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배신
국내도서>경제경영
저자 : 라즈 파텔(Raj Patel) / 제현주역
출판 : 북돋움 2011.06.20
상세보기

‎2011년에 읽은 첫 책. 

나처럼 책 읽는 속도보다 책 사는 속도가 빠른 사람은 간혹 사놓고 안읽었던 책을 나중에 보며 이 책을 왜 샀는지 기억이 안나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몇 주 전에 사놓고 잊고 있다가 며칠 전에 잡았다. 잡을 땐 그저 그런, 최근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설파하고 복지국가로의 회귀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책인가... 하면서 봤는데(그런 책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워낙 흔해서) 읽다 보니 훨씬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는 책.

이중운동, 사회적 경제, 생태주의와 같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풍부한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풍부한 사례가 그 장점이라면 다소 두서가 없는 것과 결국 겨울에 눈내리는 이야기가 결론이라는 것이 그 단점.

'복지국가로의 회귀'를 말하는 책들은 이미 그 체제로 운용되고 있는 모범(북유럽 같은)적인 국가가 있기 때문에 짜임새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50~60년대 복지국가의 전성기와 지금의 전지구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 즉, 상상력의 결핍이라는 - 한계를 보여주는데, 이 책처럼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이야기하려는 책은 정확히 반대의 장단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현재의 체제 - 즉 단지 신자유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자체 - 를 넘어설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나름의 상상력과 함께 검토해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전세계는 커녕 하나의 국가 단위에서 추진할 수 있는 수준의 체계적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점을 보여준다. 

물론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실천이고, 그 실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대안의 조야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당장 무엇이라도 실천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묘하게 요즘 읽는 책마다 폴라니가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이분법으로 인해 상당부분 무시당했던 이 위대한 사상가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일까? 혹은 그냥 우연일까?
//

2011년에 읽은 책들

Posted at 2012. 1. 5. 22:08// Posted in 감상
G20을 넘어 새로운 금융을 상상하다 / 금융경제연구소
프레임 전쟁 / 죠지 레이코프
김대중 자서전 1, 2 / 김대중
진보집권플랜 / 조국, 오연호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왜 도덕인가? / 마이클 샌델
플랫폼 전략 / 안드레이 학주, 히라노 아쓰시 칼
20인(in London) / 시주희
감정코칭 / 존 가트맨, 최성애, 조벽
진보와 빈곤 / 헨리 조지
도시 생활자의 정치백서 / 하승우
프리라이더 / 선대인
세금혁명 / 선대인
다음 국가를 말하다 / 박명림, 김상봉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경제학 3.0 / 김광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 조지프 스티글리츠
한강 1~10 / 조정래
나는 탁월함에 미쳤다 / 공병호
익숙한 것과의 결별 / 구본형
소금꽃 나무 / 김진숙
사회적 기업 만들기 / 무하마드 유누스
내 인생이다 / 김희경
보노보 혁명 / 유병선
원순씨를 빌려 드립니다 / 박원순
강의 / 신영복
그루폰 스토리 / 윤상진
클라우드 혁명과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 오카지마 유시
왜 구글인가 / 마키노 다케후미
아이디어맨 / 폴 앨런
빅스위치 / 니콜라스 카
클라우드 혁명 / 찰스 밥콕
한국 IT산업의 멸망 / 김인성
아이리더십 / 제이엘리엇,윌리엄사이먼
소셜커머스,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유윤수, 윤상진
디퍼런트 / 문영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니콜라스 카
생각 조종자들 / 엘리 프레이저
콘텐츠의 미래 / 프랭크 로즈
비즈니스의 거짓말 / 프릭 버뮬렌
하우스 푸어 / 김재영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 이찬근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 / 코너 우드먼
모든 것의 가격 / 에두아르도 포터
보이지 않는 고릴라 /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대니얼 사이먼스
삼성을 생각한다 / 김용철
복지국가 / 정원오
사회복지의 이해 / 김기태, 박병현, 최송식
한국의 사회보장 / 유광호, 이혜경, 최성재
인간행동이론과 사회복지실천 / 김동배, 권중돈
사회복지정책론 / 닐 길버트, 폴 테렐
사회학 / 한국산업사회학회
복지 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 에스핑앤더슨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복지국가 스웨덴 / 신필균
복지국가를 향한 짧은 안내서 / 존 허드슨, 스테판 쿠너, 스튜어트 로우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 이창곤
문재인의 운명 / 문재인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 송기도
베네수엘라, 혁면의 역사를 다시쓰다 / 김병권 외
닥치고 정치 / 김어준
길은 복잡하지 않다 / 이갑용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최장집
불평등의 경제학 / 이정우
파벌 / 정영태
비정규직 / 장귀연
사회복지의 사상과 역사 / 가스통.V.림링거
거대한 전환 / 칼 폴라니
국가의 역할 / 장하준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 홍기빈
혁명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 에릭 홉스봄
핀란드 부모혁명 / 박재원, 구해진
 
총 72편, 84권.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던 한 해에 그래도 연초부터 연말까지 책은 거의 놓지 않고 꾸준히 본 듯. 아쉬움이 있다면 읽은 책의 양에 비해 서평(혹은 독후감)은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 독서이력의 고질적인 한계(고전 독서의 부족)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작년의 아쉬움을 올해는 극복해보자는 생각.
//

1,000회 수요집회 후기

Posted at 2011. 12. 14. 23:32// Posted in 시사
  원래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오늘이 수요집회 1,000회째라는 기사를 보고 충동적으로 종로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수요집회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참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도 있었고, 최근 평화비 건립에 대해 막아달라는 요청을 한 일본 대사관의 후안무치함과 그에 대해 적절히 대응 못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에 대한 분노도 있었으며, 부분적으로는 낮에 하는 집회에 참가하기 좋은 최근의 개인적인 환경도 작용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기자들도 많이 왔고요, 중간에 불쑥 솟아 있는 SBS 기자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이 저렇게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어 시야를 엄청나게 제한했습니다. 특히 제 앞에는 동아일보(!) 기자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 짜증X100 이었습니다. 취재도 중요하지만 집회를 방해해서야...


