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 노동자 치유센터 '와락'

Posted at 2011. 10. 20. 14:16// Posted in 연대
주진우 기자가 나꼼수 엔딩에서 언급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심리적 내상 치유를 지원합니다. 쌍용차는 2년 전 대규모 정리해고로 2500명이 해고되었고, 그 중 17명이 이미 자살했으며, 70%가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돈 몇 푼 보내는 것이 나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는 절대 이야기할 수 없지만,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려고 합니다. 당장 달려가서 허드렛일이라도 거들지 못하는 것이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인증샷 첨부합니다. 후원계좌는 첨부에도 나와 있지만, "농협 301-0089-4121-21 심리치유센터와락"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참가했으면 하는 마음에 공유합니다.


 

'연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능 학습지 노조 농성장 방문기  (0) 2011.11.25
홍대 청소노동자  (0) 2011.01.11
//

패권주의와 오만함

Posted at 2011. 8. 21. 22:45// Posted in 시사
2011년 8월 21일 현재 나의 페친은 180명이다. 그 대부분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가 온라인으로 넘어온 케이스지만 일부는 페이스북에서만 알고 있는 사람(즉, 오프라인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도 있다. 그 대부분은 오프라인에서 내가 찾아가거나 초대받아 가입한 모임의 구성원들이며, 그 중에는 일정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이들이 구성한 모임도 있다. 물론 내가 성향상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요즘 언론에 종종 나와서 한 번 들먹여 본다.) 같은 모임에 가입할 리 없으니, 그 모임의 '일정한 정치적 지향'은 (일반적인 한국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 구분 방식을 기준으로) 진보이거나 최소한 자유주의적인 성향이다.

오늘 그렇게 페친을 맺고 있는 분들 중 한 분의 포스팅에서 (적어도 내게는) 매우 충격적인 문구를 봤다. 직접 인용하자면 이렇다. "...(전략)...작년 선거의 재판이 되는 것을 서울시민과 국민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류의 행보는 저부터서 더 이상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 전체의 내용은 오세훈 시장은 주민투표의 정족수 미달로 물러나게 될 것이며, 이 자리에 범야권 후보가 당선되게 되면 그 자체의 의미는 물론,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도 범야권 통합의 훌륭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지만, 이 글에서 내게 충격을 준 부분은 위에 직접 인용한 부분이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언제부터 공당의 지방자치단체장 후보가 선거를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것이 'ooo류의 행보'로 (부정적 뉘앙스를 가득 담고) 표현되어야 하는 일이 되었으며, 언제부터 '용납' 또는 '용서'를 받아야 하는 행위가 되었는가? 저 글을 쓰신 분은 국민으로부터 무슨 엄청난 자격을 부여받았기에 자신의정치적 권리를 행사한 후보자를 '용서하고 말고'한다는 것인가?

만약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범야권이 단일후보에 합의했고, 그 단일후보로 한명숙 전 총리가 선출되었는데, 노회찬 전 대표가 이에 불복하여 출마하기라도 했다면 이는 비판받을 수 있는 일이고, 생각하기에 따라 '용납' 혹은 '용서' 같은 단어가 언급될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진보신당은 민주당과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바 없으며, 공당으로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선거를 완주했다. 누가, 무슨 근거로 그의 완주를 비난할 수 있는가? 당선 가능성도 없는데 왜 완주했냐고? 언제부터 민주국가의 선거가 당선 가능성 1, 2위 후보만 출마해야 하는 선거가 되었는가?

