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불편함

Posted at 2011. 11. 30. 23:46// Posted in 시사
  페친(페이스북 친구) 중 한사람인 후배가 '나꼼수를 들으면 재미있는데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는 논조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던 참이라 그 글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친구가 불편함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나와는 좀 다른 이유였다. (나꼼수의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 친구의 과거의 특정한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친구의 이유였다.) 어쨌든 나도 나꼼수를 즐겨 들어면서도 항상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오늘 김규항씨의 블로그에서 본 - 김규항씨가 아닌 다른 이의 - 글을 통해 그 불편함의 정체가 좀 더 다가오는 듯해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의 정체는 위에 언급한 친구처럼 과거의 경험 때문은 아니고, 진중권씨가 말한 것과 같은 '구전문화로의 회귀'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허지웅씨가 이야기한 '선동꾼', '반지성주의'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나꼼수의 문화적(혹은 매체적) 성격에 대해서는 그간의 진보적 메세지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하여, 받아들이는 이를 질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마땅히 칭찬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나꼼수가 의제를 선정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십 몇 회인가 이후 '서울시장 선거'와 '한미 FTA'를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나꼼수는 서울시장 선거를 후보 확정 전부터 지속적으로 몇 회에 걸쳐 다루었으며, 선거 자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와 타이밍으로 다루었나. 이 선거와 관련한 초대손님만 해도 박원순, 박영선,  홍준표, 이정희, 박지원, 문재인 등 숫자도 많고 면면도 화려했다. 나꼼수가 야권연대와 그 연대를 통한 선거에서의 승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굳이 보충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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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누구 못지 않은 나꼼수의 팬이다. 공연은 못갔지만 전 회를 
          받아서 들었으며, 김어준 총수의 책도 사서 봤다.


  물론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니다. 나도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고,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오히려 선거가 끝난 시점부터였다. 일정상 서울시장 선거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이슈는 한미 FTA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연히 나꼼수도 한미 FTA를 집중적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했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특집방송 같은 것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꼼수는 한미 FTA를 - BBK나 서울 시장 선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 한 회도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부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도 생각보다 상당히 늦은 시점부터였고, 다루는 내용도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여-야 간의 충돌 중심이었지 한미 FTA 자체의 문제 중심이 아니었다. 물론 최근 방송에서는 점차 비중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는 문재인과 혁신과 통합, 또 '친노'로 구분되는 일부 '개혁' 인사들이 한미 FTA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과 묘하게 겹쳐보인다. 명시적으로 한미 FTA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이명박의 FTA' 및 그 이슈를 다루는 방식으로 반대를 제한하는 듯한 이들의 태도와 나꼼수의 거리가 그리 멀게 보이지 않는다. 한미 FTA 강행 통과 전후에 나꼼수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FTA 통과를 만든 (주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하겠다.'라고 하며 노래를 만드는 일과 'FTA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가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들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해영 교수처럼 한미 FTA 자체의 문제를 짚거나, 우석훈 교수처럼 명료하게 '협상의 폐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지나친 생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가 시작되었다는 점, 김어준 총수가 유명한 노무현 지지자였다는 점, 문재인 전 수석은 시종 한미 FTA에 대해 애매한 자세라는 점, 김어준 총수가 현재 문재인 전 수석을 대선주자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라는 점 등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나꼼수의 의제설정을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나꼼수가 한미 FTA에 대한 찬성을 표한 것도 아니고, 명료하지는 않아도 비판적인 - 반대에 가까운,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단지 '방송에서 적게 다뤘다.'라는 것만으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지도 모른다. (그래서 '묘한 불편함'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것은 '어떻게 말하는가?' 뿐 아니라 '무엇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말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편집 수단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나꼼수는 그런 견지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한미 FTA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한미 FTA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지 않으면 정치적 민주주의에 충실하지만 재벌 앞에 무력하고, 그 결과로 서민의 삶은 더 피폐해지게 만드는 개혁정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나꼼수는 '한 번도 투표에 나서지 않던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에게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 오랜 세월동안 진보진영의 누구도 못하던 일을 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박수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굳이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솥뚜껑을 보더라도 경계하는 자세가 있어야 자라에게 또 물리는 일이 없지 않겠는가 싶어 굳이 글로 정리해본다. 그게 솥뚜껑이 맞기를,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기를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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