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조작

Posted at 2012. 3. 20. 22:37// Posted in 시사
최구식이라는 양반의 보좌관이 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했고, 의원은 몰랐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실소를 날렸다. 물론 사건의 본질은 최구식이 그 사실을 알았냐 여부에 있지 않은 일이지만 그걸 떠나서 보좌관이 한 일을 국회의원이 전혀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반응도 많았다.

임종석 전 의원이 사무총장 - 국회의원 후보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했던 것은 저축은행비리와 관련해 보좌관이 돈을 받았다는 것이 법정에서 인정되었다는 점에 기인했다. 임종석 의원의 주장대로 그가 몰랐을 수도 있으나,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정희 의원의 보좌관이 저지른 일종의 '부정선거'로 인해 이정희 의원은 재경선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직 사퇴가 아닌 재경선인 이유는 보좌관 개인의 행위였을 뿐 조직적 부정경선은 아니라는 데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두 사건에서 우리가 국회의원 - 보좌관을 연결지은 방식을 고려해볼 때, 보좌관의 '개인적(이라 주장되는)' 행위는 조직적 행위에 준하게 취급받는 것이 옳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정희 의원이 후보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 더 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정희 의원을 매우 좋아하고, 그녀가 지난 4년간 국회 안팎에서 해온 일들에 비춰 그녀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다음 국회에서 그녀를 보고 싶고 또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길 바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넘어간다면 진보정치가 기존정치와 차별화된 신뢰를 심어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부정을 저지르기 쉽게 만들어진 경선 시스템의 문제다. 이건 경선 시스템 자체가 부정을 유도하는 수준으로 설계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시간적, 제도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되어 있었겠지만 시스템의 상태로 볼 때 아마도 이런 식의 경선조작은 이미 '업계에서는 당연시되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을까. 잘못된 제도는 행위자의 부적절한 행동유인을 증가시키고, 이는 결국 잘못된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 아닌가. 이런 시스템에 의존한 단일화니 경선불복하겠다는 사람도 나오는 것일게다.(물론 불복이 잘하는 거란 말은 아니고.)

여튼 경선문제에 성추행 전력에.... 또 한 쪽에서는 경제민주화 의지가 있네 없네 하고 있고(사실 난 전부터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이러다 진짜 새누리당이 과반정당 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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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비키니, 그리고 사과

Posted at 2012. 2. 7. 16:12// Posted in 시사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출근준비를 완료하고 아침을 먹던 아내의 옷에 큰 아이가 케첩을 바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자체는 별 일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 후에 보인 아이의 태도였다. 엄마에게 가볍게 사과하고 넘어가면 될 실수였는데 아이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나와 애 엄마의 "OO아, 실수를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라는 말에 대해 특유의 '못 들은 척하기' 신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결국 약간 화가 난 내가 우호적이지 못한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했고, '항복'을 받은 건 아니지만 '사과 비슷한' 멘트를 받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이녀석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 '항복'하는 법이 없다. 나도 굳이 그걸 받을 생각은 없기도 하고) 그 뒤에 좀 더 부드러운 어투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공유하는 '치유의 시간'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 문제 삼는 게 우스울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아이의 실수였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첫번째는 사과의 타이밍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 작은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거기에 대해 바로 사과한다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 순간을 놓치게 되면 상대방도 기분 나빠지고 자신도 더 이상 더 사과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을 아이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내 입장에서 이 아이는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살아야 할 '가족'이라는 것. 길에서 부딫히고 인사도 없지 지나가는 사람이야 '뭐 저런 X가 다 있어?'하고 지나치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그래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가족이야 그럴 수 없지 않는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되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문제삼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터넷 용어로, '다 애정이 있어서 까는 거야.'라는 말처럼.

  갑자기 아이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바로 저 일이 있은 직후에 신문을 보다가 <나꼼수>와 비키니 사진, 그리고 성희롱과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글에서 논의하는 내용이나 상황이 위에 언급한 나와 아이, 그리고 아이 엄마 사이에 있었던 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졌다. (기사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
 

[경향시평]자아비판 강요하는 진보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062104555&code=990000 
 


  <나꼼수>와 비키니 수영복 응원,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논란에 대한 팩트를 더듬는 과정은 생략하자. 이미 너무 유명해져버린 이야기니까. 사실 개인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발언하거나 이야기할 때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 '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남성인 나로서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양성평등과 거리가 먼 한국사회에서 피해자쪽보다는 가해자쪽에 가깝게 있으며, 나 또한 가부장적/성차별적 사회에서 그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내면화하며 자란지라 내가 하는 발언이나 행동이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때문이다. 두번째가 핵심인데, 대학시절에나 직장생활을 하면서나 '전혀 그럴 의도가 없는'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하는 발언이 성적 대상화나 고정적 성역할에 대한 편견 같은 것들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 나 자신도 마찬가지임을 더러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나꼼수 팀의 발언은 경솔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의 발언 수위는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 악의없이 이야기하는 수준'보다도 낮은 정도였고, 그런 측면에서 '진보적인' 남성들조차 '나꼼수가 그간 해온 일을 생각해봐라. 이만한 일로 이렇게 트집을 잡는 것은 보수 언론에게 먹이감을 주는 것밖에 안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견에 동감할 수 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억압은 그 억압이 제도화되어 있을 때 억압하는 자 뿐 아니라 억압받는 자에게도 당연시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소수에 의한 다수의 억압'(자본가-노동자의 관계 같은)이 아닌 '다수에 의한 소수의 억압'일 경우에 더욱 그렇다. 성과 관련된 억압 - 즉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이나 동성애자에 대한 이성애자의 억압 같은 - 은 그처럼 '내면화된 억압'의 대표적인 경우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임'을 자처하는 이라면 이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꼼수 팀의 발언이 한국 사회 남성의 - 심지어 상당수 여성의 - 일반적인 기준에서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고 해도,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쉽사리 은폐되는 억압에 대한 고발'이라는 차원에서 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큰 일을 해온 나꼼수가 저지른 악의 없는 작은 실수'라 하는 이들도 많지만, 이런 주장은 그들의 그들의 실수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진정성 있게 사과할 때나 가능하다. 그렇지 않을 때 '악의없는 실수'는 '악의스러운 잘못'이 될 수 있다. 

