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에 해당되는 글 23건
-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이안 고프 저 / 김연명, 이승욱 역 / 한울 아카데미) 2012.02.21
- 한국사회와 복지정책 - 역사와 이슈 (이영환 저 / 나눔의 집) 2012.02.18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1 2012.02.14
-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 (정무권 외 저 / 인간과 복지) 2012.02.09
-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김명환 지음 / 한울 아카데미) 2012.02.08
- 국부론 상, 하 (애덤스미스 저 / 김수행 역 / 비봉출판사) 6 2012.01.26
-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 정태인 저 / 상상너머 2012.01.17
- 노동가치 / 박영균 저 / 책세상 2012.01.10
- 도덕감정론 (애덤스미스 저 / 박세일, 민경국 공역 / 비봉출판사) 1 2012.01.09
- 경제학의 배신 (라즈 파텔 저 / 제현주 역 / 북돋움) 2012.01.05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이안 고프 저 / 김연명, 이승욱 역 / 한울 아카데미)
Posted at 2012. 2. 21. 00:22// Posted in 감상
|
‘복지국가’를 보는 시각을 다루는 책으로 내가 최근에 읽은 미쉬라의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은 복지국가에 대한 여러 관점을 중립적 시각에서 다룬 후 현실에서의 복지국가는 어떤 모습인지를 더듬어보는 책이었다.(
2012/02/14 - [감상]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참조) 그 책이 다룬 관점들은 복지행정학 관점, 기술결정론(수렴론) 관점, 기능주의 관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관점이었는데,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을 다루며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은 ‘체계론적 분석’과 ‘집단행위적 분석’을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 (기능주의와 비교할 때) 장점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집단행위적 시각을 포기하고 기능주의적(즉, 체계론적) 분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현한다. 오늘 소개할 이안 고프의 이 책,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은 ‘미쉬라의 아쉬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대답’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고프의 시각이 마르크스주의자 일반의 시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고프는 ‘이윤율 저하 경향성의 법칙’이라든가 ‘공황 분석’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관점을 결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며, 이에 대해 역자는 고프가 ‘신리카도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역자후기 참조.) 고프는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미쉬라가 아쉬워한 두 부분을 모두 충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조망하는 복지국가의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모순’ 혹은 ‘양면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복지국가의 두 얼굴
복지국가의 기원 – 계급갈등과 체제의 요구
복지국가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위협하게 되는 지를 다루기에 앞서서
복지국가라는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설명에서 배제되었던 계급갈등의
역할에서 출발하자. 자본주의는 그 체제의 특성상 자본의 이해와 대립되는 이해를 가진 계급 – 즉 노동 계급을 대량으로 발생시키게 된다. 노동자 계급은 대규모
공정이라는 일관작업의 환경 하에서 집합적 성격을 갖는 노동을 통해 조직화 역량을 갖추어 나가게 되며, ‘착취’라는 자본주의의 본질로 인해 숙명적으로 자본가와의 계급대립을 발생시키게 된다.
더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성, 즉 선거에 기반한 민주주의라는 특성은 (물론 이 또한 공짜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선거권 확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자유주의 좌파 세력과 연대하여 싸웠는지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대의제
구조 내에 노동자의 대표를 등장시키기까지 한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노동 계급을 자본주의 체제 내로
포섭하지 않으면 ‘혁명’이라는 –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자코뱅 독재를 목격한 이래 모든 부르주아에게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공포인 – 파국을 가져오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계 내로 포섭해야 하는데, 바로 이 ‘포섭의
방법’이 바로 복지국가이다. 어떤 경우는 노동 계급의 압력에
의해 또 어떤 경우는 예상되는 노동 계급의 압력을 사전에 약화시키기 위해 사회정책을 도입하는 식의 다양성은 있지만, 어쨌든 노동 계급의 계급투쟁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은 대부분 국가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된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순수하게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성과물인 것만은 아니다. 개별 자본가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돼!’라고 외친 한국의 한 자본가를 기억하라. 그 자본가의 눈에 흙이 들어간 지 오래지만 그 독점자본의 사업장에는 아직도 노조가 제대로 없다.) 자본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할 때는 노동조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정과 복지정책의 어느 정도의 시행은 필수적이다. 이는 비단 복지라는 탈출구가 없다면 혁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방임주의가 득세하던 19세기 영국의 공장 현실은 비참함 그 이상이었다.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노력은 생존선 이하의 임금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에 시달리는 아동들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고, 이는 자본주의의 가장 중대한 투입요소인 ‘노동’의 재생산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러 자본가 전반의 이익 기반을 훼손할 정도가 되었다. 즉, 개별 자본가의 이익이 무제한 관철되도록 놔두었을 때 전체 자본가의 이익기반은 파괴되고 결국 이는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낳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장법’과 같은 최소한의 ‘개입’는 노동운동이 없더라도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결국 미쉬라의 말처럼 ‘계급갈등’과 ‘체계특성’은 모두 자유방임주의국가를 복지국가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복지국가로 움직일 것인가?’를 놓고 자본과 노동은 또 한 번 힘겨루기를 해야만 하겠지만.
