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경비선택납부제

Posted at 2013. 5. 19. 21:36// Posted in 시사

대학원생 신분이다보니 학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정도가 현저히 제한되어, 학부 때처럼 학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나 논란의 배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부분적으로는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조직'이 없고(이건, 내가 다니는 대학원이 명목상 '전문대학원'이어서 더욱 그렇다), 학부생들과의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다보니(내가 워낙 뒤늦게 공부를 하고 있다보니 학부생들과의 나이/학번 차이가 후덜덜..) 주워들을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학기가 시작할 때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른바 '자율경비선택납부제'의 등장이다. 이게 뭐냐하면, 과거에는 등록금 낼 때 자동으로 납부되게 되어 있던 학생회비, 교지 비용 등에 대한 납부여부를 개개의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선택을 안할 경우 디폴트값은(적어도 내가 다니는 대학원에 관한 한) 납부하지 않는다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건 정확하지는 않다. 나는 '납부한다'를 선택해서 대학원 학생회비 - so called 원우회비 - 를 납부했기 때문에 확인해보지 못했다).

이게 무서운 것은 '납부자 개개인의 선택'을 빙자해서 자치조직을 효과적으로 와해시키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연세춘추, 연세지, 그리고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있다.

학생회에서 학생들을 위해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비배제성'을 가진다. 즉, 학생회가 예를 들어 학생들을 대표해서 학교와 협상을 해서 등록금 인상을 저지했다고 할 때, 그 혜택은 학생회비를 납부한 학생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보게 된다. 따라서 적어도 부분적으로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샘이다. 이 경우 학생회비 납부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게 된다면, '합리적 행위자'의 선택은 당연히 학생회비를 안내는 것이다. 무임승차를 막을 수 없으니까. 이렇기 때문에 학생회비에 대해서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세금 납부를 '개인의 선택'에 맡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는 것은 누구도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교리가 되어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자율경비선택납부제'의 도입이 가능했던 논리가 아니었을까.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내가 들은 바 없으니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문득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자치조직을 매우 효율적으로 와해시켜갈 것으로 보이는 이 '자율경비선택납부'의 논리가 노동조합의 조합비 같은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 제도는 교과부의 권고로 등장했고, 아마도 아직까지 연세대 외의 많은 대학으로 퍼지지는 않은 것 같다. 이게 더 효과를 가지기 전에 이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이 제도를 '전가의 보도'로 여기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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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2)

Posted at 2013. 4. 23. 10:21// Posted in 시사

관련기사 : “진보적이라 대선에서 실패했나”  민주당 ‘강령 중도화 추진’ 격론


민주당은 정말 "좌파적인" 정책을 제시한 나머지 중도파로부터 외면당해서 선거에서 패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지방선거 - 총선 - 대선을 거치며 과거에 "좌파적"이라고 여겨졌던 의제들 - 보편적 복지나 경제민주화 같은 - 은 시대정신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했으며 이는 민주당 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동일한 의제를 자신들의 정책으로 녹이고 있었음에서 드러난다. 즉, 정책 측면에서 패인은 오히려 '민주당의 좌클릭'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좌클릭'에 있었으며 새누리당의 "좌파적"의제 차용에 대해 민주당이 전혀 차별화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따라서 지금 민주당 일각에서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몰아세우는 "좌파적" 정책은 적합한 민주당 패배의 원인이 아니다.


그럼 현재 "민주당의 우클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모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거 패배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가가 아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새누리당과 그리 다를 바 없는 민주당 내의 수구세력들이고, 비록 '시대정신'에 밀려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의제로 채택될 때는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있었지만 사실상 그와 같은 의제의 실천할 의사는 전혀 없었던 세력이다. 이 점에서 그들과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을 꾸준히 후퇴시키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매우 잘 통한다. 민주당 좌파라고 할 수 있는 같은 당 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그들은 선거 패배를 빌미로 그간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보편복지나 경제민주화로부터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들에게 -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색깔을 가졌던 - 문재인의 당선보다 박근혜의 당선은 "좌파적" 의제로부터 후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이롭다. 여당의 공약철회 뒤에 슬쩍 묻어가면 될테니까. 그렇게 본다면 민주당의 상당수가 선거국면에서 문재인의 당선을 그리 돕고싶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민주당의 진짜 '쇄신'이 필요한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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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1)

