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이유

Posted at 2011. 3. 24. 14:45// Posted in 성찰

이 결심을 하고 수도 없이 떠올랐던,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회사를 박차고 나갔다가 실패한 회사원들의 이야기였다. 누구는 뭘 한다고 나갔다가 말아먹고 다시 돌아왔다더라, 그래도 돌아온 건 운좋은 케이스고 중소기업으로 다운그레이드해서 들어가거나 한 경우가 태반이더라. 누가 널 좋게 봐주는게 니가 속한 조직 때문이지 너 때문인줄 아냐 나가면 바로 허허벌판에 홀로서는 거다....

그렇겠지. 나라고 그런 고민 안해봤겠나. 가진 재주도 없고 리얼월드에서 맨몸으로 사람들과 부딪혀 본 적도 없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처럼 자랐지 않나.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다니면서 남들 하는대로 공부하고 덕분에 괜찮은 대학가서 졸업하고, 남들처럼 취직해서 살아온 삼십 몇 해 삶에 뭐 대단한게 있었겠어. 회사 짤리는 순간 갈 대 없는 백수되고 뭐 해보려다가 그나마 있는 돈 날리고 거지되기 십상이겠지.

그래도 싫었다. 이대로 사는 건 싫었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용기가 없어서, 가지고 있는 기득권 한 줌 포기하기가 싫어서 내가 아니라고 여기는대로 살기는 싫었다. 나이 사십 될 때까지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 그 땐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게 거지되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뭐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나의 삶의 공유자, 영원한 파트너인 아내가 나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줬고, 그래서 용기가 났다.

회사 그만둔다고 말하면 들은 사람의 반응은 크게 두 개다. "뭐할건데?" 혹은 "와... 부럽다... 근데 뭐할건데?" 같은 반응 같지만 다르더라. 전자는 시니어, 후자는 주니어... 아 주니어들이 회사에 참 만족을 못하는구나. 나 뿐이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많은 동기, 후배들이 나보다 더 착잡해하더라. 그들의 삶도 뭐 나랑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렇겠지.

반응이야 어쨌는 저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해야 하는데, 대답거리가 시원치 않았다. "공부하러 가요." 아니면 "다른 회사 가요."라고 할 수 있으면 수월할텐데 그게 아니니까. 어쨌든 밥벌이는 할 생각이라 "사업할거에요."하면 또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무슨 아이템?" "그게 아직 미정이에요."까지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해진다. "얘 뭐지?" 뭐 이런 표정. 하지만 그게 팩트인걸 어쩌나. 그나마 연차가 비슷한 동기/후배들은 좀 이해하는 것 같더라.

사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결심에서 더 중요했던 것은 "퇴사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퇴사 그 자체였다. 대기업의 말단 직원으로 있는 현재 상태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당연히 그냥 회사 다니는 게 싫어서는 아니다. 좀 더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먹은 것이었다. 나에겐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나답게 산다는 게 뭘까? 사실 지난 몇 해 동안 내가 제일 많이 했던 고민이었다. 근데 이걸 명확히 잡는게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현재의 내 삶에서 '나답지 못한 요소들'을 찾아내서 없앤다면 그것이 명확히 '나답게 사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내 삶을 현재보다는 나답게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서 나답지 못한 첫번째는 '대기업 직원'이라는 사실 그 자체였다. 나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 중 아주 많은 부분이 '거대 자본의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는 현실'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하는데, 나 자신이 그 거대자본의 일부분으로 복무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첫번째 문제였다. 좀 더 손에 와닿는 이야기로 하자면 반도체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데도 산재조차 인정치 않으려고 하는 어떤 회사를 불매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 회사에서 나온 상품을 좀 더 잘 팔기 위해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내 삶을 꼬이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는 옳다고 믿는 바대로만 살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을 야구배트로 패면서 매값을 던져주는 이들을 위해 손발을 놀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을 넘은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부분은 그동안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 지금도 우리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료들을 모독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과 고민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니까... 그 정도로 이해해주길.)