국가 –
자본의 이익 실현과 상대적 자율성
이 설명에서 ‘개별 자본가의 이익’이 아닌 ‘전체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가 바로 국가이다. 사실 국가는 자본주의의 형성에서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은 결과 우리는 흔히 ‘시장’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고 ‘규제’는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지만 사실 시장경제의 출발은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시장경제는 이른바 고전경제학의 ‘투입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이 시장에서 제한 없이 거래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이전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그 때의 사람들은 수많은 공유지를 가지고 집산적 생산을 하고 있었으며, 공동체는 개개인에 대한 일정한 ‘자유의 제약’과 ‘보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다. (바람직한 경우를 보여주는 예는 아니지만, 중세의 ‘농노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농노제 하에서 농노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비롯한 갖가지 자유를 제한 받고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어떤 이유로 인해서든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 영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현에 장애일 뿐이었고 따라서 해체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한 것이 국가 – 즉, 정치권력이었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전 사회를 권력의 힘으로 폭력적으로 해체하며 등장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유’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못 가진 사람에게 그 자유는 단지 ‘굶을 자유’일 뿐이었지만. 그리고 그 ‘자유’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거래’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형성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일단 형성되게 되면 착취가 경제체제 내에서 자동적으로 실현된다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잉여가치의 수탈은 의식적인 강제 없이도 시장기구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경제’를 ‘정치’로부터 분리하고,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과는 다른 것으로 취급하게 되는 상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분리된’ 정치는 ‘분리된 국가구조’, 즉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 국가’가 된다. 물론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주어진다. 만약 국가가 이 범주를 넘으려고 할 때 자본은 보다 유망한 자본축적의 중심지로 이동하게 되고, 이는 (적어도 단기적인, 그러나 심각한) 경제적 난관으로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국가는 (혁명을 일으키는 상황이 아닌 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지구적’ 차원의 체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구조적 속박’이며, 국가의 자율성이 ‘상대적’인 이유이다.
그렇다면 ‘상대적 자율성’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위에서 설명한대로 국가는 ‘상대적 자율성’을 갖기 때문에 개별 자본의 단기적 이익이 아닌 전체 자본의 중/장기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즉, 아무리 유력 자본가가 ‘내 눈이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돼!’라고 외치더라도 노조의 존재가 자본주의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노조를 허용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것이 ‘국가’가 가진 ‘상대적 자율성’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은 본질적으로 한계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피지배 계급에게 국가는 일정한 속박 내에서나마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능성이 되며, 그 결과가 바로 지난 세기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는 어떻게 위협이 되는가?
