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경비선택납부제

Posted at 2013. 5. 19. 21:36// Posted in 시사

대학원생 신분이다보니 학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정도가 현저히 제한되어, 학부 때처럼 학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나 논란의 배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부분적으로는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조직'이 없고(이건, 내가 다니는 대학원이 명목상 '전문대학원'이어서 더욱 그렇다), 학부생들과의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다보니(내가 워낙 뒤늦게 공부를 하고 있다보니 학부생들과의 나이/학번 차이가 후덜덜..) 주워들을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학기가 시작할 때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른바 '자율경비선택납부제'의 등장이다. 이게 뭐냐하면, 과거에는 등록금 낼 때 자동으로 납부되게 되어 있던 학생회비, 교지 비용 등에 대한 납부여부를 개개의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선택을 안할 경우 디폴트값은(적어도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 관한 한) 납부하지 않는다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건 정확하지는 않다. 나는 '납부한다'를 선택해서 대학원 학생회비 - so called 원우회비 - 를 납부했기 때문에 확인해보지 못했다).

이게 무서운 것은 '납부자 개개인의 선택'을 빙자해서 자치조직을 효과적으로 와해시키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연세춘추, 연세지, 그리고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있다.

학생회에서 학생들을 위해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비배제성'을 가진다. 즉, 학생회가 예를 들어 학생들을 대표해서 학교와 협상을 해서 등록금 인상을 저지했다고 할 때, 그 혜택은 학생회비를 납부한 학생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보게 된다. 따라서 적어도 부분적으로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샘이다. 이 경우 학생회비 납부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게 된다면, '합리적 행위자'의 선택은 당연히 학생회비를 안내는 것이다. 무임승차를 막을 수 없으니까. 이렇기 때문에 학생회비에 대해서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세금 납부를 '개인의 선택'에 맡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는 것은 누구도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교리가 되어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자율경비선택납부제'의 도입이 가능했던 논리가 아니었을까.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내가 들은 바 없으니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문득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자치조직을 매우 효율적으로 와해시켜갈 것으로 보이는 이 '자율경비선택납부'의 논리가 노동조합의 조합비 같은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 제도는 교과부의 권고로 등장했고, 아마도 아직까지 연세대 외의 많은 대학으로 퍼지지는 않은 것 같다. 이게 더 효과를 가지기 전에 이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이 제도를 '전가의 보도'로 여기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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