  12시 정도에 집회장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더군요. 제가 도착했을 때는 (아마도) 행사가 막 시작되었을 때인 것 같았습니다. 역시나 의미 있는 행사에 많이 참가하시는 권해효씨가 듣기 좋은 목소리로 사회를 보고 있었으며, 김여진씨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서진씨도 오셨다는데 못봤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봉주, 정동영, 권영길씨 같은 분들도 오셨다는데 못봤습니다. 흑...) 이런 저런 순서가 있었지만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함자가 기억나지 않는) 위안부 할머니의 발언(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주요 정당 정치인들(한명숙, 정몽준, 이정희)의 발언 중 정몽준씨의 순서. 정몽준씨의 순서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내려와! 내려와!"라고 외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꿋꿋하게(?) 끝까지 발언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연대발언 중 여고생들의 발언과 (아이고, 발랄해라...) '그날이 오면'을 불렀던 노래패 공연. 아는 노래라 따라 부르는데 거기서 부르니 새삼 목이 메는 기분이랄까요... 그랬습니다.

가운데 금빛 동상이 바로 평화비입니다. 평화비 가까이 계신 분들이 위안부 할머니들. 이제 겨우 예순 여섯분이 살아계신다고 합니다. 그 분들 생전에 사과와 처벌, 제대로 된 배상을 받아야 할텐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비를 무사히 설치했다는 것인데, 돌아와서 일본 대사관측이 철거를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다 또 한 번 전투력이 상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안무치함이란 정말... 
 

이 차는 트위터리안들의 모금을 통해 할머니들께 기증한 희망승합차입니다. 트윗을 심심찮게 하는 편인데 모금운동에 대한 내용을 보지 못했네요. 참가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부터 (주로 그 시절에) 적지 않은 집회와 시위에 참석했던 편인데, 매주 멀지 않은 곳에서 있었던 수요집회에는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사안의 정치성에 대해 낮게 보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집회의 필요성이나 중요성, 정당성에 대해 달리 생각했을 리는 없지만, 다른 집회들에 비해 정치적 우선순위를 낮게 생각했다고 할까요? 한나라당의 정치인조차 와서 연대발언을 한다는 것을 보면 이 집회가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모순을 보여주는 집회는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로 대학시절에 말이죠. 졸업하고 최근까지는 사실 이런 저런 생각조차 없이 살았죠. 부끄럽게도.)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서 저의 그런 시각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것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장기적이고 긴 시각에서 보면, 이 문제만큼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제가 없거든요. 인권의 문제, 여성의 문제, 평화의 문제, 국가권력의 문제와 같은 큰 틀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안들을 담고 있는 문제임과 동시에 수십년의 세월이 지날 때까지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정치적 의미 이전에 가장 본원적인 인륜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배금주의, 효율 제일주의, '실용'이라는 이름하에서 이루어지는 정당성의 외면의 문제가 역사적으로 시작된 것 또한 식민지 시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에 실패하고, 일제와는 독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통해 스스로 정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을 기회를 포기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역사청산'이라는 문제는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방된 국가에서 친일파, 부역자를 기용하며 '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서'라는 실용의 논리를 내세웠으며, 한일회담에서도 경제개발의 중요성이라는 실용의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이 출발했습니다. 이와 같은 실용의 이름으로 정의를 짓밟는 논리는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학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경제위기를 우선 극복해야 한다며 재벌에게는 특권을, 노동자에게는 정리해고를 주는 식으로 수없이 변주되며 우리 사회와 역사에 무수히 많은 오점을 찍어왔습니다. 

Korea's new President, 이명박
 이 사람의 당선과 위안부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비약일까요? 그런
 측면이 있긴 하겠지만 저는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혐짤 죄송...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현 대통령을 찍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비리도 많고, 범죄자일 수도 있다는 거 안다. 하지만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에 투표한 것이죠. 지금 이 혼란스러운 정치현실과, 전보다 더 힘들어진 서민의 삶은 그 선택에 대한 대가입니다. 18대 국회 수도권에서 대거당선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매해의 예산안과 미디어법, 그리고 한미 FTA를 날치기 통화시켰습니다. 그 선거의 뒤에도 뉴타운이라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냐 이전에 무엇이 나에게 이득이 되느냐를 생각한 결과라는 이야기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그 연원은 식민지와 해방, 그리고 역사청산의 실패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위안부 문제는 우리 역사의 잘못 끼워진 첫단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그런 생각이 들어 그간 이 문제에 '정치적 우선성'이 없다고 여긴 저의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라도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 다행이라는 작은 위안도 함께 들었습니다.

  후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할머니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꼭 살아서 사과받으셔야지요.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선 조작  (0) 2012.03.20
나꼼수, 비키니, 그리고 사과  (0) 2012.02.07
묘한 불편함  (4) 2011.11.30
한미 FTA가 뭐길래 ② (부제 : It's class, stupid!)  (0) 2011.11.24
한미 FTA가 뭐길래 ① (부제 : It's class, stupid!)  (0) 2011.11.22
//

단상(2) : 민주당

Posted at 2011. 12. 14. 21:23// Posted in 기타
민주당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성향은 개혁성이 아니라 보수적 지역주의이다. 즉, 역사적으로 한국의 제1야당은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 집권당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전국에서 두번째로 큰 정당'이면서 '특정 지역에서 절대적 역량을 갖는 지배정당'이 가질 수 있는 기득권을 공고히해왔다는 말이다. 그와 같은 기득권을 가질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는 온 사회에 팽배했던 '반공이데올로기'인 바, 이들은 독재정권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어느 순간부터 그 수혜자라는 이중적 위치를 가져왔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현재 민주당 우파라고 할 수 있는, 흔히 '호남보수'라는 비판을 받는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복지'나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권교체'도 아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며, 정권교체를 포함한 다른 모든 목적은 그 기득권이 지켜지는 범위 내에서만 유효하다. 이들이 민주당의 가장 오랜 뿌리를 가진 세력이라는 것, 노무현이라는 개혁적인 대통령조차 민주당을 민주화하지 못했던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세력은 '가카'도 '한나라당'도 아니다. 가카나 한나라당이 아무리 강해진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헤게모니를 흔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경계하는 쪽은 '혁신과 통합', '시민세력', '진보정당'과 같이 이들이 가진 기득권을 '개혁' 또는 '혁신'과 같은 이름으로 흔들 수 있는 세력이다.