                     '경솔함'은 일정정도 <나꼼수>의 캐릭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지지했던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솔함은, 애청자의 한 사람드로서 아쉬운 모습이다


  더구나 위에 링크한 기사처럼 '사과를 강요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은 도저히 공감하기가 힘들다. 글쓴 이는 나꼼수의 태도가 불쾌했다면 이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보이콧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사상검증, 자아비판, 자기검열'이라고 말한다. 그랬을 것이다. 만약 그 발언의 주인공이 <나꼼수>가 아니고 새누리당의 어느 국회의원이었거나, 현 집권 세력의 누구였거나, 조중동의 누구였다면, 굳이 사과를 집요하게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보'를 고민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은 어차피 '우리와 함께 갈'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두의 이야기에 빗대자면 그들은 '길에서 부딫히고 지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글쓴이의 말대로 굳이 사과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욕이나 한 번 해주면 되지. 하지만 <나꼼수>는 다르다. 가족만큼은 아닐 지 몰라도 함께 가고 싶고, 지지하고 싶고, 어깨를 걸고 같이 싸우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과를 받고, 그래서 찜찜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전처럼 다시 껄껄 웃으며 그들의 방송을 듣고, 잘못된 세상을 향해 함께 주먹을 쳐들도 싶어서 그러는 것이지 그들의 양심의 자유를 침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글쓴 이는 진보진영 일부의 '사과를 강요하는 태도'가 '자기검열을 촉발시켜 이제까지 진보가 이루어놓은 성취를 퇴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참 주소를 잘못 찾았다. 오히려 이번 사태에서 '생물학적 완성도'를 가지고 '진보의 치어리더' 역할을 한 건데 뭐가 문제냐고 한 측이야말로 사회 변혁의 주체인 여성을 객체화하고 대상화함으로써 우리 사회 진보의 수준을 낮춘게 아닌가 싶다.

  정리하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남성들의 성의식 수준에 비추어볼 때 <나꼼수>의 발언이 아주 큰 잘못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물론 이 판단 또한 '남성'의 한사람인 나의 판단이기에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에 사과를 하고 넘어갔다면, 그 발언으로 인해 기분나빴을 사람들도 이해하고 찝찝한 마음 없이 다시 함께 즐겁게 어깨걸고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굳이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부정해서가 아니다. 물론 <나꼼수>는 사과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자신들의 발언이 잘못이 아니라고 여겨서든, 혹은 사과의 타이밍을 놓친 이들의 '존심'에서든 사과하지 않을 자유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같이 '진보'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일부는 더 이상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방송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처럼부터 '그런 속좁은 진보'는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꼼수>를 즐겨 듣던 애청자의 한 사람이자,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을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는 이런 상황과 이 상황을 만든 나꼼수 팀의 경솔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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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회 수요집회 후기

Posted at 2011. 12. 14. 23:32// Posted in 시사
  원래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오늘이 수요집회 1,000회째라는 기사를 보고 충동적으로 종로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수요집회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참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도 있었고, 최근 평화비 건립에 대해 막아달라는 요청을 한 일본 대사관의 후안무치함과 그에 대해 적절히 대응 못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에 대한 분노도 있었으며, 부분적으로는 낮에 하는 집회에 참가하기 좋은 최근의 개인적인 환경도 작용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기자들도 많이 왔고요, 중간에 불쑥 솟아 있는 SBS 기자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이 저렇게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어 시야를 엄청나게 제한했습니다. 특히 제 앞에는 동아일보(!) 기자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 짜증X100 이었습니다. 취재도 중요하지만 집회를 방해해서야...


  12시 정도에 집회장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더군요. 제가 도착했을 때는 (아마도) 행사가 막 시작되었을 때인 것 같았습니다. 역시나 의미 있는 행사에 많이 참가하시는 권해효씨가 듣기 좋은 목소리로 사회를 보고 있었으며, 김여진씨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서진씨도 오셨다는데 못봤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봉주, 정동영, 권영길씨 같은 분들도 오셨다는데 못봤습니다. 흑...) 이런 저런 순서가 있었지만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함자가 기억나지 않는) 위안부 할머니의 발언(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주요 정당 정치인들(한명숙, 정몽준, 이정희)의 발언 중 정몽준씨의 순서. 정몽준씨의 순서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내려와! 내려와!"라고 외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꿋꿋하게(?) 끝까지 발언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연대발언 중 여고생들의 발언과 (아이고, 발랄해라...) '그날이 오면'을 불렀던 노래패 공연. 아는 노래라 따라 부르는데 거기서 부르니 새삼 목이 메는 기분이랄까요... 그랬습니다.

가운데 금빛 동상이 바로 평화비입니다. 평화비 가까이 계신 분들이 위안부 할머니들. 이제 겨우 예순 여섯분이 살아계신다고 합니다. 그 분들 생전에 사과와 처벌, 제대로 된 배상을 받아야 할텐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비를 무사히 설치했다는 것인데, 돌아와서 일본 대사관측이 철거를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다 또 한 번 전투력이 상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안무치함이란 정말... 
 

이 차는 트위터리안들의 모금을 통해 할머니들께 기증한 희망승합차입니다. 트윗을 심심찮게 하는 편인데 모금운동에 대한 내용을 보지 못했네요. 참가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부터 (주로 그 시절에) 적지 않은 집회와 시위에 참석했던 편인데, 매주 멀지 않은 곳에서 있었던 수요집회에는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사안의 정치성에 대해 낮게 보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집회의 필요성이나 중요성, 정당성에 대해 달리 생각했을 리는 없지만, 다른 집회들에 비해 정치적 우선순위를 낮게 생각했다고 할까요? 한나라당의 정치인조차 와서 연대발언을 한다는 것을 보면 이 집회가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모순을 보여주는 집회는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로 대학시절에 말이죠. 졸업하고 최근까지는 사실 이런 저런 생각조차 없이 살았죠. 부끄럽게도.)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서 저의 그런 시각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것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장기적이고 긴 시각에서 보면, 이 문제만큼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제가 없거든요. 인권의 문제, 여성의 문제, 평화의 문제, 국가권력의 문제와 같은 큰 틀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안들을 담고 있는 문제임과 동시에 수십년의 세월이 지날 때까지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정치적 의미 이전에 가장 본원적인 인륜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배금주의, 효율 제일주의, '실용'이라는 이름하에서 이루어지는 정당성의 외면의 문제가 역사적으로 시작된 것 또한 식민지 시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에 실패하고, 일제와는 독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통해 스스로 정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을 기회를 포기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역사청산'이라는 문제는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방된 국가에서 친일파, 부역자를 기용하며 '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서'라는 실용의 논리를 내세웠으며, 한일회담에서도 경제개발의 중요성이라는 실용의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이 출발했습니다. 이와 같은 실용의 이름으로 정의를 짓밟는 논리는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학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경제위기를 우선 극복해야 한다며 재벌에게는 특권을, 노동자에게는 정리해고를 주는 식으로 수없이 변주되며 우리 사회와 역사에 무수히 많은 오점을 찍어왔습니다. 