Posted at 2013. 4. 23. 10:18// Posted in 시사

민주당이 혁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혁신의 포인트는 '친노'가 아니라 그놈의 계파정치 아닐까. 민주당 계파의 "중간보스"들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한국정치 전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소속 정당의 이익조차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문재인을 등판시켜놓고 수비수는 전부 태업한 후, 경기 지고나면 피처에게 책임 다 지라고 하는 것이지.

구태 계파정치 중간보스는 현재의 '주류'에도 물론 있지만(예를들면, 이해찬 같이), 현재의 '비주류'에도 분명히 있다(예를 들면, 김한길).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핵심은 현재의 민주당이 혁신을 위해 전선을 갈라 싸워야 하는 것은 주류 vs 비주류 또는 친노 vs 비노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선을 잘못 긋고 싸우면, 누가 이기든 모두 함께 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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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Posted at 2013. 3. 7. 14:43// Posted in 시사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 우고 차베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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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고갈의 공포마케팅

Posted at 2013. 1. 29. 09:56// Posted in 시사

며칠 전에 누나랑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국민연금 이야기가 나왔다. 큰누나가 전업주부가 되기 전 약 100개월간 국민연금을 냈는데 어쩌면 좋으냐고(국민연금수급자가 되는 최소조건이 기여기간 120개월을 채우는 것). 나는 임의가입해서 120개월을 채우라고 했고, 누나는 (남편 사망 시) 유족연금과 본인의 노령연금이 중복지급되지 않는 문제를 이야기했고, 나는 다시 국민연금의 급여 적절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남편 건강 잘 챙기면서 임의가입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 와중에 오간 이야기 중에 예의 '기금고갈'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 '기금고갈의 공포' 마케팅이 새삼 꽤 많이 퍼져있음을 느꼈다. 물론, 일단 적립방식으로 출발한 우리 국민연금의 기금고갈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지만 공포에 사로잡힐 일은 아니다. 기금이 없어도 부과식(현재의 생산연령이 낸 보험료를 현재의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처럼 기금 쌓아놓고 연금 지급하는 나라, 몇 안된다. 대부분 부과식으로 하지.

자꾸만 기금고갈 이야기가 나오는 데는 두 가지 의도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보험료를 올리거나 급여를 낮추기 위한 사전 밑밥.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성을 흔들어 사적 연금의 공간을 넓히려는 떡밥. 전자는 그래도 (저출산 고령화를 맞이하여 연금보험료율 조정 필요는 있을 수 있으니) 봐줄만한데 후자는 진짜 경계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보험회사는 국가보다 부도날 확률이 높다(대한민국이 이제 그 정도는 된다). 따라서 부과방식의 지급까지 고려할 때, 국민연금은 대단히 안전한 연금이다. 실질적으로 가장 안전한 연금이라고 봐야지. 물론 소득대체율이 40%까지 조정된 것을 고려하면, 급여수준의 문제는 있긴 하겠지만.



이번 기초노령연금 도입과 관련해서 이루어진 논쟁만해도 그렇다. 보편적인 연금 성격의 기초노령연금은 일반조세에서 충당함이 옳은가, 사회보장기여금에서 충당함이 옳은가는 따져볼만한 문제지만, 여기에 붙은 '국민연금은 낸 만큼 가져가는 제도'(이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성을 무시)라든가 '국민연금 기금고갈 시기가 앞당겨진다'(이건 기금고갈 공포 마케팅에 근거)라는 논의들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사실 이번 인수위의 국민연금기금 충당설은 그것이 공약일 때는 전혀 논의되지 않다가 당선 후에 튀어나왔다는 점에서 내용을 떠나 절차적으로 잘못된 것이 맞다).

