넘을 때는 이에 대해서도 근로 소득의 본인 부담 비율(5.99% ÷ 2)만큼의 보험료가 추가적으로 부과된다. 따라서 근로자가 내는 본인부담 보험료를 기준으로 보면, 연간 근로 외 소득이 7200만 원을 넘는 경우는 근로소득과 근로 외 소득을 합친 종합 소득에, 그렇지 않으면 근로소득에만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는 셈이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기본적으로 종합 소득, 재산(주택, 토지, 건물, 전월세금), 자동차에 대해 각각 등급을 매기고 각 등급별 점수에 단가(2014년 기준 175.6원)를 곱하여 보험료를 산정한다.

 

그러나 지역가입자의 과세기준 종합 소득이 연간 500만 원 이하일 경우는 부과 요소에서 실제 소득 대신 평가소득을 적용하여 등급을 매기게 된다. 이 때 평가 소득을 구성하는 요소는 소득, 재산, 자동차, 성별 및 연령, 가족 수이다. 따라서 500만 원 이하 소득자의 경우 재산과 자동차가 평가 소득에서 한 번, 그리고 별도로 한 번, 총 두 번 산정되는 셈이다.

 

직장가입자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 규칙이 다른 또 한 가지는 보험료를 납부하는 단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지역가입자는 가구를 단위로 보험료를 납부하기 때문에 세대 단위의 소득이나 자산을 고려하게 되고, 특히 연 소득 500만 원 이하의 가구는 가족의 수가 많을수록 보험료를 더 납부하게 되어 있다.

 

반면 직장가입자는 가입자 본인의 소득에만 보험료가 부과되고, 그 가족은 피부양자로 인정되어 추가적인 보험료 부담 없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의 경우 부양 조건과 소득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제한이 있지만,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부양 조건은 가입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배우자의 직계존비속까지 상당히 넓은 범위가 포함될 수 있으며, 소득 조건도 금융 소득, 기타 소득 또는 연금 소득 중 어느 하나가 4000만 원을 넘거나 사업소득이 연 500만 원을 넘지 않는 한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복잡하게 나뉘어져 있는 보험료 부과체계는 가입자가 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기본적인 문제점 외에 여러 가지 형평성 문제를 낳고 있다. 비슷한 소득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가 직장가입자인지 지역가입자인지, 연 소득이 500만 원인지 501만 원인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보험료를 납부하게 된다. 또한 상당한 수준의 사업 소득이나 임대 소득을 가진 지역가입자가 편법을 활용하여 직장가입자로 포함되어 근로 소득에 대한 보험료만 납부하는 도덕적 해이도 나타난다.

 

그밖에 소득이 적어졌는데 자격 변화로 보험료가 증가하는 경우나, 평균적인 지역가입자보다 많은 소득과 자산이 있는 사람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되어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등 제도의 합리성이 훼손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소득중심 단일 부과체계로의 이행 필요성, 하지만 어떻게?

 

그렇다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제도가 복잡하게 나누어진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하면 그 해결책은 어쩌면 매우 단순할 수 있다. 모든 가입자의 모든 소득에 대해 일정한 비율의 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 중심 단일 부과체계’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사실 이에 관련해서는 대다수의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노조, 공단, 그리고 정부에 이르기까지 큰 이견이 없다.

 

소득에 따른 보험료 납부는 건강 보장 재정에 대한 기여가 가입자의 경제적 부담 능력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건강 보장의 기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며, 형평성이나 사회 정의의 차원에서도 설득력이 높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여 현재 보건복지부도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선 기획단에서 단일 부과 체계로의 전환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소득 중심 단일 부과 체계로의 이행을 전제로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어떤 사안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검토할 과제들이 존재한다. 똑같은 목적지를 향하더라도 어떤 속도로, 어떤 단계를 거쳐,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몇 가지 논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 논점. 줄어드는 보험재정을 무엇으로 충당할 것인가?

 

지난 2012년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가입자 790만 가구 중 공단이 과세 소득 자료를 보유한 가구는 44%에 불과하며, 그 중 절반 이상(26%)이 연간 과세 소득 500만 원 이하 세대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역가입자의 보험료에서 소득이 아닌 요소들, 즉, 재산, 자동차, 성·연령 등에 대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68%에 이른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득 중심 부과 체계로의 변화는 상당히 큰 폭의 보험 재정 감소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형평성 문제와 함께 재정 감소에 대한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기본보험료이다. 건강보험이 사회보험의 한 가지임을 감안하면, 모든 가입자에 대해 최소한의 기여를 담보하는 기본보험료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기본보험료의 수준은 저소득층의 부담을 고려하여 설정되어야 한다. 기본보험료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될 경우 상당수의 저소득 가구는 이를 납부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본보험료만으로 소득중심 부과체계로의 전환 시 발생하는 보험재정 감소를 충분히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2년 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한 '실천적 건강복지플랜'에서는 재정 문제에 대한 또 다른 대안으로 소비세가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소비세 형태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의 일부를 조달하는 사례는 서구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고, 특히 주세나 담배세처럼 건강 위험을 증가시키는 행위에 대한 과세에는 명분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간접세는 역진적인 성격을 가지며, 직접세나 사회보험료보다 더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건강보험료의 형평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변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 부담을 간접세로 충당하는 것은 건강보험료의 형평성을 개선할지 몰라도 전체 보험 재정의 형평성은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다.

