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정치권에 복지열풍이 거세던 지난 2009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의 최대의 정치적 자산인 ‘아버지’까지 동원해 복지바람에 올라탔다. 그 기세를 몰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시하며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보장’,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과 같은 핵심적인 복지공약은 차례차례 후퇴했다.


박근혜대통령의 복지개혁 마지막 카드: 기초생활보장제


아직 박근혜대통령이 취임하고 손대지 않은 복지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 사회의 최후 안전망으로 지난 2000년 도입 이후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너무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급여수준이 계속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지난 봄 ‘송파구 세 모녀 죽음’을 계기로 제도 개선에 대한 여론도 높아졌다. 정부도 여당의원을 동원한 의원입법의 형태로나마 개정안을 제시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기초법 개정의 방향은 ‘맞춤형 개별급여’로 요약된다. 지난 13일 국회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가 밝힌 내용(「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에 따르면 정부 여당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한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정부법 개정안, ‘맞춤형 개별급여’ 도입에 초점


첫째, 현재 최저생계비를 중심으로 일괄적으로 결정되는 수급선정기준을 급여별로 다층화하여 탈수급 유인을 제고한다. 둘째, 급여별 특성 및 상대적 빈곤 관점을 반영하여 보장성을 적정화한다. 셋째,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여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이와 같은 원칙에 기초한 각 급여별 개정방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급여별 수급선정기준이 제시됐다. 생계급여는 종전의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 30% 이하라는 상대빈곤을 기준으로 지급한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이하,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3% 이하의 가구에 대해 실제 임차료 또는 주택수선유지비를 지급한다. 교육급여는 중위소득 50% 이하의 대상자들에게 제공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서는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를 제시하였다. 현재의 부양의무자제도는 수급자 가구에 대해 부양의무를 가진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양의무 미약’ 또는 ‘부양의무 있음’으로 구분되어 적용된다.


(1) 부양능력 미약 :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이 해당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넘을 경우

(2) 부양능력 있음 :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해당가구 최저생계비와 수급자가구 최저생계비를 합산한 것의 130%를 넘을 경우 부양능력 있음(단, 취약가구는 185% 기준)


부양능력 미약으로 판정된 경우 실제 부양여부와 상관없이 수급자에게 일정액의 부양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간주부양비’라고 한다. 간주부양비는 부양의무자 실제소득에서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뺀 금액에 30%의 부양율을 곱하여 산정한다(혼인한 딸이나 취약계층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15%). 이 금액의 수준과 수급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생계급여 급액이 차감되거나 수급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부양능력 있음으로 판정된 경우는 수급 자격이 박탈된다.


정부의 개정안은 이와 같은 기준을 완화하여 부양능력 미약은 부양가구 최저생계비의 185%로, 부양능력 있음은 중위소득과 수급자 가구 최저생계비를 더한 수준으로 상향조정하여 완화하겠다는 것이다(그림참조).



        출처 : 보건복지부, 2014,「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


여야 의견 상당히 근접한 듯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의원별로 상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나 공통 요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빈곤선 기준을 법안에 명기하여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하지 못하도록 한다. 째,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추가적 완화가 필요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추가적 완화 내용으로는 부양능력 미약을 없애는 것과 1촌의 배우자(즉, 며느리와 사위)에 대한 부양의무 완화, 노인 등 취약계층의 부양의무 면제 등이 거론된다. 그 밖에는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심의, 의결기구인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역할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현재 여야간에는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 여부와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를 수용할 경우, 야당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입장이 정부 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핵심 문제인 수급선정기준 논의가 빠져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의 개정안과 여야 간의 논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정부의 개편안은 수급선정기준의 개선이 아닌 통합급여를 개별급여로 전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송파구 세 모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리고 수많은 빈곤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합급여 체계가 아닌 수급선정기준 문제다.


수급선정기준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현재 기초법은 수급 대상을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최저생계비의 세 가지가 수급자 선정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들 각각은 모두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의 소득인정액이 실제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격을얻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무려 117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부양의무자의 대부분은 소득이나 재산이 기준보다 소폭 높은 경우로 실제 부양능력이 높지 않은데도 자신 때문에 부모나 자식이 수급권을 얻지 못하게 하는 원인제공자로 내몰리는 꼴이다. 또한 간주부양비나 자의적인 부양관계 판단으로 인한 수급 탈락자의 비중도 적지 않다.