여기에 지난 대선, 총선에서의 참패 이후 대거 수혈된 관료 출신 당원들이 더해질 때 마침내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구별하기 힘든 상태로 치닫게 되고, 지금 이들이 보이는 모습이 바로 그것인 듯하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관을 위한 포스팅  (0) 2013.02.17
뚜벅뚜벅  (0) 2012.12.19
마르크스  (0) 2012.01.13
단상(1) : 자유  (0) 2011.12.09
집회의 추억  (0) 2011.12.03
//

단상(1) : 자유

Posted at 2011. 12. 9. 13:31// Posted in 기타
책을 읽다보면 '자유'라는 말은 참으로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생각이 드는데, 특히 이 말이 '주의'라는 말과 결합하면 더욱 그렇다. '경제적 자유주의' 혹은 '시장 자유주의'라는 말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처럼 시장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에 모든 것을 맡기고 국가나 기타의 제도들은 여기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지금의 시각에서 본다면 (극)우파적인 입장을 가리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아나키즘처럼 급진적(이라고 이야기되는) 입장에서도 '자유'는 (자치, 자연 등의 맨 앞에 이야기되는) 핵심적인 가치이다.

정치학을 전공해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유로해서 책에서 '자유'나 '자유주의'라는 단어를 보면 머리가 아파올 때가 많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자유'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인간이 그를 제약하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바, 이는 그 시대 그 사회에서 인간을 가장 속박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즉,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 속에서 자유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그런 의미에서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지금 시대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라고 하긴 힘들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시장의 자유'는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구속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운운하는 어떤 글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관을 위한 포스팅  (0) 2013.02.17
뚜벅뚜벅  (0) 2012.12.19
마르크스  (0) 2012.01.13
단상(2) : 민주당  (0) 2011.12.14
집회의 추억  (0) 2011.12.03
//

집회의 추억

Posted at 2011. 12. 3. 22:18// Posted in 기타
나같은 얼치기 운동권 출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비웃을 사람도 많겠지만, 요즘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나 몸상태 핑계로 거리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트윗으로 소식을 접하다보면, 나 집회 참가 못하게 하려고 아버지가 회사 휴가 내고 아침부터 밤까지 나와 붙어 계셨던 96년 여름도 생각나고 그렇다.

내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참가한 집회는 대학교 3학년 5월이었다. 솔직히 당시만 해도 밥먹듯이 집회에 참가하던 시기인지라 그 날의 이슈가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평소처럼 학내 집회를 하고 거리로 진출하다가 교문 앞에서 전경들과 조우했고, 이런 저런 (아는 사람은 아는) 대치 과정 중에 날아온 주먹만한 돌이 얼굴에 적중해서 그대로 병원에 실려갔었다. 피를 워낙 많이 흘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로 병원에 가보니 광대뼈 골절이라고 하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었다. 다행히 나중에는 뼈가 '예쁘게' - 당시 의사의 표현이다 - 부러져 수술은 안해도 된다고 했지만, 안면이 절반쯤 마비되었는데 감각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서 식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회복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듯하고 덕분에 한동안은 집회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해도 본대에 있었던 - 본대는 집회 현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집단을 말한다. 본대 말고 그럼 전에는 어디 있었는지는... 역시 아는 사람은 안다. ㅎㅎ - 기억이 난다.

나는 그 해 9월에 군대를 갔고, 따라서 그 5월과 9월 사이에도 아마 적잖은 집회에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집회가 '제대로' 참가한 마지막이라고 한 까닭은, 저 때 이후로 집회를 무서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집회에 참가하던 대학 1학년 때도 어느 정도 무서워했지만, 그 날 이후의 무서움은 좀 달랐다.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시위 인파 한복판에 서 있으면 무언가 날아올 것 같고 그게 나에게 맞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들어 거리에 서는 것이 퍽이나 두려웠다. 입대 후 훈련소에서 모의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할 때 회수조로 차출되어 훈련병들이 연습용 수류탄을 던지는 반대편에 서서 기다리다가 떨어지면 집어오는 역할을 부여받았는데, 주먹만한 쇠공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나서 그자리에 못박혀버리는 바람에 조교에게 욕 꽤나 먹은 기억도 난다. 자대에 가서 부대원들이 간혹 야구를 할 때도 나는 공이 무서워서 늘 상황근무를 자청하곤 했었다. 워낙 그 날의 데미지가 컸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어찌 생각해보면 나란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 씁쓸한 기억이다.

군 제대 후에는 거의 집회에 참가한 기억이 없다. 아마 졸업할 때까지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보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가한 것이 대학 3학년 때 이후 첫 집회였나보다. 진심으로 집회를 즐기는 대학생들을 보며 내가 집회에 참가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지금이 대학 졸업 후 그 어느 때보다 거리에 나가고 싶은 시기인 것 같다. 매일 저녁때가 되면 우울해지고 만사 의욕이 나지 않을만큼. 하지만 하필 지금 내 상황이 이래서 나갈 수가 없다. 아내와 의논해봤지만, 그녀의 결론도 나의 결론도 아직 그럴 정도의 몸상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매일 이 시간쯤이 되면 이게 혹시 핑계는 아닐까, 나는 아직도 집회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국만큼이나 참 답답한 마음이다.

