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국민 국가가 생활 세계와 지구 질서 사이에서 이 두 층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국민국가는, 1848년 혁명 당시 프랑스 노동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생활 세계로부터 출발한 좌파정치가 도전해볼 만한 현실적 목표로 다가왔다. 만약 노동자 세력이 국민국가를 장악한다면, 아마도 이것은 진정한 전 지구적 변혁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국민 국가가 자본주의 지구 질서의 극복 과정에서 중간 기착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27

"노동 계급의 즉각적 요구를 경제적 구조 개혁 제안(국유화, 농지개혁 등)과 함께 발전시키고 이 둘을 결합해야 한다. 우리의 경제적 구조 개혁안은 자본주의적 계획에 맞서는 전반적인 경제 발전 계획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사회주의 계획은 아닐 것이다. 아직 그 조건이 결여돼 있기 대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주의로의 전진을 위한 새로운 투쟁 형식이자 수단임에 분명하다."
  - 팔레이로 톨리아티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51에서 재인용

"구조 개혁은 현재의 권력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은 채 현 체제를 합리화해줄 뿐인 그런 개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적) 국가에 체제를 강화할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아니다. 구조 개혁의 뜻은 개혁을 요구하는 주체들 스스로 수행하고 통제하는 개혁이라는 것이다. 농엽 분야에서든, 대학에서든, 소유관계에서든, 지역에서든, 행정 영역에서든, 경제 영역에서든, 그 어디서든 구조 개혁은 항상 새로운 민주적 권력의 중심들을 만들어내야만한다."
  - 앙드레 고르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61에서 재인용

"미국 정부와 초국적 자본은 이렇게 철저히 지구적 맥락에서 인민연합 정부를 바라봤다. 칠레 내의 모든 움직임은 지구 질서의 유지 및 변동과 직결된 것이었다. 전선은 처음부터 지구적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지구적 전투는 칠레 내의 국가 기구 및 시민 사회라는 무대를 통해서만 가시화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구적 맥락과 국민 국가의 정치적 결정 사이의 상호 작용이 작동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93

"우리는 거대한 초국적 기업들과 주권 국가들 사이의 대격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후자의 근본적인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결정들은 집단적 이해를 대변하는 어떠한 의회나 기구로부터도 자신들의 행위의 총체적 결과와 관련해 책임을 지거나 규제받지 않으며 어떤 단일 국가에도 의존하지 않는 세계조직들에 의해 간섭받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의 전반적인 정치 구조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 살바도르 아옌데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106에서 재인용

"문제는 인민연합 정부가 민중 권력 운동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인민연합 정부는 산업 코르돈이나 자치 지도부를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평화적 길의 역동적인 토대로 발전시킬 구체적 전만을 갖고 있지 못했다.... (중략)... 인민연합은 과도하게 국민 국가 수준의 정치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활 세계 수준의 정치와 국민 국가 수준의 정치 사이의 직접적인 결합은 제대로 실험해보지도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우파의 강점에 맞설 좌파의 강점이 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114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이 직접 칠레를 방문해 이 전례 없는 실험을 격려했다. 프리드먼은 피노체트와 서신을 교환하며 독재자의 가정 교사 행세를 했다. 통화주의자들은 군부 파시스트가 짓밟아놓은 폐허 위에서 사용료도 내지 않고 칠레 사회를 실험실로 삼은 것이다. 실제 효과도 있었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었다. 통화주의의 효험이 입증된 듯 싶었다. 덕분에 통화주의를 몇몇 광신도의 학성레서 케인스주의를 대신할 현실 대안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1980년대에 칠레는 바로 이 처방 때문에 다시금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지게 되지만 말이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116~117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로 마련된 미결정의 무대 위에서 새로운 체제의 토대를 놓으려는 전략들이 상연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상황을 주도한 것은 이전 체제를 미련 없이 던져버린 장본인, 즉 미국 정부였다. 닉슨 정부는 새로 등장한 달러 본위제의 이점(발권 이익)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미국의 금융 세력에게 기회를 줬다. 미국 민간 은행들이 자유롭게 국제 금융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규제의 족쇄들을 풀기 시작했다. 이 금융 기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은 급속히 모습을 갖춰갔다. 피터 고완이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라고 이름 붙이 포스트-브레턴우즈 체제의 두 축이 마련된 것이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126~126