 

건강보험 부과 체계 개선 시 발생하는 보험 재정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건강보험제도 자체에서 재정 중립을 이루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근로 외 소득이 연 7200만 원 미만인 직장가입자에게도 근로 외 소득에 대한 보험료를 부과할 경우 소득에 따른 보험료 부담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보험 재정을 확대할 수 있다.

 

또한 직장가입자에만 있는 피부양자 제도를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하여, 경제적 능력이 있는 피부양자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하는 것도 제도의 형평성 개선과 재정 측면에서 모두 긍정적 효과가 있다. 이와 같은 방안은 보험료 인상이나 정부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며 부과 체계 개선으로 인한 보험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 논점. 제도 개선의 속도와 단계는?

 

소득 중심 부과 체계로의 이행이 궁극적인 개선 방향이라는 것을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속도와 단계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제도 환경의 제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의 부과 체계가 가입자의 재산, 자동차, 성·연령과 같이 일반적으로 사회보험 부과에 사용되지 않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제도 도입 당시의 여건에 따른 것이었다. 행정기관의 소득 파악 능력이 부족하여 과세 소득 자료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연금 제도의 미성숙으로 거의 대부분의 노인 가구가 파악된 소득이 없는 상황으로 인해 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할 경우 상당한 문제점이 예상되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제도 환경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현재 지역가입자의 과세소득 파악률은 약 44% 수준이다. 이는 현재의 부과 체계가 도입된 1998년에 과세 소득이 파악된 지역가구가 30%에 불과했음을 고려한다면 분명 개선된 것이지만, 아직까지 충분한 수준인지 의문이다.

 

노인 가구의 소득 주제도 그렇다. 2012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공적연금 수급율은 35%에 불과하고, 연금수급자의 급여 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아 근본적으로 개선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현재의 제도 환경은 이전보다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수준이 충분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단시일 내에 소득 중심 부과 체계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보험 재정상의 문제 및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혁으로 인해 고액의 자산가가 파악된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내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 발생한다면 이 개혁은 사회적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과세기관의 소득 파악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면서, 일정 기간 동안은 중간 단계를 두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앞서 언급한 직장가입자의 부과 대상 소득 범위 확대나 피부양자 범위 조정, 지역가입자의 평가 소득 폐지와 같은 제도의 부분적 개선을 시행하되, 소득 중심 부과 체계로의 전환은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제도 변화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세 번째 논점. 저소득 가입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부과 체계 변경 시 고려해야 할 세 번째 문제는 저소득 가입자에 대한 지원이다. 원칙적으로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은 보험료 납부 능력이 있는 사람을 그 대상으로 하고, 보험료 납부 능력이 없는 사람의 의료비는 공공부조제도, 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의료급여에서 제공하는 것이 각각의 제도의 취지에 맞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수급자 수가 매우 적어 최저 수준의 보험료 납부조차 어려운 저소득 가입자가 의료급여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부과 체계 개선 시 기본보험의 도입으로 인해 소폭이라도 현재보다 최저보험료 수준이 높아질 경우 그 문제는 더욱 커질 수 있다. 현재도 건강보험료 납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 가구에게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건강보험제도가 충분히 발달한 서구 국가들의 경우 공공부조 대상자를 포함하여 소득이 낮은 20% 정도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면제나 감면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의료급여 대상자는 약 150만 명으로 전체의 3%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건강보험료를 면제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것으로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기회에 건강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저소득계층에 대한 건강보험료 경감 및 면제 기준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의 건강보험료 지원이 기본적으로는 공공부조 정책의 역할인 최종적인 빈곤 완화에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 재원은 일반 조세에서 충당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건강 보장의 목적이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보장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과 보장성 확대를 통해 건강보험제도를 지키자

 

의료법인의 우회적 영리화 조치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를 향해 보건복지부에서는 ‘정부가 건강보험 제도를 잘 지키고 있으므로 의료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로 건강보험 제도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제대로 개선해야 한다.