내년 2월에 종합검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 때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그 후로는 이런 시국이 또 온다면 지금같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관을 위한 포스팅  (0) 2013.02.17
뚜벅뚜벅  (0) 2012.12.19
마르크스  (0) 2012.01.13
단상(2) : 민주당  (0) 2011.12.14
단상(1) : 자유  (0) 2011.12.09
//

묘한 불편함

Posted at 2011. 11. 30. 23:46// Posted in 시사
  페친(페이스북 친구) 중 한사람인 후배가 '나꼼수를 들으면 재미있는데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는 논조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던 참이라 그 글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친구가 불편함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나와는 좀 다른 이유였다. (나꼼수의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 친구의 과거의 특정한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친구의 이유였다.) 어쨌든 나도 나꼼수를 즐겨 들어면서도 항상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오늘 김규항씨의 블로그에서 본 - 김규항씨가 아닌 다른 이의 - 글을 통해 그 불편함의 정체가 좀 더 다가오는 듯해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의 정체는 위에 언급한 친구처럼 과거의 경험 때문은 아니고, 진중권씨가 말한 것과 같은 '구전문화로의 회귀'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허지웅씨가 이야기한 '선동꾼', '반지성주의'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나꼼수의 문화적(혹은 매체적) 성격에 대해서는 그간의 진보적 메세지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하여, 받아들이는 이를 질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마땅히 칭찬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나꼼수가 의제를 선정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십 몇 회인가 이후 '서울시장 선거'와 '한미 FTA'를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나꼼수는 서울시장 선거를 후보 확정 전부터 지속적으로 몇 회에 걸쳐 다루었으며, 선거 자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와 타이밍으로 다루었나. 이 선거와 관련한 초대손님만 해도 박원순, 박영선,  홍준표, 이정희, 박지원, 문재인 등 숫자도 많고 면면도 화려했다. 나꼼수가 야권연대와 그 연대를 통한 선거에서의 승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굳이 보충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충실했다.

http://beinghere.tistory.com/script/powerEditor/pages/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나 역시 누구 못지 않은 나꼼수의 팬이다. 공연은 못갔지만 전 회를 
          받아서 들었으며, 김어준 총수의 책도 사서 봤다.


  물론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니다. 나도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고,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오히려 선거가 끝난 시점부터였다. 일정상 서울시장 선거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이슈는 한미 FTA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연히 나꼼수도 한미 FTA를 집중적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했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특집방송 같은 것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꼼수는 한미 FTA를 - BBK나 서울 시장 선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 한 회도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부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도 생각보다 상당히 늦은 시점부터였고, 다루는 내용도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여-야 간의 충돌 중심이었지 한미 FTA 자체의 문제 중심이 아니었다. 물론 최근 방송에서는 점차 비중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는 문재인과 혁신과 통합, 또 '친노'로 구분되는 일부 '개혁' 인사들이 한미 FTA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과 묘하게 겹쳐보인다. 명시적으로 한미 FTA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이명박의 FTA' 및 그 이슈를 다루는 방식으로 반대를 제한하는 듯한 이들의 태도와 나꼼수의 거리가 그리 멀게 보이지 않는다. 한미 FTA 강행 통과 전후에 나꼼수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FTA 통과를 만든 (주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하겠다.'라고 하며 노래를 만드는 일과 'FTA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가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들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해영 교수처럼 한미 FTA 자체의 문제를 짚거나, 우석훈 교수처럼 명료하게 '협상의 폐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지나친 생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가 시작되었다는 점, 김어준 총수가 유명한 노무현 지지자였다는 점, 문재인 전 수석은 시종 한미 FTA에 대해 애매한 자세라는 점, 김어준 총수가 현재 문재인 전 수석을 대선주자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라는 점 등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나꼼수의 의제설정을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나꼼수가 한미 FTA에 대한 찬성을 표한 것도 아니고, 명료하지는 않아도 비판적인 - 반대에 가까운,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단지 '방송에서 적게 다뤘다.'라는 것만으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지도 모른다. (그래서 '묘한 불편함'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것은 '어떻게 말하는가?' 뿐 아니라 '무엇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말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편집 수단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나꼼수는 그런 견지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한미 FTA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한미 FTA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지 않으면 정치적 민주주의에 충실하지만 재벌 앞에 무력하고, 그 결과로 서민의 삶은 더 피폐해지게 만드는 개혁정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나꼼수는 '한 번도 투표에 나서지 않던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에게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 오랜 세월동안 진보진영의 누구도 못하던 일을 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박수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굳이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솥뚜껑을 보더라도 경계하는 자세가 있어야 자라에게 또 물리는 일이 없지 않겠는가 싶어 굳이 글로 정리해본다. 그게 솥뚜껑이 맞기를,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기를바라며.
//

재능 학습지 노조 농성장 방문기

Posted at 2011. 11. 25. 16:08// Posted in 연대

  며칠째 쳐진 기분을 만회하기 위해 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을 하나 실천하기로 했다. 바로 재능 학습지 노조의 농성 현장을 찾아가서 지지와 연대,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로 한 것.(재능 학습지 노동자 농성에 대해서는 아래 참조) 쌩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재능 학습지 노조의 농성에 대한 내용을 알게된 후부터, 그리고 좀 더 가깝게는 최근 유명자 지부장의 인터뷰를 본 후부터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날씨도 차가워졌는데, 거리에서 노숙 농성이라니 얼마나 춥겠는가... 그래서 생각한 아이템이 수면 양말! (내가 산 양말의 사진을 못찍었다...ㅠ.ㅠ 아래는 그냥 비슷한 양말의 이미지.) 최대한 따뜻하게끔 긴 걸로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산 양말도 이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사진을 찍었어야 했어.ㅠ.ㅠ

  양말만 딸랑 드리기에 좀 뭐해서 엽서를 한 장 쓰기로 했다. 마침 집에서 얼마 전 책 샀을 때 출판사에서 보내온 전태일 40주기 기념 엽서 발견. 노동자에게 연대의 뜻을 표하기에 이 얼마나 완벽한 아이템인가!!