"홀랜드는 국민-대중 경제 시대를 연 케인즈주의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부터 되짚었다. 케인스주의는 고전 경제학이 제시한 자유 경쟁 실서, 즉 '미시micro' 경제로 환원되지 않는 '거시macro' 경제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중략)... 문제는 국민-대중 경제의 전성기 동안 바로 이 미시/거시 지평으로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경제 행위자들과 이들의 질서가 출현했다는 데 있다. 홀랜드는 이 새 지평을 '중간meso' 경제라고 규정했다. 미시 경제의 주행위지가 중소 규모 기업이고 거시 경제의 주역이 국민 국가라면, 중간 경제란 곧 독점 대기업의 세계였다.... (중략) ... 거대 자본은 세계 시장으로 활동 무대를 확장했다. 즉,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해외 이전을 통해 국민 국가의 조세 징수를 피하고 규제로부터 벗어났다. 생산망을 전 세계로 확장한 초국적 기업들이 해외 사업 부문으로 이전하는 자본의 규모가 국가 전체 수출 규모에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 또한 이들은 국제 금융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142

"하지만 산업부의 실무는 고위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벤 장관이 지시한 업무를 전반적으로 해태했다. 첫째 이유는 노동당 정부가 단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장관이 몇 달 안에 다시 바뀔지 모르는데, 굳이 열심히 따를 것까지는 없다는 분위기였다. 둘째 이유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었다. 대부분의 고위 관료들이 벤 장관의 산업 정책 비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중략) ... 관료들은 이미 계급 세력 관계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의 경계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154

"칼레츠키의 예언대로, 1970년대 초가 되면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노동조합의 역량이 전에 없이 성장한다. 하지만 이것과 동시에 진행된 또 다른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1970년대 상황을 이해하려면 둘을 함께 봐야 한다. 그것은 홀랜드 등 AES 주창자들이 지적한 거대 자본의 성장이었다. 거대 독점 자본이 초국적 자본이 되고 다시 금융화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본 권력이 전무후무하게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역시 국민-대중 경제의 전성기가 낳은 산물이었다. 상당 기간의 완전 고용 상태가 노동조합의 힘을 증대시킨 것처럼, 장기 호황은 자본의 힘을 강화시켰다. 사실 노동 조함 역량의 강화는 자본 권력의 성장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둘은 여전히 비대칭적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동시에 성장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165~166

"물가 상승의 책임은 특정 사회 세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인건비 상승을 압박하는 노동자의 힘에 거대 자본이 가격 결정력이라는 더 큰 힘으로 맞섰고, 전통적인 경기 조절 정책에 몰두하던 국가가 통화 공급을 계속 늘려서 이 상호 상승 작용에 날개를 달아줬다. 결국 모든 힘들이 물가를 위로 밀어 올렸다. 인플레이션의 밑바탕에는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166

"승리의 제1공신은 금융 시장 행위자들, 즉 화폐 자본의 대변자들이었다. 북반구의 오래된 국민 국가를 상대로 이들이 벌인 활약은 정말 눈부셨다. 국제 금융 시장이 한 번 들썩이면 국민 국가 하나쯤은 쉽게 농락할 수 있다는 게 처음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중략) ... 시티나 월스트리트의 큰손들이 지구적 권력 서열의 꼭대기로 진입했다. 화폐 자본이 초국적 자본의 세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중략) ... 이제 시장이 모든 사회적 평가 및 결정 과정에서 다른 조직이나 세력에 대해 우위를 확보해나가게 되었다. 시장의 '신뢰'가 사라지면 어떤 조직이나 세력도 존립 근거를 상실하고 마는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204

"신우파는 국민 국가의 정치를 재구성하려 했다. 이들은 국민 국가가 최소한의 민주적 토대(가령 선거를 통한 집권)를 유지하면서도 배타적으로 '시장'과 호응하게 만들려 했다. 국민 국가를 화폐 자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지구 질서 안에 끼워 넣으려 한 것이다.... (중략) ... 신우파는 완전 고용과 복지 확대 대신 보편적 금융 시장을 새로운 경제생활의 중심으로 제시했다. 누구나 능력껏 금융 투자에 참여해 수익을 얻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1976년 IMF 위기를 통해 확보한 자본 진영의 승리를 전면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제 '시장'의 지배력이 인민들의 생활 세계로까지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212

"한마디로 볼커 전환은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어떠한 경제적 고려 사항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전 지구적 규범을 확립했다. 돈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실업의 증가도, 실질 임금의 하락도 어쩔 수 없는 게 돼버렸다. 이 새로운 정언 명령의 이면에 자리한 것은 바로 화폐 자본의 이해였다. 즉, 이제 화폐 자본이 새로운 지구 질서의 최정상 권력임이 만방에 선포된 것이다. 사회의 다른 모둔 구성 요소들은 화폐 자본의 이해에 맞춰 철저히 재평되어야만 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221