Korea's new President, 이명박
 이 사람의 당선과 위안부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 비약일까요? 그런
 측면이 있긴 하겠지만 저는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혐짤 죄송...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현 대통령을 찍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비리도 많고, 범죄자일 수도 있다는 거 안다. 하지만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에 투표한 것이죠. 지금 이 혼란스러운 정치현실과, 전보다 더 힘들어진 서민의 삶은 그 선택에 대한 대가입니다. 18대 국회 수도권에서 대거당선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매해의 예산안과 미디어법, 그리고 한미 FTA를 날치기 통화시켰습니다. 그 선거의 뒤에도 뉴타운이라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냐 이전에 무엇이 나에게 이득이 되느냐를 생각한 결과라는 이야기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그 연원은 식민지와 해방, 그리고 역사청산의 실패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위안부 문제는 우리 역사의 잘못 끼워진 첫단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그런 생각이 들어 그간 이 문제에 '정치적 우선성'이 없다고 여긴 저의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라도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 다행이라는 작은 위안도 함께 들었습니다.

  후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할머니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꼭 살아서 사과받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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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불편함

Posted at 2011. 11. 30. 23:46// Posted in 시사
  페친(페이스북 친구) 중 한사람인 후배가 '나꼼수를 들으면 재미있는데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는 논조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던 참이라 그 글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친구가 불편함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나와는 좀 다른 이유였다. (나꼼수의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 친구의 과거의 특정한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친구의 이유였다.) 어쨌든 나도 나꼼수를 즐겨 들어면서도 항상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오늘 김규항씨의 블로그에서 본 - 김규항씨가 아닌 다른 이의 - 글을 통해 그 불편함의 정체가 좀 더 다가오는 듯해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의 정체는 위에 언급한 친구처럼 과거의 경험 때문은 아니고, 진중권씨가 말한 것과 같은 '구전문화로의 회귀'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허지웅씨가 이야기한 '선동꾼', '반지성주의'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나꼼수의 문화적(혹은 매체적) 성격에 대해서는 그간의 진보적 메세지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하여, 받아들이는 이를 질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마땅히 칭찬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나꼼수가 의제를 선정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십 몇 회인가 이후 '서울시장 선거'와 '한미 FTA'를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나꼼수는 서울시장 선거를 후보 확정 전부터 지속적으로 몇 회에 걸쳐 다루었으며, 선거 자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와 타이밍으로 다루었나. 이 선거와 관련한 초대손님만 해도 박원순, 박영선,  홍준표, 이정희, 박지원, 문재인 등 숫자도 많고 면면도 화려했다. 나꼼수가 야권연대와 그 연대를 통한 선거에서의 승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굳이 보충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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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누구 못지 않은 나꼼수의 팬이다. 공연은 못갔지만 전 회를 
          받아서 들었으며, 김어준 총수의 책도 사서 봤다.


  물론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니다. 나도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고,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오히려 선거가 끝난 시점부터였다. 일정상 서울시장 선거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이슈는 한미 FTA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연히 나꼼수도 한미 FTA를 집중적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했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특집방송 같은 것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꼼수는 한미 FTA를 - BBK나 서울 시장 선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 한 회도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부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도 생각보다 상당히 늦은 시점부터였고, 다루는 내용도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여-야 간의 충돌 중심이었지 한미 FTA 자체의 문제 중심이 아니었다. 물론 최근 방송에서는 점차 비중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는 문재인과 혁신과 통합, 또 '친노'로 구분되는 일부 '개혁' 인사들이 한미 FTA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과 묘하게 겹쳐보인다. 명시적으로 한미 FTA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이명박의 FTA' 및 그 이슈를 다루는 방식으로 반대를 제한하는 듯한 이들의 태도와 나꼼수의 거리가 그리 멀게 보이지 않는다. 한미 FTA 강행 통과 전후에 나꼼수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FTA 통과를 만든 (주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하겠다.'라고 하며 노래를 만드는 일과 'FTA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이가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들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해영 교수처럼 한미 FTA 자체의 문제를 짚거나, 우석훈 교수처럼 명료하게 '협상의 폐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지나친 생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가 시작되었다는 점, 김어준 총수가 유명한 노무현 지지자였다는 점, 문재인 전 수석은 시종 한미 FTA에 대해 애매한 자세라는 점, 김어준 총수가 현재 문재인 전 수석을 대선주자로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라는 점 등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나꼼수의 의제설정을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나꼼수가 한미 FTA에 대한 찬성을 표한 것도 아니고, 명료하지는 않아도 비판적인 - 반대에 가까운,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단지 '방송에서 적게 다뤘다.'라는 것만으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지도 모른다. (그래서 '묘한 불편함'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것은 '어떻게 말하는가?' 뿐 아니라 '무엇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말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편집 수단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나꼼수는 그런 견지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한미 FTA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한미 FTA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지 않으면 정치적 민주주의에 충실하지만 재벌 앞에 무력하고, 그 결과로 서민의 삶은 더 피폐해지게 만드는 개혁정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나꼼수는 '한 번도 투표에 나서지 않던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에게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 오랜 세월동안 진보진영의 누구도 못하던 일을 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박수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굳이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솥뚜껑을 보더라도 경계하는 자세가 있어야 자라에게 또 물리는 일이 없지 않겠는가 싶어 굳이 글로 정리해본다. 그게 솥뚜껑이 맞기를,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기를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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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가 뭐길래 ② (부제 : It's class, stupid!)

Posted at 2011. 11. 24. 00:03// Posted in 시사

1편 먼저보기 : 2011/11/22 - [시사] - 한미 FTA가 뭐길래 ① (부제 : It's class, stupid!)

잠깐 시간을 되돌려보자.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으며,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2005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대책회의'에 참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이제부터 남은 임기 동안은 재벌을 개혁하고, 시장을 견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선언일거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기를 바랐다. 나뿐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했던, 그리고 인간 노무현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가 시장과 경제민주화의 문제에 있어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대로의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그리고 참여정부는 좀 더 성공한 모습으로 역사에 기억되지 않았을까. 노무현 집권 시기의 한국사회는 이미 5년 전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며 정치적 민주화의 과제를 상당부분 달성한 반면, IMF의 여파로 인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문제 - 재벌개혁, 양극화 극복,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 청년실업과 같은 - 를 심각한 숙제로 가지고 있었지 않는가.