물론 그 분의 포스팅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표차는 약 3만표 수준이었고, 노회찬 후보의 득표수는 약 14만표였으니 노회찬 후보가 완주하지 않았더라면 정치적 성향상 노회찬 후보의 표 중 상당수는 한명숙 후보에게 갔을 가능성이 크고 그랬다면 오세훈의 '세빛둥둥섬'이라든가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같은 눈꼴사나운 짓거리는 보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어찌 본다면 노회찬 후보의 완주는 전략적인 견지에서 패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교훈삼아 만약 서울시장 선거를 다시 하게 된다면 단일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범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의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일방적으로 노회찬과 진보신당의 탓으로, 나아가 한명숙의 낙선을 노회찬의 탓으로 모는 것은 패권주의적이다 못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류의) 파시즘의 냄새까지 난다. 만약 민주당(혹은 참여당, 혹은 이전의 열린우리당)과 그 지지자들이 진정성 있게 정당 간의 통합 내지는 선거연합을 모색하고 싶다면 이런 식으로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상대적 약자인 진보정당의 책임으로 모는 태도는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패권주의 적이고 오만한 자세야말로 합당 또는 단일화가 실패할 수 있는 첫번째 이유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로의 회귀'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이며, 이를 위해 반 한나라당 진영은 일치 단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라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들은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정조 이래 최초로 집권한 비 보수세력'으로서 개인적으로 존경할 만한 분들임을 물론 정치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분들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분들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문제들이 잉태된 것도 사실이다. 현재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들이고 있는 김진숙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크레인에 올랐지만, 그에 앞서 크레인에 올라 목을 매달았던 김주익은 노무현 정권하에서 목을 매달았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위장도급이 인정되어 직접고용 가능성이 열린 KTX 여승무원의 문제가 발발한 것도 노무현 정권 하에서 생긴 일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역량의 한계든, 진보성의 한계든, 혹은 다른 어떤 문제든 간에 그 정권 하에서 빈부차는 극심해지고 비정규직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정리해고는 난무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현재 반 한나라당/반 이명박 전선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안에는 김대중/노무현 너머를 고민하는 정치세력이 살아있어야 하며, 이를 전제로 한 연합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현재 민노당 일각의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미지근하고 참여당과의 통합에 적극적인 움직임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다.)

나도 금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통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자리에 야권단일후보가 나서 당선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년 총선에서 범야권의 선거연대가 이루어져 한나라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기를 희망하며, 나도 정권교체를 희망한다. 하지만 정말로 이를 희망한다면 민주당은 패권주의를,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오만함을 우선 내려놓아야 한다. 거기서 모든 것이 출발할 수 있다.
//

퇴사의 이유

Posted at 2011. 3. 24. 14:45// Posted in 성찰

이 결심을 하고 수도 없이 떠올랐던,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회사를 박차고 나갔다가 실패한 회사원들의 이야기였다. 누구는 뭘 한다고 나갔다가 말아먹고 다시 돌아왔다더라, 그래도 돌아온 건 운좋은 케이스고 중소기업으로 다운그레이드해서 들어가거나 한 경우가 태반이더라. 누가 널 좋게 봐주는게 니가 속한 조직 때문이지 너 때문인줄 아냐 나가면 바로 허허벌판에 홀로서는 거다....

그렇겠지. 나라고 그런 고민 안해봤겠나. 가진 재주도 없고 리얼월드에서 맨몸으로 사람들과 부딪혀 본 적도 없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처럼 자랐지 않나.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다니면서 남들 하는대로 공부하고 덕분에 괜찮은 대학가서 졸업하고, 남들처럼 취직해서 살아온 삼십 몇 해 삶에 뭐 대단한게 있었겠어. 회사 짤리는 순간 갈 대 없는 백수되고 뭐 해보려다가 그나마 있는 돈 날리고 거지되기 십상이겠지.

그래도 싫었다. 이대로 사는 건 싫었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용기가 없어서, 가지고 있는 기득권 한 줌 포기하기가 싫어서 내가 아니라고 여기는대로 살기는 싫었다. 나이 사십 될 때까지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 그 땐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게 거지되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뭐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나의 삶의 공유자, 영원한 파트너인 아내가 나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줬고, 그래서 용기가 났다.

회사 그만둔다고 말하면 들은 사람의 반응은 크게 두 개다. "뭐할건데?" 혹은 "와... 부럽다... 근데 뭐할건데?" 같은 반응 같지만 다르더라. 전자는 시니어, 후자는 주니어... 아 주니어들이 회사에 참 만족을 못하는구나. 나 뿐이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많은 동기, 후배들이 나보다 더 착잡해하더라. 그들의 삶도 뭐 나랑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렇겠지.