자본주의와 복지국가가 어떻게 결합되는가에 비하면, 복지국가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위협이 되는가(다시 말하면, ‘복지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도래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논의는 빈약하다. 논의가 타당성이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양적으로 빈약하다는 말이다. 오히려 저자는 ‘위기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보다는 ‘사회지출의
증가를 70년대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왜 불완전한가?’에 대한 논의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른바 ‘복지국가가 생산성 저하를 초래한다.’는 주장은 이렇다. 경제에는 ‘시장부문’과 ‘비시장부문’이 있는데
시장부문은 시장판매를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비시장부문은 그
외의 것들, 즉, 국방,
NHS (국가 건강 서비스, 이 장에서의 모든 논의는 영국을 예로 들어 이루어지고 있다.) 등 주로 국가/공공 부문의 활동들로 구성된다. 이 중 국가 전체의 소비재, 투자재, 수출재 등의 수요총량을 공급하는 것은 ‘시장부문’이며, 따라서 시장부문이야말로 경제에서 유일하게 ‘생산적인’ 부문이다. 따라서
비시장부문에서 일하는 ‘비생산적 노동자들’의 소득은 생산적
부문이 생산한 시장부문생산물의 구입을 위해서만 지출될 수 있다. 그 결과로 비생산적부문의 국가고용 증대는
시장부문 산출의 몫을 축소시킴과 동시에 시장부문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또한 국가지출의 증대는 시장부문에
대한 조세부담의 증대를 의미하며, 이는 결국 시장부문의 이윤에 의해 부담된다. 결국 복지국가가 초래한 국가와 공공부문의 확대는 ① (생산적인) 시장부문으로 가야 할 노동력을 (비생산적인) 비시장부문으로 돌리고, ② 시장부문의 산출부담을 증가시키며, ③ 조세부담으로 시장부문의 이윤을 축소시키는 3중의 부담을 시장부문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산업기반을 약화시키고, 저성장과 무역적자의 원인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파국을 이야기하는 이 시기에 왜 하필 그녀가 영화화된 걸까?
저자는 복지국가를 저성장의 원인으로 몰아세우는 이런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여러 각도에서 논증한다. 첫째, 비시장부문의 활동이
생산하는 ‘사회적 임금’과 ‘집합적 소비’는 그 자체가 생산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를 공급하게 됨으로써 시장부문에서 시장임금으로 지급되어야 할 비용을 감소시키므로 비시장부문의 모든 활동이 시장부분의 이윤을 감소시키는
형태를 결과한다는 분석은 옳지 않다. 둘째, 예를 들어 NHS와 같은 필수 서비스가 국가에서 운영될 경우 민간에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소비자가 NHS에 지급할 비용에는 ‘이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는 소비자의 후생을 증진시키거나, (만약
시장임금이 이와 같은 부분을 반영하여 낮아지거나 덜 상승하는 식으로 반응할 경우) 시장부문의 이윤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는 시장부문에서 NHS를 공급했을 때의
이윤과 같으므로 이윤의 총량은 같지만 (NHS를 공급하는 ‘자본가’가 없기 때문에 사회의 전체 자본가 수가 감소함으로써) 이윤율을 오히려
더 높아지는 결과가 된다. 셋째, 국가가 공급하는 사회서비스는
‘재생산적’인 것 (예를
들면 교육, 보건 같은)과 ‘비생산적’인 것 (주로
사회통제를 담당하는 서비스, 예를 들면 군대, 경찰과 같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재생산적인 것은 장기적으로 시장부분의 생산 증대에 기여하게 되며, 따라서 이 부분의 비중을 높일수록 사회서비스는 그 자체로 ‘생산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1970년대
‘복지국가의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저자는 복지국가의 위기는 전후 계속되어온 ‘장기호황’ 자체에서 싹튼 것이라고 말한다. 즉, 전후의 경제적 호황은 산업예비군을 고갈시켜 노동운동의 힘을 강화시켰고 강력해진 노동운동은 임금을 상승시켜 인플레이션
압력을 증가시켰다. 한 편으로 유럽과 일본의 선진국가들은 미국의 기술수준을 따라잡음으로써 미국 자본의
경쟁을 증대시켰고, 이는 미국 자본의 이윤압박을 증가시켜 ‘미국의
헤게모니 하의 국제질서’라는 기존의 국제적 축적체제를 뒤흔들었다. 한편으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국가지출은 증대했는데 이에 대한 재원조달시도는 다시금 인플레이션 압박을 증가시키게 된다. 결국
‘불황’에 대처하는 ‘국가지출확대’라는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대응책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암초를 만나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즉, ‘복지국가’는 위기의 한 측면일 뿐이지 이것이 위기의 중요한 원인도, 결과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가며. 복지국가의 미래는?
