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회의 (1)

Posted at 2010. 11. 29. 18:25// Posted in 성찰

자원은 유한한데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

소위 '경제학의 근본문제'이다. 즉, 경제라는 것은 결국 유한한 자원을 분배하는 문제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자원은 유한하다.'라는 말에 주목한다.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분배의 문제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의'를 다룬 이론이 '분배'의 문제에 포커스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라고 기독교는 말한다. (물론 그들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실천한 적은 없다. 적어도 기독교가 핍박을 벗어나 메이저 종교가 된 이후 - 그러니까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로마 이후 - 기독교 주류는 항상 승자나 가진자의 편이었다.) 나는 종교가 없으니 '신 앞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모든 인간이 남자든 여자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아시아인이든, 한국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아이티 사람이든 간에 침해될 수 없는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 권리를 만약 '누구나 가져야할 자신의 몫'이라고 정의한다면, 앞서의 경제학의 근본문제에 입각해서 볼 때 '부유하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몫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의 다른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거의) 전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 마당에 이게 무선 멍멍이 이단옆차기 하는 소리냐...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자본이 유한한 한 좀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상당한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그리 급진적인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탈탈 털어서 나누고 또 나눠서 마침내 '내 몫'만 갖는 자발적 가난을 실천한다면야 진짜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도 남의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식 정도는 있는게 맞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은 몰라도 아이티에 있는 사람의 가난이 왜 내가 더 가진 탓이냐고 묻지는 말자. 세계화 시대라며?)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전세계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평균적으로, 물론 평균의 오류가 있지만) 잘 사는 나라로 손에는 몰라도 발에는 꼽힐 가능성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인 중산층 수준 이상의 삶을 한 평생 향유해온 나는 적어도 몇 십명 인류의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미약하나마 인지하고는 있는데 그 부끄러움을 깨부술만큼 용기있지 못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머리로는 잘못을 알면서 가진 것을 포기하기는 싫어서 포기는 못하고 있는, 얼마 전에 옆집을 털어 최신형 TV를 장만해놓고 아침 저녁으로 마주치는 옆집 아저씨의 그늘진 얼굴에 마음만 캥겨하는 도둑놈이랄까.

어쩌다 내 인생이 도둑놈 인생이 되었을까... 참으로 인생의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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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회찬을 지지한 이유

Posted at 2010. 6. 3. 14:25// Posted in 시사


  집에서 개표방송을 보며 예측한대로,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상에는 벌써 노회찬과 진보신당, 그리고 그 지지자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들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한명숙의 승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의 상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한명숙이 패배했고 노회찬의 득표율이 오세훈의 득표율에서 한명숙의 득표율을 뺀 것보다 크다는 사실은 노회찬에게 표를 준 사람의 마음을 몹시 심난하게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진보신당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시의원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까지 감안할 때 더더욱) 일인 것 같습니다.

  일단 이번 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진보신당은 스스로의 몫을 충분히 챙김으로써 진보정당으로서 존재감을 확보하는 데에도 실패했고, (민주노동당과 대비해서 이야기할 때) 적극적인 단일화 행보를 통해 정권심판론에 힘을 싣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여러모로 볼 때 이번 선거를 통해 가장 궁지에 몰린 것이 한나라당인지 진보신당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명숙의 낙선이 진보신당의 탓인 것처럼, 진보신당이 마치 반MB 전선의 제5열쯤 되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동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노회찬을 찍었습니다. 사실 굉장히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투표를 하는 그 시점에서도 나의 선택이 올바른가에 대한 확신을 갖기 힘들었으니까요. (결과가 이렇게 나오고 보니 더 그렇네요.) 하지만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많은 생각을 했으며, 그 과정을 거쳐서 한 선택이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다고 해서 그 모든 고민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제가 노회찬 후보에게 표를 주기까지 고민했던 내용들은 이렇습니다.

