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정치권에 복지열풍이 거세던 지난 2009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의 최대의 정치적 자산인 ‘아버지’까지 동원해 복지바람에 올라탔다. 그 기세를 몰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시하며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보장’,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과 같은 핵심적인 복지공약은 차례차례 후퇴했다.


박근혜대통령의 복지개혁 마지막 카드: 기초생활보장제


아직 박근혜대통령이 취임하고 손대지 않은 복지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 사회의 최후 안전망으로 지난 2000년 도입 이후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너무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급여수준이 계속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지난 봄 ‘송파구 세 모녀 죽음’을 계기로 제도 개선에 대한 여론도 높아졌다. 정부도 여당의원을 동원한 의원입법의 형태로나마 개정안을 제시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기초법 개정의 방향은 ‘맞춤형 개별급여’로 요약된다. 지난 13일 국회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가 밝힌 내용(「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에 따르면 정부 여당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한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정부법 개정안, ‘맞춤형 개별급여’ 도입에 초점


첫째, 현재 최저생계비를 중심으로 일괄적으로 결정되는 수급선정기준을 급여별로 다층화하여 탈수급 유인을 제고한다. 둘째, 급여별 특성 및 상대적 빈곤 관점을 반영하여 보장성을 적정화한다. 셋째,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여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이와 같은 원칙에 기초한 각 급여별 개정방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급여별 수급선정기준이 제시됐다. 생계급여는 종전의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 30% 이하라는 상대빈곤을 기준으로 지급한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이하,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3% 이하의 가구에 대해 실제 임차료 또는 주택수선유지비를 지급한다. 교육급여는 중위소득 50% 이하의 대상자들에게 제공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서는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를 제시하였다. 현재의 부양의무자제도는 수급자 가구에 대해 부양의무를 가진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양의무 미약’ 또는 ‘부양의무 있음’으로 구분되어 적용된다.


(1) 부양능력 미약 :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이 해당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넘을 경우

(2) 부양능력 있음 :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해당가구 최저생계비와 수급자가구 최저생계비를 합산한 것의 130%를 넘을 경우 부양능력 있음(단, 취약가구는 185% 기준)


부양능력 미약으로 판정된 경우 실제 부양여부와 상관없이 수급자에게 일정액의 부양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간주부양비’라고 한다. 간주부양비는 부양의무자 실제소득에서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뺀 금액에 30%의 부양율을 곱하여 산정한다(혼인한 딸이나 취약계층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15%). 이 금액의 수준과 수급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생계급여 급액이 차감되거나 수급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부양능력 있음으로 판정된 경우는 수급 자격이 박탈된다.


정부의 개정안은 이와 같은 기준을 완화하여 부양능력 미약은 부양가구 최저생계비의 185%로, 부양능력 있음은 중위소득과 수급자 가구 최저생계비를 더한 수준으로 상향조정하여 완화하겠다는 것이다(그림참조).



        출처 : 보건복지부, 2014,「복지 사각지대 해소대책과 과제」


여야 의견 상당히 근접한 듯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의원별로 상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나 공통 요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빈곤선 기준을 법안에 명기하여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하지 못하도록 한다. 째,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추가적 완화가 필요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추가적 완화 내용으로는 부양능력 미약을 없애는 것과 1촌의 배우자(즉, 며느리와 사위)에 대한 부양의무 완화, 노인 등 취약계층의 부양의무 면제 등이 거론된다. 그 밖에는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심의, 의결기구인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역할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현재 여야간에는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 여부와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상대빈곤선의 법안 명기를 수용할 경우, 야당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입장이 정부 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핵심 문제인 수급선정기준 논의가 빠져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부의 개정안과 여야 간의 논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정부의 개편안은 수급선정기준의 개선이 아닌 통합급여를 개별급여로 전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송파구 세 모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리고 수많은 빈곤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합급여 체계가 아닌 수급선정기준 문제다.


수급선정기준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현재 기초법은 수급 대상을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최저생계비의 세 가지가 수급자 선정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들 각각은 모두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의 소득인정액이 실제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격을얻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무려 117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부양의무자의 대부분은 소득이나 재산이 기준보다 소폭 높은 경우로 실제 부양능력이 높지 않은데도 자신 때문에 부모나 자식이 수급권을 얻지 못하게 하는 원인제공자로 내몰리는 꼴이다. 또한 간주부양비나 자의적인 부양관계 판단으로 인한 수급 탈락자의 비중도 적지 않다.