내 삶에서 나답지 못한 두번째는 '분업'이었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한 사람은 돈을 벌고 한 사람은 육아와 살림을 맡는 분업이 일어났다. 어느 쪽이 더 힘든지를 떠나서 (사실 애 보는게 더 힘들다. 이건 명확하다. ㅋ) 이 분업 자체는 나의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와 나 사이에 이해의 균열을 가져왔다. 나는 나대로 회사에서 시달리면서도 나름 집에도 신경쓰려고 하는데... 하면서 서운해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하루 종일 휴식도 없이 애만 보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있는데... 하면서 서운해했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의 성격상 이 문제가 계속 악화만 된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인 문제요인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남자는 돈벌고 여자는 애본다는 고래로부터의 공식을 내가 차곡차곡 따라간다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 다 일을 하고 애는 돈써서 기르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부부는 우리가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

내 삶에서 나답지 못한 세번째는 '과로'였다. 나는 인생의 행복은 하루하루의 행복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먼 미래의 어느날 아마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 경제적 안정을 위해 현재의 하루하루를 희생하는 것은 내 평소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 뭔가 잘못된 것이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남의 눈 의식 안하고 살면 되는 건데, 그걸 못해서 꾸역꾸역 야근하고 주말근무해야 하는 삶이 싫었다. 물론 회사를 나이롱뽕으로 다니는 방법도 있긴 하겠지. 근데 그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방법이다. 차라리 내 일을 하면서 정해놓은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충분한 휴식과 여가와 가족과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지 않을까?

이 세가지의 문제를 꺼내놓고보니 대안은 명확해졌다.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물론 회사 그만둔다고 다 해결될 리는 없다. 대기업을 그만둔다고 해도 장사라도 하나 하려고 치면 자본과의 관계를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고 있으니까. 아내는 휴직중인데, 그 기간이 끝나면 역시 '분업'이 전과는 반대의 역할로 나타날 수 있다. 장사든 사업이든 내 일을 하면 어쩌면 월급쟁이보다 더 바빠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들을 모두 고려해야겠지만 그래도 출발점이 여기 - 퇴사 - 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여기서 출발해서 '나답지 못한 요소들'을 줄여 나가고 반대로 '나다운 요소들' - 이를테면 사회/정치적인 활동이나 혹은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 을 조금씩 더해 나갈 때 내 삶이 더 빛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지금도 불안하다.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 의심할 때도 많다. 내가 철이 없어서, 세상 험한 걸 몰라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다. 나는 적어도 뭔가를 하고 있으니까. 누가 시켜서도 아닌 나 스스로의 고민과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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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나는 경쟁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경쟁만큼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해주고 효율을 촉진하는 장치는 아직까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사회의 경쟁에 대해서는 몇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첫째, '경쟁'이라는 가치에 비해 '협력'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이 너무나 간과되고 있다. 둘째, 경쟁의 공정성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셋째, 너무 어린 나이부터 아이를 경쟁으로 몰아 넣는다. 넷째,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 중에서도 네번째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취약한 사회 안전망과, 'Winner Takes All'이 일반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경쟁에서 지면 죽는다.'는 공포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폭넓게 심어주고 있다. 해고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이라고 쓰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읽는다)한 13명의 쌍용차 조합원들과, 꿈을 쫒다가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친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모습을 보라. 이 같은 공포 속에 부모는 자식이 말을 떼자 무섭게 '영어유치원'과 같은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고, 아이들은 협력이나 우정보다는 경쟁을 배우며 자라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쟁은 그 경쟁의 승자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보다, 패자가 무엇을 잃을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그 경쟁의 정당성을 따지는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경쟁이 많은 경우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생존경쟁'이 사회의 화두라 그런지 요즘 TV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다.' British got talent나 American Idol 같은 프로그램을 카피한 '슈퍼스타K'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김재철 사장의 한 마디로 급조된 '위대한 탄생'으로 인기몰이를 하더니, 위대한 탄생의 시청율 상승에 자극받은 MBC가 마침내 자사의 간판 버라이어티인 일밤 전체를 두 편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채우며 절정에 이르고 있는 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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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슈퍼스타K', 현재 시즌3를 준비중이다