  첫째, 이명박과 노무현의 차이보다 노무현과 노회찬의 차이가 더 유의미하다고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노무현 대통령의 치세 하에서 한국 사회의 못가진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팍팍해진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특히 우석훈 선생이나 김규항 선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분명히 극도의 신자유주의에 기반하고 있었고, 결국 그것이 이명박의 당선을 가져왔다는 점에 동감합니다. 물질 만능주의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계급간의 경제력 격차가 극도로 벌어지고 그로 인한 비정규직의 증가, 사회 하층민의 소외, 양극화의 심화와 같은 문제들의 대부분은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김대중-노무현 10년 간 과거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돈'이라는 것은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다른 무엇에도 우선하는 가치로서 사회적 합의(?)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 저도 대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긴 했습니다만 - 그 10년 간 한국사회가 놓인 상황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가게 되는 상황이었고, 한나라당이 집권했었다면 문제는 더 심각했을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네, 저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이 사실 노무현과 한나라당의 차이라는게 그리 근본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이런 관점에서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민주당(혹은 국민참여당)의 당선보다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해도) 진보정당의 파이가 커지는 것이 더 이롭다고 판단했습니다. 반 이명박 전선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반 이명박이라는 이름 하에 민주당으로 일치단결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둘째, 민주당의 '이번만 우리를 밀어주세요'라는 말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그간 그런 이야기로 인해, 정권교체의 중요성으로 인해, 반 민자당 또는 반 신한국당 또는 반 한나라당의 대의로 인해 진보정당은 수차례 자신의 몫을 포기했지만 그로 인해 돌아온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진짜 이번에는 반 한나라당이 너무 중요하니 진보정당은 다음번에 하자는 이야기는 결국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매번 늦췄을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 근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동경해 마지 않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사회민주주의를 이룬 것은 사실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사람과 자유주의를 추구하던 사람 사이의 균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처음부터 사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만약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전선이 언제까지나 한나라당 - 민주당(혹은 국민참여당, 예전의 열린우리당)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실재 한국사회의 모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던 사회의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노무현보다 더 급진적인 사람들의 파이가 커져야 비로소 노무현의 자리에서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이건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 한명숙의 차이가 제법 컸다는 것이 노회찬 후보에게 투표하는 데 대한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선거의 결과로 볼 때 저의 오판이었음이 드러났지만, 첫번째와 두번째 문제는 아직까지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명숙의 낙선은 -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세훈의 당선은 - 저로서도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저는 여전히 제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고민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오세훈과 한명숙의 차이에 대한 문제보다는 한명숙과 노회찬의 차이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의 유의미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고민 끝에 그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한명숙의 낙선을 노회찬의 탓으로 돌리고 노회찬과 진보신당에 돌을 던지는 한명숙의 지지자들에게 저는 묻고 싶습니다. 노회찬 후보는 한 정당을 대표하는 서울시장 후보로서 선거를 완주했습니다. 낙선했을 뿐만 아니라 득표율도 기대에 훨씬 못미쳐서 그에게 투표한 저도 매우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이번 선거에서의 이 참담한 패배에 대해 진보신당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것이고, 어쩌면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각오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회찬과 진보신당이 한명숙의 낙선을 책임져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명숙이 낙선한 것은 민주당이 충분한 표를 모으지 못해서지 노회찬이 선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 노회찬을 비난하는 분들이 느끼고 있을 상실감을 저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또한 한나라당의 낙선이 범 민주-진보진영의 가장 긴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왜 지금 그분들이 노회찬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지도 이해할 뿐 아니라, 반 한나라당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그분들이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긴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긴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라든가 누구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든가, 양극화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계급에게 복지예산만 늘리는 것이 아닌 더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 같은 문제들이 그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반 이명박, 반 한나라당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민주당의 승리는 그분들의 생각만큼 중요한 무엇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냥 답답한 마음에 일도 안하고 회사에서 글을 끄적거렸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나의 정치적 지지가 어디에 있든간에 차이에 대해 좀더 관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지한 후보의 낙선 원인을 다른 후보가 후보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찾기보다는 내가 지지한 후보 진영의 부족함에서 찾을 때 저는 우리 내부의 이명박이 사라질 수 있고, 그래야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정치지도자를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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