반응이야 어쨌는 저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해야 하는데, 대답거리가 시원치 않았다. "공부하러 가요." 아니면 "다른 회사 가요."라고 할 수 있으면 수월할텐데 그게 아니니까. 어쨌든 밥벌이는 할 생각이라 "사업할거에요."하면 또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무슨 아이템?" "그게 아직 미정이에요."까지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해진다. "얘 뭐지?" 뭐 이런 표정. 하지만 그게 팩트인걸 어쩌나. 그나마 연차가 비슷한 동기/후배들은 좀 이해하는 것 같더라.

사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결심에서 더 중요했던 것은 "퇴사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퇴사 그 자체였다. 대기업의 말단 직원으로 있는 현재 상태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당연히 그냥 회사 다니는 게 싫어서는 아니다. 좀 더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먹은 것이었다. 나에겐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나답게 산다는 게 뭘까? 사실 지난 몇 해 동안 내가 제일 많이 했던 고민이었다. 근데 이걸 명확히 잡는게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현재의 내 삶에서 '나답지 못한 요소들'을 찾아내서 없앤다면 그것이 명확히 '나답게 사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내 삶을 현재보다는 나답게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서 나답지 못한 첫번째는 '대기업 직원'이라는 사실 그 자체였다. 나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 중 아주 많은 부분이 '거대 자본의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는 현실'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하는데, 나 자신이 그 거대자본의 일부분으로 복무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첫번째 문제였다. 좀 더 손에 와닿는 이야기로 하자면 반도체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데도 산재조차 인정치 않으려고 하는 어떤 회사를 불매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 회사에서 나온 상품을 좀 더 잘 팔기 위해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내 삶을 꼬이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는 옳다고 믿는 바대로만 살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을 야구배트로 패면서 매값을 던져주는 이들을 위해 손발을 놀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을 넘은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부분은 그동안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 지금도 우리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료들을 모독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과 고민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니까... 그 정도로 이해해주길.)

내 삶에서 나답지 못한 두번째는 '분업'이었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한 사람은 돈을 벌고 한 사람은 육아와 살림을 맡는 분업이 일어났다. 어느 쪽이 더 힘든지를 떠나서 (사실 애 보는게 더 힘들다. 이건 명확하다. ㅋ) 이 분업 자체는 나의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와 나 사이에 이해의 균열을 가져왔다. 나는 나대로 회사에서 시달리면서도 나름 집에도 신경쓰려고 하는데... 하면서 서운해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하루 종일 휴식도 없이 애만 보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있는데... 하면서 서운해했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의 성격상 이 문제가 계속 악화만 된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인 문제요인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남자는 돈벌고 여자는 애본다는 고래로부터의 공식을 내가 차곡차곡 따라간다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 다 일을 하고 애는 돈써서 기르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부부는 우리가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

내 삶에서 나답지 못한 세번째는 '과로'였다. 나는 인생의 행복은 하루하루의 행복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먼 미래의 어느날 아마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 경제적 안정을 위해 현재의 하루하루를 희생하는 것은 내 평소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 뭔가 잘못된 것이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남의 눈 의식 안하고 살면 되는 건데, 그걸 못해서 꾸역꾸역 야근하고 주말근무해야 하는 삶이 싫었다. 물론 회사를 나이롱뽕으로 다니는 방법도 있긴 하겠지. 근데 그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방법이다. 차라리 내 일을 하면서 정해놓은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충분한 휴식과 여가와 가족과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지 않을까?