 그런데 이 두 프로그램은 '오디션' 형태를 Base로 한다는 점 말고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러니까 같은 일밤에서 운영할 수 있었겠지.) '나는 가수다'는 '노래'라는 현재 히트치고 있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본 소재를 차용하긴 했지만, '숨어 있는 고수를 찾아서 승자를 뽑는다'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식과는 반대로 '널리 알려진 고수를 경쟁시켜 탈락자를 선발한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신입사원'은 '아나운서'라는 독특한 소재를 차용한 반면 '승자를 뽑는다'는 공식에는 충실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경쟁의 결과가 참가자 - 특히,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 - 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패배했을지라도 타격이 적고 어떤 의미에서 참가만으로 이득인 측면도 있지만, 후자는 다른 기회를 봉쇄당할 수도 있고 참가만으로 원치 않는 부작용에 시달릴 수도 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획, '나는 가수다'

 '승자를 선발한다'와 '탈락자를 선발한다'는 차이를 얼핏 들여다보면 탈락자를 선발하는 방식이 더 잔혹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가수들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이들 중 하나가 탈락한다고 하더라도 그 실력 자체를 의심받거나 가수생명을 위협받는 일 따위는 당연히 없다. (어제 무대를 보았다면, 7등을 한 정엽씨의 실력의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경쟁에서의 패배는 탈락자에게 상처가 되겠지만, 누가 되었든 그 가수는 프로 중의 프로이며 따라서 충분히 이를 감수하고 더 좋은 무대를 준비해가는 채찍질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모인 멤버가 이런 정도의 가수들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여기에 뽑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실력에 대한 인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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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수다' 첫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환상적인 무대를 선사하고도 
  7위에 머물렀던 가수 정엽. 하지만 누구도 그의 실력을 의심하진 않는다. 


 게다가 이들은 아이돌들이 가요 관련 프로그램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에서 주말 황금시간대 공중파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그 뿐이랴, 시청자는 시청자대로 질 높은 공연을 즐길 수 있고 (평가단으로 뽑힌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시쳥률을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경쟁의 승자와 패자, 그리고 경쟁의 무대를 만든 이와 이를 지켜보는 이 모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기획이다. 물론 이들보다 더 무대를 찾기 힘든 실력파 인디밴드나, 아이돌이 아닌 신인 가수 등을 대상으로 비슷한 기획을 했다면 좀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시청률을 생각해야 하는 공중파 버라이어티 프로의 한계를 고려할 때 (넓은 의미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이 정도면 최선의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강자의 횡포, '신입사원'