  하지만 참여정부는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는 달리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문제에 매우 미진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선언은 시장에 대한 견제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포기 선언이 되어버렸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그랬다.) 부동산 과열을 잡지 못해 자산 소유자와 비소유자의 차이를 확대시켰고, 지니계수는 참여정부 출범시기(2003년)의 0.341에서 매년 올라 0.351에 이르렀다. 국민소득 2만불이라는 비전을 내세우고 법인세 인하를 단행한 경제정책 방향은 보수정권과 다를바 없는 성장 우선 담론이었으며, 그 성장의 뒤켠에서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김주익은 (MB 정권 하의 김진숙처럼) 크레인에 129일간 올라가 있다가 끝내 크레인에 목을 매달았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KTX 승무원 고용 분쟁이나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도 모두 참여정부 하에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집권 시기 대기업으로의 부와 권력의 집중이 더욱 심화된 것, 특히 '삼성'이라는 무소불위의 단일 패권 재벌 구조를 안착시킨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참여정부의 패착이었다.

Seoul Train Station & KTX
      KTX 여승무원의 직접채용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에 발생하여,
            MB 정부 하에서 해결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참여정부는 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었을까? 문재인 전 수석이 그의 저서 '운명'에서 토로한대로 우리 진보진영 전체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탓도 있을게다. 선출된 민주정부를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관료집단과 보수언론, 그리고 재벌의 강고한 '보수대연합' 앞에 당시 진보진영의 역량은 허약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17대 총선에서 과반의석까지 확보하고 있던 정부의 책임자 중 하나가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혹시 참여정부 내적인 문제가 더 큰 이유는 아니었을까?

  나는 참여정부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었던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참여정부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는 너무 넓은 스펙트럼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상당히 개혁적인 인물들도 있었지만 김진표처럼 '저 사람은 한나라당에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인물도 있었고, 이광재처럼 언듯보기엔 개혁적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삼성 같은 재벌 대기업과 매우 강고한 연계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사들의 내부 갈등은 생산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은 그들의 최대공약수 수준(즉, 가장 보수적인 수준)의 개혁만을 가능하게 했다. 두번째는 참여정부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물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본인과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인사들마저 '서민의 대통령, 서민의 정부'가 아닌 '모두의 대통령, 모두의 정부'가 되려고 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것이 공정한 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의 권력이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의 패권을 견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권력인 '투표로 선출된 민주정부'가 재벌과 서민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면, 그것은 호랑이와 토끼를 한 우리에 넣어놓고 중립을 지킨다며 개입하지 않는 사육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다시 한-미 FTA를 보자.

  참여정부의 이와 같은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한-미 FTA의 추진이다. 참여정부는 한-미 FTA의 추진 과정에서 김현종, 김종훈 같은 관료들의 손에 놀아나는 무능력함을 노출한 것은 물론이며, 한국 사회 내부의 상충적 이익 앞에 추상적 '국익'을 내세우며 중립적인 듯하만 결과적으로는 재벌 대기업의 편에 서게 되는 한계를 노출했고, 특히 한-미 FTA가 추진되면 (아마도 국내적으로는) 최대 수혜자가 될 삼성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미 FTA야 말로 계급 갈등의 적나라한 각축장이기 때문에 이 조약을 추진했다는 것만으로도 참여정부가 서민의 편에 서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011년, 한-미 FTA가 정치권의 핵심 문제로 떠오르고 결국 날치기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보여줬던 한계가 결코 극복되지 않았음을 민주당과 친노 인사들은 그대로 노출한다. 한-미 FTA 저지 정국에서 민주당이 보인 모습을 생각해보자. 김진표처럼 노골적으로 엑스맨 행각을 벌인 이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손학규나 박지원처럼 겉으로는 FTA를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적극 저지에 나서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정동영, 이종걸, 천정배 같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오히려 예외적인 모습이었다.) 송영길과 안희정은 가만 있으면 나았을 것을 괜시리 한-미 FTA를 지지하는 발언을 던져 국민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송영길은 송도에서 영리병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안희정은 삼성과의 커넥션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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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통합에 나서는 적극성에 비해 한미 FTA 문제를 다루는 그들의
    태도는 소극적이기 짝이 없다. 이렇다할 발언 한 번 없을 정도.

  
  민주당만도 아니다. 문재인 전 수석은 그의 저서에서 한-미 FTA에 대해 '우리가 교섭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에 주눅 들지 않고 최대한 우리 이익을 지켜내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밝혔으며, 나꼼수에 출현해서도 노무현의 FTA는 이익균형이 맞았다는 논지의 주장을 했다. 물론 ISD나 역진방지, 네거티브 리스트 등 주요 독소조항들이 참여정부 때도 그대로 있었음이 밝혀진 다음에는 말을 바꿔 잘못되었다고 하긴 했다. (그렇지만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에 바빠서 한-미 FTA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이더라.) 유시민 전 장관 또한 FTA 정국 초기만 해도 '참여정부 때 간신히 맞춰 놓은 이익균형이 MB 정부의 재협상으로 인해 깨졌다'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또한 나중에는 잘못되었다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 정치권 외부의 '친노'라고 할 수 있는 김어준 딴지 총수나 조국 교수 또한 FTA 정국 초기에는 '노무현 FTA, 이명박 FTA'의 프레임으로 문제를 접근하다가 정국이 달아오르는 과정에서 입장을 바꾼 바 있다.