이와 같이
복지국가의 본질과 기원, 그리고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고찰을 마친 저자는 위기에 봉착한 복지국가의
미래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저자는 후기에서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피조물’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속의 사회주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한 번 복지국가의 양면성이다.) 그리고 복지정책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들을 보호하고 확대함과 동시에 복지정책의 부정적 측면들은 노출시켜 척결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 같은) 교훈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한다. ‘복지자본주의에서 복지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바란다는, (‘어떻게’가 빠져 있기에) 다소
갑작스러운 문장을 끝으로. 결국 복지국가의 과거와 현재를 일관성 있게 조망한 저자로서도 ‘복지국가의 미래’는 말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부터 20여 년을 더 살아온 나로서는 당시의 저자가 몰랐던 복지국가의 미래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70년대를 거치며 복지국가는 저자가 애써 증명하려 했던 바와는 달리 ‘경제위기의 주범’이자 ‘비효율의
상징’으로 몰렸고, 그 결과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좌파’ 조차 (기존의 복지국가와
자유방임주의 사이의) 제3의 길을 외치며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조타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되었다. 사실 70년대의 위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저자도 지적한 것처럼 노동운동의 강화와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은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국가의 비대함’과 그로 인한 ‘비효율’은 신자유주의 진영에서 주장한 것과는 달리 정말 위기의 원인이었는지
잘 밝혀지지 않은 것 같다. 한편 신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은폐했으며, 저자도 (적어도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은 위기의 또 하나의 측면이었던 자본의
독점자본화는, 위기의 원인으로 주목 받지 않았던 덕분에 그 후 이십년동안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거치며
더욱 증폭되어 오늘날 또 다른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 압박은 노동의 임금상승도
있지만, 독점자본화에 따라 가격의 결정이 시장이 아닌 자본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생산비 상승이나 임금인상이
이윤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측면도 있다. 또한 ‘산업기반 약화’의 원인은 신자유주의의 주장대로 ‘국가의 비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이 덩치를 키우며 ‘초국적 금융자본화’된 것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복지국가’는 무엇인가? 지난 30년 간 지구적 자본주의를 운영한 신자유주의가 실패했으니
이제 다시 복지국가로 돌아가면 되는 것일까? 30년 전의 경제위기를 몰고왔던 원인들은 해결되었는가? 복지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열었던 지속적인 생산의 증대는 과연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으로의 이행이라는 산업 조건의 변화는 어떠한가? 인구구조의
변화와 환경의 파괴, 그리고 석유의 고갈이라는 잠재적 위협들은 복지국가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건제한 초국적 금융자본은 과연 복지국가로의 회귀를 용인할까?
이안 고프
같은 이도 ‘복지국가의 미래’를 조망하지 못했는데 내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70년대 케인즈주의 복지국가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마땅히 이에 대한 대안은 시대적 변화를
담은 새로운 비전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선택된 비전은 고전적 자유방임주의의 재판일 뿐인 신자유주의였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낳았을 뿐이었다.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
지금, 어떤 이유에서든 30년 전 폐기되었던 체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인(물론 적어도 복지국가의 30년의 신자유주의의 30년 같은 ‘야만의 세월’은
아니었으니 좀 나을 수는 있어도) 그리 현명한 대안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프의 말처럼 복지국가의 긍정적 측면을 담되, 새로운 시대의 질서가 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라스 러미스 저 / 김종철, 최성현 역 / 녹색평론사) (0) | 2012.03.05 |
---|---|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장석준 저 / 책세상) (0) | 2012.02.21 |
한국사회와 복지정책 - 역사와 이슈 (이영환 저 / 나눔의 집) (0) | 2012.02.18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1) | 2012.02.14 |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 (정무권 외 저 / 인간과 복지) (0) | 2012.02.09 |
한국사회와 복지정책 - 역사와 이슈 (이영환 저 / 나눔의 집)
Posted at 2012. 2. 18. 23:47// Posted in 감상
|
"한국의 사회보장"이라는 책이나 "한국의 가난 - 오래된 빈곤, 새로운 과제"와 같은 책들, 그리고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에서 낸 책 두 권 정도, 여기에 최근에 읽은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를 통해 한국의 복지와 관련된 문제들을 어느 정도 접하긴 했는데, 어디에선가 이 책에 대한 추천을 본 기억이 있어 오래전에 사놨다가 이번에 미쉬라와 고프의 책을 잇달아 보며, (동시에 두 가지 책을 보는 근래 생긴 습관으로 인해) 이 책을 한 챕터씩 읽어 어제 마쳤다.