기금고갈 자체가 아무 문제없는 당연한 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여기에 대해 지나친 공포를 심어주는 것은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오히려 국민연금 기금 관련해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이미 300조 이상 적립된 적립금을 어떻게 사용할까의 문제가 아닐까. 지금 모피아의 쌈짓돈이 되어 주가나 환률 떠받치기용 '도시락 폭탄'으로 쓰이는 것보다는 사회적 투자(예를 들면 청년연대은행 같은데 대부한다든가)에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와 같은 문제 말이다. 설사 지금처럼 주식투자 위주로 쓰인다고 하더라도 어떤 기준에 미달하는 - 노동착취가 심하다든가, 환경기준을 위반한다든가 -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 것을 투자규정으로 삼는 것도 논의할만하다.


정리하자.

1) 자꾸 기금고갈 기금고갈하는데, 이거 공포 마케팅의 냄새가 난다.

2) 기금고갈론과 무관하게 국민연금은 안전하다. 어떤 사적연금보다.

3) 기초노령연금 이야기를 하면서 (입장이 무엇이든) 연금기금고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4) 국민연금 기금 관련하여 중요한 부분은 오히려 이미 300조 이상 쌓인 국민연금기금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잘 투자하고 사용할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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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사링크 클릭

이재용씨 아들의 사회적 배려 전형 국제중 입학 관련, 제도상 문제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욕을 하는 사람(나 같은)도 있고 해서... 잠시 정리해봤다.

우선 팩트를 정리해보자. 국제중학교에는 '사회적 배려 전형'이라는 것이 있다. 국제중 사배자 전형 대상자는 ‘경제적 배려 대상자’와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나누어지며, 전자에는  기초생활 수급자, 한부모 가족 보호대상자(저소득), 차상위계층 등이 후자에는 한부모 가정 자녀, 소년소녀 가장, 조손가정 자녀, 북한이탈주민 자녀, 환경미화원의 자녀, 다자녀 가정 자녀 등이 포함된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은 2009년 이 부회장의 이혼으로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인 한부모 가정 자녀에 해당돼 사회적 배려 전형에 지원했다.

자, 그럼 이 팩트를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보자.

일단 사회적 배려 전형 중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는 대상의 소득/재산과 무관한 조건을 보는 것이며, 따라서 이재용씨의 아들이라도 제도적으로 결격 사유는 없다. 적어도 제도와 절차에 관한 한 문제가 없다는 삼성측의 주장이 맞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기사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뱉은 욕설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게 옳다. 내키지 않아도. 물론 그쪽에선 내가 사과하든 말든 관심도 없고 애초에 욕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제도에는 '합목적성'이라는 것이 있다. 즉, 그 제도의 규정이 어떻더라도 운영자체가 그 제도를 수립한 목적에 맞에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배려 전형'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는 그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즉 배려가 없을 경우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모종의 손해를 볼 수 있는 대상자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국제중학교가 일종의 '엘리트 교육'이라고 할 때 여기에 특례 입학을 시키는 것은 교육에 있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게다. 미국의 affirmative action처럼 일반적으로 성적 등에 의해서만 선발할 경우 국제중이라는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게 별도의 Quota를 배정함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보완하고 해당 교육기관 내 학생들의 다양성을 얻는 것이 아마 그 목적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과연 이재용씨의 아들이 여기에 맞는 사람인지는 의문이다. 누구도 그 사람이 '일반적인 경우에서 교육기회의 평등에서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전자 측 관계자 말대로 “이혼한 부모의 자녀는 정서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할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정서적 배려가 왜 엘리트 교육기관에의 특례입학인지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엘리트 교육기관에의 특례 입학이 '학생의 정서'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기회의 평등'을 위한 것인가? 전자라면 일반적인 공교육을 받는 학생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인가?

한겨레 기사에서 인용한 것처럼 교육학 전문가는 이 전형방식에 경제적/비경제적 구분이 생긴것은 애당처 경제적 배려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제도 개선 과정에서 경제적 배려 대상자는 증빙조건을 강화하고 선발 할당량을 부여했다. 동시에, 자사고·국제중의 사배자 전형 미달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시교육청이 부유층 자녀들이 섞여들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해 준 점도 있다. 재벌가 자녀의 사배자 전형 이용은 이 허점을 이용한 것인데, 이는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리하자. 