   "(전략).. 저도 노동자였고, 또 아마 다시 노동자가 될 것이고. 제가 두 아이의 아빠인데 그 두 아이도 노동자가 될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계신 분들이 저나 제 아이들의 몫까지 일하고 계신 거구나...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지지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용기를 내봅니다....(후략)"

 

                               이것이 엽서의 앞면... 메시지를 적은 쪽은 부끄러워서 안찍음

  일단 엽서를 쓰고 연대 아이템을 결정한 후 시청역으로 출발... 시청 광장 맞은 편 재능교육 건물 앞 농성장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럼 이제 아이템을 구매할 차례. 그런데 마땅한 마트나 뭐 그런게 없어서 롯데 백화점 근처까지 도보로 이동해서야 양말을 파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노점상! 이런 일에는 노점상이 딱이다. 구매하는 과정에서도 어쩐지 돈 많은 회사에서 사고 싶지가 않거든! (절대... 저렴해서 그런거 아니다...ㅎㅎ) 해고자가 12명이라고 들어서 양말 12켤레 구매 후 편의점에 들러서 봉투를 사서 넣고, 엽서도 같이 넣었다. 이로서 준비 완료!

                     여기가 농성장. 1436일째 농성 중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말이 1436일이지.... 언듯 보기에도 참 추워보인다. 


  그런데 준비완료한 시간(11시 반쯤?)이 되니 농성장을 지키고 계시던 한 분 외에 다른 분들이 10여분 와서 일종의 약식 집회를 한다. 노래도 부르고... 발언도 하고... 아마 매일 이 시간쯤 하는 모양. 문제는 내가 좀 숫기가 없어서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다가갈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약식집회가 해산하기를 기다리며 근처에서 커피 한잔... 12시 가까이 되어서도 계속 집회중이라 밥도 먹고 다시 와 보니 비로소 다시 한산해졌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저기... 안녕하세요?"하니, 농성하시던 여자분(아마 해고자 중 한 분이 아닐까?)이 웃는 낯으로 인사를 받아주신다. 뻘쭘했지만 용기를 내서 나는 지나가던 시민-_-;;;인데 기사를 보고 너무 추우실 것 같아서 양말을 가져왔다고 내미니 깜짝 놀라며 반기신다.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시길래 "이름은 알아서 뭐하시게요..."하면서 그냥 가려다가 문득 기사에서 본 '재능교육 OUT 국민운동본부'의 1500인 선언이 생각나서 물어보니 아직 1500명 다 안찼단다. 온 김에 서명하고 선언기금 1,500원 납부. 자연스럽게 이름 및 신원도 노출.ㅎㅎ 트윗 계정 있냐고 물으시길래 알려드리고, 추워도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돌아섰다. 참, 자료집도 한 부 받았구나.

1500인 선언 링크 : http://www.eduwork.org/detail.php?number=1545&thread=11r08r03

  사실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농성장 같은 곳을 대뜸 방문하는 건 난생처음인지라 (그냥 계좌로 돈이나 입금했지...) 참 뻘쭘했는데, 인상 좋으신 농성자분 너무 반갑게 맞아주셔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돌아서 나오는데 절로 휘파람이 나오는... 며칠째 시청 집회를 갈 수 없는 현실에 우울한 마음이 한 방에 펴지는 기분이었다.

  혹시 시청 주위에서 근무하거나 약속, 집회 등으로 그쪽에 가시는 분들 있으시면 한 번 들러서 지지의 뜻을 표현해주시면 참 좋을 것 같다. 생각보다 기분이 많이 좋아진다. 추운데 따뜻한 음료 한 잔 사드리고... (보통 한 분이 지키는 것 같다. 약식집회 하는 시간 빼고.)

  사람들이 많이 가서 힘을 주면 좋겠다. 하지만 실은 사람들이 많이 갈 필요도 그럴 시간도 없게, 이제 그만 잘 해결되어 농성이 끝나면 더 좋겠다.

  우리가 흔히 '비정규직'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고용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기간제'(가장 흔한 형태), 통상적인 노동 시간보다 짧은 시간 근무하는 시간제(그러나 우리나라는 보통 시간제와 계약직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편이다), 파견/도급/용역/사내 하청을 통칭하는 '간접고용', 그리고 실질적으로 고용된 것과 다름 없이 기업의 지시대로 일해야 하는데도 형식상으로는 사업자끼리의 계약으로 되어 있는 '특수고용'이다.

  이 중 재능교육 선생님 (흔히 빨간펜 선생님으로 상징되는)은 네 번째 특수고용에 속한다. (90년대까지는 회사 정규직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보편화와 함께 고용형태가 변경된 경우다.)이 분들은 실제로는 고용된 직원과 다름 없음에도 계약상으로는 개인 사업자로 되어 있어 근로기준법의 적용도 어렵고, 노조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 1999년 노조를 설립하고 2000년 7월 비정규직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교재개선위원회활동과 부정영업근절 활동을 하며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그리고 회사의 노조 와해 공작에 맞서 싸워왔던 노조는 2007년 회사의 수수료제도 개악안에 맞서 그 해 12월 21일부터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사측은 전체 조합원을 해고하고, 노조 사무실을 폐쇄하고, 용역을 동원해 노조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법원에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내 노조원들이 회사에 접근할 때마다 한 명당 하루 백만 원씩 손해배상금을 청구하게 했다. 그렇게 제소한 금액이 20억이 넘어 노조원들의 집에 가압류 딱지가 붙어 있다. 노조는 사실상 와해되었으며, 현재는 12명이 남아 해고자 복직과 특수고용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외치며 싸우고 있다.

관련링크::
재능교육, 이 정도로 활당할 줄 몰랐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48358
압류딱지로 돌아온 재능교육의 '행복경영'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26505
김규항의 좌판(5) :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기업지부 지부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1151953445&code=210000  

 

'연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쌍용차 해고 노동자 치유센터 '와락'  (0) 2011.10.20
홍대 청소노동자  (0) 2011.01.11
//

한미 FTA가 뭐길래 ② (부제 : It's class, stupid!)