둘째,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으로 구성된다. 소득평가액은 실제소득을 기준으로 하지만, 추정소득 규정을 두어 실제 소득이 없는 경우라도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소득이 있다고 간주한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 재산과 같이 사실상 현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없는 소득을 이유로 급여가 줄어들거나 수급 대상에서 탈락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관련기사 “방한칸 있다고 수급자 될 수 없다?”)


셋째, 최저생계비의 경우 그 수준이 낮아 실제로 빈곤층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거주지역이나 가족구성 등 소비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최저생계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제도 도입 당시인 1999년 도시근로자 가구 중위소득의 45.5% 수준에서 지난해 40% 수준으로 계속해서 감소되어 왔다.


이 중에서 좀 더 급박한 문제를 꼽으라면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액의 문제다.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기준으로 인해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비수급 빈곤층’이 되고 있다. 이들은 수급자만큼, 혹은 그 이상 빈곤함에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 계속 방치될 우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세 가지 제도 개편 방향, 즉 ‘급여별 수급 기준 다층화’,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그리고 ‘부양의무 기준 완화’가 수급선정기준 개선과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우선 급여별 수급기준 다층화, 즉 개별급여로의 전환은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의료급여나 교육급여에 대해 수급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일부 급여를 차상위 계층으로 확대하지만, 부양의무자를 이유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여전히 배제한다.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또한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급여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현재 제도에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 내로 포괄하는 조치는 아니다.


정부의 개편 방향 중 유일하게 수급선정기준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다. 이는 비수급 빈곤층의 수급권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장한다는 점에서 금번 제도 개편 안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계한 것처럼 현재 개편안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12만명에 불과하다. 이는 부양의무자 등의 이유로 수급권을 박탈당한 117만명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여전히 90%의 비수급 빈곤층은 사각지대에 남는다.


뿐만 아니라 정부 안은 부양의무자의 기준 완화 후에도 간주부양비를 존속시키고 있으며, 소득환산이나 추정소득의 문제는 아예 다루고 있지 않다. 특히 소득인정액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개편안과 여야간 논의는 수급선정기준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논의이다. 물론 통합급여의 개별급여화나 상대빈곤선 논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급성에 있어서 제도 밖에 방치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정부의 제도 개편안은 부분적으로 빈곤층의 생활을 개선한다고 해도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양의무자 폐지돼야


세 모녀 사건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빈곤한 사람들이 매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 아들을 가진 아버지도, 2011년에 수급자에서 탈락하고 객사한 할머니도, 2012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머니도 모두 빈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서조차 밀려난 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거듭되는 비극의 중심에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밀려난 비수급 빈곤층이 있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편은 수급선정기준의 개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 논의의 초점을 부양의무자제도에 두어야 한다. 가족에게 생계 책임을 묻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게 옳다. 정부의 개편안이나 야당이 제시하고 있는 완화 방안은 현상의 일부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는 못한다. 부양의무자가 수급자 선정 기준이 존재하는 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양의무기준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보다는 부양의무기준을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논의해야 한다.


소득인정액에 있어서는 실제 있지도 않은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추정소득의 폐지가 필요하다. 추정소득은 수급자의 실제 소득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도 수급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소득이 있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일정 금액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제도다. 이는 실제 없는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문제를 낳는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의 재산은 상당한 고가가 아닌 한 소득환산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소득이 될 수 있는 것을 소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가난한 사람의 복지로 제자리 찾아가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본 목적은 빈곤한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며, 경제적 효율성의 추구는 그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부정수급 운운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뿌리 자체를 흔들곤 한다. 앞에서 살펴본, 부양의무자제, 추정소득, 재산의 소득환산액 모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관리하려는 정책 방향이 낳은 독소조항들이다.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이러한 규정들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정리하면,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논의는 핵심 주제 선정이 부적절하다. 맞춤형 급여체계, 빈곤선 기준(상대 빈곤선)도 개선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지만, 수급선정기준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논의는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일이다. 수급선정기준을 개혁의 핵심 주제로 삼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비수급 빈곤층의 복지 권리를 다루어야 한다.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 논의에 앞서 수급선정기준을 논의 테이블 중심에 올리고 수급 당사자, 시민들과 국민적 토론을 벌이자. 그래야 또 다른 세모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본 글은 프레시안에 내만복 칼럼으로 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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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들어간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내가 공부하고 있는 세부전공은 '사회보장제도'이다. 이는 한국의 사회복지학과 영역의 대부분을 이루는 임상사회복지 - 아동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등등 - 나 사회복지 행정 - 주로 전달체계 - 보다는 좀 더 거시적인 차원을 다루는 전공이며, 복지국가론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전공이다. 물론 양자 모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어쨌든 사회보장제도를 공부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불평등을 완화하는가?"