1) 이재용씨 아들의 국제중 사회적 배려 전형 입학에 규정상 문제는 없다.

2) 그러나 제도의 합목적성에 맞지 않는다.

3) 따라서 학교측이 제도의 합목적성을 고려했다면(사회적 배려자 전형이 미달이 아니었던 한은) 지원을 했더라도  
    탈락시켰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로 행동했을 확률이 매우 매우 매우 높다.

4) 지원한 측도 적어도 한국사회의 소위 지도층 인사로써 이런 편법은 자제했어야 맞다.

5) 물론 삼성에 이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다. 법도 안지키는데 양심까지 바라면 쓰나. 있는 법만이라도 잘 지키길
    바라야지.

6) 궁극적으로는,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제도를 유용하기 쉽게 만들어놓고 행위자가 양심껏 행동하길 바라는 건
    적어도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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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들 앞에서.

Posted at 2012. 12. 25. 22:27// Posted in 시사

추운 겨울이다. 너무 추운 겨울이다. 너무 추워서 춥다는 말 한마디 뱉어내기 힘든 겨울이다.

선거 결과를 보고 나도 절망감을 느꼈었다.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밉다는 생각도 했고,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멘붕'을 겪었다. 하지만 그 이틀 후 회사의 손해배상소송에 시달리던 한 생명이 속절없이 지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힘내라는 말고, 죽지 말자는 말도, 참고 5년 견뎌보자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절실했다. 절실했다고 생각했다. 또 5년 지난 5년처럼 살 수는 없는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랬다. 절실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나에게,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더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선거 결과는 차갑게 말하면 '언짢음'이었을 것이다. 구리디 구린 꼴을 5년 더 봐야 한다는 것. 역사가 후퇴하는 꼴을 5년 더 봐야 한다는 것. 종종 내가 주변인에게 뱉은 '국적이 쪽팔린다.'는, 딱 그런 정도의 감정.

하지만 아니었다. 당장 그 결과에 목숨이 걸려 있다는, 그런 처절함은 아니었다. 따뜻한 방구석에 앉아 욕설을 내뱉을지언정,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던질 그런 처절한 절망감은 아니었다. 그래서 감히 아무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분노의 말도, 어설픈 힐링의 말도, 다짐의 말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분들의 절실함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참으로 참담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한 것 없는 내가, 그 힘든 손 한 번 잡아드린적 없는 내가, 희망버스에 몸 한 번 실어보지 않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감히 힘을 내라. 함께 가자. 용기를 내라. 절망하지 마라. 그런 말, 어찌 감히 내가 입에 담을 수 있으랴. 어찌 감히 내가 떠들 수 있으랴. 

그리고 세 목숨이 더 갔다.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선거 결과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김영삼 때도, 김대중 때도, 노무현 때도, 이명박 때도 쭉 올랐다. 멈추지 않고 계속 올랐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자살률이 달랐을 것이다. 그리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이었고. 양극화가 심각해진 것도,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처음 누군가 목숨을 끊었던 것도... 모두 그랬다. 하지만 지난 5년, 그 최악의 5년을 겪으며, 야당들의 약속을 들으며, 노동현장을 방문한 굵직한 야당 인사들을 보며, 그래도 정권이 바뀌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통합을 말하던 당선자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네 개의 목숨이 지는 동안 아무 논평도, 아무 행동도 나오지 않는다. 기자와의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그쪽 인사가 한 말은 고작 "여기서 편을 들어주면 임기 내내 끌려다닌다."는 말이었단다. 허. 세살 먹은 아이 달래는 중인가보다.

화가 난다. 정말 화가 많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 화낼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분들께 찾아가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한 내가, 화낼 자격이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부끄럽다. 너무 부끄럽다. 나의 분노도, 슬픔도, 다짐도, 그 모든게 다 부끄럽다.