Posted at 2011. 11. 24. 00:03// Posted in 시사

1편 먼저보기 : 2011/11/22 - [시사] - 한미 FTA가 뭐길래 ① (부제 : It's class, stupid!)

잠깐 시간을 되돌려보자.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으며,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2005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대책회의'에 참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이제부터 남은 임기 동안은 재벌을 개혁하고, 시장을 견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선언일거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기를 바랐다. 나뿐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했던, 그리고 인간 노무현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가 시장과 경제민주화의 문제에 있어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대로의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그리고 참여정부는 좀 더 성공한 모습으로 역사에 기억되지 않았을까. 노무현 집권 시기의 한국사회는 이미 5년 전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며 정치적 민주화의 과제를 상당부분 달성한 반면, IMF의 여파로 인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문제 - 재벌개혁, 양극화 극복,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 청년실업과 같은 - 를 심각한 숙제로 가지고 있었지 않는가.

  하지만 참여정부는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는 달리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문제에 매우 미진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선언은 시장에 대한 견제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포기 선언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그랬다.) 부동산 과열을 잡지 못해 자산 소유자와 비소유자의 차이를 확대시켰고, 지니계수는 참여정부 출범시기(2003년)의 0.341에서 매년 올라 0.351에 이르렀다.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비전을 내세우고 법인세 인하를 단행한 경제정책 방향은 보수정권과 다를바 없는 성장 우선 담론이었으며, 그 성장의 뒤켠에서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김주익은 (MB 정권 하의 김진숙처럼) 크레인에 129일간 올라가 있다가 끝내 크레인에 목을 매달았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KTX 승무원 고용 분쟁이나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도 모두 참여정부 하에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집권 시기 대기업으로의 부와 권력의 집중이 더욱 심화된 것, 특히 '삼성'이라는 무소불위의 단일 패권 재벌 구조를 안착시킨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참여정부의 패착이었다.

Seoul Train Station & KTX
      KTX 여승무원의 직접채용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에 발생하여,
            MB 정부 하에서 해결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참여정부는 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었을까? 문재인 전 수석이 그의 저서 '운명'에서 토로한대로 우리 진보진영 전체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탓도 있을게다. 선출된 민주정부를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관료집단과 보수언론, 그리고 재벌의 강고한 '보수대연합' 앞에 당시 진보진영의 역량은 허약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17대 총선에서 과반의석까지 확보하고 있던 정부의 책임자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혹시 참여정부 내적인 문제가 더 큰 이유는 아니었을까?

  나는 참여정부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었던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참여정부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는 너무 넓은 스펙트럼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들도 있었지만 김진표처럼 '저 사람은 한나라당에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인물도 있었고, 이광재처럼 언듯보기엔 개혁적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삼성 같은 재벌 대기업과 매우 강고한 연계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사들의 내부 갈등은 생산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은 그들의 최대공약수 수준(즉, 가장 보수적인 수준)의 개혁만을 가능하게 했다. 두번째는 참여정부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물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본인과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인사들마저 '서민의 대통령, 서민의 정부'가 아닌 '모두의 대통령, 모두의 정부'가 되려고 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것이 공정한 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의 권력이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의 패권을 견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권력인 '투표로 선출된 민주정부'가 재벌과 서민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면, 그것은 호랑이와 토끼를 한 우리에 넣어놓고 중립을 지킨다며 개입하지 않는 사육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다시 한-미 FTA를 보자.

  참여정부의 이와 같은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한-미 FTA의 추진이다. 참여정부는 한-미 FTA의 추진 과정에서 김현종, 김종훈 같은 관료들의 손에 놀아나는 무능력함을 노출한 것은 물론이며, 한국 사회 내부의 상충적 이익 앞에 추상적 '국익'을 내세우며 중립적인 듯하만 결과적으로는 재벌 대기업의 편에 서게 되는 한계를 노출했고, 특히 한-미 FTA가 추진되면 (아마도 국내적으로는) 최대 수혜자가 될 삼성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미 FTA야 말로 계급 갈등의 적나라한 각축장이기 때문에 이 조약을 추진했다는 것만으로도 참여정부가 서민의 편에 서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011년, 한-미 FTA가 정치권의 핵심 문제로 떠오르고 결국 날치기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보여줬던 한계가 결코 극복되지 않았음을 민주당과 친노 인사들은 그대로 노출한다. 한-미 FTA 저지 정국에서 민주당이 보인 모습을 생각해보자. 김진표처럼 노골적으로 엑스맨 행각을 벌인 이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손학규나 박지원처럼 겉으로는 FTA를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적극 저지에 나서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정동영, 이종걸, 천정배 같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오히려 예외적인 모습이었다.) 송영길과 안희정은 가만 있으면 나았을 것을 괜시리 한-미 FTA를 지지하는 발언을 던져 국민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송영길은 송도에서 영리병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안희정은 삼성과의 커넥션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야권통합에 나서는 적극성에 비해 한미 FTA 문제를 다루는 그들의
    태도는 소극적이기 짝이 없다. 이렇다할 발언 한 번 없을 정도.

  
  민주당만도 아니다. 문재인 전 수석은 그의 저서에서 한-미 FTA에 대해 '우리가 교섭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에 주눅 들지 않고 최대한 우리 이익을 지켜내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밝혔으며, 나꼼수에 출현해서도 노무현의 FTA는 이익균형이 맞았다는 논지의 주장을 했다. 물론 ISD나 역진방지, 네거티브 리스트 등 주요 독소조항들이 참여정부 때도 그대로 있었음이 밝혀진 다음에는 말을 바꿔 잘못되었다고 하긴 했다. (그렇지만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에 바빠서 한-미 FTA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이더라.) 유시민 전 장관 또한 FTA 정국 초기만 해도 '참여정부 때 간신히 맞춰 놓은 이익균형이 MB 정부의 재협상으로 인해 깨졌다'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또한 나중에는 잘못되었다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 정치권 외부의 '친노'라고 할 수 있는 김어준 딴지 총수나 조국 교수 또한 FTA 정국 초기에는 '노무현 FTA, 이명박 FTA'의 프레임으로 문제를 접근하다가 정국이 달아오르는 과정에서 입장을 바꾼 바 있다.