 

이는 재정 측면에서 보험료 부과 체계의 개선과 급여 측면에서 보장성 확대를 의미한다. 이 두 과제는 언뜻 독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는 필연적으로 보험 재정의 확대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과 체계의 형평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부과 체계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보험료 증가는 많은 가입자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건강보험 부과 체계를 개선하는 방향이 가입자의 부담 능력에 따른 기여, 즉 소득에 근거한 부과 체계로의 전환임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이를 위해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하며 어느 정도의 속도로 진행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

 

2000년 의료보험의 관리운영 주체 통합 시 설정된 부과 체계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일단 성립된 제도는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 만약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간접세의 비중을 높여 전체 건강보장 재원의 누진성을 약화시킨다거나, 제도 변화 과정에서 저소득층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이는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 본 칼럼은 프레시안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으로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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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들어간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내가 공부하고 있는 세부전공은 '사회보장제도'이다. 이는 한국의 사회복지학과 영역의 대부분을 이루는 임상사회복지 - 아동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등등 - 나 사회복지 행정 - 주로 전달체계 - 보다는 좀 더 거시적인 차원을 다루는 전공이며, 복지국가론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전공이다. 물론 양자 모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어쨌든 사회보장제도를 공부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불평등을 완화하는가?"


질문이 '빈곤을 완화하는가'가 된다면 좀 더 쉽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 빈곤 완화효과를 보여주는 연구야 차고 넘칠 정도니까.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그 자체로써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좀 복잡하다. 대개 실질적으로 불평등을 완화시킨 '복지국가'는 애초에 시장소득 단계에서도 상당히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거시경제정책을 운영한 경우가 많고, 정치구조에서도 노동자 정당의 힘이 강하고 뭐 그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회보장제도'가 그 자체로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독립변수'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인하기 어렵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쉬라(1981)는 이 질문에 대해 사회보장제도가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하층에 속하는 집단으로의 소득재분배의 정도는 미약하며, 사회보장제도의 소득이전 효과는 계급 내 소득이전 또는 삶의 주기에 따른 (시간적) 소득이전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상 재분배효과가 미미하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변혁 없이 - 복지 따위로 - 노동자의 삶이 의미있는 정도로 나아질 수 없다고 보았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배적 제도와 가치가 변하지 않는 한은 한 가지 구조의 개혁은 다른 구조의 변화로 부정된다고 봤던 데이비드 하비(1975)가 생각나기도 한다. 원인이 뭐가 되었든,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관심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공부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우울한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전복...까지는 그렇다치고, 적어도 시장소득에서의 분배 변화 - 즉, 경제 영역의 변화 - 가 불평등 완화의 최소조건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진짜 독립변수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그 답은 답을 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많이 다를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 그리고 학문적인 개념을 좀 빌자면 - 권력자원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권력자원 동원론은 유행이 좀 지났다. 하지만 그 후에 각광받은 제도주의 같은 개념에서도 권력자원은 중요하다. 권력자원의 효과가 제도에 의해 많이 다르게 나타나서 그렇지). 민주주의라는 조건을 무기로 했을 때, 현재의 구조에서 약자가 된 다수가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무기는 결국 '쪽수' 아닐까. 물론 그 내부에서 - 산업사회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게 - 다양한 요구와 입장을 조정하고 합의해서 최종적으로 '쪽수의 힘'을 살리는 것은 난망한 과제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 데는 거기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게 본다면 '쪽수'에 기반한 '정치'의 힘이 경제도 바꾸고, 복지도 바꿔서 1차 분배와 2차 분배에서의 분배정의를 개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느 정도로 어떻게 개선할지를 합의하는 일은 또 엄청난 과제긴 하겠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사회보장제도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쪽수'의 힘이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싸움에 나서야 한다. 물론 과거처럼 하나의 의제를 놓고 다 같이 모여서 우르르 나가는 싸움이 될 수 있는 경우는 - 앞서 말한 요구와 입장의 다양성으로 - 많지 않겠지만,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미시적인 투쟁이 이루어지고 그 힘이 느슨하게라도 조직화될 때 '쪽수의 힘에 의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그런 싸움에 나서려면 적어도, '내가 이 싸움에서 지더라도, 그래서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여타의 불이익을 겪더라도 우리 가족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먼저 동을 뜨지는 못하더라도 동을 뜬 사람에게 뜨겁게 호응할 수 있지 않을까.


전두환이 그렇게 때려 잡으려던 학생운동이 취직하기 힘들게 만들어놨더니 스스로 없어지더라는 농담이 그냥 농담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포' 앞에 취약하다. 왜 사람이 이기적이 되는 두 가지 근원이 '탐욕'과 '공포'라고 하지 않나. 만약 사회보장제도가 밑바닥으로 떨어져도 죽지는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 공포는 완화되지 않을까. 그리고 공포가 완화된 사회에서 '쪽수의 힘'은 좀 더 잘 동원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회보장제도의 정비 자체가 '쪽수의 힘'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한 편으로 그 힘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이지 않을까.


그래서 난 어쩌면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최근들어 '사회투자론'으로 급격히 수렴되고 있는 복지국가론보다도 좀 더 전통적인 소득과 비용에 대한 경제적 보장으로서의 사회보장제도가 중요한 진보적 의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그 사회보장제도가 자체로서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겠다. 그게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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