제목처럼 한국사회와 복지정책에 대해 역사적 측면과 몇 가지 이슈를 다룬 내용이었고, 각 챕터는 각기 다른 시기에 저자가 쓴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저자의 논문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책들을 통해 비교적 접해본 이슈임과 동시에 이론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인 논의라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 같은 책에 비하면) 비교적 평이하게 읽어갈 수 있었다. 이 책의 집필을 목적으로 새로 쓰여진 책이 아닌지라 2005년에 발간된 책임에도 오래된 논문은 96년에 쓰여진 것이 있을 정도라 '같은 문제를 현재적 시각에서 보면 어떻게 봐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는 아쉬움을 있었지만,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한 '공부'가 절실한 나에게는 또 한 권의 소중한 양식이 되어준 책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의 '글투',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단어나 표현의 선택'이었는데 보통의 논문이라면 좀 더 가치중립적인 성격의 표현를 사용할만한 부분에서 거리낌없이 자신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표현을 사용하는 듯한 부분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갖고 나서 다시 어떤 단어들이 있는지 훑어보니 막상 그런 단어가 딱 눈에 띄지는 않는다! 아마도 단어보다는 규범적인 성격이 있는 문장에서 단정적인 어미를 사용한다든가, 역사적 논란이 있는 사건에 대해 단언하는 부분이라든가 이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게 느껴졌는데, 논문이라는 것이 어차피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단정적인 표현들이 좀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덜 아카데믹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편안하게'(아무래도 이론적인 논의가 아닌 현실에 대한 논의니만큼) 읽은 '불편한'(다루는 내용이 즐거운 내용은 아니니까) 책이라 좋았다.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장석준 저 / 책세상) (0) | 2012.02.21 |
---|---|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이안 고프 저 / 김연명, 이승욱 역 / 한울 아카데미) (0) | 2012.02.21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1) | 2012.02.14 |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 (정무권 외 저 / 인간과 복지) (0) | 2012.02.09 |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김명환 지음 / 한울 아카데미) (0) | 2012.02.08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Posted at 2012. 2. 14. 01:26// Posted in 감상2011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 이벤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보편적 무상급식 몽니’에 이은 ‘셀프 탄핵’과 그 후 야권연대에 기초한 시민운동가의 서울 시장 선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김어준 딴지 총수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상 가장 빨리 시작된 대선 레이스’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가카’의 (여러 가지 의미로) ‘삽질’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 무상급식’이라는 지난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재보선을 관통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선거의 핵심 어젠다가 된) 복지정책 논란이다. 전근대적ㆍ중상주의적 재벌 위주 경제구조라는 한국의 특수성이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돌풍이라는 보편성을 만나 대다수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이래, 마침내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왜곡하는 요소는 구조적, 혹은 적어도 제도적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은 ‘복지국가’라는 (적어도 MB나 ‘뉴타운돌이’들에게 투표할 때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생각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50~60년대 성립된 서구의 ‘복지국가’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 같다. 우선은 더 이상 고도성장 기반의 완전고용이라는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이 성립할 수 없다는 국제적 환경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며, 노동자 계급의 권력자원 동원이 어렵고 극소수 재벌위주의 생산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노동시장의 이원화 문제가 심각한 한국적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어떤 대안을 생각해 내기란 물론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가 막연히 말하는 ‘복지국가’가 어떤 생각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체제이며, 그것이 (우리보다 앞서 나간) 서구의 국가들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이해 정도는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정치가들이 외치는 ‘복지’가 진정성을 가지고 실천방안까지 고민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표를 모으기 위한 캐치프레이즈일 뿐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를 다룬 내용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자본주의 체제 하 사회정책이 그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략)… 대부분의 연구들이 지적하고 있는 일반적인 결론은, 계급 간 소득재분배, 즉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집단으로부터 하층에 속하는 집단으로의 소득재분배의 정도는 미약하며, 따라서 소득이전의 성격은 계급 내 소득이전 또는 삶의 주기에 따른 소득이전의 성격을 훨씬 더 많이 띠고 있다는 것이다… (후략)
