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들 앞에서.

Posted at 2012. 12. 25. 22:27// Posted in 시사

추운 겨울이다. 너무 추운 겨울이다. 너무 추워서 춥다는 말 한마디 뱉어내기 힘든 겨울이다.

선거 결과를 보고 나도 절망감을 느꼈었다.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밉다는 생각도 했고,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멘붕'을 겪었다. 하지만 그 이틀 후 회사의 손해배상소송에 시달리던 한 생명이 속절없이 지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힘내라는 말고, 죽지 말자는 말도, 참고 5년 견뎌보자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절실했다. 절실했다고 생각했다. 또 5년 지난 5년처럼 살 수는 없는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랬다. 절실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나에게,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더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선거 결과는 차갑게 말하면 '언짢음'이었을 것이다. 구리디 구린 꼴을 5년 더 봐야 한다는 것. 역사가 후퇴하는 꼴을 5년 더 봐야 한다는 것. 종종 내가 주변인에게 뱉은 '국적이 쪽팔린다.'는, 딱 그런 정도의 감정.

하지만 아니었다. 당장 그 결과에 목숨이 걸려 있다는, 그런 처절함은 아니었다. 따뜻한 방구석에 앉아 욕설을 내뱉을지언정,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던질 그런 처절한 절망감은 아니었다. 그래서 감히 아무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분노의 말도, 어설픈 힐링의 말도, 다짐의 말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분들의 절실함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참으로 참담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한 것 없는 내가, 그 힘든 손 한 번 잡아드린적 없는 내가, 희망버스에 몸 한 번 실어보지 않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감히 힘을 내라. 함께 가자. 용기를 내라. 절망하지 마라. 그런 말, 어찌 감히 내가 입에 담을 수 있으랴. 어찌 감히 내가 떠들 수 있으랴. 

그리고 세 목숨이 더 갔다.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선거 결과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김영삼 때도, 김대중 때도, 노무현 때도, 이명박 때도 쭉 올랐다. 멈추지 않고 계속 올랐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자살률이 달랐을 것이다. 그리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이었고. 양극화가 심각해진 것도,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처음 누군가 목숨을 끊었던 것도... 모두 그랬다. 하지만 지난 5년, 그 최악의 5년을 겪으며, 야당들의 약속을 들으며, 노동현장을 방문한 굵직한 야당 인사들을 보며, 그래도 정권이 바뀌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통합을 말하던 당선자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네 개의 목숨이 지는 동안 아무 논평도, 아무 행동도 나오지 않는다. 기자와의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그쪽 인사가 한 말은 고작 "여기서 편을 들어주면 임기 내내 끌려다닌다."는 말이었단다. 허. 세살 먹은 아이 달래는 중인가보다.

화가 난다. 정말 화가 많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 화낼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분들께 찾아가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한 내가, 화낼 자격이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부끄럽다. 너무 부끄럽다. 나의 분노도, 슬픔도, 다짐도, 그 모든게 다 부끄럽다.

정말 춥다. 정말 너무 추운 계절이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하는, 그런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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