  물론 '그땐 잘 몰랐다가 지금에 와서 한-미 FTA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석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동영 의원이 FTA 정국 초기부터 명확하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한-미 FTA에는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위에 언급한 인사들의 모습은 미진해 보인다. (민주당의 대부분 의원들은 미진한 정도가 아니라 이들이 한나라당과 다른 것은 현재 야당이라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정도다.) 과연 이들이 지금처럼 진보정당이 앞에 나서 총대를 메고, 이에 호응해서 시민들이 한-미 FTA의 폐기를 요구하는 국면이 조성되지 않았어도 지금만큼 한-미 FTA를 반대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때 그 대답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든 민주당이든 '계급적으로' 서민의 편은 아니다.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이냐? 편가르기 하자는 거냐?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다만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한-미 FTA라는 적나라한 계급의 문제에서 드러난 모습을 볼 때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은 '계급적으로' 서민의 편은 아니다. 그들은 서민의 편을 자임하며 뒤로는 재벌 대기업과의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거나, 기껏해야 재벌 대기업과 서민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 하는 자들이다. (그들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그렇다는게 아니고, 집단으로서 그들의 정치적 위치가 그 정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민주화 세력이었지만, 사회 경제적 민주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추동할 정도가 되는 이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 필요한 '당파성', 즉,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 것인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곧,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을 때 서민의 편에 선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연대는 필요하다. 지난 4년간 당하면서 충분히 느낀 것처럼 MB와 한나라당을 지난 시절의 추억으로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칫하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던' 정치적 민주화마저 과거로 되돌아가게 생겼으니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무작정 통합, 무작정 단결만 외쳐서는 김대중-노무현 10년의 재판 이상은 될 수 없다. 그 당시에는 정권교체나 권위주의 타파 같은 의미라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그 시절로의 회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음 시대에는 서민의 편에 서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권을 우리가 필요로 한다고 할 때, 유권자들은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뭐야... 너도 엑스맨이야? 그럼 당신도?

  현실적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연대가 이루어지면 진보정당도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져가겠지만, 당장은 더 많은 지분을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같은 그 주변 인사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만, 현재의 정치현실을 고려할 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을 견인해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을 어느 정도까지 견인할 수 있다. 한-미 FTA 국면에서 민주당이 시늉으로라도 FTA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친노 인사들이 초기의 '노무현 FTA와 이명박 FTA' 프레임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99%가 끊임없이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에 '엄청나게 관심을 갖는' 자세를 다음 5년 동안 계속 유지해가야만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 되었을 때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바꾸는 작업을 선행해야겠지만.


앞 글에서는 나름 인터넷 유행어도 쓰고 그랬는데, 이번 글은 어쩐지 진지하게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인지 읽어보니 참 재미없구나...-_-;;; 
//

한미 FTA가 뭐길래 ① (부제 : It's class, stupid!)

Posted at 2011. 11. 22. 23:36// Posted in 시사
  결국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전격 날치기로 처리되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외국과의 조약에 대한 날치기 처리이며, 매우 이례적인 '비공개 본회의를 통한' 날치기였다. (누가 누가 찬성했나를 숨기기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YTN이 찍은 화면 캡쳐 하나로 다 뽀록났다. 뉘들 다음 총선 때 보자.) 사실 18대 국회는 '날치기 국회'라고 할 정도로 많은 날치기가 있다. 집권당이자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3년간의 예산을 모두 날치기로 처리한 바 있으며, 2009년에는 사전투표, 재투표, 대리투표 등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가며 미디어법을 날치기 처리했다.(이 때 헌재의 과정은 불법이 맞지만 결과는 인정한다는 판결은 지금 생각해도 예술이다.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에 이은 히트작)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국민이 과반수의 의석을 몰아준 것이 날치기 하라는 뜻인줄 한 모양이다.

http://khross.khan.kr/124 <<클릭 : 18대 국회 날치기 역사 요약  

  사실 이번 한미 FTA의 날치기 통과는 그 많은 날치기 중에서도 이례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미국간의 이익균형이 무너졌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가카도 '비준 후 ISD 재협상론'에서 보듯 일부 조항의 문제를 인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 FTA의 처리는 예산안과 달리 시한이 정해져 있는 문제도 아니며, 미디어법처럼 정권재창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둬가며 날치기 처리를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BBK나 천안함 등의 문제에 미국이 키를 쥐고 있기 때문에 '가카'의 입장에서 미국에 선물을 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일리는 있어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닌데 ...) 그리고 단지 그것만 이라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까지 저렇게 나설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설마 진짜 저축은행으로 발목잡힌 거?)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한미 FTA 규탄 시위대가 물대포를 맞고 있다. 저기에 갔어야 하는데
 몸이 완전치 않은 상태라 못간게 한이라 이렇게 글질이라도 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의 본질을 살펴보면, 그것이 한나라당의 다른 날치기들과 매우 일관성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간 이익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 자본의 이익과 서민의 이익이 충돌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미디어법은 거대 언론 재벌의 방송진출을 보장해준 법안이며, 3년간의 예산 날치기 처리에서 주로 문제가 된 것은 서민/복지관련 예산의 축소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에 한미 FTA와 함께 처리된 법안 중에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끼어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한미 FTA가 한-미간의 문제가 아닌 재벌-서민 간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좀 디벼보자. 많은 사람들이 ISD 이야기를 하며 '사법 주권을 통째로 넘겨준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 나라의 투자자도 미국을 재소할 수 있다. 우리 투자자의 권리도 보장하는 것.' 이라고도 한다. 이것도 일단 일리는 있어 보인다. 여기서 양국 간 힘의 차이, 다국적 기업의 파워 차이 등등을 논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은 '투자자의 권리'라는 부분이다. ISD의 쌍방은 '투자자'와 '국가'다. 즉, 국가의 규제 정책이 투자자의 이익을 훼손할 경우 투자자가 재소할 수 있다는 것이란 말이다. 그럼 생각해보자. 국가가 왜 규제를 할까?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 약자, 즉 서민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서 혹은 공공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서이다. SSM 관련 법안이나, 공정거래법 같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럼 투자자는 누구일까? 옆집 사는 김씨 아저씨가 미국에 투자하거나, 볼티모어에서 그레이하운드 타고 뉴욕에 가서 'Occupy Wall Street'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배관공 스미스씨일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 나라를 재소까지 한다는 생각을 하는 투자자가 그렇지는 않을거다. 론스타나 맥쿼리 같은 거대 금융자본이라고 봐야지. 한국에서는 삼성이나 현대차 정도는 되어야 미국느님 땅에 투자도 좀 해보지 않겠는가. 결국 ISD는 김씨 아저씨와 배관공 스미스씨의 권리를 제한하고 '먹튀자본' 내지는 '재벌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입을 쉽게 알 수 있다.