국가별 사회정책에 의한 소득재분배 효과. 저자의 논의와 달리
국가에 따라 상당한 수준이다. 저자가 주로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하는 국가가 영국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에 대해 다룬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구조적 모형’(영미권 국가의 ‘잔여적 모형’은 물론 대륙유럽을 중심으로 한 발전된 복지국가의 ‘제도적 모형’ 보다도 복지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으로서의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가 갖는 우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스탈린 체제라는 전체주의 체제가 이를 어떻게 제약하고 왜곡했는지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라메쉬미쉬라의 ‘사회복지의 사상과 이론’의 개략적인 내용과 그 중 내가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들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끝으로 책을 덮고 난 후의 소회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지국가의 정치경제학 (이안 고프 저 / 김연명, 이승욱 역 / 한울 아카데미) (0) | 2012.02.21 |
---|---|
한국사회와 복지정책 - 역사와 이슈 (이영환 저 / 나눔의 집) (0) | 2012.02.18 |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 (정무권 외 저 / 인간과 복지) (0) | 2012.02.09 |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김명환 지음 / 한울 아카데미) (0) | 2012.02.08 |
국부론 상, 하 (애덤스미스 저 / 김수행 역 / 비봉출판사) (6) | 2012.01.26 |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 (정무권 외 저 / 인간과 복지)
Posted at 2012. 2. 9. 10:49// Posted in 감상
|
공부하는 마음으로 본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 1편부터 보고 보려고 했는데 1편은 구하기가 힘들어서(서점은 다 절판) 패스. 2편을 먼저 읽고 보니, 1편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건 아니라 읽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재밌어서 1편도 (도서관 등에서) 구해 봐야겠다고 생각.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회와 복지정책 - 역사와 이슈 (이영환 저 / 나눔의 집) (0) | 2012.02.18 |
---|---|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1) | 2012.02.14 |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김명환 지음 / 한울 아카데미) (0) | 2012.02.08 |
국부론 상, 하 (애덤스미스 저 / 김수행 역 / 비봉출판사) (6) | 2012.01.26 |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 정태인 저 / 상상너머 (0) | 2012.01.17 |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김명환 지음 / 한울 아카데미)
Posted at 2012. 2. 8. 10:47// Posted in 감상
페이비어니즘은 사회정책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기도 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에 대한 스스로의 무식을 개선하고 싶은 생각도 있기도 해서 택한 책. 전반부는 페이비어니즘에 대한 설명을 후반부는 신디컬리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배경이라든가, 실제 그 운동이 어떤 식으로 현실과 만나 작용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좀 더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보다는 거의 각 운동의 이론적, 사상적 배경 및 그 운동에 대한 '오해'들을 해명하는 것이 내용의 거의 전부. 19세기에 대한 공부를 최근해 많이 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굉장히 불친절한 책이 될 뻔.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지국가의 사상과 이론 (라메쉬 미쉬라 저 / 남찬섭 역 / 한울아카데미) (1) | 2012.02.14 |
---|---|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 (정무권 외 저 / 인간과 복지) (0) | 2012.02.09 |
국부론 상, 하 (애덤스미스 저 / 김수행 역 / 비봉출판사) (6) | 2012.01.26 |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 정태인 저 / 상상너머 (0) | 2012.01.17 |
노동가치 / 박영균 저 / 책세상 (0) | 2012.01.10 |
국부론 상, 하 (애덤스미스 저 / 김수행 역 / 비봉출판사)
Posted at 2012. 1. 26. 13:45// Posted in 감상
들어가며. 時制와 고전읽기
애덤스미스를 이해하다 - 이기적 인간과 자기조정시장
애덤스미스를 오해하다 - 자본가와 노동자, 독점과 정치권력
애덤스미스를 비판하다 - 자기조정시장의 몰락
나가며.