둘째,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으로 구성된다. 소득평가액은 실제소득을 기준으로 하지만, 추정소득 규정을 두어 실제 소득이 없는 경우라도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소득이 있다고 간주한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 재산과 같이 사실상 현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없는 소득을 이유로 급여가 줄어들거나 수급 대상에서 탈락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관련기사 “방한칸 있다고 수급자 될 수 없다?”)


셋째, 최저생계비의 경우 그 수준이 낮아 실제로 빈곤층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거주지역이나 가족구성 등 소비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최저생계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은 제도 도입 당시인 1999년 도시근로자 가구 중위소득의 45.5% 수준에서 지난해 40% 수준으로 계속해서 감소되어 왔다.


이 중에서 좀 더 급박한 문제를 꼽으라면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액의 문제다. 부양의무자와 소득환산기준으로 인해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비수급 빈곤층’이 되고 있다. 이들은 수급자만큼, 혹은 그 이상 빈곤함에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 계속 방치될 우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세 가지 제도 개편 방향, 즉 ‘급여별 수급 기준 다층화’,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그리고 ‘부양의무 기준 완화’가 수급선정기준 개선과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우선 급여별 수급기준 다층화, 즉 개별급여로의 전환은 비수급 빈곤층 문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의료급여나 교육급여에 대해 수급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일부 급여를 차상위 계층으로 확대하지만, 부양의무자를 이유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여전히 배제한다. 상대빈곤선 개념 도입 또한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급여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현재 제도에서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 내로 포괄하는 조치는 아니다.


정부의 개편 방향 중 유일하게 수급선정기준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 완화다. 이는 비수급 빈곤층의 수급권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장한다는 점에서 금번 제도 개편 안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계한 것처럼 현재 개편안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12만명에 불과하다. 이는 부양의무자 등의 이유로 수급권을 박탈당한 117만명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여전히 90%의 비수급 빈곤층은 사각지대에 남는다.


뿐만 아니라 정부 안은 부양의무자의 기준 완화 후에도 간주부양비를 존속시키고 있으며, 소득환산이나 추정소득의 문제는 아예 다루고 있지 않다. 특히 소득인정액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개편안과 여야간 논의는 수급선정기준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논의이다. 물론 통합급여의 개별급여화나 상대빈곤선 논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급성에 있어서 제도 밖에 방치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정부의 제도 개편안은 부분적으로 빈곤층의 생활을 개선한다고 해도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양의무자 폐지돼야


세 모녀 사건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빈곤한 사람들이 매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 아들을 가진 아버지도, 2011년에 수급자에서 탈락하고 객사한 할머니도, 2012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머니도 모두 빈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서조차 밀려난 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거듭되는 비극의 중심에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밀려난 비수급 빈곤층이 있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편은 수급선정기준의 개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 논의의 초점을 부양의무자제도에 두어야 한다. 가족에게 생계 책임을 묻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게 옳다. 정부의 개편안이나 야당이 제시하고 있는 완화 방안은 현상의 일부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는 못한다. 부양의무자가 수급자 선정 기준이 존재하는 한 비수급 빈곤층의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양의무기준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보다는 부양의무기준을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논의해야 한다.


소득인정액에 있어서는 실제 있지도 않은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추정소득의 폐지가 필요하다. 추정소득은 수급자의 실제 소득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에도 수급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소득이 있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일정 금액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제도다. 이는 실제 없는 소득을 있는 것으로 산정하는 문제를 낳는다.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의 경우 임차보증금을 포함한 주거목적의 재산은 상당한 고가가 아닌 한 소득환산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소득이 될 수 있는 것을 소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가난한 사람의 복지로 제자리 찾아가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본 목적은 빈곤한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며, 경제적 효율성의 추구는 그 운영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목표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부정수급 운운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뿌리 자체를 흔들곤 한다. 앞에서 살펴본, 부양의무자제, 추정소득, 재산의 소득환산액 모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관리하려는 정책 방향이 낳은 독소조항들이다. 비수급 빈곤층을 제도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이러한 규정들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정리하면,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논의는 핵심 주제 선정이 부적절하다. 맞춤형 급여체계, 빈곤선 기준(상대 빈곤선)도 개선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지만, 수급선정기준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논의는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일이다. 수급선정기준을 개혁의 핵심 주제로 삼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비수급 빈곤층의 복지 권리를 다루어야 한다.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 논의에 앞서 수급선정기준을 논의 테이블 중심에 올리고 수급 당사자, 시민들과 국민적 토론을 벌이자. 그래야 또 다른 세모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본 글은 프레시안에 내만복 칼럼으로 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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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거리 (보관을 위한 포스팅)