질문이 '빈곤을 완화하는가'가 된다면 좀 더 쉽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 빈곤 완화효과를 보여주는 연구야 차고 넘칠 정도니까.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그 자체로써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좀 복잡하다. 대개 실질적으로 불평등을 완화시킨 '복지국가'는 애초에 시장소득 단계에서도 상당히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거시경제정책을 운영한 경우가 많고, 정치구조에서도 노동자 정당의 힘이 강하고 뭐 그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회보장제도'가 그 자체로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독립변수'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인하기 어렵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쉬라(1981)는 이 질문에 대해 사회보장제도가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하층에 속하는 집단으로의 소득재분배의 정도는 미약하며, 사회보장제도의 소득이전 효과는 계급 내 소득이전 또는 삶의 주기에 따른 (시간적) 소득이전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상 재분배효과가 미미하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변혁 없이 - 복지 따위로 - 노동자의 삶이 의미있는 정도로 나아질 수 없다고 보았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배적 제도와 가치가 변하지 않는 한은 한 가지 구조의 개혁은 다른 구조의 변화로 부정된다고 봤던 데이비드 하비(1975)가 생각나기도 한다. 원인이 뭐가 되었든,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관심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공부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우울한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전복...까지는 그렇다치고, 적어도 시장소득에서의 분배 변화 - 즉, 경제 영역의 변화 - 가 불평등 완화의 최소조건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진짜 독립변수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그 답은 답을 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많이 다를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 그리고 학문적인 개념을 좀 빌자면 - 권력자원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권력자원 동원론은 유행이 좀 지났다. 하지만 그 후에 각광받은 제도주의 같은 개념에서도 권력자원은 중요하다. 권력자원의 효과가 제도에 의해 많이 다르게 나타나서 그렇지). 민주주의라는 조건을 무기로 했을 때, 현재의 구조에서 약자가 된 다수가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무기는 결국 '쪽수' 아닐까. 물론 그 내부에서 - 산업사회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게 - 다양한 요구와 입장을 조정하고 합의해서 최종적으로 '쪽수의 힘'을 살리는 것은 난망한 과제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 데는 거기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게 본다면 '쪽수'에 기반한 '정치'의 힘이 경제도 바꾸고, 복지도 바꿔서 1차 분배와 2차 분배에서의 분배정의를 개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느 정도로 어떻게 개선할지를 합의하는 일은 또 엄청난 과제긴 하겠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사회보장제도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쪽수'의 힘이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싸움에 나서야 한다. 물론 과거처럼 하나의 의제를 놓고 다 같이 모여서 우르르 나가는 싸움이 될 수 있는 경우는 - 앞서 말한 요구와 입장의 다양성으로 - 많지 않겠지만,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미시적인 투쟁이 이루어지고 그 힘이 느슨하게라도 조직화될 때 '쪽수의 힘에 의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그런 싸움에 나서려면 적어도, '내가 이 싸움에서 지더라도, 그래서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여타의 불이익을 겪더라도 우리 가족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먼저 동을 뜨지는 못하더라도 동을 뜬 사람에게 뜨겁게 호응할 수 있지 않을까.


전두환이 그렇게 때려 잡으려던 학생운동이 취직하기 힘들게 만들어놨더니 스스로 없어지더라는 농담이 그냥 농담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포' 앞에 취약하다. 왜 사람이 이기적이 되는 두 가지 근원이 '탐욕'과 '공포'라고 하지 않나. 만약 사회보장제도가 밑바닥으로 떨어져도 죽지는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 공포는 완화되지 않을까. 그리고 공포가 완화된 사회에서 '쪽수의 힘'은 좀 더 잘 동원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회보장제도의 정비 자체가 '쪽수의 힘'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한 편으로 그 힘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이지 않을까.


그래서 난 어쩌면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최근들어 '사회투자론'으로 급격히 수렴되고 있는 복지국가론보다도 좀 더 전통적인 소득과 비용에 대한 경제적 보장으로서의 사회보장제도가 중요한 진보적 의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그 사회보장제도가 자체로서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겠다. 그게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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