누군가 ‘논어’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왕조국가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2 (정무권 외 저 / 인간과 복지) (0) | 2012.02.09 |
---|---|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김명환 지음 / 한울 아카데미) (0) | 2012.02.08 |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 정태인 저 / 상상너머 (0) | 2012.01.17 |
노동가치 / 박영균 저 / 책세상 (0) | 2012.01.10 |
도덕감정론 (애덤스미스 저 / 박세일, 민경국 공역 / 비봉출판사) (1) | 2012.01.09 |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 정태인 저 / 상상너머
Posted at 2012. 1. 17. 00:19// Posted in 감상
|
올해의 가장 중요한 독서목표를 '고전읽기'로 정하면서 나의 독서 전략(?)은 고전과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트렌디한 책을 동시에 읽는 것이다. 물론 3월부터 다시 학교를 다닐 예정인고로 개강하면 여러가지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다음달 말까지는 그렇다. 이렇게 방향을 잡은 이유는 과거에 (많지는 않아도) 고전을 좀 읽어보려고 시도한 바, 고전만 읽다가는 자칫 독서 자체가 재미없어질 수도 있고 (마크트웨인이 그랬지 않는가, 고전이란 누구든지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지만, 실은 아무도 읽기 싫은 책이라고) 고전읽기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할 때 최근에 나온 책을 영 읽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고전인 '국부론'의 짝으로 뭐가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내가 자주 참고하는 대한민국 최고의(주관적으로) 씽크탱크 중 하나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의 원장인 정태인씨의 이 책을 골랐다. 많이들 아는 것처럼 '이기적 인간'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국부론의 짝으로 '이기적 인간'에 대한 부정과 극복을 이야기한 이 책만큼 잘 어울리는 것이 어디있겠는가!
그래서 잡았는데, 안타깝게도 국부론 상권도 다 읽기 전에 끝내버렸다. 일단 책이 얇고 내용이 (결코 평이하기 어려운 논의임에도) 매우 평이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일보면서만 읽어도 며칠이면 독파 가능하달까. (내가 변비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책의 내용을 조금 스포일러해보면 이렇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학, 혹은 조금 폭을 넓혀 현재의 주류경제학은, 그리고 그 경제학이 지배하는 현재의 주류 세계는 '이기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행동경제학의 성과를 살펴보면 인간은 이기적이지만은 않다. 인간에게는 이타성도 있고 경쟁이 아닌 협력을 하고자 하는 성향도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상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맞다. 바로 이 지점, 즉 인간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고,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있으며, 실천적으로는 '국가복지'와 '사회적 경제'가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다고 했지만 행동경제학, 게임이론, 사회적경제 등 쉽지 않은 내용들을 조합해서 글을 이끌어가고 있다. 물론 각 분야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만 있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다루어져 있으며, 설사 없어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도록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사실 합리적기대가설 혹은 효율적시장가설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시장에 맡겨!' 방법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미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 이후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세계가 아닐까. 이 책은 바로 그 대안세계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안내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충분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고민해야 할 그 지점을 건드린다는 면에서는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김명환 지음 / 한울 아카데미) (0) | 2012.02.08 |
---|---|
국부론 상, 하 (애덤스미스 저 / 김수행 역 / 비봉출판사) (6) | 2012.01.26 |
노동가치 / 박영균 저 / 책세상 (0) | 2012.01.10 |
도덕감정론 (애덤스미스 저 / 박세일, 민경국 공역 / 비봉출판사) (1) | 2012.01.09 |
경제학의 배신 (라즈 파텔 저 / 제현주 역 / 북돋움) (0) | 2012.01.05 |
노동가치 / 박영균 저 / 책세상
Posted at 2012. 1. 10. 10:27// Posted in 감상
|
책세상의 Vita Activa 시리즈는 사회과학의 여러 중요한 개념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그 개념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상과 이론을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입문적 참고서적으로 상당히 유용하다. 나는 이 시리즈를 재작년에 18권 정도 사놓고 현재까지 2/3정도 봤는데, (본격적으로 읽는) 책과 책 사이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 혹은 특정한 개념에 대한 참조가 필요할 때 한 권씩 꺼내어 보곤 했다. 그 말은 곧, 대체로 이 시리즈의 책들이 쉽게 쓰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감정론을 다 읽고 국부론의 배송을 기다리며 그 사이에 가벼운 마음으로 잡은 것이 이 책 '노동가치'였다. 이전의 시리즈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친절한 안내서를 기대하며. 결론적으로 나의 기대는 완전히 배신당했다.