정말 춥다. 정말 너무 추운 계절이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하는, 그런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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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회사

Posted at 2012. 12. 21. 21:53// Posted in 시사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 갑자기 우리 나라 기업계에 어떤 회사 하나가 갑툭튀했다고 쳐. 그리고 아주 노동집약적인, 그런 사업을 하는거야. 예전에야 신발, 섬유 뭐 이런거였을 것이고 요즘에는 서비스업 쪽이겠지. 암튼 중요한 건 고정자본보다 노동력이 더 중요한 산업이라는 거지.

근데 갑자기 삼성이 미쳤는지, 이 회사에 돈을 막 퍼줘. 알고보니까 이 회사가 골목상권에서 서비스업을 하는데, 만약에 이 회사가 철수를 하면 이 자리에 외국계 거대기업이 들어온다거나 뭐 이런 이유로 삼성이 막 돈을 퍼줘.

게다가 이 회사 사장놈이 싸이코라 직원들 시급을 한 천원쯤 주는거야. 그리고 하루에 한 16시간쯤 일을 시키는 거지. 화장실도 못가게 하고, 일하다 다쳐도 병원도 안보내주고. 월급 적다 그럼 막 패버리고 짤라버려. 근데 신기한 건 이 회사 직원들은 미친듯이 성실한 사람들이라 그 와중에도 죽어라 일을 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사업이 잘 돼. 당연한 거 아냐? 돈은 삼성이 대주고, 인건비 안나가고, 직원들은 죽어라 일하고. 노동집약적 산업이니까.

그리고 나서 이 사장은 돈 좀 벌었다고 기계를 막 사. 진짜 막 사. 미친듯이. 산 기계 또 사고 또 사서, 어려운 말로 '중복투자'를 막 해. 그래서 회사가 망하기 직전까지 가고, 그 상태에서 이 사장은 갑자기 죽었어. 뭐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어. 나중에 듣자기 그 사장 죽고 나서 한 7년쯤 지나서, 대기업들끼리 플라자 호텔에서 합의를 했는데, 그 합의가 이 회사에서 산 물건은 막 싼 걸로 봐주기로 했데. 그래서 결국 그 기계 막 사놓은 게 나중에는 후루꾸로 좀 먹혔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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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런 상황에서 그 회사가 돈 번건, 사장님이 존나 훌륭해서야? 
아니면 시급 천원받고 하루에 열여섯시간 일한 근로자가 부지런해서야?

난 아무래도 그 사장이 좋은 놈인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떤 사람들은 그 사장을 존나 막 떠받든데. 웃기는 건 그 사람들 대부분은 하루에 열여섯시간 시급 천원받고 쳐 맞아가면서 일한 직원 자식들이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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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자유기업원장이라는 사람의 장하준 비판

Posted at 2012. 5. 9. 00:25// Posted in 시사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장하준 비판이라는데, 읽다보니 왜곡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점이 달라서 그런가? 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읽어봤지만 나로서는 아무리 납득해보려고 노력해도 이건 말이 안된다 싶다.

기사링크::신자유주의는 악이 아니다(한겨레21)

1. 발전국가 시절의 한국과 현재의 중국이 (일종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경제발전했다는 주장

- 한국에 대해 이 분은 '수출 중심 전략'(남미의 ISI와 대비되는)이니까 당시로서는 신자유주의라는데, 한국의 경제발전은 GATT체제의 비관세장벽에 대한 느슨한 제약을 기반으로 수출증대 & 수입차단 방식을 사용했다. 이게 신자유주의라면 애덤스미스가 그렇게 비판한 중상주의도 신자유주의다.

- 중국이 개방해서 성공했으니 신자유주의라는데, 물론 폐쇄에서 개방으로 일정부분 나간 건 사실이지만 경제의 중심이 공기업에 있고, 환률조작국 소리를 매번 듣는 나라가 신자유주의라니 어리둥절하다.

- 종합적으로 이 양반은 '대원군식 쇄국' 아니면 다 신자유주의라는 식이다. 그렇게 따지면 케인지언 경제정책도 신자유주의고, 장하준 교수의 주장도 신자유주의다. 그러면 논쟁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니, 이건 자기모순이다.