  물론 '그땐 잘 몰랐다가 지금에 와서 한-미 FTA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석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동영 의원이 FTA 정국 초기부터 명확하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한-미 FTA에는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위에 언급한 인사들의 모습은 미진해 보인다. (민주당의 대부분 의원들은 미진한 정도가 아니라 이들이 한나라당과 다른 것은 현재 야당이라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정도다.) 과연 이들이 지금처럼 진보정당이 앞에 나서 총대를 메고, 이에 호응해서 시민들이 한-미 FTA의 폐기를 요구하는 국면이 조성되지 않았어도 지금만큼 한-미 FTA를 반대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때 그 대답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든 민주당이든 '계급적으로' 서민의 편은 아니다.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이냐? 편가르기 하자는 거냐?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다만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한-미 FTA라는 적나라한 계급의 문제에서 드러난 모습을 볼 때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은 '계급적으로' 서민의 편은 아니다. 그들은 서민의 편을 자임하며 뒤로는 재벌 대기업과의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거나, 기껏해야 재벌 대기업과 서민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 하는 자들이다. (그들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그렇다는게 아니고, 집단으로서 그들의 정치적 위치가 그 정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민주화 세력이었지만, 사회 경제적 민주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추동할 정도가 되는 이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 필요한 '당파성', 즉,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 것인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곧,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을 때 서민의 편에 선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연대는 필요하다. 지난 4년간 당하면서 충분히 느낀 것처럼 MB와 한나라당을 지난 시절의 추억으로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칫하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던' 정치적 민주화마저 과거로 되돌아가게 생겼으니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무작정 통합, 무작정 단결만 외쳐서는 김대중-노무현 10년의 재판 이상은 될 수 없다. 그 당시에는 정권교체나 권위주의 타파 같은 의미라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그 시절로의 회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음 시대에는 서민의 편에 서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권을 우리가 필요로 한다고 할 때, 유권자들은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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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너도 엑스맨이야? 그럼 당신도?

  현실적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연대가 이루어지면 진보정당도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져가겠지만, 당장은 더 많은 지분을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같은 그 주변 인사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만, 현재의 정치현실을 고려할 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민주당과 그 주변 인사들을 견인해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을 어느 정도까지 견인할 수 있다. 한-미 FTA 국면에서 민주당이 시늉으로라도 FTA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친노 인사들이 초기의 '노무현 FTA와 이명박 FTA' 프레임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99%가 끊임없이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에 '엄청나게 관심을 갖는' 자세를 다음 5년 동안 계속 유지해가야만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 되었을 때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바꾸는 작업을 선행해야겠지만.


앞 글에서는 나름 인터넷 유행어도 쓰고 그랬는데, 이번 글은 어쩐지 진지하게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인지 읽어보니 참 재미없구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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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가 뭐길래 ① (부제 : It's class, stupid!)

Posted at 2011. 11. 22. 23:36// Posted in 시사
  결국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전격 날치기로 처리되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외국과의 조약에 대한 날치기 처리이며, 매우 이례적인 '비공개 본회의를 통한' 날치기였다. (누가 누가 찬성했나를 숨기기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YTN이 찍은 화면 캡쳐 하나로 다 뽀록났다. 뉘들 다음 총선 때 보자.) 사실 18대 국회는 '날치기 국회'라고 할 정도로 많은 날치기가 있다. 집권당이자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3년간의 예산을 모두 날치기로 처리한 바 있으며, 2009년에는 사전투표, 재투표, 대리투표 등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가며 미디어법을 날치기 처리했다.(이 때 헌재의 과정은 불법이 맞지만 결과는 인정한다는 판결은 지금 생각해도 예술이다.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에 이은 히트작)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국민이 과반수의 의석을 몰아준 것이 날치기 하라는 뜻인줄 한 모양이다.

http://khross.khan.kr/124 <<클릭 : 18대 국회 날치기 역사 요약  

  사실 이번 한미 FTA의 날치기 통과는 그 많은 날치기 중에서도 이례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미국간의 이익균형이 무너졌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가카도 '비준 후 ISD 재협상론'에서 보듯 일부 조항의 문제를 인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 FTA의 처리는 예산안과 달리 시한이 정해져 있는 문제도 아니며, 미디어법처럼 정권재창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둬가며 날치기 처리를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BBK나 천안함 등의 문제에 미국이 키를 쥐고 있기 때문에 '가카'의 입장에서 미국에 선물을 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일리는 있어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닌데 ...) 그리고 단지 그것만 이라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까지 저렇게 나설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설마 진짜 저축은행으로 발목잡힌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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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 규탄 시위대가 물대포를 맞고 있다. 저기에 갔어야 하는데
 몸이 완전치 않은 상태라 못간게 한이라 이렇게 글질이라도 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의 본질을 살펴보면, 그것이 한나라당의 다른 날치기들과 매우 일관성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간 이익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 자본의 이익과 서민의 이익이 충돌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미디어법은 거대 언론 재벌의 방송진출을 보장해준 법안이며, 3년간의 예산 날치기 처리에서 주로 문제가 된 것은 서민/복지관련 예산의 축소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에 한미 FTA와 함께 처리된 법안 중에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끼어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한미 FTA가 한-미간의 문제가 아닌 재벌-서민 간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좀 디벼보자. 많은 사람들이 ISD 이야기를 하며 '사법 주권을 통째로 넘겨준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 나라의 투자자도 미국을 재소할 수 있다. 우리 투자자의 권리도 보장하는 것.' 이라고도 한다. 이것도 일단 일리는 있어 보인다. 여기서 양국 간 힘의 차이, 다국적 기업의 파워 차이 등등을 논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은 '투자자의 권리'라는 부분이다. ISD의 쌍방은 '투자자'와 '국가'다. 즉, 국가의 규제 정책이 투자자의 이익을 훼손할 경우 투자자가 재소할 수 있다는 것이란 말이다. 그럼 생각해보자. 국가가 왜 규제를 할까?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 약자, 즉 서민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서 혹은 공공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서이다. SSM 관련 법안이나, 공정거래법 같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럼 투자자는 누구일까? 옆집 사는 김씨 아저씨가 미국에 투자하거나, 볼티모어에서 그레이하운드 타고 뉴욕에 가서 'Occupy Wall Street'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배관공 스미스씨일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 나라를 재소까지 한다는 생각을 하는 투자자가 그렇지는 않을거다. 론스타나 맥쿼리 같은 거대 금융자본이라고 봐야지. 한국에서는 삼성이나 현대차 정도는 되어야 미국느님 땅에 투자도 좀 해보지 않겠는가. 결국 ISD는 김씨 아저씨와 배관공 스미스씨의 권리를 제한하고 '먹튀자본' 내지는 '재벌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입을 쉽게 알 수 있다.