Posted at 2014. 7. 8. 16:39// Posted in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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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목적의 집을 한 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조세의 기반이 되는 형태의 '소득'을 발생시키지 않을지라도 경제학적인 개념에서 분명히  '소득'과 다름없는 역할을 한다.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일종의 '필수 지출'인 집세를 납부할 필요가 없지 때문에 필수소비가 줄어드는 형태로 소득이 발생한 것과 다름없다.



2


나는 기본적으로 '재산'은 '소득'을 대체할 수 없으며, '소득'을 대체하는 부분은 임대소득과 같은 형태의 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에, 재산을 사회정책에서 소득을 대체하는 개념으로(예를 들면 기초생활보장의 소득환산이나, 건강보험에서 지역가입자의 재산등급에 따른 보험료) 사용하는 것인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3


이와 같은 생각은 많은 경우의 재산에 있어서 맞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업목적의 건물, 토지, 기계 등등의 '자본'과 같은 것들. 그런데 위 1번의 사항과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즉, 1억짜리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이유로 인해 (1) 1억짜리 집을 월 50만원에 세를 주고, (2) 다른 월 50만원짜리 세를 내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1억짜리 집을 가지고 있으며서 그 집에 사는 사람과 집과 관련한 사항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동등하지만 임대소득은 소득으로 간주하고 주거용 주택은 소득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회정책 기준에서는 차별받게 된다. 이는 '수평적 형평성'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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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서 적용하는 사회정책 기준은 사실상 flow를 발생시키지 않는 요소를 flow로 생각하는 문제점 외에, 임대소득을 얻고 있는 사람의 경우 임대소득으로 한 번, 재산으로 한 번 두 번 기준에 걸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줄이기 위해 일정한 상한을 두고 상한 안에서는 재산을 무시하고 상한을 넘으면 제외하는 cut-off 방식을 쓸 수도 있지만, 이는 cut-off 범위 내에서는 3번의 불형평을 발생시키고 cut-off 주변에서는 1만원 차이로 급격한 격차가 발생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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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아직 모르겠다. 일단 문제 정리 차원에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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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종대 이사장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 회의 자료를 자신의 블로그에 전격 공개했다. 부과체계 개선안과 모의 운영 결과를 담은 내용이다. 언론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변화가 목전에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건보공단, 복지부 사이 심상치 않은 긴장


아직 논의 중인 민감한 회의 자료를 공개하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곧바로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이 이를 부정하고, 뒤이어 김 이사장이 원래의 글을 삭제했다. 해프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둘러싼 물밑 논의가 심상치 않음을 시사한다. 


실제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김종대 이사장이 공개한 개선안이 기존의 부과체계를 크게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고, 그의 지위를 고려하면 나름대로 무게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정부도 하반기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번 기회에 부과체계 개편 방향을 짚고 넘어가자.


사회보험에서 부과체계는 보험료를 어떻게 걷느냐는 규칙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사회보험의 보험료 부과체계는 가입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의 보험료를 걷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사회보험을 운영한 오랜 역사 속에서 소득에 정률의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형평성 있고 안정적인 재정 확보 방안이라고 여겨 왔기 때문이다.