2. 최근 세계 경제위기는 미국 부동산 버블 탓이고, 이는 신자유주의를 '안해서' 생겼다.

- 부동산 버블이 왜 생겼나? 은행의 채권 금융화에 따른 무분별한 레버리지 추구와 그 와중에 위험도가 높은 주택채권을 증권화한 것이 터진 탓이다. 이는 금융규제 완화에 따른 금융회사의 탐욕과 단기수익추구(주주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한)에 근거한 바 크며, 이런 요인들은 대단히 '신자유주의적'이다.

- 부동산 버블이 커지고 있을 때 줄곧 부동산 버블의 위험을 폄하하고 시장은 완전하므로 걱정할 것 없다고 한 이들이 바로 앨런 그린스펀이나 월스트리트를 장악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이었다.

- 거품이 신자유주의를 안해서 생겼다고? 아무리 신자유주의자라도 이건 좀 심한 왜곡 아닌가...


3. 복지가 경제에 해롭다는 것은 성장론자나 복지론자가 모두 합의한 것이다.

- 이런 합의가 언제 있었는지 듣도 보도 못했다. 내가 아는 '복지론자'들은 장기적인 시각에서의 인적자원투자, Anti-Cycling Effect, 빈곤예방을 통한 사회안정 유지 등의 이유로 복지가 경제에 이롭거나 최소한 해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 물론 그런 복지론자의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는 논의할 만한 거리다. 하지만 복지가 경제에 해롭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말은 어느 복지론자와 귀하가 합의하셨는지는 몰라도 왜곡이다.


전 자유기업원장이 쓴 글이라니 이 분의 당파성은 짐작가능하지만 이 분이 이야기하는 '팩트'에 대한 왜곡이 너무 심하다  싶어 읽으며 짜증이 났다. 물론 나도 당파적이니까 내 이야기가 객관적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분의 이야기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의도적인 왜곡이 아니라면 심각한 무식으로 보일 정도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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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관한 두 가지 단상

Posted at 2012. 4. 4. 09:48// Posted in 시사

1. 환원주의적 오류

민주당에도 꽤 좋은 정치인들이 많다. 천정배, 최재천, 이종걸, 정동영(이 사람은 진짜 환골탈태한 것 같다..), 김정길, 김정애 같은 사람들은 어느 정당의 누구와 비교해도 매우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민주당도 좋은 정당이려니 생각한다면, 그런 것을 두고 환원주의적 오류(반대로 집단의 정체성을 보고 개인을 판단하는 것은 생태적 오류)라고 한다. 개인으로서의 정치인들이 좋은 것과 그 사람이 소속된 정당이 좋은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그 정당이 지난 날에 다수당이었을 때 제대로 된 개혁을 전혀 못했다든가, 위에 언급한 좋은 정치인들의 당내 입지가 취약하다든가, 좋은 정치인들의 수만큼 (혹은 더 많은) 나쁜 정치인들을 가지고 있다든가, 당내 헤게모니를 가진 정치인들이 과연 좋은 정치인들이라 할 수 있는 지 헷갈린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야권단일후보에게 투표하기로 결정한 사람이라도 정당투표에 있어서는 아주 신중할 필요가 있다. 총선이 끝난 후에 만약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다수당이 되어 있다면, 더욱 주의해서 이들을 살펴보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민주당이 단독과반은 안되고, 진보정당들과 합쳐서 과반이 되는 것이 최선일 것같다. (이 경우 진보정당들의 의석이 적을 경우 새누리당의 의석이 지나치게 많아진다는 역효과가 있긴 하다.)


2. 예의

예전에 모 정치인이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정당을 밀어달라는 의미였겠지만, 이른바 '개혁적' 진영에 속한다는 정치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 투표를 하든 그것은 본인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다. 단순다수대표제하의 선거는 전략적 투표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전략적 투표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표가 향하는 정당이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주 소중한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에 어떤 정당의 지지자들이 다른 어떤 정당에 대한 투표는 사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SNS에서 더러 볼 수 있는데, 이건 정말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행동이다. 자신의 그런 행위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관적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투표 4번과 11번, 16번은 서로 다르지만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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