  '에이, 재소할 수 있다는 거지 그걸 설마 일일히 재소야 하겠어?', '투자자가 승소한 경우도 별로 없다던데?', '공공정책은 대상이 아니라던데?'라는 쓸때 없는 걱정을 하시는 김씨 아저씨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실재로 제소가 이루어진 볼리비아 수도민영화까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SSM 관련 법안에 외교부가 '한-EU FTA와 충돌해서 안됨'이라는 의견을 냈다는 이야기나, 4대강 공사로 늘어난 중장비의 사후관리를 위해 규제를 도입하려던 시도가 역시 외교부의 '한-미 FTA에 위배되서 안됨'이라는 의견으로 무산되었다는 이야기(외교부는 어느 나라 조직이야?)를 봐도 한-미 FTA가 어떻게 작용할 지 알 수 있다. 한-미 FTA는 정부의 공공정책 확대를 싫어하는 국내외의 세력들에게 훌륭한 명분을 제공해준다. 요즘 여기 저기서 복지, 복지 하는데, 한-미 FTA를 통해 보수의 꼬깔콘까지 나서지 않아도 복지제도 도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는 미국의 거대자본 뿐 아니라 한국의 재벌들도 적극 환영하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 수출해야 하는데 당연히 환영하는 거 아니냐고? 그건 일부분일 뿐이고, 실재로 한-미 FTA의 수출진작 효과는 그다지다. 기껏해야 자동차 정도인데, 사실 자동차는 관세율도 낮고 현지 생산이 많아서 큰 효과도 없다. 그나마 그 관세 철폐도 가카가 통크게 양보해서 유예되어 버렸고. 재벌들이 FTA를 환영하는 이유는 이 조약을 통해 복지국가에 '빅엿'을 먹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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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급식을 마지막으로 복지 확충은 영영 바이바이일지도 모른다.

  재벌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보자. 한국의 재벌 of 재벌 하면 역시 건희 아저씨가 버티는 삼성이다. 한국의 재벌 of 재벌답게 삼성이야말로 한-미 FTA를 가장 환영하는 집단이다. 다른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복지국가에 빅엿을 먹이는 효과는 기본으로 깔고, 거기에 보험과 영리병원을 얹으면 삼성의 트리플 크라운이 완성된다. (민주당의 배신자 김진표와, 외교통상위 위원장 남경필이 괜히 삼성의 도시, 수원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게 아니다.) 알다시피 FTA는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짓는 것을 허락하고 있으며,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김씨 아저씨의 의료보험증을 여기서는 안받는다는 말이다. (물론 요즘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지만...) 그럼 그 어마어마한 병원비는 어쩌나? 복제약 사용이 제한되어 (역시 한-미 FTA의 내용 중 하나다) 훌쩍 뛰어오른 약값은 어쩌고? 방법은 있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생명의 사보험을 드는 것이지. 물론 보험금은 비싸다. 사보험은 회사에서 돈 안내주거든. 이렇게 삼성은 '삼성의료원'을 레버리지로 영리병원에서 꿩먹고, 삼성생명/화재를 통해 알먹는다. 우리집이 송도도 아닌데 그 병원 안가면 된다고? 영리병원으로 인한 병원비 상승은 당연히 일반 병원의 병원비 상승에 명분을 제공하게 될 것이며, 한 번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당연지정제는 점점 더 큰 구멍이 뚫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을 안받겠다는 병원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이야기지. 이게 바로 '의료 민영화'다. 물론, 영리병원이 당장 의료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가는 것은 틀림없으며, '미끄러운 비탈길'을 타고 미국의 의료체계에 가까워질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다. 역시, 이건희 만세다.

  잘 알다시피 가카는 전봇대 뽑기에서 시작해서 3년간의 예산 날치기, 부자감세, 고환율 정책 등 일관되게 재벌 대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정책을 써왔고, 한-미 FTA의 날치기 통과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로 인해 피를 보는 것은 나나 당신 같은 서민들이고, 이익을 보는 것은 미국의 다국적 자본과 한국의 재벌 대기업이다. 이것은 이익균형의 문제도 아니며, (그런 성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평등 조약의 문제만도 아니다.

  이것은 결국 '계급'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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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건 몰라도 '지지층에 대한 철저한 헌신'과 '일관성'만큼은
          가카를 따를 사람이 없다. 이런 건 본받아야 한다.


... 2편에서는 일관성 있는게 가카뿐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2편 보기 : 2011/11/24 - [시사] - 한미 FTA가 뭐길래 ② (부제 : It's class,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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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주의와 오만함

Posted at 2011. 8. 21. 22:45// Posted in 시사
2011년 8월 21일 현재 나의 페친은 180명이다. 그 대부분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가 온라인으로 넘어온 케이스지만 일부는 페이스북에서만 알고 있는 사람(즉, 오프라인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도 있다. 그 대부분은 오프라인에서 내가 찾아가거나 초대받아 가입한 모임의 구성원들이며, 그 중에는 일정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이들이 구성한 모임도 있다. 물론 내가 성향상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요즘 언론에 종종 나와서 한 번 들먹여 본다.) 같은 모임에 가입할 리 없으니, 그 모임의 '일정한 정치적 지향'은 (일반적인 한국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 구분 방식을 기준으로) 진보이거나 최소한 자유주의적인 성향이다.

오늘 그렇게 페친을 맺고 있는 분들 중 한 분의 포스팅에서 (적어도 내게는) 매우 충격적인 문구를 봤다. 직접 인용하자면 이렇다. "...(전략)...작년 선거의 재판이 되는 것을 서울시민과 국민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류의 행보는 저부터서 더 이상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 전체의 내용은 오세훈 시장은 주민투표의 정족수 미달로 물러나게 될 것이며, 이 자리에 범야권 후보가 당선되게 되면 그 자체의 의미는 물론,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도 범야권 통합의 훌륭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지만, 이 글에서 내게 충격을 준 부분은 위에 직접 인용한 부분이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언제부터 공당의 지방자치단체장 후보가 선거를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것이 'ooo류의 행보'로 (부정적 뉘앙스를 가득 담고) 표현되어야 하는 일이 되었으며, 언제부터 '용납' 또는 '용서'를 받아야 하는 행위가 되었는가? 저 글을 쓰신 분은 국민으로부터 무슨 엄청난 자격을 부여받았기에 자신의정치적 권리를 행사한 후보자를 '용서하고 말고'한다는 것인가?

만약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범야권이 단일후보에 합의했고, 그 단일후보로 한명숙 전 총리가 선출되었는데, 노회찬 전 대표가 이에 불복하여 출마하기라도 했다면 이는 비판받을 수 있는 일이고, 생각하기에 따라 '용납' 혹은 '용서' 같은 단어가 언급될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진보신당은 민주당과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바 없으며, 공당으로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선거를 완주했다. 누가, 무슨 근거로 그의 완주를 비난할 수 있는가? 당선 가능성도 없는데 왜 완주했냐고? 언제부터 민주국가의 선거가 당선 가능성 1, 2위 후보만 출마해야 하는 선거가 되었는가?