형평성 문제 심각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그러나 한국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무척 복잡하다. 우선 가입자를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구분한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다른 사회보험과 마찬가지로 임금소득에 일정 비율(2014년 5.99%)을 보험료로 부과한다. 다만, 임금이 아닌 소득(금융 소득, 사업 소득, 임대 소득 등)의 합이 연간 7200만 원을 넘는 경우에는 이 금액에도 같은 비율의 보험료를 부과한다(이와 같은 경우는 매우 적어 대부분 직장가입자는 소득에 정률의 보험료를 낸다고 볼 수 있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소득뿐 아니라 재산과 자동차에 각각 등급을 설정하여 등급별 점수에 일정 금액을 곱하여 보험료를 부과한다. 지역가입자의 소득은 직장가입자와 달리 모든 소득을 합산하여 산정하며, 재산에는 건물, 토지, 선박, 항공기 등뿐 아니라 전·월세 보증금도 포함된다. 특히 지역가입자의 신고 소득이 연 500만 원 이하면 소득 등급이 아니라 '생활 수준 및 경제 활동 점수'로 불리는 일종의 추정 소득을 기준으로 점수를 산정한다. 이 추정 소득은 신고된 소득 외에 재산, 자동차, 가족 수, 연령 및 성별까지 고려하는데, 이렇다 보니 연 소득 500만 원 이하의 지역가입자의 경우 재산이나 자동차 항목은 보험료 산정 시 두 번 계산되는 셈이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중요한 차이는 보험료를 부과하는 단위에서도 존재한다. 직장가입자는 개인에게 보험료가 부과되며, 가족들은 피부양자로서 추가적인 보험료 부담 없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지역가입자는 소득, 재산 및 자동차 산정 시 가구단위의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모든 가족이 보험료 부과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국민건강보험료의 부과체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가장 큰 비판은 동일한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어떤 직역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보험료가 상당히 큰 폭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5억 원짜리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직장가입자인 경우에는 집 소유 여부가 보험료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지역가입자인 경우에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소득은 없이 자산만 보유한 노인의 경우 자녀가 직장을 다닌다면, 피부양자로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자녀가 없는 경우에는 지역가입자로 자산에 기초한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은퇴 시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바뀐 결과, 소득이 줄었는데 보험료는 늘어나는 문제는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 외에도, 유동성이 아닌 재산이나 자동차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의 문제나 제도가 너무 복잡하여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늘 지적됐다.


'소득 중심'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맞다!


김종대 이사장이 잠시 공개했던 개편안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므로 이를 정부 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대략 언론 보도를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가 개편안의 핵심이다.


* 직장 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 소득을 단일 기준으로 일정비율(5.79%)의 보험료를 부과 

* '소득'의 기준은 가입자 구분 없이 근로소득과 근로 외 소득을 모두 포함한 '종합소득' 기준 

* 최저보험료로 현행 직장가입자 최저보험료 수준(월 8240원) 설정


또한 이 방안은 '재정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는데, 이는 곧 보험료 부과체계를 이와 같이 바꿀 경우에도 전체 보험 재정은 종전과 같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개편안은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대부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실 보험료 부과 기준을 단일하게 소득 중심으로 하고 모든 가입자에게 정률의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은 많은 전문가나 보건의료단체에서 지지해 온 방식이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방안을 취할 경우 직역에 따른 부과 기준 차이로 발생하는 형평성 문제는 거의 없어지며, 재산이나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 부과 및 제도의 복잡성 문제도 대부분 해결된다. 피부양자에 관한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이와 같이 제도를 변경할 경우에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지기에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열린다고 볼 수 있다.


직장인만 봉이냐고요? 사장도 직장가입자 


이와 같이 보험료 체계가 개편될 경우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 구조는 상당 부분 달라진다. 현재 지역가입자의 대부분이 연간 소득 500만 원 이하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상당 부분 감소하며, 특히 소득이 파악되지 않는 약 55%의 지역가입자는 기본보험료만 내게 된다. 반면에 직장가입자는 주식에 대한 배당이나 금융 자산에 대한 이자 등이 종전과 달리 보험료 부과 대상이 되면서 보험료가 상당 부분 상승한다. 언뜻 보면 '또 직장인만 유리지갑이고 봉이냐?'는 반발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정의를 좀 더 살펴본다면 이는 달리 볼 여지가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상 직장가입자는 '모든 사업장의 근로자 및 사용자와 공무원 및 교직원'으로 정의된다. 흔히 인식하는 것처럼 임금 노동자만 직장가입자이고 사업주, 고소득 전문직, 자영자 등이 지역가입자인 것이 아니라 임금 노동자, 사업주, 고소득 전문직은 대부분 직장가입자인 것이다. 특히 사업주나 고소득 전문직은 직장가입자가 됨으로써 소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임금 외 수입에 대해 보험료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반면에 지역가입자는 한 명의 직원도 두지 않는 영세자영자와 함께 농어민이나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렇게 구분하고 보면 지역가입자의 대부분이 소득이 없는 것이 단지 소득 파악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구성을 고려하면, '소득이 없거나 적지만 주거용 주택이나 자동차를 보유한' 지역가입자로부터 '임금 외에도 다른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로 보험료 부담이 옮겨지는 것이 결코 사회정의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에 보도된 방안이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가 주의 깊게 논의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과제 1: '건강보험 하나로'로 건보 재정 늘려라