이 세가지의 문제를 꺼내놓고보니 대안은 명확해졌다.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물론 회사 그만둔다고 다 해결될 리는 없다. 대기업을 그만둔다고 해도 장사라도 하나 하려고 치면 자본과의 관계를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고 있으니까. 아내는 휴직중인데, 그 기간이 끝나면 역시 '분업'이 전과는 반대의 역할로 나타날 수 있다. 장사든 사업이든 내 일을 하면 어쩌면 월급쟁이보다 더 바빠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들을 모두 고려해야겠지만 그래도 출발점이 여기 - 퇴사 - 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여기서 출발해서 '나답지 못한 요소들'을 줄여 나가고 반대로 '나다운 요소들' - 이를테면 사회/정치적인 활동이나 혹은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 을 조금씩 더해 나갈 때 내 삶이 더 빛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지금도 불안하다.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 의심할 때도 많다. 내가 철이 없어서, 세상 험한 걸 몰라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다. 나는 적어도 뭔가를 하고 있으니까. 누가 시켜서도 아닌 나 스스로의 고민과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성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수석  (0) 2012.03.30
교문  (0) 2012.03.19
正生加笑  (0) 2011.02.24
인생의 회의 (2)  (0) 2010.11.29
인생의 회의 (1)  (0) 2010.11.29
//

경쟁

  나는 경쟁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경쟁만큼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해주고 효율을 촉진하는 장치는 아직까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사회의 경쟁에 대해서는 몇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첫째, '경쟁'이라는 가치에 비해 '협력'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이 너무나 간과되고 있다. 둘째, 경쟁의 공정성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셋째, 너무 어린 나이부터 아이를 경쟁으로 몰아 넣는다. 넷째,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 중에서도 네번째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취약한 사회 안전망과, 'Winner Takes All'이 일반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경쟁에서 지면 죽는다.'는 공포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폭넓게 심어주고 있다. 해고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이라고 쓰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읽는다)한 13명의 쌍용차 조합원들과, 꿈을 쫒다가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친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모습을 보라. 이 같은 공포 속에 부모는 자식이 말을 떼자 무섭게 '영어유치원'과 같은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고, 아이들은 협력이나 우정보다는 경쟁을 배우며 자라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쟁은 그 경쟁의 승자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보다, 패자가 무엇을 잃을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그 경쟁의 정당성을 따지는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경쟁이 많은 경우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생존경쟁'이 사회의 화두라 그런지 요즘 TV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다.' British got talent나 American Idol 같은 프로그램을 카피한 '슈퍼스타K'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김재철 사장의 한 마디로 급조된 '위대한 탄생'으로 인기몰이를 하더니, 위대한 탄생의 시청율 상승에 자극받은 MBC가 마침내 자사의 간판 버라이어티인 일밤 전체를 두 편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채우며 절정에 이르고 있는 형세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슈퍼스타K', 현재 시즌3를 준비중이다

 그런데 이 두 프로그램은 '오디션' 형태를 Base로 한다는 점 말고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러니까 같은 일밤에서 운영할 수 있었겠지.) '나는 가수다'는 '노래'라는 현재 히트치고 있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본 소재를 차용하긴 했지만, '숨어 있는 고수를 찾아서 승자를 뽑는다'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식과는 반대로 '널리 알려진 고수를 경쟁시켜 탈락자를 선발한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신입사원'은 '아나운서'라는 독특한 소재를 차용한 반면 '승자를 뽑는다'는 공식에는 충실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경쟁의 결과가 참가자 - 특히,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 - 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패배했을지라도 타격이 적고 어떤 의미에서 참가만으로 이득인 측면도 있지만, 후자는 다른 기회를 봉쇄당할 수도 있고 참가만으로 원치 않는 부작용에 시달릴 수도 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획, '나는 가수다'

 '승자를 선발한다'와 '탈락자를 선발한다'는 차이를 얼핏 들여다보면 탈락자를 선발하는 방식이 더 잔혹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가수들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이들 중 하나가 탈락한다고 하더라도 그 실력 자체를 의심받거나 가수생명을 위협받는 일 따위는 당연히 없다. (어제 무대를 보았다면, 7등을 한 정엽씨의 실력의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경쟁에서의 패배는 탈락자에게 상처가 되겠지만, 누가 되었든 그 가수는 프로 중의 프로이며 따라서 충분히 이를 감수하고 더 좋은 무대를 준비해가는 채찍질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모인 멤버가 이런 정도의 가수들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여기에 뽑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실력에 대한 인증일 수 있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나는 가수다' 첫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환상적인 무대를 선사하고도 
  7위에 머물렀던 가수 정엽. 하지만 누구도 그의 실력을 의심하진 않는다. 