마르크스 이전 노동가치론의 등장(로크, 스미스, 리카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노동가치론의 역사와 배경을, 그리고 각 사상가의 차이를 쉽게 잘 안내해주던 이 책은 마르크스에 이르러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선 노동가치론에서 사용가치/가치/교환가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흔히 우리들은 사용가치/교환가치의 이분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나 마르크스가 언급한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나 자본론 안 읽었거덩...) 그런데 이 책은 위의 세 가지가 다르다고 하면서도 그 차이를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특히 가치 - 교환가치가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는 한참 고민했다. 어쨌는 우여곡절 끝에 교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품의 내재적 가치는 '가치(혹은 상품가치)'이며, 교환가치는 그 현상상태로서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성질을 보인다는 면에서 내재적인 가치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정도로 정리.
다음으로 잉여가치론으로 넘어갔다. 잉여가치론은 노동가치론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여겼기에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개별자본에서의 가치≠생산가격, 잉여가치 ≠이윤 관계와 총자본에서의 총가치=생산가격, 총이윤=총잉여가치 부분에서 막혀서 또 한참 버벅 버벅. 이 부분은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개별 자본가의 경쟁과 자본의 이동으로 인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아직도(자본론을 읽기 전까지는) 나의 이해가 정확한지에 대한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서라도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가치전형논쟁을 다룬 부분에서는 KO당하고 말았다. 내가 알기로 가치-전형 논쟁은 수많은 경제학자가 참여하여 주로 수리경제학의 방법을 통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가격과 가치의 전형 문제를 논쟁한 사안인데 저자는 이 부분을 (수리는 제시하지도 않고, 제시해도 이해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몇 장을 통해 대략적으로 정리한다. 문제는 이 부분이 읽어도 무슨 논쟁을 했다는 것인지 통 이해가 안간다는 점. 차라리 수리를 제시했다면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겠지만 이 책에는 제시되지 않았고 일일히 찾아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그냥 패스. 그렇게 책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총평하자면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노동가치론과 관련된 여러가지 내용들을 포괄적으로 다룬 것은 좋았지만, 책의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루다보니 설명히 충분히 친절치 못하여 마르크스에 대해 정통하지 못한 - 전혀 모르거나, 나처럼 얼치기로 주워들은 정도의 지식만 있는 - 사람으로서는 이 책을 100% 이해하고 넘어가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너무 마르크스주의 혹은 네오마르크스주의 혹은 넓게 봐 마르크스의 영향력을 상당히 받은 이들의 관점만을 제시한 부분도 아쉬웠다. 예를 들어 슘페터의 노동가치론 비판이라든가 한계요용학파의 비판과 같은 부분들을 좀 더 책장을 할애해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저자의 취향에는 맞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들이 '주류경제학'의 이름으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무시는 반쪽짜리 지식밖에 안되지 않겠는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부론 상, 하 (애덤스미스 저 / 김수행 역 / 비봉출판사) (6) | 2012.01.26 |
---|---|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 정태인 저 / 상상너머 (0) | 2012.01.17 |
도덕감정론 (애덤스미스 저 / 박세일, 민경국 공역 / 비봉출판사) (1) | 2012.01.09 |
경제학의 배신 (라즈 파텔 저 / 제현주 역 / 북돋움) (0) | 2012.01.05 |
2011년에 읽은 책들 (0) | 2012.01.05 |
도덕감정론 (애덤스미스 저 / 박세일, 민경국 공역 / 비봉출판사)
Posted at 2012. 1. 9. 11:41// Posted in 감상
|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 정태인 저 / 상상너머 (0) | 2012.01.17 |
---|---|
노동가치 / 박영균 저 / 책세상 (0) | 2012.01.10 |
경제학의 배신 (라즈 파텔 저 / 제현주 역 / 북돋움) (0) | 2012.01.05 |
2011년에 읽은 책들 (0) | 2012.01.05 |
[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1) | 2011.03.04 |
경제학의 배신 (라즈 파텔 저 / 제현주 역 / 북돋움)
Posted at 2012. 1. 5. 22:21// Posted in 감상
|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가치 / 박영균 저 / 책세상 (0) | 2012.01.10 |
---|---|
도덕감정론 (애덤스미스 저 / 박세일, 민경국 공역 / 비봉출판사) (1) | 2012.01.09 |
2011년에 읽은 책들 (0) | 2012.01.05 |
[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1) | 2011.03.04 |
감상 : 김대중 자서전을 읽고 (1) | 2011.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