첫째, 건강보장의 재정 문제다. 김 이사장이 공개했던 안에서는 보험료 부과체계를 변경해도, 보험 재정은 현재 수준에서 유지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좀 더 구체적인 제도의 구성 및 운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지역가입자 보험료의 절반 이상이 재산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임을 고려한다면, 직장가입자의 소득 범위를 확대 적용해도 부과체계 개선이 보험 재정에 어려움을 가져올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 2011년에는 '건강보험공단쇄신위원회'에서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 개편과 함께 소비세 활용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사실 부과체계의 변화뿐 아니라 인구구조의 변화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라는 과제를 생각한다면, 보험 재정 규모는 부과체계의 형평성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 일부 복지시민단체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보장성을 더 확대하는 '건강보험 하나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세는 기존의 건강보험료보다도 더욱 역진적인 재원이기에 건강 보장의 형평성을 악화시킬 것이다. 이와 달리 건강보험 부과체계의 형평성 개선과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연계된다면 국민의 의료비 부담 감소, 사회적 연대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과제 2: 종합소득 과세 기반 확충하라


둘째, 사회적 수용성의 문제다. 이미 공개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안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긍정적인 것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것도 있었다. 부정적인 언론이 내세운 가장 핵심적인 논리가 '공식적인 소득이 없는 자산가'의 문제였다. 월 100만 원을 벌어 빠듯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보험료를 내지만, 수억 원의 재산을 가진 자산가는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특히 한국의 연금제도 미성숙으로 고령자 대부분이 소득은 없지만, 그중 일부는 부동산을 위시한 상당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근본적으로 가로막을 문제라 볼 수는 없다. 부과체계 개편의 방향이 옳다면 이와 같은 문제들은 오히려 정책적 보완이 필요한 과제로 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안은 재산에 의한 소득을 철저히 파악하여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즉, 임금 소득보다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임대 소득, 사업 소득, 금융 소득 등을 지금보다 철저히 파악하여 보험료를 부과하면, 고액 자산가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 또한 꼭 보험료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양도소득세나 상속세와 같이 부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철저한 과세,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재산세의 강화 등을 통해 공공 재정 세입에서 고액 자산가에 대한 형평성 문제는 개선될 수 있다. 제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한다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과 함께 적어도 임대, 사업, 금융 소득에 대한 소득 파악을 강화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이런 조치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재산에 의한 소득 파악과 과세 진행 속도에 맞추어 과도적으로 일정 규모 자산을 가진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가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건강보험료를 사실상 내지 않는면 이는 전체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작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경과적 조치를 둘 경우에도 '소득 중심'이라는 원칙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과제 3: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마련하라


마지막으로 건강보험료로 가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저소득층의 문제다. 지난 2011년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약 3.35%는 5000원 미만, 2.19%는 1만 원 미만의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보면 이번 개편안처럼 8240원의 기본 보험료가 부과된다면, 약 5%의 가구는 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를 제외하고 보면,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빈곤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개편은 빈곤한 가구에 대한 보험료 부담 경감, 면제 정책과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열어 놓고 전면 논의하자


김종대 이사장이 공개한 부과체계 개편안은 그 이후 문형표 장관의 비판, 새정치연합 최동익 의원을 비롯한 국회 쪽 비판, 그리고 언론에서 이루어진 몇 차례 심층 취재 등을 거친 후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공단이 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기관이 아니라며, 이사장이 블로그를 통해 사실상 공론화 작업을 벌인 것에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였다.


가입자의 처지에서 보면 공론화 형식은 본질적인 사안이 아니다. 건강보험료 형평성이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과제라면 논의를 활짝 열어야 한다. 그게 보건복지부가 할 일이다. '소득 중심 부과체계'로의 이행 속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이 논의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 프레시안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으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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