  '에이, 재소할 수 있다는 거지 그걸 설마 일일히 재소야 하겠어?', '투자자가 승소한 경우도 별로 없다던데?', '공공정책은 대상이 아니라던데?'라는 쓸때 없는 걱정을 하시는 김씨 아저씨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실재로 제소가 이루어진 볼리비아 수도민영화까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SSM 관련 법안에 외교부가 '한-EU FTA와 충돌해서 안됨'이라는 의견을 냈다는 이야기나, 4대강 공사로 늘어난 중장비의 사후관리를 위해 규제를 도입하려던 시도가 역시 외교부의 '한-미 FTA에 위배되서 안됨'이라는 의견으로 무산되었다는 이야기(외교부는 어느 나라 조직이야?)를 봐도 한-미 FTA가 어떻게 작용할 지 알 수 있다. 한-미 FTA는 정부의 공공정책 확대를 싫어하는 국내외의 세력들에게 훌륭한 명분을 제공해준다. 요즘 여기 저기서 복지, 복지 하는데, 한-미 FTA를 통해 보수의 꼬깔콘까지 나서지 않아도 복지제도 도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는 미국의 거대자본 뿐 아니라 한국의 재벌들도 적극 환영하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 수출해야 하는데 당연히 환영하는 거 아니냐고? 그건 일부분일 뿐이고, 실재로 한-미 FTA의 수출진작 효과는 그다지다. 기껏해야 자동차 정도인데, 사실 자동차는 관세율도 낮고 현지 생산이 많아서 큰 효과도 없다. 그나마 그 관세 철폐도 가카가 통크게 양보해서 유예되어 버렸고. 재벌들이 FTA를 환영하는 이유는 이 조약을 통해 복지국가에 '빅엿'을 먹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무상급식을 마지막으로 복지 확충은 영영 바이바이일지도 모른다.

  재벌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보자. 한국의 재벌 of 재벌 하면 역시 건희 아저씨가 버티는 삼성이다. 한국의 재벌 of 재벌답게 삼성이야말로 한-미 FTA를 가장 환영하는 집단이다. 다른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복지국가에 빅엿을 먹이는 효과는 기본으로 깔고, 거기에 보험과 영리병원을 얹으면 삼성의 트리플 크라운이 완성된다. (민주당의 배신자 김진표와, 외교통상위 위원장 남경필이 괜히 삼성의 도시, 수원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게 아니다.) 알다시피 FTA는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짓는 것을 허락하고 있으며,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김씨 아저씨의 의료보험증을 여기서는 안받는다는 말이다. (물론 요즘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지만...) 그럼 그 어마어마한 병원비는 어쩌나? 복제약 사용이 제한되어 (역시 한-미 FTA의 내용 중 하나다) 훌쩍 뛰어오른 약값은 어쩌고? 방법은 있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생명의 사보험을 드는 것이지. 물론 보험금은 비싸다. 사보험은 회사에서 돈 안내주거든. 이렇게 삼성은 '삼성의료원'을 레버리지로 영리병원에서 꿩먹고, 삼성생명/화재를 통해 알먹는다. 우리집이 송도도 아닌데 그 병원 안가면 된다고? 영리병원으로 인한 병원비 상승은 당연히 일반 병원의 병원비 상승에 명분을 제공하게 될 것이며, 한 번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당연지정제는 점점 더 큰 구멍이 뚫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을 안받겠다는 병원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이야기지. 이게 바로 '의료 민영화'다. 물론, 영리병원이 당장 의료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가는 것은 틀림없으며, '미끄러운 비탈길'을 타고 미국의 의료체계에 가까워질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다. 역시, 이건희 만세다.

  잘 알다시피 가카는 전봇대 뽑기에서 시작해서 3년간의 예산 날치기, 부자감세, 고환율 정책 등 일관되게 재벌 대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정책을 써왔고, 한-미 FTA의 날치기 통과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로 인해 피를 보는 것은 나나 당신 같은 서민들이고, 이익을 보는 것은 미국의 다국적 자본과 한국의 재벌 대기업이다. 이것은 이익균형의 문제도 아니며, (그런 성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평등 조약의 문제만도 아니다.

  이것은 결국 '계급'의 문제이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지지층에 대한 철저한 헌신'과 '일관성'만큼은
          가카를 따를 사람이 없다. 이런 건 본받아야 한다.


... 2편에서는 일관성 있는게 가카뿐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2편 보기 : 2011/11/24 - [시사] - 한미 FTA가 뭐길래 ② (부제 : It's class, stupid!)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묘한 불편함  (4) 2011.11.30
한미 FTA가 뭐길래 ② (부제 : It's class, stupid!)  (0) 2011.11.24
패권주의와 오만함  (0) 2011.08.21
오디션의 두 얼굴 - '나는 가수다', '신입사원'  (0) 2011.03.07
어부의 삶  (0) 2011.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