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라는 국가명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공산주의, 독재정권, 통제/폐쇄사회, 야구,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좋은 관광지, 체게바라의 나라(실제로 체는 아르헨티나인이지만) 정도의 이미지들이지 않을까?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남한사회의 특성상 쿠바라는 나라에서 북한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고, 북한이 대다수의 남한 사람에게 인식된 상태를 고려할 때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이 책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는 그런 쿠바에 대한 이미지를 일정하게 깰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일본인 농업전문가이며 노무현 대통령의 애독서 중 하나였다는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역시 쿠바에 대한 책이다)을 저술하기도 한 작가가 수차례 쿠바를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책은 쿠바라는 나라를 비교적 균형 잡힌 시선에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쿠바를 보는 시선이 균형을 상실하고 있기에, 저자의 시각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던 '북한 바로알기' 운동을 보며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주도한 혁명을 통해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혁명정부를 수립하고, 자본주의의 총본산인 미국의 코앞에 자리한 작은 사회주의 국가로써 (마치 북한처럼) 미국의 지독한 경제적·군사적 봉쇄 속에서도 현재까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여러모로 북한과 겹치는 역사적 상황 탓에 우리가 막연히 가진 쿠바에 대한 이미지는 정치적 통제, 경제적 궁핍, 문화적 획일성과 같은 것일 테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쿠바의 모습은 좀 다르다. 쿠바는 여느 소규모 공산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80년대까지 소련의 원조에 상당부분 의존한 체제를 가지고 있다가 소련의 원조가 끊어지며 석유를 비롯한 자원의 지독한 결핍과 그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 대안체제를 고심해야 했는데, 그 결과물에 저자의 전작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서 다루어진 것과 같은 생태주의적 자급 농업체제였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결과 지구환경의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하면서 동시에 의료, 교육 등 인간개발지표를 충족시키는, 두 가지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책은 주로 쿠바의 주택, 농업, 재해방지, 문화의 측면들을 다루고 있는데,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강요된 측면은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나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고(즉, 연료소비를 최소화하고), 주민의 참여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을 정책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다. 경제성장만을 절대선으로 여기고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를 최대의 미덕으로 알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기에 더욱.

                               아마도 쿠바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인물일 체게바라의 초상

  물론 그렇다고 쿠바가 무슨 지상낙원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쿠바라는 나라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이 왜곡된 측면이 있기에 그에 비하면 위의 성과들에 눈이 휘둥그레 해질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글 중간 중간에 쿠바사회가 가진 문제점들도 꾸준히 서술하고 있다.(그래서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말한 것이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의례히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관료제의 폐해라든가 시장의 부재로 인한 자원 배분 최적화의 실패 등은 이 책 여기저기서 제시되는 문제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전시회가 허가되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의 - 통제사회의 성격을 일정부분 보이고 있는 것도 우리가 가진 공산주의에 대한 편견을 일정부분 만족시킨다. 특히 최근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태환페소와 쿠바페소의 이중통화 문제로 태환페소를 구할 수 있는 쿠바인과 그렇지 못한 쿠바인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나쁜 쪽으로)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경제적 풍요’라는 측면에서 - 달리 말해 GDP와 같은 국가 경제를 양적으로 측정하는 지표에 있어서 - 어느 정도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쿠바의 그런 측면들을 들어 ‘예상대로 우리보다 열등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쿠바의 GDP가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는 하지만 쿠바 사람들은 의료나(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쿠바의 의료수준은 매우 높다.)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를 무상으로 누릴 수 있으며, 빈부 차이가 존재하고 점차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지만 낙후되고 초라한 집일망정 누구나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인터넷이나 예술작품을 통해 정부를 비판한다고 (전시회는 열지 못해도) 잡혀가는 일은 없다.(쥐그림 사건이나 박정근씨 사건과 비교해보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피델 카스트로의 장기집권과 그에 이은 라울 카스트로의 집권이나 다당제 같은 대의기구가 발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쿠바는 ‘비민주적인 독재국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사회의 각 제도의 구축과 실행에서의 활발한 주민참여와 같은 쿠바의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는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쿠바의 수도인 '생태도시' 아바나

  쿠바가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낫다든가 정치적으로 더 민주주의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편견과 달리 쿠바는 어떤 면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사회경제적 환경을 인민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없는 민주주의적 제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환경이나 생태라는 가치에 있어서는 비단 우리 뿐 아니라 서구 어느 나라보다 앞선 측면이 있다. 편견을 버리고 바라볼 때 쿠바는 우리와 매우 대조적인 장단점을 가진 사회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 말고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린 것이 북한이었다. 북한은 여러모로 쿠바와 유사한 환경을 가졌다. 북한도 쿠바처럼 작은 규모의 공산주의 체제 국가로서 소련의 지원을 받았었고, 소련붕괴 후 석유자원의 지원 중단과 미국의 강력한 봉쇄로 지독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90년대에 북한이 자연재해에 시달리며 식량위기가 가중되었던 것처럼 쿠바도 허리케인으로 인한 자연재해 문제를 중요한 사회문제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쿠바는 그 위기의 극복 과정에서 생태주의를 중심으로 한 나름의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반면에 북한의 경우 그런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물론 두 나라의 상황이 마냥 같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를테면 천연자원의 차이라든가 주변을 둘러싼 국가들의 차이와 같은 외적 요소로 인해 차이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또한 북한사회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쿠바가 그런 것처럼 우리의 편견보다는 훨씬 더 나은 부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차이들 - 북한이 ‘핵’이라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대표적인 물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데 비해 쿠바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중심가치로 내세우는 것, 북한이 인민의 기본적인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반면에 쿠바는 그런 부분에 있어 훨씬 나은 성과를 보이는 것과 같은 - 을 단지 외적인 환경의 차이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렇게 쿠바라는 나라를 남북한과 비교해보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어떤 결론도 나오지 않는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일 리가 있을까. 훨씬 더 많은 고민과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도 결론 같은 건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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