물론 그 분의 포스팅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표차는 약 3만표 수준이었고, 노회찬 후보의 득표수는 약 14만표였으니 노회찬 후보가 완주하지 않았더라면 정치적 성향상 노회찬 후보의 표 중 상당수는 한명숙 후보에게 갔을 가능성이 크고 그랬다면 오세훈의 '세빛둥둥섬'이라든가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같은 눈꼴사나운 짓거리는 보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어찌 본다면 노회찬 후보의 완주는 전략적인 견지에서 패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교훈삼아 만약 서울시장 선거를 다시 하게 된다면 단일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범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의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일방적으로 노회찬과 진보신당의 탓으로, 나아가 한명숙의 낙선을 노회찬의 탓으로 모는 것은 패권주의적이다 못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류의) 파시즘의 냄새까지 난다. 만약 민주당(혹은 참여당, 혹은 이전의 열린우리당)과 그 지지자들이 진정성 있게 정당 간의 통합 내지는 선거연합을 모색하고 싶다면 이런 식으로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상대적 약자인 진보정당의 책임으로 모는 태도는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패권주의 적이고 오만한 자세야말로 합당 또는 단일화가 실패할 수 있는 첫번째 이유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로의 회귀'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이며, 이를 위해 반 한나라당 진영은 일치 단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라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들은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정조 이래 최초로 집권한 비 보수세력'으로서 개인적으로 존경할 만한 분들임을 물론 정치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분들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분들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문제들이 잉태된 것도 사실이다. 현재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들이고 있는 김진숙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크레인에 올랐지만, 그에 앞서 크레인에 올라 목을 매달았던 김주익은 노무현 정권하에서 목을 매달았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위장도급이 인정되어 직접고용 가능성이 열린 KTX 여승무원의 문제가 발발한 것도 노무현 정권 하에서 생긴 일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역량의 한계든, 진보성의 한계든, 혹은 다른 어떤 문제든 간에 그 정권 하에서 빈부차는 극심해지고 비정규직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정리해고는 난무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현재 반 한나라당/반 이명박 전선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안에는 김대중/노무현 너머를 고민하는 정치세력이 살아있어야 하며, 이를 전제로 한 연합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현재 민노당 일각의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미지근하고 참여당과의 통합에 적극적인 움직임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다.)

나도 금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통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자리에 야권단일후보가 나서 당선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년 총선에서 범야권의 선거연대가 이루어져 한나라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기를 희망하며, 나도 정권교체를 희망한다. 하지만 정말로 이를 희망한다면 민주당은 패권주의를,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오만함을 우선 내려놓아야 한다. 거기서 모든 것이 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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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나는 경쟁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경쟁만큼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해주고 효율을 촉진하는 장치는 아직까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사회의 경쟁에 대해서는 몇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첫째, '경쟁'이라는 가치에 비해 '협력'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이 너무나 간과되고 있다. 둘째, 경쟁의 공정성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셋째, 너무 어린 나이부터 아이를 경쟁으로 몰아 넣는다. 넷째,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 중에서도 네번째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취약한 사회 안전망과, 'Winner Takes All'이 일반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경쟁에서 지면 죽는다.'는 공포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폭넓게 심어주고 있다. 해고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이라고 쓰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읽는다)한 13명의 쌍용차 조합원들과, 꿈을 쫒다가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친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모습을 보라. 이 같은 공포 속에 부모는 자식이 말을 떼자 무섭게 '영어유치원'과 같은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고, 아이들은 협력이나 우정보다는 경쟁을 배우며 자라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쟁은 그 경쟁의 승자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보다, 패자가 무엇을 잃을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그 경쟁의 정당성을 따지는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경쟁이 많은 경우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생존경쟁'이 사회의 화두라 그런지 요즘 TV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다.' British got talent나 American Idol 같은 프로그램을 카피한 '슈퍼스타K'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김재철 사장의 한 마디로 급조된 '위대한 탄생'으로 인기몰이를 하더니, 위대한 탄생의 시청율 상승에 자극받은 MBC가 마침내 자사의 간판 버라이어티인 일밤 전체를 두 편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채우며 절정에 이르고 있는 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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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슈퍼스타K', 현재 시즌3를 준비중이다

 그런데 이 두 프로그램은 '오디션' 형태를 Base로 한다는 점 말고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러니까 같은 일밤에서 운영할 수 있었겠지.) '나는 가수다'는 '노래'라는 현재 히트치고 있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본 소재를 차용하긴 했지만, '숨어 있는 고수를 찾아서 승자를 뽑는다'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식과는 반대로 '널리 알려진 고수를 경쟁시켜 탈락자를 선발한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신입사원'은 '아나운서'라는 독특한 소재를 차용한 반면 '승자를 뽑는다'는 공식에는 충실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경쟁의 결과가 참가자 - 특히,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 - 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패배했을지라도 타격이 적고 어떤 의미에서 참가만으로 이득인 측면도 있지만, 후자는 다른 기회를 봉쇄당할 수도 있고 참가만으로 원치 않는 부작용에 시달릴 수도 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획, '나는 가수다'

 '승자를 선발한다'와 '탈락자를 선발한다'는 차이를 얼핏 들여다보면 탈락자를 선발하는 방식이 더 잔혹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가수들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이들 중 하나가 탈락한다고 하더라도 그 실력 자체를 의심받거나 가수생명을 위협받는 일 따위는 당연히 없다. (어제 무대를 보았다면, 7등을 한 정엽씨의 실력의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경쟁에서의 패배는 탈락자에게 상처가 되겠지만, 누가 되었든 그 가수는 프로 중의 프로이며 따라서 충분히 이를 감수하고 더 좋은 무대를 준비해가는 채찍질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모인 멤버가 이런 정도의 가수들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여기에 뽑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실력에 대한 인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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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수다' 첫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환상적인 무대를 선사하고도 
  7위에 머물렀던 가수 정엽. 하지만 누구도 그의 실력을 의심하진 않는다. 