 '나는 가수다'와 함께 새로운 일밤을 양분하고 있는 신입사원은 여러 의미에서 '나는 가수다'와는 다르다. 가수냐 아나운서냐, 채용이냐 탈락이냐와 같은 표면적인 차이 뿐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가수와는 좀 다르다. 물론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노출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런 까닭에 최근엔 '아나테이너'라는 말도 나왔지만), 아나운서는 기본적으로 '스타'이기 보다는 '언론인'이다. 언론인의 선발을 방송에 비춰지는 이미지만으로 한다는 것은 MBC가 언론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부분이다. 혹시 방송을 통해 '인기 있는' 아나운서를 뽑아서 언론인 보다는 대중문화 스타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시청율을 챙기면서 장기적으로 이들을 연예/오락 프로그램 MC 등으로 활용함으로써 출연료도 좀 아껴 보겠다는 얄팍한 수단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MBC 아나운서 공개채용 신입사원. 나이, 연령, 학력을 파괴하고 '국민을 닮은' 아나운서를
뽑겠다는 그럴싸한 타이틀과는 달리 실제로는 강자의 횡포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생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강자의 횡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가수를 뽑는 오디션과 달리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은 참가자(중 탈락자)의 '다른 기회'를 봉쇄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MBC 아나운서 오디션의 16강쯤에서 탈락하고 그 탈락 사실이 공중에게 알려진 이는, 그런 일이 없었을 때보다 KBS나 SBS의 아나운서로 채용될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KBS나 SBS 입장에서 'MBC의 탈락자를 채용했다.'는 이야기가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MBC는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 특성상 발생할 것이 틀림 없는 부작용인 속칭 '신상이 털리는' 일을 예견한 듯 참가자에게 초상권,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할 것을 서약하도록 만들었다. 따져보면 따져볼 수록 지원자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방송사'라는 '아나운서 지망생'에 대해 절대적으로 '갑'인 존재가 아니라면 유지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물론 MBC 입장에서는 항변할 수도 있다. '그게 마음에 안들면 지원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닌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견강부회일 따름이다. 기자, PD, 아나운서가 되는 일은 속칭 '언론고시'라고 불리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위해 몇 년씩 준비를 한다. 그리고 공중파 방송인 MBC의 아나운서는 이들에게는 수년간 꿈꿔왔던 '꿈의 직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MBC가 강자의 횡포를 부린다고 해서 그 기회를 포기할 수 있을까?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울며 겨자먹기로 참가하게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과연 이들에게 진정으로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MBC가 '공영방송'임을 자임한다면, (물론 최근 재선된 사장의 모습을 보면 '공영방송'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시청률과 수익성을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직원이 될 지도 모르는 이들의 입장을 좀 더 고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다른 '강자'들이 그렇듯, MBC도 자신의 '힘'을 휘두르는 것만 생각했지 그 '힘'으로 인해 눈물을 쏟을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나는 가수다'가 끝나고 나면 채널을 돌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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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Posted at 2011. 3. 4. 11:25// Posted in 감상
 
도시생활자의정치백서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일반 > 정치일반서
지은이 하승우 (북하우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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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전 남긴 말 중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말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는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군사정권 시절 자신에게 붙여진 칭호를 응용하여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惡의 편"이라는 말을 남겼다. 어느쪽이늗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하게 권력이 사유화되고 있는 현실을 깰 방법은 시민 - 혹은 인민 - 들의 정치적 행동임을 말하고 있다.
노무현 / 대통령
출생 1946년 09월 90일
신체
팬카페 노무현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 ( 노사모 )
상세보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라고 그는 남겼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꽤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시민이라고 해도 몇 년에 한 번씩 하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나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에 대한 후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단지 선거에 참여해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혹은 자신이 낙선시키고 싶은 후보를 낙선시킬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선거'라는 판은 그 판 자체가 이미 그들의 사유물화 된지 오래이고, 따라서 그들이 만든 playground에서 뛰어 노는 것만으로 판 자체를 바꾸기는 힘든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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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훌륭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는 그런 종류의 무력함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게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선거/정당/NGO/여론형성/시민불복종 등의 챕터로 나누어 각각에 있어서 일반적인 시민이 어떻게 행동하면 '정치'라는 장에 참가할 수 있는가를 마치 매뉴얼처럼 제시한 이 책은, 정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 알고 있었던 이야기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뭐했던 부분을 긁어준다. 김치찌개에 김치와 조미료가 들어가는 지는 알았지만 감히 요리할 엄두는 못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물은 얼마나 넣고 국물 맛은 어떻게 내며, 신김치국을을 잔뜩 넣으면 더 맛이 좋고, 참치를 넣을 생각이면 참치기름에 김치를 볶는 것도 괜찮다...는 식의 레시피를 알려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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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말고도 한 수 있는 건 많다. 시간과 노력을
조금만 들인다면 말이다...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단지 읽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뭐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고서는 의미가 반감 정도가 아니라 급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일독해보고 내 주면의 작은 것으로부터 실천해보면 어떨까? 시민/사회단체를 찾아서 연대한다든지, 내 정치적 색체에 맞는 정당을 찾아 당원으로 가입해서 당원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나부터도 해야 하는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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