"과거와 달리 일국 차원의 확장 정책은 국민-대중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이나 국제 수지 적자, 환률 불안 같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었다. 문제는 지구 질서와 일국적 케인스주의 사이의 어긋남에 있었다. 지구 질서의 어떤 측면들이 일국적 확장 정책을 또 다른 경제적 재앙으로 되돌려주기 시작했다. 좌파는 과거에 케인스주의 정책 수단들이 국민-대중 경제의 토대 역할을 했던 것 자체가 특정한 지구 질서를 전제한 것이었음을 칠레, 영국 그리고 프랑스 등의 잇단 패배를 통해 뒤늦게 학습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249

"우리는 구래의 자본 수유쥬들로부터 그들이 소유에 기초해 행사해오던 권력을 탈취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경험은 [사적 소유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통제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유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는 마르크스와 비그포르스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소유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사회를 근저에서부터 바꿀 수 없다. 내 확고한 의견으로는 기능 사회주의만으로는 철저한 사회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 메이드네르 / 신정완, '임노동자기금 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281에서 재재인용

"홀은 영국 좌파가 오랫동안 '사회'주의를 '국가'주의와 혼동했다고 비판했다. 케인스주의든 좀 더 급진적인 대안이든 국가 기구에 만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래서 대웆은 '사회주의'라고 하면 관료주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대처 정부는 이러한 좌파의 약점을 활용했다. '국가'로부터 자유를 되찾기 위해 '시장'을 선택하자고 선동했고, 이 선동이 먹혀들었다. 홀의 결론은 이제 국가가 아니라 시민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이 사회 변혁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300

"도시 사회주의의 행진은 이것으로 중단되었다. 하지만 GLC(런던 광역 의회)와 다른 좌파 지방 정부들의 경험은 구조 개혁 좌파에게 값진 교훈을 남겼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정치의 또 다른 층위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생활 세계의 정치였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304

"미국의 새로운 축적 전략에 따라 화폐 자본이 주도하는 전 지구적 시장 위계 체계가 꼴을 갖춰갔다. 북반구의 자본 시장을 정점으로 해 지구 곳곳의 자본들이 위계적으로 편제되어갔다. 각국 경제는 이 새로운 지구 질서에 끼워 맞춰지기 시작했다. 초국적인 어떤 힘, 이른바 '시장'이 여러 나라의 경제 현실을 압도적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더 이상 '국민' 경제를 이야기하기 힘들다는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구 경제 질서가 국민 국가들의 세계와 어긋나게 된 것이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328

"신자유주의 지구 질서에서 국민 국가의 통치 노선으로는 대처 식의 우파 정부보다 이러한 '제3의 길' 노선이 적합했다. 실제도 대처-메이저 보수당 정부는 대중의 정치적 불만을 끊임없이 고조시키기만 했다. 1992년 미국에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이래 북반구 여러 나라의 좌우 세력은 대체로 '제3의 길'로 수렴되었다. 이것이 이후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전성기에 표준적인 통치 방식이 되었다.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이 커다란 흐름의 일부였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333

"오늘날 이 '사회'는 자본-임노동 관계나 국가 관료 기구의 거대 체계로부터 자율성부터 되찾아야 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체를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점에서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는 기존 사회주의 운동에 부족했던 새로운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급진적' 구조개혁론의 대표자인 고르가 생태사회주의의 열렬한 주창자가 된 것인 필연적인 일이었다. 말년에 그는 임금에 의존하는 생활 양식에서 벗어나는 것과 함께, 다양한 공동체 실험들을 통해 도시의 삶 자체를 바꾸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이렇게 도시인의 일상 자체를 새롭에 구성하는 과정이 우리가 잊고 있던 또 다른 층위의 '정치'라고 보았다. 우리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이것은 곧 '생활 세계의 정치'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343

"그러나 라틴 아메이카의 실험이 미래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 노선의 필수적 과제를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을 분명하다. 그것은 일국 차원을 넘어서는 지구 질서 수준의 정치 무대를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라틴 아메리가 좌파 정치 세력들이 지금 한 지역에서 벌이는 실험들을 앞으로 구조 개혁 좌파는 다른 지역에서도 그리고 지역의 틀을 넘어서는 차원에서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할 것이다."
  -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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