 게다가 이들은 아이돌들이 가요 관련 프로그램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에서 주말 황금시간대 공중파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그 뿐이랴, 시청자는 시청자대로 질 높은 공연을 즐길 수 있고 (평가단으로 뽑힌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시쳥률을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경쟁의 승자와 패자, 그리고 경쟁의 무대를 만든 이와 이를 지켜보는 이 모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기획이다. 물론 이들보다 더 무대를 찾기 힘든 실력파 인디밴드나, 아이돌이 아닌 신인 가수 등을 대상으로 비슷한 기획을 했다면 좀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시청률을 생각해야 하는 공중파 버라이어티 프로의 한계를 고려할 때 (넓은 의미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이 정도면 최선의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강자의 횡포, '신입사원'

 '나는 가수다'와 함께 새로운 일밤을 양분하고 있는 신입사원은 여러 의미에서 '나는 가수다'와는 다르다. 가수냐 아나운서냐, 채용이냐 탈락이냐와 같은 표면적인 차이 뿐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가수와는 좀 다르다. 물론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노출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런 까닭에 최근엔 '아나테이너'라는 말도 나왔지만), 아나운서는 기본적으로 '스타'이기 보다는 '언론인'이다. 언론인의 선발을 방송에 비춰지는 이미지만으로 한다는 것은 MBC가 언론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부분이다. 혹시 방송을 통해 '인기 있는' 아나운서를 뽑아서 언론인 보다는 대중문화 스타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시청율을 챙기면서 장기적으로 이들을 연예/오락 프로그램 MC 등으로 활용함으로써 출연료도 좀 아껴 보겠다는 얄팍한 수단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MBC 아나운서 공개채용 신입사원. 나이, 연령, 학력을 파괴하고 '국민을 닮은' 아나운서를
뽑겠다는 그럴싸한 타이틀과는 달리 실제로는 강자의 횡포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생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강자의 횡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수를 뽑는 오디션과 달리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은 참가자(중 탈락자)의 '다른 기회'를 봉쇄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MBC 아나운서 오디션의 16강쯤에서 탈락하고 그 탈락 사실이 공중에게 알려진 이는, 그런 일이 없었을 때보다 KBS나 SBS의 아나운서로 채용될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KBS나 SBS 입장에서 'MBC의 탈락자를 채용했다.'는 이야기가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MBC는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 특성상 발생할 것이 틀림 없는 부작용인 속칭 '신상이 털리는' 일을 예견한 듯 참가자에게 초상권,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할 것을 서약하도록 만들었다. 따져보면 따져볼 수록 지원자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방송사'라는 '아나운서 지망생'에 대해 절대적으로 '갑'인 존재가 아니라면 유지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물론 MBC 입장에서는 항변할 수도 있다. '그게 마음에 안들면 지원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닌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견강부회일 따름이다. 기자, PD, 아나운서가 되는 일은 속칭 '언론고시'라고 불리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위해 몇 년씩 준비를 한다. 그리고 공중파 방송인 MBC의 아나운서는 이들에게는 수년간 꿈꿔왔던 '꿈의 직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MBC가 강자의 횡포를 부린다고 해서 그 기회를 포기할 수 있을까?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울며 겨자먹기로 참가하게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과연 이들에게 진정으로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MBC가 '공영방송'임을 자임한다면, (물론 최근 재선된 사장의 모습을 보면 '공영방송'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시청률과 수익성을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직원이 될 지도 모르는 이들의 입장을 좀 더 고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다른 '강자'들이 그렇듯, MBC도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것만 생각했지 그 '힘'으로 인해 눈물을 쏟을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나는 가수다'가 끝나고 나면 채널을 돌리는 이유이다.
 

