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사람

Posted at 2014. 8. 26. 16:30// Posted in 시사

이번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시각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기초연금의 중복지급이 안된다고 보는 시각을 보면 일정한 논리적 공통성이 보인다. 그것은 어떤 제도나 체계의 논리적 타상성 및 일관성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에 집중한 나머지 그 뒤에 있는 사람과 삶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는 부분이다.

(물론, 특히 세월호 특별법의 경우 -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특히 수사권의 경우 - 는 제도의 논리상으로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논의이므로 이 부분은 접고 이야기한다.)


제도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제도의 논리적 일관성과 타당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게 한 번 두 번 예외를 두고 무너지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제도는 그 자체를 강화하게 되는 힘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제도 자체의 논리는 그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기초연금의 목적은 빈곤한 사람(혹은 빈곤해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며, 법체계의 목적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모두 사람들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게 보면 좀 더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삶이 아닐까. 제도의 논리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전제 하에서만 유의미하다.


물론 민주주의의 많은 부분은 과정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어떤 과정은 목적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민주적인 과정이 지켜지는 한에서 제도의 논리적 정합성은 사람의 삶에 우선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개인의 삶의 질적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사 누스바움의 메세지는, 국가와 제도를 다루는 사람들이 그 자체에 함몰된 나머지 사람들의 삶의 중요성을 놓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한 것이 아닐까.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배운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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