 게다가 이들은 아이돌들이 가요 관련 프로그램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에서 주말 황금시간대 공중파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그 뿐이랴, 시청자는 시청자대로 질 높은 공연을 즐길 수 있고 (평가단으로 뽑힌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시쳥률을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경쟁의 승자와 패자, 그리고 경쟁의 무대를 만든 이와 이를 지켜보는 이 모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기획이다. 물론 이들보다 더 무대를 찾기 힘든 실력파 인디밴드나, 아이돌이 아닌 신인 가수 등을 대상으로 비슷한 기획을 했다면 좀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시청률을 생각해야 하는 공중파 버라이어티 프로의 한계를 고려할 때 (넓은 의미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이 정도면 최선의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강자의 횡포, '신입사원'

 '나는 가수다'와 함께 새로운 일밤을 양분하고 있는 신입사원은 여러 의미에서 '나는 가수다'와는 다르다. 가수냐 아나운서냐, 채용이냐 탈락이냐와 같은 표면적인 차이 뿐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가수와는 좀 다르다. 물론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노출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런 까닭에 최근엔 '아나테이너'라는 말도 나왔지만), 아나운서는 기본적으로 '스타'이기 보다는 '언론인'이다. 언론인의 선발을 방송에 비춰지는 이미지만으로 한다는 것은 MBC가 언론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부분이다. 혹시 방송을 통해 '인기 있는' 아나운서를 뽑아서 언론인 보다는 대중문화 스타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시청율을 챙기면서 장기적으로 이들을 연예/오락 프로그램 MC 등으로 활용함으로써 출연료도 좀 아껴 보겠다는 얄팍한 수단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MBC 아나운서 공개채용 신입사원. 나이, 연령, 학력을 파괴하고 '국민을 닮은' 아나운서를
뽑겠다는 그럴싸한 타이틀과는 달리 실제로는 강자의 횡포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생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강자의 횡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수를 뽑는 오디션과 달리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은 참가자(중 탈락자)의 '다른 기회'를 봉쇄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MBC 아나운서 오디션의 16강쯤에서 탈락하고 그 탈락 사실이 공중에게 알려진 이는, 그런 일이 없었을 때보다 KBS나 SBS의 아나운서로 채용될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KBS나 SBS 입장에서 'MBC의 탈락자를 채용했다.'는 이야기가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MBC는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 특성상 발생할 것이 틀림 없는 부작용인 속칭 '신상이 털리는' 일을 예견한 듯 참가자에게 초상권,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할 것을 서약하도록 만들었다. 따져보면 따져볼 수록 지원자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방송사'라는 '아나운서 지망생'에 대해 절대적으로 '갑'인 존재가 아니라면 유지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물론 MBC 입장에서는 항변할 수도 있다. '그게 마음에 안들면 지원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닌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견강부회일 따름이다. 기자, PD, 아나운서가 되는 일은 속칭 '언론고시'라고 불리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위해 몇 년씩 준비를 한다. 그리고 공중파 방송인 MBC의 아나운서는 이들에게는 수년간 꿈꿔왔던 '꿈의 직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MBC가 강자의 횡포를 부린다고 해서 그 기회를 포기할 수 있을까?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울며 겨자먹기로 참가하게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과연 이들에게 진정으로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MBC가 '공영방송'임을 자임한다면, (물론 최근 재선된 사장의 모습을 보면 '공영방송'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시청률과 수익성을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직원이 될 지도 모르는 이들의 입장을 좀 더 고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다른 '강자'들이 그렇듯, MBC도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것만 생각했지 그 '힘'으로 인해 눈물을 쏟을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나는 가수다'가 끝나고 나면 채널을 돌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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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의 삶

Posted at 2011. 2. 25. 11:04// Posted in 시사
한 미국인 관광객이 멕시코의 작은 어촌에 도착했다. 그는 마을의 머부가 잡은 크고 싱싱한 물고기를 보고 감탄했다.

"그거 잡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멕시코 어부 왈,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러자 미국인이 재차 물었다.

" 왜 좀 더 시간을 들여 물고기를 잡지 않나요? 더 많이 잡을 수 있을텐데...."

멕시코 어부는 적은 물고기로도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충분하다고 했다.

"그럼 남은 시간에는 뭐하세요?"

"늦잠 자고, 낚시질 잠깐 하고, 애들이랑 놀고, 마누라하고 낮잠 자고... 밤에는 마을에 가서 친구들이랑 술 한잔 합니다. 기타 치고 노래 하고... 아주 바쁘지요...."

미국인이 그의 말을 막았다.

"사실 제가 하버드 MBA입니다. 제 말 들어보세요! 당신은 매일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낚시질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더 많은 수입이 생기고 더 큰 배도 살 수 있겠죠. 큰 배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배를 몇 척 더 살 수 있고, 나중에는 수산회사도 세울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 조그만 마을을 떠나 멕시코시티나 LA, 아니면 뉴욕으로도 이사할 수 있다구요!"

이번엔 어부가 물었다.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걸리죠?"

"20년..., 아니 25년 정도요."

"그 다음에는요?"

"당신 사업이 진짜로 번창했을 때는 주식을 팔아서 백만장자가 되는 거죠!"

"백만장자?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은퇴해서, 바닷가가 있는 작은 마을에 살면서, 늦잠 자고 아이들이랑 놀고, 낚시질로 소일하고, 낮잠 자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 술 마시고 친구들이랑 노는 거죠!"

출처 : 인터넷에는 LG 경제연구원의 "2010 대한민국 트렌드"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만든 이야기 같지는
         않으니 다른 1차 출처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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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행복은 하루하루의 행복의 총합이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막연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것을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요구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현명한 일일까.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지 내일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긴...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사회의 특성상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간직하고 사는 것이 당연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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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e - 눈물의 룰라 (2011-01-25일 방영)

룰라는 대통령 당선과 함께 일정 정도의 '우클릭'을 통해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냈다. 그는 노무현 정무와 마찬가지로 '온정주의적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을 걸었지만, 노무현 정부보다는 더 효과적으로 하층민에 대한 지원을 펼쳐서 빈곤퇴치에 불평등 해소에 성공적이었으며, 그의 당선 시에 우파들이 퍼부은 비난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물론 브라질의 빈부차가 워낙 커서 시혜적 복지 정책 자체가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은 노무현 정부와는 환경적 요인에서 다른 점인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그는 퇴임 시까지 80%의 지지율을 간직한 채로 노동자당 후보인 호세프에게 정권을 인계한다.

노무현 정부가 조금만 더 노무현 전 대통령 그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정책을 펼쳤더라면 (혹은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룰라도 야당시절보다는 우클릭했지만, 적어도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 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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