//

[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Posted at 2011. 3. 4. 11:25// Posted in 감상
 
도시생활자의정치백서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일반 > 정치일반서
지은이 하승우 (북하우스, 2010년)
상세보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전 남긴 말 중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말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는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군사정권 시절 자신에게 붙여진 칭호를 응용하여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惡의 편"이라는 말을 남겼다. 어느쪽이늗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하게 권력이 사유화되고 있는 현실을 깰 방법은 시민 - 혹은 인민 - 들의 정치적 행동임을 말하고 있다.
노무현 / 대통령
출생 1946년 09월 90일
신체
팬카페 노무현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 ( 노사모 )
상세보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라고 그는 남겼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꽤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시민이라고 해도 몇 년에 한 번씩 하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나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에 대한 후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단지 선거에 참여해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혹은 자신이 낙선시키고 싶은 후보를 낙선시킬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선거'라는 판은 그 판 자체가 이미 그들의 사유물화 된지 오래이고, 따라서 그들이 만든 playground에서 뛰어 노는 것만으로 판 자체를 바꾸기는 힘든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훌륭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는 그런 종류의 무력함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게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선거/정당/NGO/여론형성/시민불복종 등의 챕터로 나누어 각각에 있어서 일반적인 시민이 어떻게 행동하면 '정치'라는 장에 참가할 수 있는가를 마치 매뉴얼처럼 제시한 이 책은, 정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 알고 있었던 이야기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뭐했던 부분을 긁어준다. 김치찌개에 김치와 조미료가 들어가는 지는 알았지만 감히 요리할 엄두는 못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물은 얼마나 넣고 국물 맛은 어떻게 내며, 신김치국을을 잔뜩 넣으면 더 맛이 좋고, 참치를 넣을 생각이면 참치기름에 김치를 볶는 것도 괜찮다...는 식의 레시피를 알려준달까.

뉴스뱅크F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투표 말고도 한 수 있는 건 많다. 시간과 노력을
조금만 들인다면 말이다...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단지 읽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뭐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고서는 의미가 반감 정도가 아니라 급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일독해보고 내 주면의 작은 것으로부터 실천해보면 어떨까? 시민/사회단체를 찾아서 연대한다든지, 내 정치적 색체에 맞는 정당을 찾아 당원으로 가입해서 당원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나부터도 해야 하는 일이긴 하다...^^;
//

어부의 삶

Posted at 2011. 2. 25. 11:04// Posted in 시사
한 미국인 관광객이 멕시코의 작은 어촌에 도착했다. 그는 마을의 머부가 잡은 크고 싱싱한 물고기를 보고 감탄했다.

"그거 잡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멕시코 어부 왈,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러자 미국인이 재차 물었다.

" 왜 좀 더 시간을 들여 물고기를 잡지 않나요? 더 많이 잡을 수 있을텐데...."

멕시코 어부는 적은 물고기로도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충분하다고 했다.

"그럼 남은 시간에는 뭐하세요?"

"늦잠 자고, 낚시질 잠깐 하고, 애들이랑 놀고, 마누라하고 낮잠 자고... 밤에는 마을에 가서 친구들이랑 술 한잔 합니다. 기타 치고 노래 하고... 아주 바쁘지요...."

미국인이 그의 말을 막았다.

"사실 제가 하버드 MBA입니다. 제 말 들어보세요! 당신은 매일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낚시질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더 많은 수입이 생기고 더 큰 배도 살 수 있겠죠. 큰 배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배를 몇 척 더 살 수 있고, 나중에는 수산회사도 세울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 조그만 마을을 떠나 멕시코시티나 LA, 아니면 뉴욕으로도 이사할 수 있다구요!"

이번엔 어부가 물었다.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걸리죠?"

"20년..., 아니 25년 정도요."

"그 다음에는요?"

"당신 사업이 진짜로 번창했을 때는 주식을 팔아서 백만장자가 되는 거죠!"

"백만장자?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은퇴해서, 바닷가가 있는 작은 마을에 살면서, 늦잠 자고 아이들이랑 놀고, 낚시질로 소일하고, 낮잠 자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 술 마시고 친구들이랑 노는 거죠!"

출처 : 인터넷에는 LG 경제연구원의 "2010 대한민국 트렌드"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만든 이야기 같지는
         않으니 다른 1차 출처가 있을 듯...
-------------------------------------------------------------------------------------------------

인생의 행복은 하루하루의 행복의 총합이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막연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것을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요구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현명한 일일까.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지 내일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긴...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사회의 특성상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간직하고 사는 것이 당연한 지도...
//

正生加笑

Posted at 2011. 2. 24. 10:13// Posted in 성찰

얼마 전에 본 TV 프로그램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으로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에 익숙해질 것,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 것. 물론 전자는 한국사회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해야 하는 현실과 다소간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냥 '너무 많이 가지려고 버둥거리지 말 것'이라는 의미정도로 해석한다면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내가 전부터 생각해온 행복한 삶, 가치 있는 삶의 조건도 두 가지다. 正生加笑. 바르게 살 것, 그리고 거기에 웃음을 더할 것. 행복하고, 가치있는 삶을 사는 데는 그렇게 많은 물질도, 그렇게 높은 지위도 필요치 않다. 바르게 살고 웃으며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된다. (물론 양심을 지키고, 웃으며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질이 필요하다. 이 사회의 문제는 그런 최소한의 물질조차 박탈당하는 너무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리라...)


'성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수석  (0) 2012.03.30
교문  (0) 2012.03.19
퇴사의 이유  (3) 2011.03.24
인생의 회의 (2)  (0) 2010.11.29
인생의 회의 (1)  (0) 2010.11.29
//

지식채널e - 눈물의 룰라 (2011-01-25일 방영)

룰라는 대통령 당선과 함께 일정 정도의 '우클릭'을 통해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냈다. 그는 노무현 정무와 마찬가지로 '온정주의적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을 걸었지만, 노무현 정부보다는 더 효과적으로 하층민에 대한 지원을 펼쳐서 빈곤퇴치에 불평등 해소에 성공적이었으며, 그의 당선 시에 우파들이 퍼부은 비난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물론 브라질의 빈부차가 워낙 커서 시혜적 복지 정책 자체가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은 노무현 정부와는 환경적 요인에서 다른 점인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그는 퇴임 시까지 80%의 지지율을 간직한 채로 노동자당 후보인 호세프에게 정권을 인계한다.

노무현 정부가 조금만 더 노무현 전 대통령 그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정책을 펼쳤더라면 (혹은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룰라도 야당시절보다는 우클릭했지만, 적어도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 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울 따름.

//

감상 : 김대중 자서전을 읽고

Posted at 2011. 1. 19. 17:02// Posted in 감상

  내가 올해 세 번째로 완독한 책 (두 권짜리니 권수로는 네 권이구나)은 '김대중 자서전'이다. 나는 본래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약간 있는 관계로 자서전은 잘 읽지 않는데 최근 몇 개월간 두 편의 자서전을 읽었다. 하나는 몇 개월 전에 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 였고, 다른 하나는 이 책이다. 최근 서거한 두 분의 대통령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이렇다 할 평전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서전을 읽었다. 운명이다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이 책을 읽을 때도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나는 이 사람에 대한 호(好)든 오(惡)든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할 것, 또 하나는 자서전임을 감안하여 필터링하며 읽을 것. 이 두 자기를 놓치지 않아야 의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대중 자서전'은 상당한 두께에 두 권으로 된 책이다. 1권은 출생부터 대통령 당선까지를, 2권은 대통령 시절과 퇴임 후를 다루고 있다. 두께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는게 책장이 정말 쉽게 넘어간다. 소설책 - 중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작 같은 것 말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파블로 코엘류 류의 가벼운 소설책 - 읽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다. 더구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약간 있고, '국민의 정부' 시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책 읽는 속도는 더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얇지 않은 책을 쭉 읽어가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이렇게 한 사람의 일생에 다 담겨 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많든 적든 시대 상황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는 줄곧 역사를 만드는 사람의 위치에서 그 많은 사건들을 정면으로 맞이하며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온 경우다. 그에 대한 공과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의 삶 전체에서 드러나는 역사를 대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진정성만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울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우선 (이건 '운명이다'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보수언론의 강력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나는 보수언론이 제시하지 않는 Agenda도 많이 접하는 편이고, 그들이 보도하는 내용을 대체로 의심하며 살아온 편임에도, 보수언론이 그려 놓은 김대중/노무현의 모습에 의해 실제 그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언론에서 다루는 그들보다 그들의 자서전에 그려진 그들은 더 오른쪽에 있었고, 덜 부패했으며, 더 현실적이었다. 좋고 나쁨을 떠나 보수언론의 힘이 (나같은 사람에게조차) 인식을 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섬뜩하게 다가왔다. 이제 종편까지 선정되었으니 이들이 어디까지 갈까... 인터넷, SNS가 이들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이 꼬리를 잇게 된다.

   또 하나는 대통령의 힘이 생각보다는 훨씬 제한적이라는 부분이다. 물론 이건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여러 경로로 한 생각이었지만, 한국사회처럼 수구/보수 진영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사회에서 한 사람의 소수파 대통령의 - 더구나 5년 단임으로 그쳐야 하는(물론 요즘에는 왜 3년 단임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 역량이 사회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제한적이다. 비단 대통령의 정적들 뿐 아니라 대통령의 주변 사람 조차도 때로는 집권자의 의도를 곡해하고 거부하는 일이 잦다. 그러니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부분이고 장점이기도 한데, 어떤 경우에는 아쉬운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시스템과 토대의 변화가 필요한 것일게다.

   마지막으로 '어떤 악정도 처음에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신자유주의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세계화'는 필연이고 '지식사회/금융중심경제'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며, '복지'는 필요하지만 '생산적 복지' - 다른 말로 하면 사회투자국가론 - 가 21세기 형 복지의 대안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에 근거한 그들의 정책은 공기업 민영화, 생활의 금융화, 노동시장 유연화, 자본 이동의 자유화, 보편적 복지의 실종을 낳았고, 결국은 금융 부문의 취약성을 증가시키고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OECD 국가 중 가장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나라, '88만원 세대'라는 말로 대표되는 청년에게 희망이 없는 나라의 단초는 불행하게도 민주정부 10년에서 시작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은 사실이고, 우리가 반MB 뿐 아니라 beyond 김대중/노무현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이제 반 년 가량이 지났다. 2011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존재는 척박한 한국 정치에 소중한 자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독재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은 민주화의 투사였으며, 한국경제가 가장 위급한 순간에 등판에서 위기를 넘긴 구원투수였고, 한반도에 평화의 싹을 심은 지도자였다. 그의 아쉬운 부분은 뒷 세대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지, 한 평생 치열하게 살았던 그를 비난해야 할 무엇을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가 생전에 바랐을 대로 천국에 갔다면, 고단했던 이승에서의 삶일랑 모두 잊고 편안히 쉬시길...

//

홍대 청소노동자

Posted at 2011. 1. 11. 14:51// Posted in 연대
한 사람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이야기하려면 지금 그 사람의 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조망해야 하는 것처럼 (나의 경우는 오랜 술사랑이 야기한 위염과 식도염이겠지...;;;), 한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 이야기하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조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1년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이 한 둘은 아니겠지만,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문제는 분명이 이 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링크는 이미 1월부터 진행중인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에 대한 기사)
아침에 출근해서 이런 뉴스보다 아시안컵 축구 뉴스를 먼저 찾아본 자신에게 잠시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바로 일을 시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정녕 없는 것이냐!!! -_-;;)

너무 늦게 하는 참가가 아니길...
혹시 동참을 원하시는 분은 첨부된 사진의 계좌 또는 물품을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 홍익대학교 문헌관 1층 이재용 앞>으로 보내면 된다고 한다.

 

'연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능 학습지 노조 농성장 방문기  (0) 2011.11.25
쌍용차 해고 노동자 치유센터 '와락'  (0) 2011.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